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구원을 바라봅시다 (슥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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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다 보면 악성 댓글의 폐헤가 엄청남을 느낍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기사를 자주 보는데 엊그제 영웅이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는 것을 자주 보곤 합니다. 조금이라도 건수가 있으면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심한 문제들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어쩔때면 그런 말들에 동조해서 비난해지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만약 내 실수와 연약함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어떤 느낌이 날까 생각해보면 오싹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공인으로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어서 숨어지내는 것이 더 편합니다. 괜히 내 신앙이 드러나면 공격의 표적만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자기 중심을 냉철히 살펴보면 악한 본성이 있음을 모두가 압니다. 사탄은 그것을 알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건들며 정죄감을 주고 우리를 실패감에 빠지게 공격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풍성하며 성령이 충만할 때야 우리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이 상하고 죄로 넘어지는 것이 반복되면 이런 정죄감이 우리를 주늑들게 합니다. 조용히 숨어지내고 싶어지게 합니다.
스가랴서는 포로시대의 패배감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회복의 비전의 말씀들입니다. 스가랴는 환상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비전을 마음에 새기며 선포하게 됩니다. 이 환상은 막연한 꿈이 되는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약속의 예언의 환상이기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자의 환상을 통해서 고난 속에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습니다. 네 뿔과 대장장이의 환상을 통해서 대적들이 아무리 강하게 공격해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척량줄을 잡은 사람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네 번째 환상으로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입니다. 사탄이 정죄하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향해 하나님이 변호하시고 영광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사탄은 우리 연약함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여기 등장하는 여호수아 대제사장은 포로시대에 활동했던 대제사장입니다. 이 환상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참소하는 사탄을 향해 하나님은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며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하나님께서 구원한 백성을 사탄이 책망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우리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같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흉측하며, 열매를 맺기도 불가능한 상태일 지라도 완전히 재가 되기 전에 건져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실 계획이 있으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에 시달리고 마귀가 주는 참소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질 때에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성경의 예언은 2중, 3중적으로 성취되어집니다. 예언된 말씀은 역사상 이스라엘에게 실제적으로 성취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어집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의 때까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 말씀이 성취되어집니다. 오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내 종”, “싹”, “세운 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단어들입니다.
내 종: , , ,, , , 등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불림
싹: 보잘 것 없으나 장차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될 것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 , ,
세운 돌 ()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 () “모퉁잇돌” ()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우리의 근원적인 죄는 단번에 완전히 제거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지를 우리도 같이 바라보기 소망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 좌절하지 말고 반드시 영화롭게 우리를 변화시킬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1.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주십니다 (4-5)
1.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주십니다 (4-5)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한 것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대제사장의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기서 더러운 옷은 원어상 복수인데 ‘너무나 추하고 더러운 상태의 옷’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반복되어 넘어지는 죄들이 너무나 우리를 더럽게 느끼게 만들며 차마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벌거벗겨진 수치심으로 숨은 것처럼 우리 안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기에 부끄러운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고 찾아 오시어 가족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분으로 나오십니다.
()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대제사장직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 새 옷을 입혀서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스가랴가 제사장으로 취임하는 것을 상징하는 정결한 관을 씌우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행한 삶으로 정체성을 찾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로 정체성을 찾는 자들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감격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고 주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주신 신부의 옷을 입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2.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7)
2.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7)
우리에게 새 옷을 주시며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옷에 맞는 영광스러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집을 맡고, 하나님 나라의 뜰을 지키며, 하나님과 왕래가 있는 깊은 교제가 허락된 사명의 자리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행하고': 원어의 원형 '떼레크'는 반복하여 걸음으로 단단해진 길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규례': 원어의 원형 '미쉬메레트'는 파수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망을 보거나 목자가 경성하여 양떼를 지키는 행위. 임무, 사명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지켜야할 원칙이 있습니다.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은 부담스러운 짐과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의사, 판사,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제사장의 직무는 쉽고 편안한 자리는 아닐지라도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능력있고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원래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인간이지만 죄로 인해 파괴되어 오용하던 것을 구원의 은혜로 새롭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엄청난 영적인 권세를 마땅히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아도 우리를 구원해주신 분이 하나님 이시기에 하나님이 능히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명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다스리는 영적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과 왕래하는 것 같은” 그 누구도 모르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허락될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습니다(10)
3.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습니다(10)
서론에 말씀드렸듯이 8, 9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10절에 그 날에 있게 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초대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특별히 평화와 번영의 때의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솔로몬 시대의 평화와 번영를 묘사하는데 이 나무의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물론 부활의 때에 온전히 경험하겠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는 영생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그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성도의 교제를 누리며 성령이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의 부유함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을 누리는 자들로 초청받은 것입니다.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세리, 창녀, 범죄자 이방인들이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단정지으며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야말로 구원을 갈망하고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갈망하기 때문에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성도님들은 이 땅의 부유함을 갈망하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천국의 부유함을 갈망하는 자들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날마다 천국 잔치로 초대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결론
결론
이 땅의 현실에 치열하게 살아가면 더 잘살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지만 우리는 더 큰 연약함과 공험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성을 가진 자들이기에 사탄이 끝없이 그것으로 우리를 참소하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은 구원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함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서 우리 삶은 의미있는 삶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스가랴가 바라본 것처럼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새로운 옷을 입었으믈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부족한 우리를 성화의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며 하늘의 다스리는 권세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때까지 아직 부족함이 있더라도 능히 마지막 때에 영화롭게 구원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매일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유다서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부활의 날까지 구원받은 은혜로 살아가시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에 동참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