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3 [수요예배] 회복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7 viewsNotes
Transcript
# 190213[수요예배] 여섯 항아리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NKRV)**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Restoration.
낡은 농기계, 공구들을 새롭게 만드는 것.
용접을 하고, 그라인더로 깎고,
족히 몇시간은 걸릴 것 같은 그 것을 보면서 느끼는 점.
‘나 같으면 하나 새로 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듦.
하나님은 왜 나를 내버려 두실까.
아니. 여전히 부족하고 볼품없는데, 왜 사랑한다고 말씀하실까.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왜 자꾸 나를 부르시는 걸까.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나의 혼인잔치 상황.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를 열고 있는 사람에게 큰 수치.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결례.
‘잔치’에 문제가 생긴것.
이제는 기쁨이 절망이 된 것. 앞으로 평생의 풍성한 열매 맺음을
축복하고 기뻐하는 ‘혼인잔치’에 열매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짐.
이스라엘이 혼인잔치에 실패했듯이,
지금 가나에서도 혼인잔치가 실패함.
미래가 단절될 것을 암시하는 무시무시한 복선처럼
가나의 혼인잔치의 포도주 공급중단 사태는
불길한 징조의 서막같은 것.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어머니를 향해 단호하게 말함.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 자체로는 굉장히 무안을 주는 말임.
문자적으로는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에도 ‘무엇이길래’를 말씀하실 수 있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심.
창조주는 만드실 자격도 유기하실 자격도 있으심.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나의 때’와 이 문제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암시를 보여주심.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 때와 혼인잔치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포도주 공급 중단사태와 예수님의 때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6절.
유대인의 정결 예식 ->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
한 ‘통’ 이라고 되어있는 헬라어는
40리터 정도를 가르키는 ‘단위’
그러니까 6통이면 500-600리터 정도를 담을 수 있는 항아리.
이 항아리는 손과 발, 식기를 씻는데 사용됨.
일주일씩 벌어지는 잔치에서 매 순간 채워지고
사용되는 ‘통’
마치 매일의 예배, 매일의 큐티, 매일의 기도처럼.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 사용될 도구.
불필요해 보이는 돌 항아리가 몇개인지까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유가 있을까?
6은 불완전한 숫자를 뜻함.
7째 날에 창조가 완성된 것처럼. 6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함.
이 정결예식은 불완전.
매일 씻기 위해 사용되고, 매일 정결하기 위해 사용되고,
축제와 예식을 치르기 위해 사용되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것.
아직불완전함 =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음.
공구나 도구들은 쓰다보면 낡게 되어 있음.
우리 교회 곳곳도 쓰다보니 헤지고,
내버려 두니 곰팡이와 녹이 슬고
이제는 나무도 썩어서 부러지고
그것을 고치고 다듬고 보수하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돈이 들어감.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됨.
그냥 하나님 돈좀 주셔서 무너뜨리고 다시 재 건축하면 안될까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건축하지 않는 교회니까,
새롭게 리모델링이라도 시켜주시죠..
싹 다 뜯어버리고,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이게 저와 여러분의 상태.
변하지 않는 자아와 욕심,
매일 말씀 묵상으로, 큐티로, 기도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나가고 싶지만,
딱 그 수준에 머물러버린 피상적이고 반복적인
불완전한 정결함과 불완전한 결혼식과 불완전한 미래로 결론날것만 같은 긴박한 상황.
청년들 기도회 참석.
기도가 ‘정형’화 됐구나.
개인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고, 연합을 위해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일련의 순서.
개인에서 민족으로 세계와 열방을 위해서 흘러가는 흐름.
나쁘다는게 아니라,
‘정형’화 된, ‘돌 항아리’ 같은 느낌.
왜 우리 기도가 ‘돌 항아리’가 되어버렸을까.
왜 우리 예배가 ‘돌 항아리’가 되어버렸을가.
우리가 아직 ‘잔치’를 치르는게 아니라서.
예배가 재미가 없어요, 예배가 기쁘지가 않아요.
말씀이 들어오지 않아요. 교회가 실망스러워요.
우리는 정결 예식을 치르고 잔치 안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져버린 상황을 맞이한 것 같음.
돌 항아리가 나쁜게 아니라, 정결 예식이 나쁜게 아니라,
우리의 예배가 나쁜게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나쁜게 아니라,
우리의 교회가 나쁜게 아니라,
진짜 생명력 있는 축제와 잔치를 누릴 수 있는
‘포도주’가 실종되어버렸다는 것.
예수님은 하인들을 시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시키심.
그리고는 떠서 연회장, 잔치를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갖다 주라고 하심.
이 포도주를 맛 본 잔치의 장은 이보다 더 맛잇을 수 없는 좋은 포도주를 내었다며
‘잔치’가 회복되고, 신랑과 신부의 명예가 회복되고, 이 축복의 가정의 미래가 회복됨.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보기를.
예수님께서 항아리에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실 때
이 ‘항아리’와 ‘뜨다’는 신약성경에서 딱 두 군데서만 등장함.
오늘 본문 요한복음 2장과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 곁에서 이야기하시던 4장에서.
4장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시자,
유대인인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잆고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물을 얻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리고 난 다음 대화가 곧바로,
예배에 대한 대화로 넘어감.
어디에서,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우리의 갈증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참된 예배와,
참된 축제와, 참된 잔치, 혼인잔치가 어디에서 어떻게 열릴 것인가?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함.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가 오시면 그렇게 될 줄 압니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심.
‘나다’
예수님의 신적 등장에 놀란 여인은 ‘물동이’가 더이상 필요치 않음.
물동이를 놓고 이 복음을,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을,
참된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러 마을로 들어감.
그려내는 이 기막힌 그림이 보이는가.
물동이가 예수님의 발 앞에 놓였음.
부정한 마을 사마리아가 복음으로 정결하게 되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축제의 자리로 변하게 됨.
정결 예식에 쓰던 여섯 항아리와 버려진 항아리가 만나 일곱 항아리가 되어
완전한 정결예식 ->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쏟아짐으로
-> 이제는 미래를 소망할 수 있는 완전한 축제와 즐거움, 기쁨으로 변함.
이 생명력 넘치는 보혈이 곧 영생을 주시는 생수요,
예수님이 바로 마지막 최후의 정결 예식,
최후의 항아리로써 우리에게 잔치를 선물해주시는 분이 되심.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고 버리고 새로 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새 생명으로 생명력 있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신앙이
돌 항이리처럼
너무 익숙해지고, 너무 뻔해지고, 깊이가 사라지고, 일상화되버리고 있다면,
우리는 ‘포도주를 잃어버린 잔치’를 만난 것.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묵상해도
변화가 없는 것은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
이 포도주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 백날 항아리에 물을 부어도
능력이 나타날 수 없음.
이 보혈이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우리의 정결함이 예수 보혈로 완성되기를.
우리의 노력과 방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끌고 가시는 방향과 방법에
하인들처럼 단순히 순종할 수 있기를.
단순한 순종이 능력을 나타냄.
단순한 순종은 많은 것의 포기.
시간, 물질을 포기해야 할 지 모름.
restoration의 동영상처럼
시간과 물질과 땀과 노력을 다 들여서
낡은 것을 벗겨내고 뜯어내고 두들기고 불속에 집어넣고 물 속에 집어넣고
잡아 뜯고 긁어내고 망치로 쳐서 깨뜨리고 그라인더로 잘라내야
낡은 것이, 버려질 것이
새로운 것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뀌는 것처럼,
우리 주님이 우리를 다루실 때 감내해야할
벗겨짐과 뜯겨짐, 두들겨짐, 긁어내짐, 깨뜨려짐, 잘라내짐을
감당할 수 있기를.
그래서,
여전히 정결예식에만 참여하고 포도주가 떨어져버린 잔치에
당황하며 염려하며 낙심하며 슬퍼하지말고
보혈로 말미암아 주어진 놀라운 영적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