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과 기도 (시119:16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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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제하는 말씀과 기도 ()
442장 저 정미꽃 위에 이슬
161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서론

새해가 시작되면 여러가지 결심을 합니다. 신안적으로도 말씀 통독과 기도를 다시 열심히 시작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삶이기 때문에 균형있게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칫 한쪽에만 집중하다 보면 극단으로 치우치는 잘못된 영성을 가지게 됩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도 같이 가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만 있고 기도가 없으면 말씀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게 됩니다. 기도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나만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기도가 뒷받침된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과 생생히 교제하며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또 말씀이 뒷받침 된 기도는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며, 방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둘을 따로 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받은 말씀으로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기에 말씀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시편 119편은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간절한 기도가 같이 나옵니다. 시인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였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의 기도는 말씀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절인 176절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긴 성격의 장인 119편의 이 긴절을 기도하는 동안 아직 말씀으로 응답이 없지만 지금까지 말씀으로 자신을 건지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9편의 마지만 두 연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의 말씀과 기도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도 바른 태도로 말씀과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앞에 서야 합니다(161-168)

161-168절의 키워드는 “사랑”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속에서 그 능력을 발합니다. 아무리 깊은학자적인 연구를 하더라도, 말씀을 외울정도로 말씀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놓치고 오로지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말씀을 가까이할 때 위험해집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말씀의 능력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함으로 그 사랑을 알게 하는데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교제할 때 성경은 글자로 구성된 책이 아닌 내 삶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됩니다.
시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사랑으로 존경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겠다고 고백합니다.
()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시인의 상황은 고관들로부터 거짓으로(까닭없이) 핍박받는 상황입니다. 이미 앞선 구절에서도 시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꾸며 비방(69, 78, 86)하기도 하며, 함정을 놓고 멸할 기회를 엿보기도(85,95,110) 합니다. 고관에 비하면 자신은 한없이 작아 보일텐데도 시인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억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상황도 그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에 받은 말씀으로 이기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치있게 여기는지 16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탈취물은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입니다. 오직 전쟁에 나가 싸운 자만이 탈취물의 기쁨을 압니다. 시인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며 말씀앞에 나간 자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그 승리의 말씀의 가치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시인의 기도에서 알 수 있는 여전히 고통의 상황이지만 시인은 이 상황을 말씀으로 해석해낼 수 있다면 자신이 승리할 것임을 알기에 사모하며 그 말씀을 구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족하고 찬양하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 “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인은 대적처럼 거짓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방식에서 오는 것은 잠깐의 쾌락, 눈 앞의 만족은 줄 지 모르지만 자신을 채울 수 없기에 그는 거짓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를 사랑합니다. 세상에 사로잡히는 것을 뛰어넘기 위해 하루 일곱 번씩 그 말씀을 통해 주를 찬양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루 읽곱번씩”은 매일 온전한 찬양을 드리기 원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야 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수록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의 의로움을 감탄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지금까지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한 증거로 그 말씀의 길을 걸어왔음을 고백합니다.
()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정말로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자의 특징은 그 말씀앞에 자신의 삶을 드리는 가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평안함을 가지고 말씀대로 걸어갈 용기가 생깁니다. 장애물이 없다는 것은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해쳐나가지 못할 장애물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주신 말씀을 믿기에 그 말씀대로 걸어가는 자는 당당합니다.

2. 말씀대로 기도해야 합니다(169-176)

169-176절의 키워드는 “말씀대로” 입니다. 시인은 말씀과 기도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진정한 기도는 내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깨닫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부르짖는다고 말합니다. “부르짖음”은 기쁨의 환성이라는 뜻도 있고 ‘애통의 울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본문은 문맥상 애통의 울음으 가깝습니다. 성도님들에게는 말씀앞에 나아갈 때 이런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까? 저는 시편 119편을 묵상하며 말씀을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회복되기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붙들 수 있는 약속의 말씀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자신을 건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약속에 따라 움직이도록 자신이 붙들 약속의 말씀을 간구합니다.
말씀대로 만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직역하면 ‘내 입술이 찬양을 쏟아내리이다’입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거품이 부글부를 솟아나듯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찬양입니다. 말씀을 통해 교제하고 기도하는 자는 그 말씀이 그를 지배합니다.성 령의 감동을 입은 말씀은 이렇게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믿음의 고백으로 찬양을 쏟아지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인은 지금까지 말씀의 길로 왔던대로 계속해서 말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록 기도합니다
() “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의 의지가 연약한 것을 알기에 자신을 믿고 말씀대로 살겠다고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말씀을 통해 발견한 주의 법도를 상황이 주어졌을 때도 선택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항상 주님의 손의 도움을 의지하도록 기도합니다. 시인이 정말 원하는 것은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말씀해주신 주님이기에 주님의 구원을(간섭하심을) 사모합니다. 시인은 겸손하게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은 자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심을 고백하며 자신을 돕고 인도할 주님의 음성으로서 주의 말씀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 “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는 너무 자만하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말씀이 나를 붙들고 지배하지 않으면 영적 사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몰라 방황할 수 있습니다. 예배르는 잠깐, 말씀을 묵상하는 잠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여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시인처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과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지극히 작게 일부만 경험하는 것에서 멈추고 맙니다. 속도의 시대에 빨리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것을 찾을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보물이 묻힌 밭을 사는 것처럼, 값진 진주를 찾는 것처럼 말씀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살아있는 음성으로 들리고 자신을 지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의 말씀을 향한 사모함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풍성함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청소년셀 수련회 마지막까지 은혜로 인도해 주시고 안전히 오도록
내일 주일예배와 말씀전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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