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슥11:4-14)

스가랴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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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도살장에 잡혀가는 소나 돼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직접 보지는 않았는데 영상으로 보니 눈물을 흘리는 소도 있고 “꽥꽥” 소리지르는 돼지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개를 잡고 있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너무 처참해 보여서 그 짐승들이 참 불쌍해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이상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되어 도살장으로 잡혀가 곧 죽게될 양 떼를 먹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 선지자들에게 상징적인 행동을 하게 하시곤 하셨습니다. 호세아에게는 간음한 여인을 아내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향해서는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스가랴에게 목자가 되라고 요구한 하나님의 말씀은 장차 진정한 목자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묘사된 목자로 오실 예수님의 모습은 10장에서 보여준 선한 목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목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목자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심판받을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잡혀 죽을 양 떼가 바로 이스라엘의 지금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본문의 앞 부분인 1-3절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탄식하며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본문에서 레바논은 이방지역이 아닌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지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북방에서부터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자랑거리인 백향목이 부러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최상급으로 튼튼한 백향목이 불살라졌다면 더 못한 잣나무, 상수리나무들도 쓰러질 것이기 때문에 곡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쓰러진다"는 표현은 완전한 파괴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오실 때 구원과 심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 목자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길을 끝까지 거부하면 심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성도님들의 양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목자나 교사이신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일지라도 목자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잉태해야 하고 그가 자랄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제자삼으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목자없는 양 같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지금 이 대한민국의 모습이 정말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아래 있는 ‘잡혀 죽을 양 떼’의 모습은 아닙니까? 누가 이들에게 진정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판의 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너무 늦어버린 후 우리는 잃어버린 양들로 인해 탄식하고 슬픔의 노래를 불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양들을 잘 돌보는 목자일까?”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주님앞에 죄송하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돌보라”
본문을 통해 주님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6, 9)

참 목자가 없는 이스라엘은 방치된 양들의 상태와 같습니다.
()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자아도 죄가 없다’: 이방의 원수들이 죄책감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착취할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모르는 방치된 양들을 원수들은 마음껏 무너뜨릴 것입니다.
‘판 자들은 내가 부요하게 되었으니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합니다. 실재로 이방인의 압제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탐욕을 채운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양을 잃어버리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는데 빠진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데, 이 땅의 교회들이 무너져 가고 있는데… ‘우리 가게 사업 잘되어서 찬양합니다.’, ‘우리 자녀 취업되어서 찬양합니다’ ‘우리 집안 문제 없이 지나가서 찬양합니다.’ 이정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 필요와 관심에만 빠져서 양들이 원수들에게 팔려가고 있는데도 무감각해서는 안됩니다. 팔려가는 주님의 양들을 보며 가슴치며 아파해야 합니다.
‘목자들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선한 길로 인도해야할 영적 지도자들도 아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저도 사역자지만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역하면 안됩니다. 직분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행사를 준비하고 적당히 봉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고귀한 일입니다. 영혼이 죽어가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6절에 나옵니다.
()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우리의 언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스가랴서에도 그렇고 선지서에서 하나님은 죄악의 길로 향하는 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심판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러나 회복의 메시지를 같이 주십니다. 이 속에 있는 진짜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용서하시며 인내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인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해 본 사람은 조금 이 마음을 압니다. 영혼을 양육해 본 사람은 조금 이 마음을 압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속쓰림이 필요합니까? 양을 돌보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목자를 이해해 주려 하지 않고 사랑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양들을 위해 희생하기 싫고 나의 욕구, 나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처음에 스가랴도 이 양들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긍휼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은총의 막대기, 연합의 막대기로 양을 돌보며 먹였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목자들과도 잘 맞지 않아 더 힘들었습니다.
()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양을 돌보라고 보낸 목자들이 포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결국 스가랴도 양을 돌보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양들은 방치되어 버렸습니다.
()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양을 돌보는데 사용하기로 한 은총의 막대기, 연합의 막대기를 꺾어 버렸습니다.
()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스가랴 선지자는 말을 듲지 않는 양을 돌보며, 이것을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인내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이러한 스가랴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전하시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심판의 때에도 하나님은 구원하시고자 남겨 놓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귀한 자신의 양들을 위해 이 땅에서 우리를 목자로 부르십니다. 더 늦기 전에 목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먹여야 합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될 때 포기않는 주님의 마음으로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십자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12)

스가랴는 목자로서 양떼를 돌본 품삯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은 30개를 품삯으로 받습니다.
()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이것은 스가랴가 경제적인 보상을 원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양을 돌보는지 하나님이 알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목자의 섬김에 담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가치를 알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은 삼십 개’는 구약시대 종 한 명의 몸 값입니다. ‘토기장이’는 상당히 비천한 노동자 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은 삼십 개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계산된 몸값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대로 가롯 유다에게 은 30에 팔리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몸값으로 받았다가 대제사장에게 되돌려 주었고 훗날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데 쓰임으로 이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
온 세상을 구원할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핏값을 은 30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목자는 돈과 개인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진정한 목자는 희생의 삶을 살며 온 세상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치를 깊이 아는 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목자는 십자가의 사명을 위해 사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두고 도망간 베드로를 부르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치고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의 가치를 알고 경험한 자가 예수님의 양을 치고 먹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베드로를 향해 젊어서는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갔지만 늙어서는 팔을 벌리고 남이 띠를 띠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계신 성도님들도 내가 원하는 길로만 가고 나의 욕구만 추구하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나를 희생하고 깨드리며 양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영적 아비의 신앙을 가진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본문의 다음 부분은 하나님께서 다시 스가랴를 부르셔서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를 빼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리석은 목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어리석은 목자는 어떤 목자입니까?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않고 흩어진 자를 찾지 않고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는 목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목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팔이 아주 마르고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오른쪽 눈’은 지각과 통찰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양을 돌보라고 주신 팔과 눈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건강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지금 살아갈 재정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시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왜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소중한 양을 돌보라고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의 양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에게는 양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눈에는 양이 너무 많은데 목자가 없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습니다.
()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예수님은 참 목자로 이 땅에 오셔서 그 사명대로 사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양을 맡기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이 양을 돌볼 가장 적기입니다. 아니, 양을 돌볼 마지막 유일한 기회로 여기시며 사명자의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진정한 양식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목자의 부담감을 주시는 자가 아니라 추수의 기쁨, 생명을 거두는 기쁨에 동참하도록 부르신 분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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