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자리에서 약속을 믿고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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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한날이 복을 쫓아가는 하루가 아니라, 복이 우리를 찾아오는 행복한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오늘 우리가 나눌 시편 60편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고난이 우리의 삶가운데 올 때’입니다.
최근에 ‘싸일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던 엔도슈샤코의 너무나 잘 알려진 소설이지요 ‘침묵'의 주제는 ‘하나님, 당신은 왜 고난가운데 침묵하십니까?’ 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마음가운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이라고 생각이 되어 질 때, 또한 하나님이 주신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고 침묵하고 계신다라고 생각될 때, 우리의 마음이 더 힘들게 되어지는 것이지요. 이 하나님의 고난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의 삶가운데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그 하나님의 고난과 침묵에 반응해야 되는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지혜를 배우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읽어보면 1절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2절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3절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절에도, 5절에도 주께서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자신이 당한 고난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온것아니고, 환경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주관하고 계시다라는 것을 깨달을 때, 한 편으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마음가운데 다윗과 같은 물음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 왜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 이러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묻게 되는 것이죠.
아마, 여러분도 다윗처럼, 인생에 한번쯤은 그런 질문을 해본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가정가운데 고난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의 자녀가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까? 이런 질문들을 인생에서 최소한 한번이상 하게 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부족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하고 깨달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이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영적인 선배들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어떠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있는 19세기에 가장 큰 지성인이라고 알고 있는 C.S루이스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귀머거리 세상에 들으신 메가폰이다.
어떤 학생이 그렇게 C.S루이스에게 이야기 합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의 삶가운데는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 것입니까? 왜 이렇게 아픔들이 많은 것입니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과 이 땅가운데 일어나는 많은 고난과는 도저히 매칭이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수님, 좀 속시원히 설명좀 해 주십시요. 그 때 C.S루이스가 그 학생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보게!… 인간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나 교만하기 짝이 없는데, 우리의 삶가운데 고난마저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겠는가?… 고난은 교만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생각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라네. 그래서 이 고난은 하나님이 아무리 이야기 해도, 말씀으로 사건으로 이야기 해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않는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이 세상을 향해 들으신 하나님의 메가폰이라네. 그래서 고난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더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네..
고난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더
내가 나도 알지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귀기울여 듣지않는 귀머거리가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으로, 사건으로 말씀하고 계신데, 내가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들으신 하나님의 메가폰이 바로 내가 당한 그 고난이 아닙니까?
고난당한다고 원망하시 마시고 여러분의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의 하반부에 시편 60편 6절 이하에 말씀을 보면, 여러 나라들이 언급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6절 말씀을 같이 한번 보실까요?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6 절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절에 보면, 길르앗과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나오고 유다가 등장하고요.
8절에 보면,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많은 나라들과 도시들이 등장하는 것이죠?
다윗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 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더 절실하게 찾기도 합니다. 또 사람의 도움 뿐만아니라, 돈의 도움, 경험의 도움, 지식의 도움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경험도, 사람도, 지식도 우리를 일시적으로 도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차원에서 다윗은 이렇게 많은 도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본문의 하반절을 보시면 11, 12절 말씀에 이런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길르앗의 구원도, 에브라임의 구원도,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의 구원도 헛되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실제로 도움을 얻기 위하여 사울의 칼날을 피해서 가드왕에게 도망친 적이 있었죠. 그에게 도움을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피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이 경험한 것은 그 왕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침을 흘리고 미친척하면서 그에게서 다시금 피해 나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잊어버렸더니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때로는 나의 적에게 까지 도움을 구한 적이 있었다라고 그 사실을 회상하며 이 시편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무엇에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 사람의 구원은 헛됩니다. 일시적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는 나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고 나아간다면 지식때문에 용감한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용감한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어떤 사람때문에 용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에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용기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용맹스러움이 오늘 한 날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경험되어지는 축복된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여서 때론 사람을 의지하기도 하고 돈을 의지하기도 하고 경험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용감히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