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디모데후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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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한 싸움을 다 마치고()

설교자는 어떤 면에서 다리를 건너버렸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버린 사람들입니다. 1-5절에서 부터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설교자들은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까?
첫째, 주의 다시 오심이 너무 명백하고, 그 때 예수님은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심판을 너무도 명백하게 압니다. 그것을 선포해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부터 돌이키라고 부르신 사람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고 특별하게 설교자들입니다. 목양하는 자들입니다. 교회를 맡아서 수고하는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설수가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의 목사였던 디모데에게 엄격하게 명한다고 말합니다. 내 권위와 내가 너에게 해준 무엇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앞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앞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명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그의 권세와 그의 능력으로, 그의 명령 그대로 너에게 다시 명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룰 일을 두고 명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룰 일을 두고 명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의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증인의 일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면 우리가 목숨을 거는 것, 우리 인생 전체를 거는 것은 도박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우리의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것은 도박이 아닙니다. 뒷걸음질칠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후퇴는 없습니다. 특별하게 설교자로 부름을 받은 목사들은 앞으로만 달려가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일의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증인의 일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면 우리가 목숨을 거는 것, 우리 인생 전체를 거는 것은 도박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우리의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것은 도박이 아닙니다. 뒷걸음질칠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후퇴는 없습니다. 특별하게 설교자로 부름을 받은 목사들은 앞으로만 달려가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뒤돌아서지 말라하시고 우리에게 맡긴 일입니다. 이 일에서 돌아설 수 없습니다.
두번째, 설교자가 뒤돌아서지 않고 앞으로 나가면서 해야하는 것은 1)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과 2) 오래 참으면서 이 일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항상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메세지가 인기 없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복음이 왕성하다가도 배척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디모데의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설교자의 말보다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만 귀를 여는 사람들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 그렇다하여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기가 없으니, 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을 찾아 나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황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나 설교자는 항상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을 메세지를 전할 때, 먼저 내세우는 것이 무엇이냐면,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고 가르치라고 합니다. 헬라어 순서로 보면 그렇습니다. 무엇입니까? 축복의 말을 먼저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잡고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를 주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잔소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이 진심으로 일어서게 되는 것은 자기의 죄 됨을 알 때입니다.
저와 아내는 밤에 찬양을 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것을 저희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데요....요즘 요한계시록을 읽고 있습니다. 3장을 읽는데, 사데 교회에 대해서 읽는데 주님께서 그 교회에 대해서는 칭찬을 한마디도 안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자로다" 3:1
그래서 저희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늘 점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을 때 회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늘 축복의 말씀을 하실것 같지요? 아닙니다. 말씀은 이렇게 우리의 죄악을 후벼파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낙망에서 건져 올리는 소망도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균형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오래 참음으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교육의 과정은 늘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성급하게 결과가 안보인다고 낙망해서는 안됩니다. 나타나나는 것이 없어 보일 때도 이 일을 신실하게 오래 참으면서 하면 주께서 결과를 주실 것입니다.
5절에서는 아예 설교자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너는 모든일에 신중하라고 하는데 “신중하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맑은 정신을 갖는 것과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찌할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차리고, 고난을 받고 설교자의 일을 하며 맡은 일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수퍼맨이 되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번째, 설교자가 뒤돌아서서 갈 필요가 없는 이유는 사도 바울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삶을 본으로 제시하면서, 왜 설교자들이 뒤돌아서지 않아야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자기가 죽을 때가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죽음마저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예수를 위하여 곧 죽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후회하고 있나요? 원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쉽다고 말합니까? 뒤돌아섰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자기의 삶이 모순이었다고 말합니까?
그 답을 7절에서 보십시오.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자기도 사는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싸워야했으니까요? 그런데 선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힘들었어도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열정을 다하여 달렸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달리듯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을 지킨 달림이었고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말합니다. 뒤돌아서지 않아야할 강력한 동기를 제공합니다.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잘싸워 승리한 자에게 주는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 달린자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를 바라보며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무너지면 교회는 약해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설교자인 디모데에게 엄히 명하고 용기를 복돋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설교자가 잘 달리도록 여러분이 함께 달려야 합니다. 주께서 함께 달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상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모든 자는 복음의 불모지와 같은 시대를 잘 달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됨을 보이고, 메세지를 살아내고, 메세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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