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6.고등부설교

고등부설교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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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자에게 집중해보자. 왜 농부라고 하지 않고 씨뿌리는 자라고 했을까.

Notes
Transcript

본문해석

1
Καὶ πάλιν ἤρξατο διδάσκειν
παρὰ τὴν θάλασσαν·
καὶ συνάγεται πρὸς αὐτὸν
ὄχλος πλεῖστος,
ὥστε αὐτὸν
εἰς πλοῖον ἐμβάντα καθῆσθαι
ἐν τῇ θαλάσσῃ,
καὶ πᾶς ὁ ὄχλος
πρὸς τὴν θάλασσαν ἐπὶ τῆς γῆς
ἦσαν.
그리고 다시 그가 가르시는 것을(현능부) 시작했다(에오중직3단)
그 호숫가에서.
그리고 그에게 모여들었다(현수직3단)
엄청난 무리가,
그 때문에 그는 배를 띄워(에오능분단목남) 앉았다(현중부)
그 호수에,
그리고 그 모든 무리는
그 호수의 땅위에
있었다(미완능직3복)
: 그리고 다시 그가 그 호숫가에서 가르치시기 시작했고 엄청난 무리가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 때문에 그는 그 호수에 배를 띄어 앉았고 그 모든 무리는 그 호수(주변) 땅위에 있었다.
- 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호숫가에 있을 수가 없으며, 시선 집중을 위해 작은 보트를 빌려 타고 그 위에 앉아서 말씀을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 항상 생각하지만 옛날에는 이런 경우 어떻게 전했을까? 마이크도 없으니 아마 누가 복명복창식으로 한 것같다.
2 καὶ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ἐν παραβολαῖς πολλά
καὶ ἔλεγεν αὐτοῖς
ἐν τῇ διδαχῇ αὐτοῦ,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가르쳤다(미완능직3단)
많은 것을 비유로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미완능직3단)
그의 가르침중에.
: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쳤고 그들에게 가르치는 중에 말했다.
- 많이 말했는데, 다는 아니고 그중에 한가지다.
3 Ἀκούετε.
ἰδοὺ ἐξῆλθεν ὁ σπείρων
σπεῖραι.
"들으라(현능명2복).
보라, 씨뿌리는 자가(현능분단남주) 나갔다(에오능직3단)
씨를 뿌리러(에오능부)."
: «들으라, 보라,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
- 씨뿌리는 자는 씨를 뿌린다. 당연한 소리다.
- 하지만 의미있는 울림이다.
- 그리고 농부, 농사지으러가 아니라 씨뿌리는 자라 표현하고 있다.
4
καὶ ἐγένετο
ἐν τῷ σπείρειν
ὃ μὲν ἔπεσεν
παρὰ τὴν ὁδόν,
καὶ ἦλθεν τὰ πετεινὰ
καὶ κατέφαγεν αὐτό.
그리고 있었다(에오중직3단) 그 씨뿌리는 자에게 -> 씨를 뿌릴 때
어떤 것은 떨어졌다(에오능직3단)
그 길 위에,
그리고 그 새들이 왔고(에오능직3단)
그것을 삼켜버렸다(에오능직3단).
: 씨를 뿌릴 때, 어떤 것은 길에 떨어졌고, 그 새들이 와서 그것을 삼켜버렸다.
- 새들이는 복수인데, 씨는 단수이다. 그리고 삼키다도 단수도 그러면 씨와 삼키다가 연관되는데, 문맥상 새들과 삼키다가 연관된다. 삼키다도 능동태다. ????
- 왜 씨는 단수일까? 새들은 복수인데 씨는 단수다. 여기소 복수는 새들뿐이다.
- 위협은 많지만 복음은 적은 시대.
5
καὶ ἄλλο
ἔπεσεν
ἐπὶ τὸ πετρῶδες
ὅπου οὐκ εἶχεν γῆν πολλήν,
καὶ εὐθὺς ἐξανέτειλεν
διὰ τὸ μὴ ἔχειν βάθος γῆς·
그리고 다른 것은
떨어졌다(에오능직3단)
돌밭에
흙이 많지 않은,
그리고 즉시 싹이 났다(에오능직3단)
흙이 깊지 않아서(현능부).
: 그리고 다른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고 흙이 깊지 않기에 즉시 싹이 났다.
- 돌밭은 흙이 강조된다.
- 흙이 많이 없고, 깊지 않다고 나온다.
- 땅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다.
6 καὶ ὅτε
ἀνέτειλεν ὁ ἥλιος
ἐκαυματίσθη
καὶ διὰ τὸ μὴ ἔχειν ῥίζαν
ἐξηράνθη.
그리고
그 해가 떴을 때(에오능직3단)
그것은 말랐고(에오수직3단)
뿌리가 없었기에(현능부)
시들어버렸다(에오수직3단)
: 그리고 그 해가 떠오르자 그것은 말랐고 뿌리가 없었기에 시들어버렸다.
- 죽음의 이유는 바로 흙이다.
-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죽었고, 뿌리가 없었던 이유는 흙이 부족해서이다.
- 이 비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땅, 흙이다.
7
καὶ ἄλλο ἔπεσεν εἰς τὰς ἀκάνθας,
καὶ ἀνέβησαν αἱ ἄκανθαι
καὶ συνέπνιξαν αὐτό,
καὶ καρπὸν οὐκ ἔδωκεν.
또 다른 것은 그 가시덤불들 속으로 떨어졌다(에오능직3단)
그리고 그 가시덤불들이 올라왔다(에오능직3복)
그리고 그를 막았다(에오능직3복)
그리고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에오능직3단)
: 또 다른 것은 그 가시덤불들 속으로 떨어졌고 그 가시덤불들이 올라와 그것을 막았고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 이번에는 흙이 문제가 아니라 잡초, 가시덤불이 문제다.
- 이스라엘에서 이 가시덤불이 자라는 곳은 황폐한 땅이 된다. 땅을 못쓰게 만들정도로 심한 가시덤불이다.
- 그래서 씨뿌리는 자의 목적인 열매가 없게 되었다.
8
καὶ ἄλλα ἔπεσεν
εἰς τὴν γῆν τὴν καλὴν
καὶ ἐδίδου καρπὸν ἀναβαίνοντα
καὶ αὐξανόμενα
καὶ ἔφερεν
ἓν τριάκοντα
καὶ ἓν ἑξήκοντα
καὶ ἓν ἑκατόν.
그리고 다른 것은 떨어졌다(에오능직3단)
좋은 땅으로
그래서 올라와(현능분복주중) 열매를 맺었다(미완능직3단)
그리고 자라났다(현수분복주중)
그리고 결실했다
30배
60배
100배를
: 또한 다른 것은 좋은 땅으로 떨어졌고 올라와 열매를 맺었는데 잘 자라 30배 60배 100배를 결실했다.
- 메인문장은 좋은 땅에 떨어져 올라와 열매를 맺었다. 이다. 이후는 부가설명문이다.
- 올라와라고 번역한 것은 가시덤불이 자라는 것을 올라와라고 했기 때문이다.
- 이로볼때, 가시덤불도 좋은 땅에서 자라거나, 가시덤불의 성질자체가 매우 잘 퍼지고 자라는 성질인 것을 알 수있다.
- 반면, 이 씨앗은 오직 좋은 땅에 있을 때만 자랄 수 있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 하지만 이 연약함 덕분에 씨앗은 사람들의 기쁨, 씨 뿌리는 자의 기쁨이 될 수 있다.
9 καὶ ἔλεγεν,
Ὃς ἔχει ὦτα
ἀκούειν ἀκουέτω.
그리고 그가 말하셨다(에오능직3단)
귀를 가진(현능직3단) 자는
들을 것이다(히브리식 강한 강조).
: 그리고 그가 말하셨다. 귀를 가진자는 들을 것이다.
( GNT)
1차
1절과 9절은 들으라로 끝난다.
씨뿌리는 자는 의도적으로 길가와 돌밭 가시덤불에 씨를 뿌렸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
설교
서론
씨뿌리는 비유, 익숙한 이야기.
하지만 모든 비유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
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본론
해석할 필요없는 말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심
씨뿌리는 자.
왜 씨뿌리는 자라고 말했을까. 씨를 뿌린다는 것은 농부가 하는 일이다.
그중에 한가지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한다.
농부의 일중에 하일라이트는 수확일 것이다. 수확을 바라고 일을 한다.
그런데, 여기는 씨뿌리는 자라고만 한다. 농부가 아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농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씨뿌리는 자라고 한 것은 그 무엇보다 씨뿌기기만 집중한 것이다. 씨뿌리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는 그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씨를 뿌리고 있다. 모든 곳에 씨를 뿌리고 있다. 마치 씨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그는 씨를 뿌리는 자이기에 그 책무를 다하고 있다.
즉, 이 본문은 농부, 수확보다 씨뿌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왜냐면 씨가 뿌려지는 곳은 생명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확은 그 밭의 상태에 달렸다.
그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씨를 뿌린다. 모든 이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것이 씨를 주신 자,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뜻대로 뿌리신다.
2. 씨앗
그렇다면 이 씨는 어떤 것인가. 복음이란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먼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농사는 우리보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더욱 익숙한 일이다. 어부라고 농사를 짓지 않는 게 아니다. 작은 텃밭이라도 꾸리는게 당연하다. 먹을게 없으니 최대한 생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군중들은 커녕 제자들조차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씨앗은 매우 소중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씨앗, 정확히 씨종자는 정말 귀하다. 옛날어른들은 굶어도 씨종자는 먹지 않았다.
작년이 흉년이었다면, 지금 뿌리는 씨앗은 자신의 목숨이나 자식의 목숨일수 있다.
보릿고개같은, 빈궁기를 넘길수도 있는 것이 지금 씨앗들이다.
1년 보관후 그것을 그냥 뿌리지 않는다. 다시 소금물등으로 검수과정을 걸쳐서 가장 좋은 씨종자들만 다시 밭에 뿌리는 것이다.
그냥 씨앗이 아니라, 몇번의 검수과정을 걸쳐 통과한 가장 좋은 씨앗들만 밭에 뿌려질수 있다.
그것은 자식의 목숨값일수도 있다.
하지만 본문에서 그 씨앗을 이상한 곳에 뿌리고 있다.
길가에 뿌려 새들의 모이가 된다. 돌밭에 뿌려 그냥 말라죽는다. 가시덤불에 뿌려 열매맺지 못한다.
특히 여기서 가시덤불은 잎엉겅퀴로 1m까지 자란다. 이게 있는 이상 씨앗은 자랄수가 없다. 통상적으로 농부들은 가시덤불이 있으면 밭에 불을 지르고 밭을 간다. 그냥하는 것은 무리다.
돌밭은 딱봐도 식물이 자라지 못하므로 뿌릴 가치가 없는 곳이다.
씨뿌리는 자는 자식의 생명값일지 모르는 씨앗을 이런 곳에 뿌리고 있다.
가능성이 없어보여도 뿌린다.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그 의지를 보인다면
그 모든 것을 갈아 그냥 땅이 아닌, 좋은 밭으로 만들어서라도 그 땅을, 생명을 살리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100배라는 엄청난 결실을 맺게 하려는 의도다.
100배는 일반적인 산출량이 아니다. 이런 돌밭, 가시덤불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밭의 문제가 아니라 돌밭은 흙이 얇아서이며, 가시덤불밭은 애초에 가시가 자랄 양분이 있는 밭으로 보신다.
이처럼 이 밭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 아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른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다.
좋은 땅은 없다. 성령께서 갈지 않으시면 없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갈 땅을 찾으신다. 그 밭의 상태가 어떻든지, 생명과 바꾼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이 자리에 서있다.
십자가의 복음을 생각하자.
하나님을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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