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막1:2-15)

마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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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세계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는 것,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것, 교회를 세우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모든 하나님의 사역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추구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지만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세워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로 인해 파괴된 세상 속에서 공동체에 대해 왜곡된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보다 갈등과 분열과 상처를 경험합니다. 어떻게 우리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 힘으로 노력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모실 때 그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죄로 인해 파괴 되었는데 바로 예수님이 죄와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꿈꾸고 동경하기만 하는 나라가 아닌 경험할 수 있는 실재가 되었습니다.
침례 요한의 역할은 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의 사역도 중요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 길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것도 통하여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해야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다른 모든 것은 주님을 만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감동적인 예배, 체계적인 훈련, 깊은 나눔이 있는 공동체, 열정적인 헌신, 사랑이 넘치는 봉사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그 모든 것에 예수님이 왕으로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침례 감옥에 갇히면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 “14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갈망해야 합니다.

15절에서 “때가 찼고”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렸던 그 때,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그 나라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자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한 침례 요한에 대해 소개하면서 구약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합니다.
()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2)이라 했지만 사실은 (), (), ()을 혼합하여 인용한 것인데 가장 유명했던 이사야를 대표해서 말한 것입니다.
()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이 출애굽기 말씀은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백성들보다 앞서 보내셔서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라기 말씀은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이 길을 예비할 사자를 보낼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말씀은 최종적인 구원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출애굽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가는 출애굽기의 보호의 준비, 말라기의 심판의 준비, 이사야의 구원의 준비의 말씀을 예수님과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이 더 정확히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침례요한의 준비와 예수님의 오심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언이 성취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선포했지만 그들은 실재로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그 “때”가 찼습니다. 침례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의 오심은 그토록 기다렸던 구약의 예언 말씀을 이루어 졌다는 감격이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까? 그 갈망이 있는 자는 때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때가 찼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되면 갈망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이 있기에 예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말씀의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 삶의 의미가 깨달아 집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 주님을 만나도록 이끄는 침례요한의 사역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입니다. ‘외치는’이라는 의미는 ‘간절한 심정으로 소리지르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외치게 하고 간절함이 있는 자리가 이 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선 광야로 찾아가야 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이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한 손길로 인도함을 받은 장소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이유는 광야로 인도하여 예배받으시고 교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처럼 광야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자들이 찾아가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도 정말로 주님을 만나는 갈망이 있다면 광야까지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갈망이 있기에 “때”가 찰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주님을 향한 갈망이 있기에 광야까지도 나아갑니다. “때”가 차도록 기다린 자, “광야”까지도 찾아간 자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특별하고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되는 것입니다.

2.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한 사역도 회개의 침례를 전파한 것입니다.
() “4 침례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한 곳 입니다. 침례 요한은 이 곳에서 새롭게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맺을 자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당시에 원래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기 위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례요한은 종교 의식만 치를 뿐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무너진 유대인들도 침례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종교 의식의 껍질로 쌓여있는 이면을 빼고 그 속에 진짜 우리 모습을 직면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선 나의 죄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통치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방식, 내 습관, 내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가겠다는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삶의 모든 영역과 관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예수님이 주인되지 못하고 내 자아가 드러났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안에 이 잘못된 자기 만족의 추구, 자기 생각의 한계를 짓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갱신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의롭게 살고, 괜찮다는 이 생각이 무너 져야만 합니다.
()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자신의 죄성을 볼 수 있는 마음이 회복된다면 그 만큼 그 영역을 하나님께 주도권을 올려 드릴 수 있으며 그만큼 그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깨닫고 이해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죄에 대한 깊은 자각 속에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안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령의 침례라 할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분으로 소개했습니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리라”
성령의 침례를 통해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게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침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보내신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겸손히 순종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예수님이 일으키실 사역, 즉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여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자신의 사역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침례를 받는 모습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은 온화하고 평화롭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 것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창세기 1장의 수면을 운행하시서던 하나님의 성령의 모습과 같이 창조적인 능력으로 임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복음을 진정으로 믿으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인해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또 예수님이 침례받으실 때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음성을 들으셧기 때문에 공생에 기간동안 자신을 향한 그 어떤 공격도 이겨내시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이 확신은 우리를 향한 어떤 공격도 우리를 흔들 수 없게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이와 같이 복음을 믿고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는 삶은 영적 싸움이 있는 삶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실만큼 낮아지셨지만 거기에서도 천사의 수종을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당한 모습이 얼마나 멋집니까?
복음을 믿는 삶,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삶은 편안함을 보장한 삶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성령에 이끌림 받을 때 우리도 성령님이 광야로 몰아내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굶주려보시고, 피곤해 보시고, 유혹을 받아 보셨던 것처럼 이 싸움이 결코 쉽지 많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성령이 주는 확신은 우리가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그 광야에서도 나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의 도움을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는 결코 어려운 목표, 수고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될만큼 가치있는 것입니다.
()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위해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선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과 깊고도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선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성령의 내주하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우리 성도님들도 분명히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는 감격이 같이 따라 올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면 그 하나님의 나라는 나를 통해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 교회 내가 있는 곳 어디서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명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것이지만 침례 요한과 같이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워가십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침례 요한처럼 주님을 만나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돕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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