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8.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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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views야곱의 씨름, 축복의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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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분석
본문분석
וַיָּ֣קָם׀ בַּלַּ֣יְלָה ה֗וּא וַיִּקַּ֞ח אֶת־שְׁתֵּ֤י נָשָׁיו֙ וְאֶת־שְׁתֵּ֣י שִׁפְחֹתָ֔יו 1/4
וְאֶת־אַחַ֥ד עָשָׂ֖ר 1/8
יְלָדָ֑יו 1/2
וַֽיַּעֲבֹ֔ר 1/4
אֵ֖ת 1/8
מַעֲבַ֥ר יַבֹּֽק׃1/2
( WTT)
그리고 그 밤에 그가 일어나(칼 바익톨) 그의 두 아내와 그의 두 여종을 취했다[데려왔다](칼 바익톨)1/4
그리고 11명을1/8
그의 아이들1/2
그리고 그가 건넜다(칼 바익톨)1/4
을1/8
얍복나루[너울]을1/2
: 그리고 그 밤에 그가 일어나 그의 두 아내와 그의 두 여종과 그의 11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여울]를 건넜다.
- 나루는 도보나 말이 건널수 있는 얕은 곳을 의미한다.
- 11명의 아이들이 따로 강조된걸 보면 자식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있다.
- 아내와 여종은 한 셋트로 묶인다.
- 처와 아이들을 하나씩 강조하고 있다.
- 그리고 그들이 다같이 건너갔다.
- 재물보다 먼저 가족을 챙긴다.
וַיִּקָּחֵ֔ם 1/4
וַיַּֽעֲבִרֵ֖ם 1/8
אֶת־הַנָּ֑חַל 1/2
וַֽיַּעֲבֵ֖ר 1/4
אֶת־אֲשֶׁר־לוֹ׃ 1/2
( WTT)
그가 데리고(칼 바익톨)1/4
그들이 건너게 했다(히필 바익톨)1/8
그 시내를1/2
또한 건너게 했다(히필 바익톨)1/4
그의 것을1/2
: 그가 취하여 그들이 그 시내를 건너게 했고 그의 것들을 건너게 했다.
- 다시 가족들이 시내를 건너간 것이 나오고 그 다음 그의 재산이 나온다.
- 야곱은 이제 혼자 남아있다.
- 마치 하란으로 갈 때처럼 다시 혼자가 되었다.
- 위치는 지도를 참고하자.
וַיִּוָּתֵ֥ר יַעֲקֹ֖ב 1/4
לְבַדּ֑וֹ 1/2
וַיֵּאָבֵ֥ק אִישׁ֙ עִמּ֔וֹ 1/4
עַ֖ד 1/8
עֲל֥וֹת הַשָּֽׁחַר׃1/2
( WTT)
야곱은 남겨졌다(니팔 바익톨)1/4
그 홀로1/2
그리고 그는 한 사람과 씨름했다(칼 바익톨)1/4
까지1/8
해가 떠오를 때까지(칼 부정사)1/2
: 야곱은 홀로 남겨졌고 한 사람이 해가 떠오를 때까지 그와 씨름했다.
- 갑자기 홀로 남겨진 야곱이 한 사람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온다.
- 말그대로 갑자기 씨름했고 씨름을 시작한 이유도 나오지 않는다.
- 뭔가 빠진듯이 야곱은 씨름하고 있다.
וַיַּ֗רְא כִּ֣י לֹ֤א יָכֹל֙ ל֔וֹ 1/4
וַיִּגַּ֖ע 1/8
בְּכַף־יְרֵכ֑וֹ 1/2
וַתֵּ֙קַע֙ כַּף־יֶ֣רֶךְ יַעֲקֹ֔ב 1/4
בְּהֵֽאָבְק֖וֹ 1/8
עִמּֽוֹ׃1/2
( WTT)
그(사람)은 그를 이기지(칼 완) 못함을 보았기에(칼 바익톨)1/4
쳤다(칼 바익톨)1/4
그의 엉덩이뼈를1/2
그래서 야곱의 엉덩이뼈가 탈골되었다(칼 바익톨)1/4
씨름당하는 중에1/8
그와1/2
: 그는 그를 이기지 못함을 보았기에 그의 고관절을 쳤고 야곱의 고관절이 그와의 씨름중 탈골되었다.
- 이기다는 ‘우세를 점하다’라는 뜻이다.
- 알다가 아닌 보다를 쓴다.
- 고관절을 쳐서 탈골 되는게 씨름에서 정당한 수는 아닌거같다.
- 야곱이 지금까지 ‘야곱’했는데(치팅), 지금 하나님께서 ‘야곱’하고(치팅하고) 야곱은 하나님처럼 행하고 있다.
וַיֹּ֣אמֶר שַׁלְּחֵ֔נִי 1/4
כִּ֥י עָלָ֖ה 1/8
הַשָּׁ֑חַר1/2
וַ֙יֹּאמֶר֙ לֹ֣א אֲשַֽׁלֵּחֲךָ֔ 1/4
כִּ֖י 1/8
אִם־בֵּרַכְתָּֽנִי׃1/2
( WTT)
그가 말했다. “나를 보내라(피엘 명령)1/4
왜냐면 떴기 때문이다(칼 완)1/8
그 해가”1/2
그리고 그가 말했다. “당신을 가게 할 수 없습니다(피엘 명령)1/4
왜냐면1/8
저를 축복한다면(피엘 완)1/2
: 그가 말했다. “해가 떴으니 나를 가게 해라(피엘 명령).” 그러나 그가 말했다. “저를 축복하지 않는다면[저를 축복할 때까지는] 당신을 가지 못합니다(피엘 명령).”
- 하나님께서 피엘 명령 키 이유로 말하니, 야곱도 똑같이 말한다.
- 야곱한 하나님과 하나님한 야곱의 대화다. 누가 더 옳은가.
וַיֹּ֥אמֶר אֵלָ֖יו 1/4
מַה־שְּׁמֶ֑ךָ 1/2
וַיֹּ֖אמֶר 1/4
יַעֲקֹֽב׃1/2
( WTT)
그러자 그가(그사람) 그를(야곱) 향해 말했다(칼 바익톨)1/4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1/2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1/4
야곱입니다1/2
: 그러자 그가 그를 향해 말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말했다. “야곱입니다.”
- 야곱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물으신다.
- 야곱은 자신의 이름, 정체성, 운명을 말한다.
- 그는 지금까지 야곱답게 살아왔다.
- 뒷꿈치를 잡고 태어나, 에서를 속이고 그 대가로 쫓겨나고, 라반이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도, 나뭇가지를 이용해 별수를 다썼고, 결국 야반도주하다 라반에게 잡혔다.
- 그런데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하셨고, 반대로 야곱은 하나님처럼 끝까지 매달리게 하셨다.
- 이 물음과 대답속에, 이 짧은 순간에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지 않았을까?
וַיֹּ֗אמֶר לֹ֤א יַעֲקֹב֙ יֵאָמֵ֥ר עוֹד֙ שִׁמְךָ֔ 1/4
כִּ֖י 1/8
אִם־יִשְׂרָאֵ֑ל 1/2
כִּֽי־שָׂרִ֧יתָ עִם־אֱלֹהִ֛ים וְעִם־אֲנָשִׁ֖ים 1/4
וַתּוּכָֽל׃1/2
( WTT)
그리고 그가 말했다. “더 이상 너의 이름은 야곱이라 말해지지(칼 완) 않을 것이다(칼 미완)1/4
이스라엘 이라고1/2
왜냐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싸웠고(칼 완)1/4
이겼기 때문이다(칼 바익톨)”1/2
: 그리고 그가 말했다. “더 이상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말해질 것이다. 왜냐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싸웠기 때문이고 네가 이겼다.”
- 갑자기 이기다가 바익톨, 주흐름으로 들어온다.
- 이 문장의 포커스는 이스라엘이란 이름과 이기다(우세를 점하다)이다.
- 야곱은 그 씨름동안 야곱하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셨고, 야곱하셨다.
-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자신을 알게 하시며, 이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함을 알게 하셨다.
- 바로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하는 방식으로 살아, 사람과 이기고 하나님처럼 이겨가는 자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 이는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번민하며 힘들어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그 대처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지침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지침을 마련해주신다.
- 우리가 야곱할 때,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의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신다.
- 결국 우리가 야곱이 아닌 하나님을 닮게 하신다.
וַיִּשְׁאַ֣ל יַעֲקֹ֗ב וַ֙יֹּאמֶר֙ הַגִּֽידָה־נָּ֣א שְׁמֶ֔ךָ 1/4
וַיֹּ֕אמֶר 1/8
לָ֥מָּה זֶּ֖ה 1/16
תִּשְׁאַ֣ל לִשְׁמִ֑י 1/2
וַיְבָ֥רֶךְ אֹת֖וֹ 1/4
שָֽׁם׃1/2
( WTT)
그리고 야곱이 요청했다(칼 바익톨)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 “당신의 이름을 알게 하여 주세요(히필 명령)”1/4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1/8
“왜[어찌] 이를1/16
내 이름을 요청하느냐(칼 미완)”1/2
그가 그를 축복했다(피엘 바익톨)1/4
거기서1/2
: 그리고 야곱이 요청하여 말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그가 말했다. “ 왜 내 이름을 요청하느냐.” 그리고 그가 거기서 그를 축복했다.
- 야곱의 요청은 의미가 없다.
- 이제 야곱이 아니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이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 야곱은 여러가지를 생각하며 확신을 가지기 위해 요청했을 것이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헛됨을 지적한다.
- 야곱은 이미 변화되었고, 그는 그 사실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וַיִּקְרָ֧א יַעֲקֹ֛ב שֵׁ֥ם הַמָּק֖וֹם 1/4
פְּנִיאֵ֑ל 1/2
כִּֽי־רָאִ֤יתִי אֱלֹהִים֙ פָּנִ֣ים אֶל־פָּנִ֔ים 1/4
וַתִּנָּצֵ֖ל 1/8
נַפְשִֽׁי׃1/2
( WTT)
야곱이 거기 그 곳을 불렀다(칼 바익톨)1/4
브니엘이라고1/2
왜냐면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얼굴로 보고도[대면하여 보고도](칼 완)1/4
보존되었구나(니팔 바익톨)1/8
내 생명이1/2
: 야곱이 거기,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면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내 생명이 보존되었구나.”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제야 은혜임을 안다.
1차 작성
얍복나루는 협곡이다. 물살이 상당히 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협곡이라 건너기 위해서는 오르내리거나, 특정한 장소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다같이 움직인다. 야곱이 왜 함께 건너지 않고 남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한다.
야곱, 얍복, 예아베크는 음율적 유사성을 가진다.
예아베크, 씨름하다는 성경에서 2번 쓰이며 둘다 니팔로 쓰였다. 그 어원은 먼지에서 나왔다. 이것은 둘이 씨름을 하면 먼지투성이가 된다는 의미다.
특별히 25절 처음에는 그가 그를 이기지 못해서 고관절(고환)을 쳤다라고 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한다. 처음 읽는 독자라면 , 이 그는 야곱이라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야곱의 인생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반칙.
26절에 날이 새니, 해가 뜨니 그 사람이 자신을 보내라 한다. 이것은 야곱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밤에느느 모든 것이 모호하게 보인다. 야곱이 레아를 라헬로 착각했을 때 그랬다. 하지만 낮이 되면 명명백백하게 보인다.
하나님을 완전히 보게 된 야곱이 살아남을 수있을까? 그것이 천사라도 해도 말이다.
그리고 야곱의 운명은 바뀐다.
이것은 ㅇ ㅑ곱이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하나님께, 벧엘에서 받은 언약을 기억하며, 기도한 후 일어난 사건이다.
야곱이 언약의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는 것은() 그가 그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야곱의 20년은 순탄치 않았고, 그는 언약을 기억했지만, 그 언약에 합당한 자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그는 언약을 기억한 자였다.
2차 작성
서론
야곱의 귀환 : 많은 재물과 함께 귀환 - > 하나님의 언약 성취.
에서의 위협속에서 기도
하나님과의 씨름.
본론
얍복 나루에서의 씨름.
홀로 남은 야곱.
비정상적인 상황 : 얍복은 물살이 쎈 협곡, 다같이 움직여야 함.
밤에 건너는 것도 비정상적. 혼자 남은 것도 비정상.
갑자기 등장한 어떤 사람과의 씨름.
야곱, 얍복, 씨름(야벡)
셋다 야곱이라는 이름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
이 상황을 통해 야곱이라는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
씨름의 내용도 야곱을 보여줌.
씨름
25절에서 누가 누군지 매우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음.
25 그는 그를 이기지 못함을 보았기에 그의 고관절을 쳤고 야곱의 고관절이 그와의 씨름중 탈골되었다.
전반절 ‘그가 그를 이기지 못함을 알았기에 그의 고관절을 쳤고’
고관절을 치다.
씨름이란 단어는 먼지라는 단어에서 유래함.
씨름하면 먼지투성이 흙투성이가 된다는 의미.
우리나라 씨름과 비슷.
그런데 고관절을 치는것은 기술일까. 반칙일까
고관절, 허벅지 관절은 암묵적으로 남자의 급소를 의미하기 도한다.
그렇다면 명백한 반칙을 뜻한다.
즉, 야곱과 하나님이 씨름으로 겨루고 있는데, 하나님이 반칙을 쓰고 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야곱하고 있다.
반대로 야곱은 하나님하고 있다. 정당하게 행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야곱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다.
얍복이란 장소, 씨름(야벡)이란 행동, 야곱이란 이름까지 모두 야곱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22절에 얍복 나루를 밤에 일어나 가족들과 소유를 건너가게 한다. 말그대로 야곱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야곱, 뒷꿈치, 속임수 자체였다.
뒷꿈치를 잡고 태어나, 에서를 속이고 그 대가로 쫓겨나고, 라반이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도, 나뭇가지를 이용해 별수를 다썼고(푸른 나뭇가지의 일부를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든다 ), 결국 도망가다가 라반에게 잡혔다.
정리
누가 : 야곱이
언제 : 밤에
어디서 : 얍복에서
무엇을 : 씨름(야벡)을
어떻게 : 반칙으로
왜 : 축복 받으려고
하지만 이 야곱은 동시에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한 자였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많아진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다.
20년간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다.
그는 하나님을 잊고 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도주와 20년간의 질고(라반 밑에서 멸시당함)은 그를 다시 야곱으로 만들었다.
에서를 앞두고 얍복계곡을 야밤에 건너게 할 정도로 그는 야곱, 속임수, 뒤꿈치 잡는자가 되어 있었다.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언약을 붙잡고 기도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첫번째는, 바로 야곱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도, 오만 방법을 쓰며, 자기 이름 처럼 살아왔던 야곱에게 씨름으로 말슴하신다.
하나님조차, 전사조차 야곱하니, 사람을 이기지 못함을 보여주신다.
동시에 이제 야밤이 아닌, 해와 함께, 빛과 함께 걸어가게 하셨다.
비록 절고 있지만, 이제 하나님과 함께 하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억한다.
그 말슴에 의지해 기도한다.
그러나 야곱의 20년처럼, 우리도 세상풍파에 깎여간다.
그래서 야곱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 되길 원하신다.
이스라엘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그 씨름, 야벡때, 야곱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반칙을 쓰는 상대에게 똑같이 반칙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악을 선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그는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라 칭해졌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이다.
결론
1년 간의 삶동안 우리는 어떤 길로 걷고 있었는가.
야곱의 길로 걷고 있었나.
이스라엘의 길을 걷고 있었나.
우리가 이스라엘의 길을 걷고, 하나님과 겨루며, 사람을 이기는 자가 되길 소원한다.
설교
서론
야곱은 하란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형, 에서가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에서 때문에 도망쳐야 했던 야곱이기에 그는,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오늘 본문 이전 9-12절에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하신 언약의 내용을 다시 말하며 기도합니다.
그 이후 그는 예물은 먼저 보내고, 가족과 필수적인 재산들은 나중에 건너가는 수를 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임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시 살아가는 시간 되길 소원합니다.
본론
본문은 특이하게 밤에 야곱이 일어나 자기 가족을 먼저 얍복나루를 건너게 하고 재산을 건너게 했다로 시작합니다.
얍복강은 강이라기 보다는 하천정도의 작은 강입니다. 총 길이가 약 100km정도입니다. 해발 820m에서 흐르기 시작해 –300m정도까지 흐릅니다. 그냥 일반적인 하천이 아니라 급류가 흐르는 협곡입니다. 그랜드캐넌처럼 푹 파인 협곡이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이런 급류가 흐르는 협곡을 밤에 건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남아있습니다. 보통 이런 협곡은 다같이, 안전한 낮에 건너지 이렇게 건너지는 않습니다. 얕다고 하더라도 넘어지기라도 하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밤에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혼자 남아있는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왔고, 그 외진 곳에 온 어떤 사람과 야곱은 씨름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모두 야곱이란 이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알기 쉽게 이제 육하원칙으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누구에 대한 일입니까. 야곱입니다.
언제 벌어진 일입니까. 밤에 벌어진 일입니다.
어디서 벌어진 일입니까. 얍복강, 정확히 말하면 얍복 하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씨름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다 야곱이란 이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야곱과 얍복, 뭔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어는 받침이 없습니다. 그러면 야곱은, 야고브라고 말하는게 옳습니다. 얍복은 야보그인데 발음이 힘드니 얍보크라고 합니다., 야고브, 얍보그 비슷하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씨름은 야베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야고브가, 어디서, 얍보그에서 무엇을 야베크를 이라고 정리가 됩니다.
다 야곱이란 이름을 풍기고 있습니다. 본문이전에 야곱은 하나님께 벧엘의 언약의 내용으로 기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모든 상황을 통해 야곱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얍복에서 야베크했다라는 비슷한 발음을 중복시키고 있습니다. 야곱의 뜻은 무엇입니까. 뒷꿈치, 동사로 속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의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에서의 뒷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정당한 댓가를 주지 않자, :37에서 나뭇가지를 얼룩덜룩하게 만들어서 어떻게든 자기 몫을 늘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라반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도망치다가 3일만에 잡혔습니다. 그는 정말 야곱이란 이름 그대로 살았습니다.
얍복강을 건넌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에 위험하게 건너게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건너지 않고 혼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주십니다.
바로 씨름을 통해서 야곱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씨름할 때, 매우 특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하는데,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정확히 말하면 야곱에게 승기를 잡지 못하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그래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다고 25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허벅지 관절은 골반과 허벅지 사이의 고관절을 말합니다. 여기를 어긋날 정도로, 다르게 말하면 탈골될 정도로 쳤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과 어떤 사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씨름이란 모래판이나 흙에서 서로 힘을 겨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대로 히브리어로 야베크, 씨름이란 단어도 원래 먼지를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씨름하면 온몸이 먼지투성이, 흙투성이가 된다는 뜻이죠.
씨름할 때, 상대방을 때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도 힘을 써야 하는 중요한 부분을 때려서 힘을 못쓰게 만들면 뭡니까. 반칙입니다. 이겨도 이긴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허벅지관절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원어로 엉덩이 밑부분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고관절을 말하기도 하지만, 남자의 급소를 표현할 때, 에둘러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씨름하다가 상대방을 못이길거 같아서 거기를 쎄게 차서 상대가 힘을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심판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즉시 경기를 끝내고, 몰수패를 선언할 것입니다.
이때까지 야곱이 속임수를 썼습니다. 즉, 야곱이 야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반칙, 속임수를 쓰고 계실까요. 바로 야곱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에서 나옵니다. 야곱이 그런 꼴을 당하면서까지도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는 이유가 26절에서 나옵니다. 바로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축복받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다시 육하원칙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누가 야곱이, 언제 밤에, 어디서 얍복에서, 무엇을 씨름(야베크)를, 어떻게 반칙(야곱)으로 왜 축복받기 위해.
모두다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야곱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속이다라는 뜻은 편법, 반칙같은 것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야곱이 구하는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 하나님께서 반칙을 행하고 있는 전반절에 히브리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5 그는 그를 이기지 못함을 보았기에 그의 고관절을 쳤고 야곱의 고관절이 그와의 씨름중 탈골되었다.
누가 누구인지 알수 없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을 아는 독자들이 처음 봤을 때, 고관절을 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이라 생각하겠습니까. 아니면 야곱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야곱을, 그 언약을 지켜달라는 야곱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단 한번도 꾸짖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이후, 28절에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제, 야곱, 속임수가 아닌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을 이긴 이스라엘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모두 속임수로 가득한 상황, 속임수와 편법으로 어떻게든 내 이득을 찾는 사람이 아닌, 야곱 너가 나에게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린 것처럼,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야곱은 처음에 말했듯이 벧엘의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을 그 언약을 기억하며 보냈습니다. 삼촌 라반이 10번이나 자기의 몫을 빼앗았지만 오직 그 언약을 믿으며 인내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도 모르고 다시 야곱이란 이름 그대로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37처럼, 자기 몫을 차지하기 위해서 푸른 나뭇가지를 듬성듬성 파내서 얼룩덜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라반에게서 야반도주했습니다. 라헬역시 야곱처럼 아버지 라반을 속이고 우상인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분명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믿고, 언약을 믿었지만 그도 그 가족도 질고의 세월앞에서 타협하고 연약하고, 속임수로 악하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임하셨습니다. 모든 상황을 야곱이란 단어 자신의 이름을 기억나게 하시고, 하나님조차도 야곱같은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 자신이 구하는 축복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35장 10절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개명시켜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다시 기억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축복을 바라고 있습니까. 야곱이 바랬던, 야곱의 축복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온통 야곱, 속임수, 죄로 가득차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가슴에 박고 살아갑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되새길 때마다 감격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야곱이 20년간의 질고의 세월속에서 다시 야곱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은 기억하지만, 그 의미는 잊어버리고 죄인이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처럼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야곱 자신의 삶이 온통 야곱 그 자체, 속임수와 편법, 이득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도 쓰는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스라엘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한해를 무엇으로 채웠습니까. 혹시 야곱으로 한해를 채웠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우리를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분명 세상 풍파가 거세지만, 포기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고통이 극심하지만 인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야곱이 이스라엘된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