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막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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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익숙했던 삶에서 믿음의 삶으로 도약할 것을 도전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속에 젖어서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찾아 오셔서 새로운 길을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찾아 오셔서 믿음의 모험을 하시도록 도전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특히 전통과 관습에 매여 있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결국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이 되고 맙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향해 질문하며 공격합니다. “왜 죄인들과 함께하는가?”, “왜 당신과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왜 안식일에 일하는가?” 우리식으로 질문을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 사람들보다 세상 사람들과 친하게 지냅니까?”, “왜 그렇게 기도생활을 잘 안지킵니까?”, “왜 주일성수를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까?” 얼핏보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들인거 같지만 그들의 관심은 경건의 모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진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드러내시기에 하나님의 권세가 같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향한 질문이 16절에 나옵니다.
()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 시대에 세리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로마 정부로부터 권한을 사야 했습니다. 또 레위(마태)는 갈릴리 지역의 세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열한 인물로 여기는 헤롯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또한 세리는 습관적으로 자기들에게 할당된 것보다 더 많이 세금을 거두어 들여서 사람들이 싫어했습니다. 세리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에 법정의 증인 될수도 없었고 회당에서도 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하시려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교제권으로 이들을 불러 들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까지 질문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진정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친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새롭게 되기를 도전하십니다. 또 내가 한정짓는 관계를 뛰어 넘어 예수님처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가기를 도전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은 어떤 자들인지를 바라보며,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예수님처럼 함께있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죄인입니다(17)
1.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죄인입니다(17)
()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질문한 것을 예수님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도 잘 알고 있던 속담을 인용해서 멋진 대답으로 답하십니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존재가 불필요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건강한 척 가면을 쓰지 맙시다. 날마다 걸려 넘어지고 있는 죄가 있는 연약한 자인데도 잘 살아가는 척 감추지 맙시다. 우리 주님은 “내가 너의 약함을 알기에 치료해주려 왔다:”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가 너의 죄를 알기에 온전케 하려 부르신다”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와 예수님은 함께 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연약한 자임을, 죄인임을 인정한 자입니다. 처음부터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옆에 함께 도와 주기 위해 와 있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무지함 때문에 내 힘만 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맙시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2. 공동체의 연약함을 받아주는 제자입니다.(14)
2. 공동체의 연약함을 받아주는 제자입니다.(14)
예수님과의 만남은 1회적인 사건에서 멈추어선 안됩니다. 예수님은 레위와 만나 한번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레위를 향해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에 예수님과 계속해서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은 아무나 우연히 만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는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현장에 나아가셔서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씨름하는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초청하십니다. 사람들은 그의 죄된 모습만 주목했지만, 예수님은 레위를 지켜보며 그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레위가 가진 상세한 것에 대한 집중력의 자질, 마태복음에서 드러난 주의 깊게 기록해 나가는 기술의 능력을 보셨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그 모든 가능서들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롭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나를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 배우고 교제하면서, 같은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레위는 그 부르심에 반응해서 일어나 따랐습니다. 레위의 순종은 단순히 직업을 바꾼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삶으로부터의 근본적인 단절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결단하지 못했지만 레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는 새로운 제자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제자 공동체에 속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잘난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 공동체와는 다른 아무도 자랑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자들이 이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형제 자매로 새롭게 관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주님은 이런 제자 공동체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모인 것입니다. 서로의 문제점을 바라볼 때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부르신 주님을 바라볼 때 교회는 사명을 같이 감당하는 은혜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3. 연약한 이웃을 초청하는 전도자입니다(15)
3. 연약한 이웃을 초청하는 전도자입니다(15)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자 마자 레위가 한 것은, 그의 주위의 세리와 제인들을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자리에 초청한 것입니다. 죄인들이 제자가 된 은혜의 공동체에 초청한 것입니다.
()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우리 주위에도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겉모습으로는 감추고 있을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눈여겨 본다면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자라면 마땅히 이들을 친구로 받아 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회개하게 하고 설교하는 것 이상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기꺼이그런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한 교제를 하시는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기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연약한 나를 찾아오신 것은, 그리고 연약함을 받아주는 제자 공동체에 속하게 하신 것은 그 주님을 더 많은 연약한 자들에게 알리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이렇게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함께 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연약한 사람들을 찾아 이 기쁨의 교제에 초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결론
결론
올해 가을에도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행복축제를 하고 오늘 선포식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이 잔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이 초청하시는 새로운 믿음의 삶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습관과 전통에 매여 있으면 겉모습의 활동에만 멈출 수 있습니다.
이번 행복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속에 우리가 먼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이 병들고 죄가운데 무너졌던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이 되살아 나기를 소망합니다.
또 나를 부르셔서 제자 삼아주시며 함께 세워주신 공동체의 소중함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연약함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연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받아주면서 더욱 주님의 능력을 자랑하는 시간이 됩시다. 그리고 세상이 보지 못하는 성도님들의 가능성들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부르심을 향해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시간이 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위의 연약한 사람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한번 더 깊이 바라보며 이 놀라운 주님의 교제에 초청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와 함께하신 그 주님은 분명히 그들과도 함께 하셔서 새로운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