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6.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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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가족이 애굽으로 감, 이삭의 하나님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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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וַיִּסַּ֤ע יִשְׂרָאֵל֙ וְכָל־אֲשֶׁר־ל֔וֹ 1/4
וַיָּבֹ֖א 1/8
בְּאֵ֣רָה שָּׁ֑בַע 1/2
וַיִּזְבַּ֣ח זְבָחִ֔ים 1/4
לֵאלֹהֵ֖י 1/8
אָבִ֥יו יִצְחָֽק׃1/2
( WTT)
이스라엘이 그에게 속한 모든 이(+것)와 함께 출발했다(칼 바익톨)1/4
그리고 왔다(칼 바익톨)1/8
브엘세바로1/2
그리고 제사를 드렸다(칼 바익톨)1/4
하나님께1/8
그의 아버지 이삭의1/2
: 이스라엘이 그에게 속한 모두와 함께 출발해 브엘세바로 왔다. 그후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 본문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야곱이라는 이름이 교차로 쓰이고 있다.
- 행동을 나타낼 때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쓰이며, 하나님께서는 야곱이라고 부르고 있다.
-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큰 결정 전에 브엘세바로 제사드리러 온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했다는 것을 뜻한다.
- 하지만 그가 가진 생각, 두려움과 불안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에 흡족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야곱이라고 부르고 있다.
- 그런데 그 이후 이스라엘 본인을 가리킬 때는 야곱이라고 쓰인다.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적고 있다.
- 그것은 아들들의 행동, 모든 것을 챙기고, 처자와 야곱을 수레에 태우는 행동이 하나님께 합당함을 보여준다. 십계명의 부모공경계명이 생각나며, 처자,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 그가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 이삭이 살던 브엘세바로 온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다.
- 여기서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야곱이 이삭이 가졌던 믿음을 가졌다는 의미가 있으며 또한 이삭에게 임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바란다는 의미도 있다.
וַיֹּ֙אמֶר אֱלֹהִ֤ים׀ לְיִשְׂרָאֵל֙ בְּמַרְאֹ֣ת הַלַּ֔יְלָה 1/4
וַיֹּ֖אמֶר 1/8
יַעֲקֹ֣ב׀ יַעֲקֹ֑ב 1/2
וַיֹּ֖אמֶר 1/4
הִנֵּֽנִי׃1/2
( WTT)
하나님께서 그 밤에 환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4
그가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8
야곱아 야곱아1/2
그가 말했다(칼 바익톨)1/4
내가 여기있나이다1/2
: 하나님께서 그 밤에 환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말씀하셨다. “야곱아 야곱아” 그가 말했다. “내가 여기있나이다.”
-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신다.
- 환상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12번만 쓰였으며,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되어 쓰였다. 특별히 예언과 계시로서 나타났다.
- 내가 여기있나이다. = 네, 주님.
- 야곱을 왜 2번이나 부를까?
- 성경 전체에 나타난 2번 부르는 것은
- 사람의 입자에서 : 간절한 외침(, 압살롬죽음후 다윗, 엘리야 죽음후 엘리사, , 나더러 주여 주여, 남은처녀들 주여주여,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주여주여-갈릴리호수 풍랑)
- 하나님 입장 : -모세부르심, 사울아 사울아, 지금 본문
- 이름을 2번 부름은 간청 애원등 좀더 강조되고 중요한 표현일 때 쓴다.
וַיֹּ֕אמֶר 1/4
אָנֹכִ֥י הָאֵ֖ל 1/8
אֱלֹהֵ֣י אָבִ֑יךָ 1/2
אַל־תִּירָא֙ מֵרְדָ֣ה מִצְרַ֔יְמָה 1/4
כִּֽי־לְג֥וֹי גָּד֖וֹל 1/8
אֲשִֽׂימְךָ֥ שָֽׁם׃1/2
( WTT)
그가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4
나는 엘[하나님]이다1/8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1/2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칼 부정사)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칼 미완)1/4
왜냐면 큰 민족으로1/8
거기서 너를 만들것이다(칼 미완)1/2
: 그가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왜냐면 큰 민족으로 거기서 내가 너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
- 그냥 ‘엘’이라고 말한다. 마치 신중의 하나처럼 보인다.
- 하지만 그 많은 ‘엘’중, 너의 아버지의 엘로힘임을 다시한번 말한다.
- 야곱은 이삭의 하나님께 경배하러 왔고, 이삭의 하나님은 자신이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맞음을 다시 한번 확증한다
- 그리고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실현을 말한다.
- 그것이 큰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 두려워떠는 야곱을 향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번이나 급박하게 부른 것이 아닐까?
אָנֹכִ֗י אֵרֵ֤ד עִמְּךָ֙ מִצְרַ֔יְמָה 1/4
וְאָנֹכִ֖י 1/8
אַֽעַלְךָ֣ גַם־עָלֹ֑ה 1/2
וְיוֹסֵ֕ף 1/4
יָשִׁ֥ית יָד֖וֹ 1/8
עַל־עֵינֶֽיךָ׃1/2
( WTT)
내가 너와함께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다(칼 미완)1/4
그리고 내가1/8
또한 반드시 내가 너를 올라오게 할 것이다(히필 미완)1/2
그리고 요셉은1/4
그의 손을 둘 것이다(칼 미완)1/8
너의 두눈위에1/2
: 내가 너와 함게 애굽으로 내려가고 내가 또한 반드시 너를 올라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ㅛ셉은 그의 손을 너의 두눈 위에 둘 것이다.
- 내가로 1인칭이 매우 강조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실행하실 것이란 약속이다.
-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약속이다. 이런 약속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 하나님께서 함께 가심으로 반드시 올라오게 하신다.
- 올라오게 하다는 강한 강조의 표현으로 쓰였다.
- 요셉이 눈을 감긴다는 것은 야곱의 죽음을 말한다.
- 하지만 꿈에서도 그리던 아들을 만나고 아들이 있는 상태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 자녀를 잃은 부모의 소원이 아닐까. 차라리 내 아들대신 내가 죽었으면, 내가 아이의 눈을 감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내 눈을 감겨주는 상황이라면 이라는 것말이다.
- 이것은 야곱이 너무나 바라던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왜냐면 개인적인 소원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던 약속의 땅의 소원도 이루심을 말하기 때문이다.
וַיָּ֥קָם יַעֲקֹ֖ב 1/4
מִבְּאֵ֣ר שָׁ֑בַע 1/2
וַיִּשְׂא֙וּ בְנֵֽי־יִשְׂרָאֵ֜ל אֶת־יַעֲקֹ֣ב אֲבִיהֶ֗ם וְאֶת־טַפָּם֙ וְאֶת־נְשֵׁיהֶ֔ם 1/4
בָּעֲגָל֕וֹת 1/8
אֲשֶׁר־שָׁלַ֥ח פַּרְעֹ֖ה 1/16
לָשֵׂ֥את אֹתֽוֹ׃1/2
( WTT)
그리고 야곱이 일어났다(칼 바익톨)1/4
브엘세바로부터1/2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들의 아버지 야곱과 그들의 작은 아이들과 그들의 아내들을 태웠다(칼 바익톨)1/4
그 수레들에1/8
바로가 보낸(칼 완)1/16
그를 태우기 위해(칼 부정사)1/2
: 그후 야곱이 브엘세바로부터 일어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과 그들의 아이들과 아내들을 바로가 그를 태우기 위해 보낸 그 수레들에 태웠다.
- 수레를 꽤 많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
- 그냥 수레가 아니라 고급마차일 것으로 추정된다. 요셉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 보내다는 에스코트하다, 뻗치다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 여기서 아이들은 걸어서 먼거리를 이동할 수 없는 아이들을 뜻하며, 특별히 유목민족들의 아이를 뜻한다.
וַיִּקְח֣וּ אֶת־מִקְנֵיהֶ֗ם וְאֶת־רְכוּשָׁם֙ אֲשֶׁ֤ר רָֽכְשׁוּ֙ בְּאֶ֣רֶץ כְּנַ֔עַן 1/4
וַיָּבֹ֖אוּ 1/8
מִצְרָ֑יְמָה 1/2
יַעֲקֹ֖ב 1/4
וְכָל־זַרְע֥וֹ אִתּֽוֹ׃1/2
( WTT)
그리고 가나안땅에서 그들이 모았던(칼 완) 그들의 가축들과 물품들을 취했다(칼 바익톨)1/4
그리고 그들이 왔다(칼 바익톨)1/8
애굽으로1/2
야곱1/4
그리고 그의 모든 씨와 함께1/2
: 그후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모았던 그들의 가축과 물품들을 취하고 그들이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과 함께 애굽으로 왔다.
- 가나안 땅에서 완전히 이주함을 뜻한다.
- 약속의 땅을 떠나며, 고향을 떠난다.
- 야곱은 약 110년 정도를 가나안에서 살았고 나머지를 밧단아람과 애굽에서 살았다.
- 다른 족장들과는 반대로 그는 가나안에서 태어나 애굽에서 죽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그는 애굽행을 택했다.
- 우리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모신다.
- 그가 130이라는 나이에 애굽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두려움을 통해 이삭의 하나님,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
בָּנָ֞יו וּבְנֵ֤י בָנָיו֙ אִתּ֔וֹ 1/4
בְּנֹתָ֛יו וּבְנ֥וֹת בָּנָ֖יו 1/8
וְכָל־זַרְע֑וֹ 1/2
הֵבִ֥יא אִתּ֖וֹ 1/4
מִצְרָֽיְמָה׃ ס1/2
( WTT)
그의 아들과 그의 아들의 아들들을 그와 함께1/4
그의 딸과 그의 아들의 딸들을1/8
그리고 그의 모든 자손을1/2
그와 함께 가게했다[데려갔다](히필 완)1/4
애굽으로1/2
: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의 아들들, 그의 딸들과 그의 아들의 딸들과 그의 모든 자손을 그와 함께 애굽으로 데려갔다.
- 완전한 이주를 뜻한다.
-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야곱은 철저하게 데려간다. 모든 혈육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리고 간다.
- 보통 딸들은 시집가면 남이다.
- 남은 딸인지는 모르겠다. 아들의 딸은 아마 시집가지 않은 처녀를 뜻하는거같다.
1차 작성
45:27 에서는 요셉이 아버지를 위해 수레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바로가 수레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1. Jacob Leaves Canaan for Egypt (46:1–7)

26:23–25

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내려주신 일도 있었다. 그 일 이후에 그렇게 괴롭히던 아비멜렉이 이삭과 언약을 맺는 사건 나타난다.
이렇듯 아버지의 하나님을 부름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언약을 의지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부르게 하는가?
지금 야곱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단도 이삭이 26:25에서 쌓은 제단으로 보인다. 그는 절저히 부모님의 신앙아래에 있었다. 그의 나이가 130인데도 그렇다.
그리고 그 제사, 예배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하나님께서 다시 밤에 야곱에게 임하시다. 이것은 28:10의 벧엘과 32:22의 씨름이후 3번째이다.
가장 두려운 밤, 칠흑과 같은 어둠의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야곱에게 임하시고 함께 하신다.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1. Jacob Leaves Canaan for Egypt (46:1–7)

(22:11; cf. also Exod. 3:4; 1 Sam. 3:10; Acts 9:4).

이 외에도 여러가지 2번씩 부르느 경우가 있다. 위를 참고.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같은 언약의 축복을 야곱도 받았다.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1. Jacob Leaves Canaan for Egypt (46:1–7)

God’s first talk to Abraham (12:1–3) and final talk to Abraham (22:15–18) are God’s promises. Similarly, God’s first talk to Jacob (28:13–16) and his last talk to Jacob (46:2–4) are promises.

왜 오늘 말씀에서(3절)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신다고 말씀하실까. 45:28 or 46:1에서 보다시피 그는 분명 요셉을 보러가겠다고 말한다. 야곱의 아들들이 두려움이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야곱의 마음속에 번민과 두려움이 있었다는 뜻일까.
이 큰 결정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러 온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애굽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린 적은 없다. 아브라함은 쫓겨나오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제지하신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같다. 분명 그 길에 대한 축복의 요구인지 인도요구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바라며,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신다.
야곱의 두려움 여부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 이상 갈 필요는 없을거같다.
6절에서 재물이라는 말은 물품이라는 뜻이다. 생필품들을 모조리 챙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45:20 에서 바로가 재물을 아끼지 말라라고 말했다. 벌써 준비되어 있다.
6절과 7절에서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에 갔다는 말이 반복되는 것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축복속에 들어갔음을 뜻한다.
이처럼 이삭의 하나님을 부른 야곱은 그뿐아니라 그의 자손들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속에 들어갔다.
2차 작성
서론
하나님의 안에 있는 야곱의 생애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굴곡이 많은 생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야곱의 신앙고백
그 근본
본론
가정의 신앙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공동체이다.
개인의 고백이지만 교횡를 통해 자라난다.
이당시 야곱에게 교회란 바로 가정이었다. 야곱은 가정이라는 교회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의 신앙을 확정했다.
이것은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라 소개하는데, 그에 대한 세부 설명은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소개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린다고 나온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보다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야곱에게 더욱더 다가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말하신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말할 때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테트라 그라마톤.
3절의 하나님
그 하나님(엘) 네 아버지의 하나님.
하지만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성호보다 더욱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누구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3절의 하나님
그 하나님(엘) 네 아버지의 하나님.
구약과 신약에서 족보의 중요성.
하나님의 성호보다 더욱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가문, 가정에 나타난 하나님이다.
그 가정에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130세때 벌어진 일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야곱은 그 하나님, 자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을 의지했다.
이것이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삭이라는 가문, 가정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전도를 받아, 가정에서 처음으로 믿은 1세대다.
어떤 사람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앙의 가문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우리 역시 가정에서 이 신앙이라는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야곱은 오랜 시간, 아버지 이삭을 떠났지만, 이삭의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야곱이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하란)을 떠날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부르지 않으셨다.
복음을 전하는 빠른 방법은 한 민족을 왕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왕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부족의 추장.
중세 유럽의 전도.
진짜 신앙은 아니라고 할수 없다.
삶의 방식이 성도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신앙을 영접하는 경우도 많다. 매우 효과적인 전도의 방법.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심. 아브람과 사라, 이삭을 부르심.
그래서 가정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이 시작되게 하심.
가정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예배와 기도,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
분명 에서 야곱은 적극적으로 길을 나서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냐면 야곱은 말년이다.
고향.
장례식 -> 고향가서 치름
족장들도 막벨라굴에 모두 묻힘.
130이 된 야곱은 당연히 고향에 있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절에서 요셉이 눈을 감긴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 말 뜻은 분명 애굽에서 죽을 것이나 아브라함의 말년처럼 야곱의 말년이 평안할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받은 계기가 바로 제사이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렸다.
제사에는 제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따로 제단을 만들었다는 말씀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이삭이 지은 제단에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다시 강조 : 이삭이 쌓은 제단에 말년의 야곱이 제사를 드렸다.
교회란 예배가 살아있는 곳이다. 말씀과 기도가 끊임없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7라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국가, 왕이 아니라 한사람을 부르시고 한 가정을 부르셨는가. 바로 이 예배의 제단, 기도의 제단, 언약, 말씀의 제단을 쌓기 위해서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은 12:1-3처럼 약속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도 약속으로 끝났다(
그 약속의 말씀과 이삭의 제단을 이은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역사하신다.
창세기 22:15–18 NKRV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은 약속이며() 마지막 말씀도 오늘 본문처럼 약속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이유이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하시고, 그 가정자체를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성호, 여호와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어떠함이 우리의 대를 이어 이어지길 바라는가.
나의 하나님으로 끝나지 않기를 원한다. 우리의 후대들이 우리를 기억하며,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바라는, 그런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한다.
그 축복이 야곱으로 끝나지 않고 그 후손 전부에게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
그것이 6절과 7절에서 야곱과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다는 말이 반복된 이유다.
야곱의 자손들은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축복받았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 원한다.
물론 우리는 완전하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엇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자손들도 있을 것이다. 에서가 그랬고, 유다의 아들, 엘과 오난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로 말씀으로, 예배의 제단을 쌓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손들은 우리가 쌓은그 제단에서 예배할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해서 약속으로 끝낸다면, 우리의 자손들도 야곱처럼 약속으로 시작해서 약속으로 끝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있길.
결론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예배와 말씀, 기도의 제단을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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