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라데강을 넘어가라(창11:27-32)

송구영신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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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한성(월: 송구영신)
산더미 같이 큰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비결을 아는가? 300명 이상의 승객을 실었다면, 손님 중에는 몸이 가벼운 손님도 있고 몸이 무거운 손님도 있겠지만, 1인당 60Kg의 체중이라고 한다면, 승객들의 무게만 무려 18톤이나 된다. 또 손님들이 가져온 화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승객 1인당 20Kg씩 이라고 가정할 때, 승객들의 수화물만 6톤이나 된다. 그러면 도합 무게가 24톤에 이른다. 그리고 비행기가 자체 무게도 어마어마한 무게일 텐데, 하늘로 뜨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비행기가 뜨는 비결을 알려면, '중력과 양력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손에 든 사과를 놓으면 땅에 떨어지는데, 이것은 중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하늘로 날아간다. 그것은 비행기가 중력이 아닌, 양력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비행기 양쪽에 날개가 있다. 엔진을 최고로 높여 앞으로 나아가면, 이 날개에 바람이 부딪친다. 그런데 날개가 밑에는 짧고 위에는 길기 때문에, 바람의 빠르기가 다르게 된다. 날개 위에는 날개 밑보다 더 빠른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에, 날개 위쪽에 '부압'이 생긴다. 그런데 이 '부압'은 비행기를 위로 빨아올리는 작용을 한다. 반면에 날개 밑에는 '정압'이 만들어지는데, 이 '정압'은 비행기를 밑에서 위로 미는 작용을 한다. '부압과 정압', 즉 두 가지 힘인 양력에 의해, 비행기는 이륙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원리가 적용이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연의 원리가 아닌, 믿음의 원리를 통해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역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법칙이 아닌, 믿음의 법칙을 통해서 살아가게 하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축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익숙함을 버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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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신앙인은, 믿음이 날마다 자라나야 한다.
바울 사도 역시, 동일한 주문을 했다.
()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멈추거나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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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일가의 신앙 여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 안에서의 여행이다.
처음에는 아버지 데라가 주도하지만, 후에는 아브라함에게 바통이 넘어간다.
아브라함은 진정 도전하는 신앙인이었다.
잠시 시행착오도 있고, 정체도 있었지만, 돌이켜 다시 나아갔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아버지, 신앙의 조상(축복의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3번이나, ‘나의 벗’(, ) ‘나의 친구’()라 부르셨다.
여행의 과정에 머무는 세 지역이 나오는데, 모두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세 인물도 등장한다.
1.갈대아 우르: 하란(지도 7초)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이며, 그의 신앙여정의 출발지이다.
고대 바벨론의 도시 가운데 하나요, 지금의 이라크 남부(후세인)에 해당된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숭배의 도시였다.
무역과 상업이 성행했지만, 탑 모양의 거대한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각종 우상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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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 속에 나타나 있다.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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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우르는, 우리의 지난 모습과 같다.
바벨론 문명의 부요와 풍요 속에 있었지만, 공허함으로 가득했던 아브람과 다를바 없었다.
남편이 다섯씩이나 있지만, 목말라 하던 수가성 여인과 흡사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자,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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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
만남의 축복은 무섭다.
우리가 불교나 유교를 만났다면, 나의 인생은 우상숭배로 끝났을 것이다.
계속해서 귀신에게 절하고, 점치고, 거짓 신을 섬기다 망 했을지 모른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세 아들 가운데, 하란이 여기서 그렇게 죽었다.
()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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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 살 길이 열린 자들이다().
내 안의 우상을 찍어버리고, 그 땅을 떠나야 한다.
예)금슬이 너무 좋던 어느 젋은 부인은,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죽고 말았다. 자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고통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남편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무엇이 우선인지를 알아, 예전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이, 더 귀히 여기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가 그것에 집착하고 연연할 때, 그 우상을 제거하신다.
설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신다.
2.하 란: 데라
하란(Haran)은 갈대아 우르와, 가나안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이다(지도-7초).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을 받은 아브람은, 가족과 함께 본토 친척집을 떠났다.
아마 아버지 데라는 장남(하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버지 데라는 늙었고, 가나안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다.
쉽게 말하면 축복에 땅을 소망하는, 분명한 비전(믿음)이 없었다.
여정에 살기 좋은 문명 도시 하란에 이르자, 그곳에 눌러 앉고 만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아마도 처음에는, 잠시 쉬었다가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데라는 그곳에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발을 디뎌 보지도 못한 채, 데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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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문 시간은 학자마자 차이나지만, 상당한 긴 시간이었다.
대략 20여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은, 데라에게 계속 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사람이, 아버지 데라였기 때문이다.
질문이 필요하다.
데라는 왜, 믿음의 여정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지도상으로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같은 지도-10초).
유브라데 강을 기준으로 오른 쪽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가장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다.
반대로 유브라데 강의 왼쪽인, 가나안은 어떤가?
우리에게는 약속의 땅,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시는 축복의 땅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시각으로 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강 저쪽과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미개하고 살벌한 땅이었다.
데라 역시 믿음으로, 담대히 여정을 시작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브라데 강이라는 도전 앞에, 결국 포기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복음을 듣고 처음 주님을 만나, 구원의 은혜를 누린다.
그 주님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자신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우여곡절 끝에 부르심을 좇아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지만, 결정적으로 유브라데 앞에서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왜 유브라데 가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넘지 못하는 강이 되어 버렸을까?
이 강을 기준으로 오른 쪽과 왼쪽이, 전혀 다른 사람의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른 쪽은 내가 주인이 되어, 삶의 규모나 계획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이따금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잔잔한 은혜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왼쪽은, 전혀 다르다.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고, 내가 주인 될 수 없는 곳이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 믿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따라가야 하는 곳이다.
예)종교인과 신앙인
유브라데 강을 넘는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진정한, 하나님(왕)이 되시는 삶을 말한다.
내 삶 전체를 그분께 넘겨드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순종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애굽과 가나안의 차이,
사람들은, 이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 길을 동경하지만, 잘 따르기는 주저한다.
때때로 유브라데 강을 넘은 자들을 불러, 간증을 듣고 그들의 무용담으로 대리 만족한다.
그러다가 생을 마감한다.
오늘 이 방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을 포기하라.
예)가장이 너무 중요하다. 룻기의 엘리멜렉이 생각났다.
3. 가나안: 아브람
하란과 데라와는 달리, 아브람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
()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우리 성도님들 모두는, 가나안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누누이 말했지만, 가나안은 천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함과 부유함이 넘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유감없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예)간증과 축복이 넘치는 신앙인의 삶이다.
예)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관심이 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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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믿음의 출발지인 갈대아 우르, 아니면 하란에 지체하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면,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가?
아브람은 동생 나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하란을 떠났다.
동생은 그를 보고 광신자, 정신 나간 사람, 바보 멍텅구리라고 욕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떠나서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만져지는 것 없지만, 떠나기에는 가슴 아픈 일들이 두루 두루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믿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얻을 수 있다.
아브라함과 같,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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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따라 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다.
그 길이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리고 놀라운 축복이, 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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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갈대아 우리를, 떠나야 한다.
하란에 오래 머물러서도, 안 될 것이다.
지체 말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한다.
1.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항상 목자이신 그분을 바라보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우린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2.오리무중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좇아가라.
판단하거나 짧은 이성으로, 저울질 하지 말라.
그분의 말씀은, ‘나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 이다.
3.장애가 있어도 멈추지 말고, 끝까지 순종하라.
우리의 믿음이, 언제 들통이 나는 줄 아는가?
위기를 만났을 때, 결코 좋은 날이 아니다.
반드시 오래지 않아, 축복의 물고가 터질 것이다.
광야가 아니라 당신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예)말씀대로 따라 살아 망한 사람 없다. 청년 십일조왕
당신이 복을 받아야, 복의 근원으로 나눠주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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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가라, 이것이 믿음의 전부이다.
믿음의 시작은 떠나는 것이고, 믿음의 완성은 지시하신 곳까지 가는 것이다.
결론
윌리암 제임스(Wlliam James)는 말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믿음'이다.'(윌리암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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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2019년(기해년-돼지)의, 경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대체로 낙관론 보다는, 비관론이 우세한 듯 보인다.
2019년 교수신문 선정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가 개혁과제를 중단 없이 추진해 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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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꼼수나 요령으로는, 어렵다.
첫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라.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살아계실 뿐 아니라, 지금도 역사 속에서 일하신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극심한 절망 속에서라도, 엎드리면 살길이 있다.
예)물에 빠져도 호흡만 멈추지 않으면 산다.
어려움이 닥쳐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한다.
예)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듯 매어 달려야만 한다(창32장). 환도뼈가 부러져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밤새도록 응답해 주시지 않아도 놓치 말고 매달려야만 한다.
대의 있는 일로 매달리자.
예)월남 이상재 선생에 대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고 울고 있었다. 이상재 선생께서 그 며느리를 향하여 꾸중을 하였단다. "너는 나라 잃고도 그렇게 울지 않더니 재봉틀을 잃고 우느냐!"
새벽에 기도하자.
그래도 힘들면, 철야하며 밤 세워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금식이라도 하면서 기도하자.
‘기도는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다.
예)캄캄한 인생인가? 기도의 스위치를 올리라. 어둠은 물러가고 환 해 질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법과 식을 고집하라.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의 식과 법을 지키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위기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게 하다 아주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잘못하면 신앙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정말, 어렵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육적으로도 실패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망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적인 위기는 항상 영적인 위기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편법이나 꼼수가 아니라, 정말 믿음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라
1)주일성수
2)십일조: 진짜 21세기 우상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힘쓰라.
어려울 때는 움추려 들어서, 꼭 필요한 일들만 하려는 유혹에 휩쓸리기 쉬울 때다.
아무리 절망 중에 있더라도, 자기중심적인 삶을 벗어나 섬기는 삶을 꿈꾸어야 한다.
예)수백억 적자를 진 교회 부이, ‘교회부터 재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자’ 살 길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뿐이었다. 추수감사헌금 재난 구호비로, 맥추감사헌금은 분립개척비로, 성령집회 헌금은 어려운 교회 돕기 위하여,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매진하라.
더 열심히 전도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자. 예)선교, 구제
()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예)복음전도가 가장 하나님 기쁘시게 한다. 몽골 선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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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흑인 설교자가 '순종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약 주님께서 저더러 돌담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대로 순종할 것입니다.이는 뛰는 것은 제가 할 일이고, 넘게 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고, 결과는 맡기라.
가장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마음에 무언가를 버리고 뛰어넘길 원한다면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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