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이 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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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이 되게 하리라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새 288, 통 204)
주의 말씀 듣고서(새204, 통379)
주 품에 품으소서
[]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올해의 첫 시작 수요설교입니다. 한해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신가요?
년초에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올 한해 계획은 이미 다 하셨습니까?
그런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렇지 못한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렇듯 우리는 년초에 계획을 하고 년말이 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열매를 확인합니다. 물론 계획과 상관없이 얻게 된 열매도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의도가 있었던, 없었던 간에 분명한 것은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열매에 따라 이름이 불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맺은 열매의 따라, 어제의 이름이 있고, 오늘의 이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어제의 이름을 보면 아브람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어제의 이름이 되는 이유는 새롭게 맺은 열매로 오늘의 이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름은 무엇이죠? 아브라함입니다. 사래도 그렇습니다. 어제의 이름은 사래였습니다. 그녀의 오늘의 이름은 무엇이죠? 사라가 되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브람의 뜻은 어떻게 됩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입니다. 그랬던 그가 ‘많은 무리의 아버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래 또한 ‘나의 공주’, ‘여주인’이란 이름에서 ‘열국의 어미’,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감당하기엔 정말 큰 이름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어제의 이름으로 살지 않았고 오늘의 이름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들의 이름이 이렇게까지 기억되고 앞으로도 기억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않고 순종으로 따랐습니다. 그러다…… 육신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다시 일어난 성숙한 신앙 때문에……. 그런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오늘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 어떤 열매를 통해서 어떤 이름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와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사람도 어제의 이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제부터 반석이라 하겠다” 하십니다. 어제의 이름에서 새 이름인 베드로, 반석이 되게 하시겠다. 선포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를 어떻게 반석이 되게 하셨을까요? 또 그를 통하여 어떻게 풍성한 교회로 세워 가셨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반석이 되려고 한다면
1. 찾아온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지방에 사는 한 어부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요나 시몬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시몬이란 이름과 함께 사용된 “바요나”의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고, 요나는 호칭상 요나이고 실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요한의 아들 시몬입니다. 부르기엔 참 길죠, 우리는 길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당시엔 워낙 같은 이름이 많았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불러야만 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에서 시몬이란 이름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들었다. 응답되었다, 입니다. 또 다른 뜻도 있습니다. 갈대입니다. 왜 아버지가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갈대라고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름을 지을 땐 그들의 삶에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어부들이 시몬을 부를 때 연상되는 것은 "갈릴지 지역의 갈대"가 됩니다. 요한의 아들 갈대야. 갈대야~~~ 어떤 연상이 되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정서로서는 좋은 이미지라기 보다는 줏대없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반석이 되게 하겠다 하십니다.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지금 이 상황은 처음 만난 사람을 보고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이 말씀은 반석이 되겠다 하는 말씀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요나 시몬 입장에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선포를 들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몬은 오랜시간 동안 물고기 낚는 어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큰 대어도 아니고 잡어를 잡아서 먹고사는 시골의 어부입니다. 그런 그에게 유대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십니다.
순간 시몬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갈대입니다. 저는 갈릴리 호수에서 먹고 사는 갈대와 같은 어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나이도 많습니다.” 자신의 낮고 낮은 신분과 지신의 처지를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가지고 있는 위치, 신분, 학력, 나이엔 전혀 상관없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더 이상 고기 낚는 어부가 아니라, 잃어 버린 양을 찾는 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나는 너를 더 이상 시몬이 아니라 게바, 베드로, 반석이되게 하겠다”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석이 되려고 한다면, 내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비전이 부름 받은 그 사람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내가 내 마음대로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비전으로 이름이 불려 질 때 새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신 대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이름을 새롭게 불러 주셨습니까? 무엇이라고 불러 주셨습니까? 시몬처럼, 너는 앞으로 게바, 베드로다라고 불러 주셨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불러 주시지 않습니다.
지금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신앙의 모습,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새로운 이름으로 사는 사람은 열매로 그의 이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있느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느냐? 마찬가지로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이름이 바뀐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다고요? 우리 삶의 열매, 신앙의 열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올 한해 어떤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해 계획하고 계십니까?
그전에 작년까지 어떤 신앙의 열매를 맺었는지 먼저 점검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보, 나는 어떤 열매가 있었나요, 자녀들아 아빠, 엄마는 어떤 열매가 있어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로부터 인정 받는 것이 진짜 열매입니다.
또 이렇게 숙제를 드리면 꼭 다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꼭 대답을 해 주실 때 믿음으로 하셔서, 아무리 작은 열매라도 주 안에서 맺은 열매는 감사해 하시기 바랍니다.
또 올 한해 계획하신 것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계획을 확인하시고, 응원하고, 독려 하셔서 앞으로 맺게 될 열매도 미리 감사해 하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반석이 되려고 한다면
2. 어제의 가치를 버리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어제의 이름 버리고 새로운 이름,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말로만 따르는 것이죠? 아닙니다. 그럼 무엇으로 따르는 것입니까? 행동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같은 기사를 다루고 있는 다른 성경도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성경에 이와 같은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마가복음? 요한복음? 누가복음? 어디에 기록되어 있죠? 마가 복음에도, 요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4 복음서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행동의 열매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각각의 복음서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틀린 것인가요? 아니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분명한 것은 틀린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다른 것이죠?
성경을 기록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각의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에 따라, 의도적으로 관점을 다르게 함으로써 진리를 더 선명히,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관점이 다른 마가복음 1장, 요한복음 1장, 누가복음 5장을 자세히 묵상하다.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어제의 삶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들 시몬, 갈대로 불리던 그가 자신의 재산인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농부에게는 땅이 재산입니다. 어부에게는 배가 재산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재산과 생업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간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마치 요한의 아들 시몬처럼,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왜 보내셨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바른 길인지도 잃어 버린 채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질적 이유와 목적을 모르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먹고사는 문제만 보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 재산을 늘리는 재미와 만족에만 빠져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통장에 늘어 나는 돈을 보면 아주 행복해집니다.
[간증]
어떤 한 집사님이 집 금고에 돈을 넣고 매일 매일 보는 재미로 사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얼마쯤 돈을 금고에 넣어 놓고 보면 행복할까요? 1억?, 2억?, 아닙니다.10억을 금고에 넣어 두셨습니다. 그것도 남편 모르게 말입니다. 그리고 매일 퇴근해서 오면, 주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금고 문을 먼저 열어 봅니다. 그리고 코를 돈에 대고, 깊게 숨을 들이킵니다. 돈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 표현을 빌자면 돈 냄새를 맡으면 하루종일 고단했던 피로가 싹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말로 힐링금고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의 비즈니스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가막힌 것은 필요한 돈이 딱 10억입니다. 그뒤 갈등이 시작됩니다. 돈을 포기 하자니, 행복이 날아 갑니다. 그러나 돈을 붙잡고 있자니 남편의 사업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그 돈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10억이 되는 돈을 다 방바닥에 펼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지 주님 아시죠. 주님 제가 이돈을 모으려고 얼마나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면서 모은지 아시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 이렇게 돈 방석 삼아서 앉아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10억을 남편에게 주지 않으면, 남편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던 협력업체도 부도가 납니다. 또한 회사도 부도가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1주일, 2주일 한달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금고에 있는 모든 돈을 가지고, 남편 회사에 다 가져다주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저를 찾아 오셔서… 고백 합니다. 목사님 제가 주님 보다 돈을 사랑했던 여자입니다. 목사님, 제가 이제부터라도 주님을 따라 살아도 괜찮겠죠? 고백을 들을 때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가치가 바뀌면 돈을 놓을 수 있습니다. 진짜를 만나면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어려운 결단을 하고 지금도 후회없이 성숙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반석이 되는 것은 주님 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어제의 가치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먼저 따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어느 한 집사님처럼, 어제의 것을 다 버려두고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열매 이신 예수님 만을 따르시길 축언합니다.
오늘의 반석이 되려고 한다면
3. 다시 찾아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복 받는 것입니다.
주님 주신 가치를 붙잡고 3년을 따랐던 베드로, 그 반석이 넘어집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이런 고백을 한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다른 제자들이 다 주님을 배신한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랬던 그가 넘어집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넘어집니다.
성경에서 3번 넘어지면 완전 수죠. 그가 예수님을 완벽히 배신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24장 1절을 보면 예수님을 완전히 잊은채 다시 고향으로 가서, 어제의 이름으로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그를 다시 찾아 가십니다.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님은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돌아간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완벽히 배신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찾아 오신 예수님이 곁에 있어도 모릅니다.
왜죠? 왜 예수님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 수 없는 것이죠?
물고기 잡는 일에 정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엎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전후 문맥을 보면 예수님이 주신 비전도 완전히 잃어 버린채 물고기 잡는 어부로 다시 돌아온 것이죠.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나이다. 대답도 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그물에는 물고기가 있습니까?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 제가 던진 그물엔 물고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러자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잡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던지면 그물에 물고기가 잡힙니다.
이 말씀은 그물에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 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다시 본 그에 대해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를 시몬이라고 하지 않고 베드로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주님이 선포하신 대로, 그를 반석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다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진리는 다시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지남철, 강력한 자석과 같습니다.
그 사랑의 힘에 이끌려 주님께 나아갑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갔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의 이름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왜죠? 왜 어제의 이름으로 부르시는 것이죠? 어제를 버리고 다시 오늘의 이름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제의 이름이 불려지자 가슴속 깊이 회개가 밀려나옵니다. 주님 제가 1번도 아니라3번이나 주님을 배신 했습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연약한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가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이 고백은 더 이상 시몬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회복된 반석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한 이름, 용서 받은 이름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죠.
이렇게 온전한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너는 내 양을 먹이라, 너는 내 양을 치라” 무슨 말씀이죠. 너는 더 이상 물고기 잡는 어부가 되지 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된 자에게 다시 주님의 사명, 비전이 선포됩니다.
그러므로 너는 가서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어제의 이름으로 살지 말고 새 이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의 이름이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찾아온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접하는 것입니다.
2. 오늘의 이름이 되려고 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다. 어제의 가치를 버리고 주님이 주신 가치가 이 땅에 성취되도록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3. 넘어져 엎어져 있을 때 다시 찾아 오신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며, 용서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주님 주신 사명을 다시 회복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복된 자 주님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많은 계획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오늘의 말씀을 따라 점검하시고 잃어버린 이름이 있다면, 잃어 버린 열매가 있다면, 말씀으로 다시 일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다시 물고를 잡고 있다면 그 물을 버리시고, 사람 낚는 어부의 그물을 던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원합니다.
또 내가 엎어지고 넘어져 있다면, 오늘 말씀으로, 성령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시고 주님 주신 비전을 다시 세워 가시는 12월, 2019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