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927년 2월 12일 토요일 일기
기도 생활의 실천을 호소함
이덕봉李德鳳 씨에게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대의 길이요, 기도는 성령의 능력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요, 기도는 영적 생명의 최선의 양식이요, 기도는 신앙생활의 심수心髓(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신자라 하면서 힘 있는 기도가 없으면 그는 이름만 있는 겉껍데기 신자요, 참된 신자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동정의 눈물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틀림없이 참된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신성한 사업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간절한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열렬한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혁혁赫赫한 희망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힘 있는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큰 능력을 얻고자 원하십니까? 열심으로 기도하십시오. 형제자매여, 자신의 믿음과 열심과 사랑이 적고 모든 것에 부족함을 깨달으십시오. 통회痛悔의 기도를 해 본 일이 있습니까?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 중 믿지 않는 이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관계 맺는 단체가 잘되기 위하여 구하여 보았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교회가 거룩하고 힘 있게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습니까? 당신은 조선이 다 구원되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습니까? 당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하여 보았습니까?
기도하는 때가 능력이 이르는 때요, 기도하는 곳이 능력이 생기는 곳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때에 소망이 생기고 기도하는 곳에 기쁨이 넘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신이 임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양 떼와 함께 푸른 하늘, 반짝이는 별, 고요한 밤마다 묵상과 기도의 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거룩한 사자가 되어 패망한 이스라엘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몸을 하나님께 바쳐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는 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당하면서 이방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아라비아 광야에서 수년간 기도 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공적公的 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하여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가 필요하였고, 십자가의 최후 승리를 얻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곳이요, 대체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진행되는 곳이므로 어느 것 하나 가치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이 세상은 악마가 횡행하는 곳이요, 패역悖逆한 세상이요, 죄악이 넘치는 말세입니다. 신자는 이 악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에베소서 6장의 가르치심과 같이 전장戰場에 나가는 용사처럼 믿음에 굳건히 서서 항상 긴장한 태도와 경건한 마음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만 우리에게 승리가 이를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우리 정성을 합하여 힘써 기도합시다. 일상생활에서 닥치는 일마다 경건한 기도의 태도로 대할 것은 물론이요, 특별한 시간을 택하여 하나님과 단둘이서만 대좌對坐하여 깊은 영교靈交(영적인 교제)가 있는 곳에 큰 능력이 생깁니다.
세상 모든 잡된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여지가 없습니다. 새벽별 반짝이는 고요한 때, 할 수 있으면 산이나 들로 나가서 기도할 것입니다. 때로는 신자가 한 곳에 모여 마음을 합하여 열심으로 기도함으로도 큰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아래 몇 가지를 형제자매에게 호소합니다.
(1) 매일 새벽[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꼭 기도할 것
(2) 기도하는 곳은 될 수 있으면 산이나 들로 정할 것
(3) 기도 내용은 각각 먼저 자기 자신의 성결聖潔을 위하여, 자기의 가족을 위하여, 동포의 구속救贖을 위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요, 다음은 각각 자기 소원을 간구할 것입니다.
1932년 편지
성신과 기도
성신은 은총 간구하는 마음을 부어 주심(슥 12:10)
성신은 우리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나 죄를 회개하는 것이나 신생新生케 되는 것이 모두 성신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신은 우리 마음에 기도할 생각을 일으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중상重傷(몹시 다침)한 심령으로 천국의 공기와 그 광명에 접촉케 하십니다.
성신은 곧 기도의 신입니다. 성신이 내재한 이에게 기도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을 보면 성신을 받은 오순절 교회 신자들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성신이 역사하시는 교회나 개인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신이 기도할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내 힘으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신자에게 중대한 것입니다. 이 필요한 기도의 도수度數는 성신이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데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입니다. 마치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의 심장이 몹시 뛰는 것같이 성신의 역사가 마음속에서 맹렬히 운동하는 자일수록 기도의 도수는 더욱 높은 것입니다.
성신이 내게 없으면 아무리 기도하려 해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이 육신은 기도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기도할 생념生念(생각을 갖거나 엄두를 냄)을 도무지 일으키지 않습니다. 기도는 오직 성신이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 우리는 무아지경에서 물 솟듯이 마음속에서 기도가 흘러나옴을 체험합니다. 그런 때에 흘러나오는 기도는 내가 지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신이 하시는 것입니다.
종교생활 하는 자로서 기도가 없으면, 그는 혹 종교철학자나 신학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성신을 가진 자는 아닙니다.
성신은 정당한 기도를 하게 하심(롬 8:26–27)
우리는 이 세상의 과대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에게 정당한 것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철없는 어린 자식같이 하나님 앞에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저 내 표준標準만 주장하고 또 욕심에만 끌리어 사실 내게 무익한 것을 허락해 달라고 조르는 반면에 진정 내게 유익한 것은 구하지 않을 때가 퍽도 많습니다. 이때에 성신은 우리의 혼미한 마음을 열어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종종 체험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 기도를 시작할 때에도 별로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이었으나, 기도하는 중에 새로운 열심과 뜻하지 않은 간절함으로 기도를 드리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성신이 우리에게 지도하심입니다.
발람의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하여 발락에게 갔으나 그는 자기 마음대로 저주를 빌지 못하고 도리어 복을 빎으로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기도는 성신이 지시하심이었습니다. 또 성신의 감동으로 나오는 기도는 일종의 예언이 됩니다. 발람의 축복에서 그것이 증명되며,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데서 확증됩니다. 연로한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린 것은 그가 연로함으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지시하는 대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그같이 하나님의 신이 하시는 예고는 그대로 응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에 있는 모세의 축복도 역시 하나님의 신이 감동하심으로 발포發布(널리 알림)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때 무심히 있지만 뜻하지 않게 간절히 복을 비는 수가 있습니다. 또 그와 반대로 어떤 때는 간절히 기도하려 하나 그같이 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체험합니다. 이처럼 성신은 기도하는 것을 직접 주장하십니다.
아바 아버지를 부르게 됨(갈 4:6)
기도는 조용하고 침착한 가운데서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큰 고민이나 공포와 같이 암담한 가운데 휩싸이든지, 또는 대사상大四相(사람이 겪는 네 가지 모습인 생·로·병·사)에 부딪칠 때, 형언할 수 없는 난경難境(곤경)에 직면할 때, 다른 말은 나오지 않고 오직 ‘아바’라 하는 ‘아버지’만을 연발하게 되는 일이 있으니 이것도 역시 기도인 것입니다. 이도 또한 성신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는 시간이니 이때는 과연 만감이 잠재해 있는 의미심장한 때입니다. 어떤 순서나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신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내 심령이 절망과 비애에 잠겨 있는 때이니, 그때에 성신은 내 마음속에서 번득이시는 것입니다. 저가 내 아버지시요, 내가 저의 아들이니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 같은 장면에서 아버지란 말밖에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이는 어떤 웅변가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어떤 때 우리는 기도하는 중에 너무 감격에 휩싸여 30분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다른 말은 없이 오직 아버지만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성신이 내 마음속에서 무언無言한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는 시간이니, 비록 짧은 한마디 말이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또 하감下瞰(위에서 내려다봄)하시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시간이 지난 후 내 마음에는 희락과 평화가 솟아오르게 됨을 체험합니다. 이는 우리 사정이 하나님께 통달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 있는 말씀같이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터인데 그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리라 하셨습니다. 또 이 성신은 세상이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성신을 받은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귀신을 접한 자입니다. 사귀邪鬼(요사스런 귀신) 접한 자를 무당이라 하면, 거룩한 귀신[聖神] 접한 자를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신을 알지 못하는 자가 기도를 말한다는 것은 일종의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성신과 동거하고 또 기도하는 성신을 받아 많은 은혜를 받도록 힘씁시다!
〈설교〉(193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