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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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식, 언약의 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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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주해

14 וַיִּקְרָ֧א אַבְרָהָ֛ם שֵֽׁם־הַמָּק֥וֹם הַה֖וּא 1/4
יְהוָ֣ה׀ יִרְאֶ֑ה 1/2
אֲשֶׁר֙ יֵאָמֵ֣ר הַיּ֔וֹם 1/4
בְּהַ֥ר יְהוָ֖ה 1/8
יֵרָאֶֽה׃1/2
( WTT)
아브라함이 그 장소의 이름을 불렀다(칼 바익톨)1/4
여호와 이레라고1/2 - 이레는 라아로 보다라는 뜻
그래서 오늘날 말해진다(니팔 미완)1/4
여호와의 산에서1/8
준비될 것이다(니팔 미완)1/2
: 아브라함이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고 오늘날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라고 말해진다.
- 라아동사로 보다, 살펴보다, 이해하다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1291번 쓰이는데 공급하다로 쓰는 경우는 5번밖에 없다.
- 8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을 할 때, 준비하다도 라아동사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심은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15 וַיִּקְרָ֛א מַלְאַ֥ךְ יְהוָ֖ה 1/4
אֶל־אַבְרָהָ֑ם 1/2
שֵׁנִ֖ית 1/4
מִן־הַשָּׁמָֽיִם׃1/2
( WTT)
여호와의 사자가 불렀다(칼 바익톨)1/4
아브라함을1/2
두번째1/4
그 하늘로부터
: 여호와의 사자가 그 하늘로부터 아브라함을 두번째 불렀다
16 וַיֹּ֕אמֶר 1/4
בִּ֥י נִשְׁבַּ֖עְתִּי 1/8
נְאֻם־יְהוָ֑ה 1/2
כִּ֗י יַ֚עַן אֲשֶׁ֤ר עָשִׂ֙יתָ֙ אֶת־הַדָּבָ֣ר הַזֶּ֔ה 1/4
וְלֹ֥א חָשַׂ֖כְתָּ 1/8
אֶת־בִּנְךָ֥ אֶת־יְחִידֶֽךָ׃1/2
( WTT)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1/4
나로[나를 가리켜] 내가 맹세한다(니팔 완)1/8
여호와의 말씀[선포]/2
왜냐면 네가 이것을 행하고(칼 완)1/4
너가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칼 완)1/8
너의 외아들을1/2
: 그가 말했다. “나로서 내가 맹세한다. 여호와의 선포다. 왜냐면 네가 이것을 행하고 네가 네 외아들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외아들이란 표현은 우리말론, 독자, 외아들등 쉬운 표현이지만 히브리어로는 복잡한 표현이다. 직역하면 하나뿐인 아들정도다. 이것은 엄청난 것이다.
-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아끼지 않아 하나님의 두번째 말씀을 받는다.
- 아끼다라는 말은 보류하다 구하다 금지하다 억누르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끼지 않았다는 말의 뜻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순종했다는 뜻이다.
- 아브라함의 적극적인 순종에 하나님의 큰 응답이 있다.
17 כִּֽי־בָרֵ֣ךְ אֲבָרֶכְךָ֗ וְהַרְבָּ֙ה אַרְבֶּ֤ה אֶֽת־זַרְעֲךָ֙ כְּכוֹכְבֵ֣י הַשָּׁמַ֔יִם 1/4
וְכַח֕וֹל 1/8
אֲשֶׁ֖ר 1/16
עַל־שְׂפַ֣ת הַיָּ֑ם 1/2
וְיִרַ֣שׁ זַרְעֲךָ֔ 1/4
אֵ֖ת 1/8
שַׁ֥עַר אֹיְבָֽיו׃1/2
( WTT)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고(칼 부정사 칼 미완) 반드시 네 자손을 그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할 것이다(히필 부정사 히필 미완)1/4
또한 모래1/8
아쉐르1/16
바닷가의1/2
그리고 네 자손이 차지할 것이다(칼 바익톨)1/4
을1/8
그의 적들의 성문을1/2
: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고 반드시 네 자손들을 그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네 자손은 그의 적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 바닷가의 모래가 첫번째 황제에서 모든 걸 덮고 있다. 축복과 번창을 직접적으로 알게 한 것이다.
- 이 축복은 자손이 적들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적이 없다는 뜻이며 동시에 많아져 필요한 지경도 다 채워진다는 의미다.
18 וְהִתְבָּרֲכ֣וּ בְזַרְעֲךָ֔ 1/4
כֹּ֖ל 1/8
גּוֹיֵ֣י הָאָ֑רֶץ 1/2
עֵ֕קֶב 1/4
אֲשֶׁ֥ר שָׁמַ֖עְתָּ 1/8
בְּקֹלִֽי׃1/2
( WTT)
그리고 그들이 네 자손 안에서 축복받게 될 것이다(히필 완)1/4
모든1/8
그 땅의 민족[나라]들이1/2
보상이다1/4
네가 순종한(칼 완)1/8
내 목소리에1/2
: 그리고 그 땅의 모든 민족들이 네 자손 안에서 축복받게 될 것이다. 네가 내 목소리에 순종한 보상[상, 댓가]이다.
- 말씀의 순종은 우리만 받는 것이 아니다.
- 이스라엘은 순종의 대가로 자신만 복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복받게 되었다.
19 וַיָּ֤שָׁב אַבְרָהָם֙ אֶל־נְעָרָ֔יו 1/4
וַיָּקֻ֛מוּ וַיֵּלְכ֥וּ יַחְדָּ֖ו 1/8
אֶל־בְּאֵ֣ר שָׁ֑בַע 1/2
וַיֵּ֥שֶׁב אַבְרָהָ֖ם 1/4
בִּבְאֵ֥ר שָֽׁבַע׃ פ1/2
( WTT)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의 하인[종, 젊은 남자, 소년]에게로 돌아갔다(칼 바익톨)1/4
그리고 그들이 일어났다(칼 바익톨) 그리고 함께 갔다(칼 바익톨)1/8
브엘세바로1/2
아브라함이 살았다[거주했다](칼 바익톨)1/4
브엘세바에1/2
: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의 하인들에게로 돌아갔고 그들은 일어나 함께 브엘세바로 갔으며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 다시 원상복귀한다.
- 비장하게 시작했지만 아무일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 아마 함께 간 두명의 하인도 모리아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이 사건은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만 경험한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이 당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2명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다시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인생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았다. 그래서 적극적인 순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하나님의 시험이라 볼 수 없다. 이미 이삭이 태어날 때부터 그는 순종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확인이다. 그리고 이삭에게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축복의 약속을 받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대부분의 경우 아브라함과 하나님 1:1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예외가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 심판 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다. 그 때도 그 언약을 듣는 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외에 사라뿐이다. 사라의 경우는 아들에 대한 약속이 사라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고 볼 수 있기에 언약의 당사자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식에는 당사자 외 다른 이가 자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언약식에는 아브라함외에 이삭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삭은 특별하게 하나님과의 언약식(아브라함과 같은)이 나오지 않는다. 그랄에 가기전에 아브라함을 들어 하신 언약식뿐이다. 아브라함에 비하면 매우 적다. 아브라함은 이런 언약식을 3번을 한다. 이것은 소돔 심판 전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온 것을 빼도 3번이다. 특별히 언약식에는 언약의 당사자 외에 자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면,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언약이지만 이삭도 언약의 당사자라 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여주고 그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에서 이삭과의 언약식에서 아브라함의 순종이 언급되는 것이다.
창세기 26:5 NKRV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1차 작성
2절에 하나님께서 번제물로 이삭을 바치라 할 때, 나~ 가 붙는다. 마치 바칠수 있겠느냐는 뉘앙스가 있다. 이것까지도 순종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다.
9절까지는 이삭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 이후는 나오지 않는다. 아들 아이 외아들이라 불린다. 그리고 축복은 자손들이다.
이삭에게는 자신이 살아남음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스라엘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외아들대신 하나님의 외아들을 주신다.
3절에서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하고 이것저것 다 한다. 이건 종이 할 일이다. 굳이 아브라함이 할일은 아니다. 이럴거면 종이 따라갈 이유가 없다. 여정의 동행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번제를 요구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차 작성
서론
하나님의 언약, 이삭에겐 별로 없음(아브라함에게 3번, 소돔전까지 합치면 4번 언약, 이삭에겐 26장에 단 한번)
모든 문제의 근원 - 이해할 수 없음
순종을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
본론
현재 아브라함 : 모든 것이 평안하고 잘되어가는 상태
하나님 임재 -> 아들을 바치라.
히브리어로 나~가 들어감. 하나님께서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한다는 뉘앙스
‘이것도 해줄수 있겠어?’
아브라함의 반응 : 묵묵한 순종
순종은 믿음에서 나온다.
이해할수 없어도 순종한 아브라함.
-> 외아들, 아들이란 표현이 반복. 매우 소중함
유대전승에는 사라가 이후 갑자기 죽은 이유가 이 사건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 이삭은 37세 라고 말한다.
물론 다 믿을수는 없음
하지만 혼자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올라간 것을 보면 꽤 건장했을 듯.
다 자라지는 못했어도, 그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정도는 자랐다는 뜻.
이후 이삭은 번제로 드려지기 위해 제단 나무위에 결박된다.
이 때, 이삭이 반항하지 않음.
7절에서 이미 이삭은 뭔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번제물은 없고, 대신 밧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더이상 묻지 않음.
아브라함의 대답에서 확신을 느꼈을 것임.
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음.
히브리서 11:17–19 NKRV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말씀을 믿음.
그래서 주저없이 행함.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그리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면?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러지 않는다면?
그때가 바로 믿음의 시험의 순간이다.
이 시험을 기쁨으로 통과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다. 이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2. 모두에게 축복이다.
자신만 복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축복받는다.
먼저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알았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이레라는 단어의 원 뜻은 보다 이다. 그래서 이해하다. 살펴보다 등의 뜻이 파생된다. 오늘 본문에서 나온 준비하다라는 1291번 쓰인 중에서 5번이다. 그중 오늘 본문 8절에서 1번 14절에서 2번 쓰였다. 거의 보다, 이해하다. 살펴보다 로 쓰이는 단어다.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자신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험은 축복이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축복하신다.
그 축복은 이전의 축복을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것도 이전 축복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님께서는 이런 언약을 행할 때, 언약식 때, 언약의 당사자 외에는 부르지 않으신다.
그런데 17장 8절에서 가나안땅 차지가 대적의 성문 차지로 바뀌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쭉 그랬다. 오로지 하나님과 아브라함 1:1의 언약이다.
예외가 있다면 사람의 몸으로 찾아오셔서 이삭의 탄생을 예고하실 때다. 그때 사라가 장막안쪽에서 듣고 있었다.
그러나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만의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라도 언약의 당사자이다.
그렇다면 여기 이삭은?
이것은 지금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언약이지만 결국 이삭에게도 향하는 언약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볼질적으로 조건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지키신다. 그런데 이 언약은 보면 조건이 있는거같다. 아브라함이 순종했기에 언약을 주시는 것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삭 역시 언약의 당사자라면 이삭에게 이 언약은 무조건적인 언약이다.
이후 이삭이 하나님께 언약을 받는 장면은 26장에 흉년이 들었을 때다.
창세기 26:5 NKRV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삭에게 이 기억은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 그의 순종을 이삭에게 보여주셨다. 몸으로 체험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셨다.
그래서 이삭이 언약의 계승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의 순종은 우리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자식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이 내게만 약속이 되는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도 약속이란 것을 알게 하신다.
결론
순종은 믿음에서 나온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말씀이 바로 나를 향한 약속이란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속에서 믿음은 순종으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순종은 나로 끝나지 않고 내 자녀에게도 약속이 이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순종을 사용하시어 역사할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에게도 역사할 것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서론
지금까지 쭉 살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속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언약식으로 하신 것만 3번입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 전에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을 포함하면 4번이나 언약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경우에는 별로 없습니다. 26장에 한번 언약하시고 그 이후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심해서 그럴까요? 그것보다 이삭이 아브라함보다 흔들림없이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왜 이삭은 그럴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쭉 살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속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언약식으로 하신 것만 3번입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 전에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을 포함하면 4번이나 언약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경우에는 별로 없습니다. 26장에 한번 언약하시고 그 이후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심해서 그럴까요? 그것보다 이삭이 아브라함보다 흔들림없이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왜 이삭은 그럴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본론
오늘 본문전에 아브라함은 평안했습니다. 그랄왕과의 언약을 통해 완전히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만인지 꽤 오랜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갑자기 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이런 명령을 하시기 어려우신지 히브리어로 보면 2절에 이삭을 데리고에 우리 말로, 제발 부디 라고 번역되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살려서 번역하면 약간 이상하게 되어서 이삭을 데리고 와줘 가 됩니다. 그리고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이 단어는 378번 쓰이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에는 단 5번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경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려운 요구를 하시거나 반대로 매우 친절히 위로하시며 말씀할 때 쓰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는 말이나 롯이 떠난 후 사방을 바라보라고 할 때입니다. 실망한 아브라함에게 친절히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매우 신중하게 말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도 할 수 있겠어? 라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오늘 본문전에 아브라함은 평안했습니다. 그랄왕과의 언약을 통해 완전히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만인지 꽤 오랜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갑자기 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이런 명령을 하시기 어려우신지 히브리어로 보면 2절에 이삭을 데리고에 우리 말로, 제발 부디 라고 번역되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살려서 번역하면 약간 이상하게 되어서 이삭을 데리고 와줘 가 됩니다. 그리고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이 단어는 378번 쓰이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에는 단 5번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경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려운 요구를 하시거나 반대로 매우 친절히 위로하시며 말씀할 때 쓰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는 말이나 롯이 떠난 후 사방을 바라보라고 할 때입니다. 실망한 아브라함에게 친절히 말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매우 신중하게 말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도 할 수 있겠어? 라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이 명령이 정말 이해할 수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라도 순종합니다. 실제 유대전승에서는 이 때 이삭의 나이를 37살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사라가 이 후 본문에서 갑자기 죽는데, 이 사건의 충격으로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외아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영어주석에서는 이것을 너의 가장 소중한 자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왜냐면 그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이 명령이 정말 이해할 수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라도 순종합니다. 실제 유대전승에서는 이 때 이삭의 나이를 37살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사라가 이 후 본문에서 갑자기 죽는데, 이 사건의 충격으로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외아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영어주석에서는 이것을 너의 가장 소중한 자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왜냐면 그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NKRV
NKRV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순종할 수있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순종할 수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성경말씀에 나온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습니다. 믿음은 성경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말씀을 믿었기에 이렇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성경말씀에 나온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습니다. 믿음은 성경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말씀을 믿었기에 이렇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때 우리는 이럴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만 이 말씀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준 약속이란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어떤 때는 너무나 차갑게 식어져버려 성경말씀은 이해되지 않는 딴 말에 불과하고 내 삶과는 상관없다라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이럴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만 이 말씀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준 약속이란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어떤 때는 너무나 차갑게 식어져버려 성경말씀은 이해되지 않는 딴 말에 불과하고 내 삶과는 상관없다라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과같은 시험은 아니지만, 얼어버릴 것같은 순간에, 생명되신 말씀조차 내게 생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예배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축복을 맞볼 수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과같은 시험은 아니지만, 얼어버릴 것같은 순간에, 생명되신 말씀조차 내게 생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고 예배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축복을 맞볼 수있을 것입니다.
물론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도 이 시험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은 직접 번제에 쓰일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그는 110살을 넘은 노인입니다. 그런데 나무를 패어 장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곁에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때 본문에 나온 종이란 단어는 젊은 남자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청년, 아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부터 청년까지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총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수행하는 자, 하인이나 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지금 아브라함곁에는 장정이 2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정 2명을 놔둡니다.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하인입니다. 장작패는 일과 여정을 준비하는 일은 당연히 하인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아들을 보내며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10이 넘은 노구지만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며, 조금이나마 아들 이삭의 고통을 느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통하고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 시련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것이 자녀된 자로서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내게 주신 약속이란 사실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도 이 시험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은 직접 번제에 쓰일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그는 110살을 넘은 노인입니다. 그런데 나무를 패어 장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곁에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때 본문에 나온 종이란 단어는 젊은 남자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청년, 아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부터 청년까지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총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수행하는 자, 하인이나 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지금 아브라함곁에는 장정이 2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정 2명을 놔둡니다.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하인입니다. 장작패는 일과 여정을 준비하는 일은 당연히 하인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아들을 보내며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10이 넘은 노구지만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며, 조금이나마 아들 이삭의 고통을 느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통하고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 시련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것이 자녀된 자로서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내게 주신 약속이란 사실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둘째로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로 축복이 있습니다.
이후 성경은 어떤 축복을 받는지 알려줍니다. 이런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자들이 받는 축복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주십니다.
이후 성경은 어떤 축복을 받는지 알려줍니다. 이런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자들이 받는 축복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주십니다.
먼저, 시련을 통과한 우리가 받는 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게되는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합니다. 이레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1291번 쓰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보다, 이해하다, 살펴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보다라는 단어고 봐서 이해하고, 사람을 살펴봐서 도와준다 정도의 뜻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다라고 쓰이는 경우는 구약에서 딱 5번 밖에 없으며, 그중 본문에서 3번이 쓰입니다. 8절에 이삭에 물음에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구절과 14절에 2번입니다.
먼저, 시련을 통과한 우리가 받는 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게되는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합니다. 이레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1291번 쓰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보다, 이해하다, 살펴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보다라는 단어고 봐서 이해하고, 사람을 살펴봐서 도와준다 정도의 뜻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다라고 쓰이는 경우는 구약에서 딱 5번 밖에 없으며, 그중 본문에서 3번이 쓰입니다. 8절에 이삭에 물음에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구절과 14절에 2번입니다.
바로 이 믿음의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 보시고 아시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을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축복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내면을 속속들이 다 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고계심은 축복입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것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내의 순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준비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기에 시험은 축복입니다. 시험을 통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믿음의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 보시고 아시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을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축복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내면을 속속들이 다 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고계심은 축복입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시고 그것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내의 순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준비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기에 시험은 축복입니다. 시험을 통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축복은 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내 자녀, 내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됩니다.
또한 이 축복은 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내 자녀, 내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는 항상 아브라함과 1:1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을 때, 사라가 장막뒤에서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삭의 탄생을 약속할 때입니다. 사라도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자식은 부부가 낳는 것이지 남편 혼자 낳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때,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임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도 언약의 당사자란 것을 확실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는 항상 아브라함과 1:1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을 때, 사라가 장막뒤에서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삭의 탄생을 약속할 때입니다. 사라도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자식은 부부가 낳는 것이지 남편 혼자 낳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때,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임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도 언약의 당사자란 것을 확실히 하신 것입니다.
모든 언약은 항상 언약의 당사자와 하나님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언약이 나올 때,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삭도 언약의 당사자라는 뜻이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모든 언약은 항상 언약의 당사자와 하나님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언약이 나올 때,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삭도 언약의 당사자라는 뜻이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언약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삭역시 언약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인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해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언약은 아브라함이 순종한 후에 체결되고 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순종이 전제가 되었기에 언약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언약과는 성질이 달라보입니다.
언약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삭역시 언약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인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해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언약은 아브라함이 순종한 후에 체결되고 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순종이 전제가 되었기에 언약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언약과는 성질이 달라보입니다.
하지만 이삭이 언약의 당사자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이삭이 여기서 뭔가를 했습니다. 네, 순종했습니다. 산을 오를 때부터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은 어디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결박할 때 쓸 줄은 들고 가는데, 양은 없으니까요. 그럼 누가 제물이겠습니까. 그리고 결국 이삭은 언약의 제물로 결박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순종은 아버지를 향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넓게 보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기 위해서 순종했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이삭이 언약의 당사자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이삭이 여기서 뭔가를 했습니다. 네, 순종했습니다. 산을 오를 때부터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은 어디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결박할 때 쓸 줄은 들고 가는데, 양은 없으니까요. 그럼 누가 제물이겠습니까. 그리고 결국 이삭은 언약의 제물로 결박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순종은 아버지를 향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넓게 보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기 위해서 순종했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의 언약에서 이삭은 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그랬듯이 이삭도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의 언약에서 이삭은 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그랬듯이 이삭도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과 언약을 맺으시는 26장에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과 언약을 맺으시는 26장에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NKRV
NKRV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과 언약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과 언약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저가 처음 말한, 이삭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순종을 보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뻔한 경험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그 죽음의 순간에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임재는 더욱 큰 은혜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비록 흔들릴지언정 아브라함보다 더욱 굳센 믿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가 처음 말한, 이삭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순종을 보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뻔한 경험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그 죽음의 순간에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의 임재는 더욱 큰 은혜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비록 흔들릴지언정 아브라함보다 더욱 굳센 믿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언약의 계승자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언약의 계승자로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열방까지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언약의 계승자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언약의 계승자로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열방까지 축복하실 것입니다.
결론
결론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내 약속이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언제 빛을 발합니까.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내 약속이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언제 빛을 발합니까.
이해하지 못할 상황, 그 시험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바로 순종이란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우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자녀들도 빛을 발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순종을 그렇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천하만민이 복을 받도록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 그 시험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바로 순종이란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우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자녀들도 빛을 발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순종을 그렇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천하만민이 복을 받도록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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