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새로운 창조로 이끄는 애통 (슥12:10-13:1)

스가랴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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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작년에 교회 사무실에 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감옥에서 방금 나왔는데 자신의 신세가 막막하여서 자살을 할까 하다가 답답해 교회를 찾아 왔다고 합니다.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와서 부담은 되었지만 이야기라도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같이 대화를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고아원에서 자라 답답해서 도망쳐 나왔는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여러 곳 일자리를 찾다가 일했던 곳이 나중에 알고보니 불법 보이싱 피싱 회사였습니다. 경찰에 잡혀 감옥에 잠깐 있다가 출소했지만 자신의 삶이 너무 부끄럽고 앞으로의 삶도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신도 교회 올 수 있는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복음에 대해 깊이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그 형제 말고도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예수님 안에서 누구든지 새로워 질 수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때가 있습니다. 말 실수를 했을 때를 되돌리고 싶고, 헛된 시간을 보낸 시절들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비전,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스가랴 12장에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터를 세우시고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망해가는 절망스러운 이스라엘을 새롭게 재창조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적들을 공격하는 취하게 하는 잔과 무거운돌로, *화로와 횃불과 같은 부흥의 통로로, *하나님과 여호와의 사자를 닮아가는 자로 창조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말씀은 동일하게 죄로 인해 절망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향한 새로운 창조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하나님의 놀라운 새로운 창조가 애통하는 회개를 통해 일어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먼저 우리의 심령 가운데서 회개를 통해 새롭게 하심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한 사람 안에서 눈물과 애통이 일어나게 하셔서 사명의 자리로 이끌어서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어제 임우현 목사님께서 사랑하는 동역자의 죽음으로 인한 눈물이 그러했고 오늘 목사님의 말씀 속에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한 눈물도 그러했습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오늘은 특별히 그 눈물 중에서도 회개를 통한 새롭게 되는 애통의 눈물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내가 새롭게 되기를 소망합니까? 우리의 자녀가, 우리 가정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교회가, 우리 일터가, 우리 나라가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그것에 대한 성령님이 주시는 부담감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로 이끄는 애통은 어떤 애통인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님이 주시는 애통입니다(10a)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총: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과분한 호의를 말합니다.
간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18회 사용되었는데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가 쌓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이 두 단어를 심령(루하흐)이 모두 수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인한 은총, 성령으로 인한 간구함을 하나님께서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서 충만케 하실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 안에 들어와서 역사할 때 이러한 은총과 간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총과 간구가 애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애통은 우리가 스스로 쥐어서 짜낸 애통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시원한 감정 해소를 위한 것이나 내적 치유를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간구를 성령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수련회나 집회에서 그 순간의 감정의 해소를 위한 짜릿한 눈물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저도 사람들이 은혜받았다고 말하면 눈물흘려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저는 청소년시절에 수련회를 갔을 때 남들은 은혜받았다고 눈물을 흘리는데 저만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서 속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뭔가 그런 눈물이 있어야 신앙이 더 좋은 거 같은데 저는 그런 눈물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 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라는 단어 자체가 자격없는 자가 받는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청년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은혜를 경험하고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 은혜의 감정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데 저의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달아지면서 간절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때 새롭게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실 때 먼저 우리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신 뒤 우리 삶의 총체적 변화로 이끄십니다. 말씀대로 변화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정죄감 속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 앞에 서기를 갈망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주실 것입니다. 정말 새로워지기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애통을 우리에 주실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앙이 아닌 성령의 역사에 의한 자발적인 사랑과 순종의 삶으로의 사는 신앙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십자가를 아는 애통입니다(10b)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원문: "그들이 그 찌른 바 나를 바라보고" , 영어성경, 새번역 성경도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동일한 위격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뒤에 이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줍니다.
()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한 게시록에서도 이 스가랴서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바라보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것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자각하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이 애통의 정도를 비유할 때 독자, 장자의 죽음에 통곡하는 정도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자를 위해 하니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창에 찔리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어야 했음을 아는 그 놀라운 희생의 가치를 아는 애통인 것입니다.
또, 이 애통의 정도를 왕의 죽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이것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한 요시야 왕의 죽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요시야 왕의 죽음은 유다 왕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슬픔이었습니다. 기울어져 가는 왕국의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최후의 소망이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애통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낮아지셔서 희생하신 그 가치를 아는데서 오는 애통입니다.
그러므로 이 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이해하고 깨닫는데서 오는 애통인 것입니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지 않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죄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애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캠프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지옥에 대한 무서운 영상을 보여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을 보고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애통은 공포와 궁중심리를 이용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자각과 예수님의 보혈의 가치에 대한 자각에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는 여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궁중심리에 이끌려서, 예수님이 불쌍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이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왕이신 통치자인 것을 알게 하시고 이런 존귀한 분이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이 사실을 알려 주셔서 애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 개인에서 공동체로 전파되는 애통입니다(14)

()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한 사람에게 애통하는 마음을 주신 성령님은 그 애통이 공동체에 전파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 운동(부흥 운동)회개 운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1절에 예루살램의 애통이 12절에서는 온 땅 각족속의 애통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임한 회개의 역사가 성령님이 부어지는 곳마다 온 땅에 전파되었습니다. 이 회개의 운동은 공동체를 통해 계속해서 전파되지만 먼저는 각 개인이 죄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따로": 12-14절에 11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족속과 나단의 족속은 왕의 족속을 대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레위 족속과 시므이 족속은 제사장 족속을 대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왕과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러한 애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모든 남은 족속과 그들의 아내들도 따로 애통한다는 것은 소외되거너 예외되는 자 없이 모두 이 성령의 애통케 하심을 경험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한 사람이 성령안에서 진정한 애통을 통해 부흥을 경험할 때 그 애통의 영향력은 흘러 갑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인격적인) 접촉이 있을 때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창조의 역사는 애통을 경험한 개인을 통해 공동체로 더 나아가 모든 족속으로 폭발적인 영향력이 흘러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애통을 통해 이루어져 갑니다. 이 애통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주셔서 먼저 내면의 변화부터 새롭게 하시는 애통입니다. 이 애통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하는 회심의 애통입니다. 이 애통은 한 개인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부흥을 경험하여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애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애통하는 자들에게 용서의 샘을 열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진정한 회개 속에 이루어지는 애통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열게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성령의 애통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고 예배의 감격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일상이 새로워지고 내가 속한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에 창부흥의 영향력을 끼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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