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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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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라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오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런 저런 설교를 할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실을
우리가 이렇게 합니다.
다. 하나님
1.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2. 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죄를 벌하셔야만 합니다.
:8하; :7하
가르시아 예화
-주제전환: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라. 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죄를 기록한 책 예화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저를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살이 많이 빠져 보이지 않습니까? 72.6에서 65킬로로 뺐습니다. 왜 뺐느냐? 2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 어느날 아들이 저와 임신 막달의 아내를 번갈아 보다가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아빠. 왜 아빠는 임신한 엄마 배 보다 더 커? 이것이 일차 충격이었어요.
둘째는 제가 약 10년전쯤에 폐동맥 색전증으로 쓰러졌고, 약 2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쓰러진 몸무게가 73킬로 였습니다. 게가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어요. 그래서 빼기 시작했어요.
빼려고 하니, 쉽지가 않더라구요. 교역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진행해야 되었구요, 그럴려면, 가리는 음식이 없어야 했어요. 심방을 해야 했기에,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 그 앞에서 아 됐구요. 저는 다이어트라서 안먹습니다. 이러면 안되잖아요. 모든 종류의 음식을 다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육아와 교회일을 동시에 진행하니 운동시간이 제한적이고, 30분정도의 운동, 혹은 그 이하의 운동을 하면서도 살을 뺄 수 있어야 한다. 세번째, 어떠한 약도 섭취하지 않는다. 비싼 다이어트 약이 있다고 하고, 체지방 분해를 돕는 약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 요요가 절대 와서는 안된다. 단기간에 빨리 빼면 다시 돌아가 버릴게 뻔하다.
그랬더니 결론이, 아~ 살은 못빼는 거구나. 일단 몸의 매커니즘을 알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고, 구글에서 논문들을 리서치하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읽는 것을 원체 좋아하니. 관련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기초 대사량, 유지 칼로리, 매크로 계산법, 인슐린 저항성을 정황화 시키는 인슐린 민감도 문제, 식욕을 억제시키는 렙틴 호르몬, 증폭 시키는 그렐린 호르몬등을 알게 되었고, 결국 살이 찌는 원리, 빼는 우리 몸의 기저에 흐르는 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런 약, 심지어 비타민도 먹지 않고, 한달에 1.5킬로 정도만 빼서 처음에는 못알아봐 주더라구요. 요즘 살쫌 뺐어. 몇킬로 뺐는데? 1.5킬로. 봐요. 비웃잖아요. 그래서 현재 72.6에서 65.3. 4개월동안 진행한 상황입니다.
자 원리를 깨치고 난 다음에는 결국 살을 빼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첫 다이어트 성공이에요.
결국 제 기준에서는 몸의 원리를 알아야 뺄 수 있다라는 거였어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 이 본문의 기저에 흐르는 원리를 알아야 참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외면적 사건을 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무슨 정신병자 같아 보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그 원리, 기저에 깔려져 있는 기본적 원리를 알면 예수님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자 오늘 본문을 한번 볼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어요.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뒤집어 엎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냥 뒤집어 엎는게 아니라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고,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손을 쏟으시고, 상도 엎으시고…..
자 누가 교회에 와서 이런 행동을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을 거에요.
그런데 이 앞부분에 뭐가 나와요?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이적이 나와요.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하시고, 또 겸손하고 이해심 많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전 정화사건으로 넘어가더니 전혀 딴판의 모습,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이중 인격 같은 느낌이죠.
현대 법으로 따지면, 재물손괴, 폭행으로 형사구속 사유가 되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정도가 될 거라고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전과가 없다면 집행유예로 풀러나겠지만, 재물손괴에 대한 민사법이 적용되어서 손해배상 청구가 반드시 이루어질 거에요. 제가 이걸 어떻게 아느냐? 법조계 있는 사람한테 물어봤어요.
물론 2000년이라는 시대와 문화의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오늘날의 법적인 기준으로 단정짓기는 분명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모함을 당하고 결국 십자가 형에 내던져 지거든요. 결국 예수님 십자가형의 결정적 사건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오늘 성전정화 사건이에요.
자, 그러면 오늘 본문의 참 원리, 의미는 뭘까요? 우리가 일차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이 본문 바로 앞에 나온 가나의 혼인 잔치와 이 성전정화 사건을 비교해서 봐야 합니다.
첫번째 이적 가나의 혼인잔치.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입니다. 자 그러면 왜 하필 예수님이 첫번째 이적을 술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요한복음을 듣고 있었던 최초의 청중들, 바로 유대인들 때문이에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이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을 듣는 순간 뭔가가 떠올라요. 그게 뭐냐? 구약에 나오는 모세 사건이에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에요? 모세에요. 모세가 위대한 이유는 출애굽 역사의 지도자였기 때문이죠. 출애굽 하기 전에 10가지 재앙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위임합니다. 그 첫번째 재앙이 뭐에요? 바로 나일강 물을 피로 만드는 사건이죠. 나일강 물을 피로 만들어서 그 물을 먹은 자는 다 죽게 만들어버리는 재앙이었죠. 이게 바로 유대인들이 가장 크다고 여기는 큰 인물, 모세의 첫 기적이에요.
자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은 어때요? 똑같이 물을 변화시키는 기적이에요. 물을 변화시켜서 똑같은 색깔로 바꾸지만, 그 변화된 물은 포도주가 됩니다. 모세는 물을 변화시켜서 온 땅을 장례식장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예수님은 물을 변화시켜서 온 땅을 기쁨의 잔치로 만들어 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말하고 싶은게 뭘까요? 모세와 예수, 이 둘 중 과연 누가 큰자인가? 라는 거에요. 요한복음 2장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과 독자들에게 과연 누가 큰가라고 묻는 겁니다. 지금 요한복음서 기자는 지금 모세보다도 예수가 훨씬 더 크고 위대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자 그럼 오늘날 우리에게는 누가 가장 큰 자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자가 누구인가요? 우리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뭔가요? 돈인가요? 권력인가요? 명성인가요? 사회적 지위인가요? 내가 그것을 쫓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기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들 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크다. 그것들은 우리를 재앙으로 몰고가고 결국에 그것에 함몰되는 순간 죽음의 늪으로 빠져 들 뿐이고 만족감 없는 달음박질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야 할 길, 쫓아야 할 대상이고 동일하게 바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재앙이 아니라 기쁨의 잔치로 만들어 버린다. 누가 위대한가? 라고 묻는 겁니다.
자, 그럼 첫번째 가나의 혼인잔치 기억은 예수님이 모세보다 위대하다. 모세는 나일강 물을 피로 만들어 재앙으로 보내버리지만,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기쁨의 잔치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예수가 모세보다 위대하다라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자. 바로 이후에 성전정화 사건이 등장하죠? 성전 정화 사건은 출애굽의 10번째 이적사건, 10번째 재앙을 기억나게 하는 유월절 심상을 사용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그 분 자신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려서 온 세상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에요. 그렇게 모세보다 훨씬 크신 분이 이제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뒤집어 엎는 거에요. 자 그러면 왜 성전을 뒤짚어 엎어 버리실까요?
이거는 성전 때문에 그래요. 성전의 원리를 먼저 알아야 되요.
자, 그럼 성전이 뭘까요? 우선 성전의 기본은 모세의 십계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두 돌판을 모세에게 주신 다음에 이 말씀과 함께 이스라엘 백섣들이 움직이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합니다.
백성들이 그 두 돌판을 언약궤라고 하는 곳에 넣어서 성막이라고 하는 것을 또 만들어서 움직이게 되죠. 이 성막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라고 광야 생활 동안 여겨집니다.
성막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인 두 돌판이 있었고, 광야 40년 동안 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곳마다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가는 곳곳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이기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하면, 반드시 승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외적을 물리칠 수 있다라고 하는 사상이 여기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자, 이렇게 움직이던 하나님의 집이 이제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예루살렘에 건물을 짓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뒤엎으신 예루살렘 성전이에요.
첫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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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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