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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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9 NKRV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5.1-
리액트 - 반응하다.
리 - 다시
액트 - 행동하다.
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했을 때
그것을 받아 돌려주는 어떤 행동.
‘리 액션'
방송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거나 행동을 할 때
그것에 대해서 호응해 주는 것 - 리 액션.
우리는 [리액터] 반응하는 사람인가?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생각하며
물 흐르듯이 살아가
오늘 본문은 수동적인 ‘리액터'들의 이야기로 시작함.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 많은 병자들이 있음.
맹인,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그들은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음.
요한복음 5:7 NKRV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자들은 누군가가 넣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음.
그게 사랑하는 가족이든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시키든
본인은 들어갈 수 없으니 시킬 사람이 필요함.
우리는 수동적인 리액터일 때가 많은 것 같음.
누군가 은혜의 바다 안에 빠져들게 만들어주기를 바람.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기를 바라고,
교회 생활이 그렇기를 바랄 때가 많은 것 같음.
교회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은
부모님들의 니드를 채워주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가면
자동적으로 ‘변화' 되리라 생각하며
[수동적 리액터]가 되가는 것.
더 심각한 상황은 ‘리액터'를 포기한 사람.
오늘 주인공은 서른 여덟해 동안 병자였음.
우리 사회가 점점 [수동적 리액터]가 되어가서
그런데 이 병자는
전문가 그룹 누군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음.
능동적 리액터들의 의
요한복음 5:7 NKRV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넣어주는 사람이 없음.
38년.
질릴 때로 질린 사람.
어쩌면 2등까지 해 본 적 있을지 모름.
정말 간발의 차로 들어가지 못했을 수 있음.
그러다 보니 중독이 되는 것.
조금만 더 빠르면. 지난 번에 2등이 되었으니,
다음 번에 언젠간 되겠지.
그렇게 38년이 지나고 나니
옆에 있는 사람같은 가족도 떠나고, 돈을 주고 사서
넣어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저 그 상황에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액션을 포기해버린 사람이 된 것.
이게 가장 절망적인 상황.
중독에 빠진 것 마냥 교회 생활 하는 사람들.
그냥 교회 오는 것. 습관처럼. 기대감도 없고, 열정도 없고
하나님이 있는 건 믿지만 아무 소망도 희망도 갖지 않은채
몸에 밴 습관처럼, 언젠가는 바뀌겠거니 생각하면서
나의 반응과 액션을 포기한 사람.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 줄 사람들도 떠나가고
외롭고 힘들게 겨우겨우 교회 문지방을 밟는 사람.
기도해보지만, 기도에 응답도 없고, 기대감도 없고
막막한 현실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사람.
그 때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가심.
그리고 가장 절망에 빠져있는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심.
그는 어쩌면 아무 기대감 없는 표정으로 예수님을 보았을지도..
6절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실 때도
7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해줄, 움직여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음.
오늘 본문에 물이 ‘움직이다.’라는 단어는
[장소의 변화 뿐 아니라 질적, 양적, 실재적 변화를 동시에 의미했다. ]
고대의 철학자들은 어떤 최고의 존재에 대한 개념을
자기는 질적, 양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를 하지 않으면서 /
다른 모든 질적, 양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의 근원이 되는자
라고 정의 내림.
최고의 존재는 ‘리액터'가 아니라, ‘액터'임.
다른 모든 것의 질적, 양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존재.
오늘 예수님은 그 장소에서
물이 움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심.
본인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셨지만,
그 가운데 마치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듯이
폭발력 있는 일을 하심.
가장 오래된 병자를 고치시면서
리액트 [반응]을 만들어 내심.
리액터 라는 단어는 ‘반응'이라는 뜻도 있지만,
핵 융합 이라는 뜻도 있음.
그래서 핵 원자로를 ‘리액터'라고 부름.
주님은 아무런 변화가 없으시지만,
그곳을 핵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변화로 가득한 곳으로 만드심.
수동적인 리액터들, 리액터가 되기를 포기한 사람들
모두를 뒤집어 놓으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까지도 움직이게 만듦.
왜냐하면,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임.
여기에 안식일. 그리고 우리가 예배하는, 기도하는 이유가 있음.
그것은 바로 [반응]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하신일은
[무반응]으로 가득찬, 정적인 공간에
마치 원자폭탄을
모든 것을 반응하게 만드신 것.
그 공간의 모든 질적, 약적, 실재적, 장소적 변화의 근원이 되신 것.
우리의 삶이, 신앙이 [무반응]으로 가득찰 때
우리는 다른 것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움직이시는 한 분.
모든 변화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함.
그분을 찾을때, 그분을 만날 때
우리가 수동적 리액터 이든지, 무반응 자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임.
우리의 삶이 베데스다 연못처럼 움직이지 않는 물을 쳐다보며
38년을 허송세월 하기보다.
우리 옆에 찾아오신 주님께
‘내 삶을 당신이 변화시키실 수 있나이다'
기도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그래서 ‘진정한 리액터'로 우리 삶이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원자로 같은 삶으로 다시 사용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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