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축복, 유언, 행복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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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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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쫒아오는 애굽의 군사들 앞에서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주심으로 구원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키시며, 그들을 기적과 같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아직 행복이 무엇인지? 잠시 느꼈던 행복이 있지만 이내 상처로 변해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는지, 행복을 쫒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단 한번 사는 이 땅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누리고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행복의 부재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곁에 있었던 행복의 삶의 은혜를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세의 유언의 내용입니다. 신명기 33장을 통해 모세는 죽음 앞두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유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유언의 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29절 말씀인 것입니다.
저또한
행복이 무엇일까요?!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한 사람의 유언은 그의 평생의 삶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의 유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충실한 믿음에 고백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한 사람의 유언은 평생의 삶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의 유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충실한 믿음에 고백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2년 전, 지적 장애를 가져 몸은 성인의 몸이지만, 표현과 지적 수준은 어린아이에 머문 장애인 친구의 죽음을 지켜보적이 있습니다. 복수에 물이차고 더이상 의학으로는 힘든 상황에 놓여 마지막 심방을 같을 때에 그친구가 남긴 마지막 유언과 같은 모습은 지금까지도 저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친구는 언어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대화를 할 수 없는 친구 였기에, 그의 마지막 의사의 표현은 저의 질문과 제손을 잡은 그의 손의 강도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약 기운에 지쳐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던 그 친구가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신앙적인 질문에서 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것 잘 알고 있지?? 라고 묻는 제 말에 손을 굳게 쥐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하는 그 질문에도 저욱 세게 손을 잡아 대답해주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힘든 상황에도 확실하게 그 친구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또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유언은 참으로 신실하고 솔직한 신앙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한 사람의 유언은 평생의 삶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의 유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충실한 믿음에 고백입니다. 반나치 운동을 하며 감옥에서 처형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죽기전 유언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고하고 성실한 본인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유언은 평생의 삶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의 유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충실한 믿음에 고백입니다. 반나치 운동을 하며 감옥에서 처형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죽기전 유언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고하고 성실한 본인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반나치 운동을 하며 감옥에서 처형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죽기전 유언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고하고 성실한 본인의 믿음과 삶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 답습니까.
오늘 말씀도 한 사람의 유언의 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의 이스라엘 여정에 앞장 섰던 모세였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일까요?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의 유언의 가작 마지막 말은 29절입니다. 그것은 본인을 위한 유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었습니다. 그는 죽음마저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축복은
모세의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축복을 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지파 하나하나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행복한 사람이라 축복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모세가 이런 유언을 한 이유에는 그의 삶의 녹아져 있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또한 행복한 사람이었고 그 행복을 경험해 보았기에 축복 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을 통해 본인이 죽음에 이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의 삶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언약을 보았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 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함께
모세는 이스라엘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그토록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쫒아오는 애굽의 군사들 앞에서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주심으로 구원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키시며, 그들을 기적과 같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거져주신 그 구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120세 쇠하지 않은 죽음
행복의 때와 행복의 자리와 행복의 이유
2. 행복한 사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유치하고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의미로 생각되시나요? 바쁘고 힘든 이 시대와 내삶에는 무관한 단어처럼 느껴지시나요? 어느 순간 우리는 행복이 어린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유치하고 식상한 의미로 치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며 두명의 청년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당신하십니까?” 질문을 받은 한명의 청년은 베시시 웃으면서 “잘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한명의 청년은 “목사님 다른 행복은 모르겠고 그냥 소확행(소소하지만확실한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었습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청년들도 아마 이런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고 혹은 소소한 삶의 감정으로 행복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월요일 아침 정말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는 그 순간… 아~ 행복하다!! 이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날 때에 당기는 다리와 피곤함때문에 전날 느꼈던 행복은 온데 간데 없어집니다. >
세상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행복은 이런 행복들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 환경, 감정이 내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거나 달려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기쁜일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곧 행복한 목적지에 이르렀다가도 조금의 이룬 것을 잃게된다면 이 행복은 금새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감정과 목적에 이끌리는 행복 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행복은 이런 행복들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 환경, 감정이 내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거나 달려가고 있다고 느껴지면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기쁜일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곧 행복한 목적지에 이르렀다가도 조금의 이룬 것을 잃게된다면 이 행복은 금새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감정과 목적에 이끌리는 행복 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기쁜일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곧 행복한 목적지에 이르렀다가도 조금의 이룬 것을 잃게된다면 이 행복은 금새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감정과 목적에 이끌리는 행복 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이런 행복이 아닙니다. 말씀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변해서는 안되는 행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고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행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행복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6절 입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2000년을 산다할지라도 행복을 맛보지 못하면 아무 의미없는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다시한번 “그렇다면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고 대답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적, 진로적, 관계적인, 위치적인 목표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아마 그러실 것 입니다. 내 주위에 행복한 사람을 떠올리면 내가 생각하는 직위와 관계와 경제적 만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삶의 목표를 기준으로 두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기쁜일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곧 행복한 목적지에 이르렀다가도 조금의 이룬 것을 잃게된다면 이 행복은 금새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감정과 목적에 이끌리는 행복 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이런 행복이 아닙니다. 말씀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변해서는 안되는 행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고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행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행복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2000년을 산다할지라도 행복을 맛보지 못하면 아무의미없는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아마 그러실 것 입니다. 내 주위에 행복한 사람을 떠올리면 내가 생각하는 직위와 관계와 경제적 만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삶의 목표를 기준으로 두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 환경, 감정이 내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거나 달려가고 있다고 느껴지면 행복하다 말할 것이고, 혹 그 목표와는 멀어지거나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상황이라 느낀다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것입니다.
아마 이런 대답의 이유는 우리 모두는 행복에 대한 갈급함이 있고 또 그 행복의 척도가 삶의 목표에 두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 환경, 감정이 내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거나 달려가고 있다고 느껴지면 행복하다 말할 것이고, 혹 그 목표와는 멀어지거나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상황이라 느낀다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이런 행복이 아닙니다. 말씀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변해서는 안되는 행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고 허락하셨습니다.
이땅을 살아가는
오늘 주시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행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행복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신명기 33장 모세라는 위대한 리더자가 죽기전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하는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각 지파를 축복한 모세는 마지막으로 26-29절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29절 함께 읽도록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33장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누구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잘 알고 경험했던 모세의 유언입니다. 모세는 가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각 지파를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축복하며 요학한 것이 바로 29절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이런 행복이 아닙니다. 말씀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변해서는 안되는 행복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셨고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행복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행복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각 지파를 축복한 모세는 마지막으로 26-29절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29절 함께 읽도록하겠습니다.
신구약 말씀 중에 전체를 통해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표현이 행복자라는 표현이에요. 유일한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약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사는 불쌍한 백성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광야의 생활에 입히시고 먹이심()
모세는 죽음을 앞에 두고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행복한 자라 칭하시고 확인해준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요?!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모세가 행복한 사람이라 축복한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은 커졌지만, 여전히 천막을 치고 이동하며지내야했고, 힘들고 어려운 광야의 생활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4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가나안 정탐 후 20살 이상된 사람들 모든 남자는 죽임을 당하는 슬픈일도 경험 했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모세라는 리더자를 잃게되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축복 후에도 그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광야에 장막을 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나안 입성을 위한 전투와 전쟁을 치뤄야하는 더욱 힘든 현실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해지지 않은 진로와 관계의 어려움에 잃어버린 삶의 길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같아보입니다. 삶의 환경이 변한 것은 없었고 변할 것도 없어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여 축복합니다. 변할 것 없는 변할것 같지 않은 우리의 삶에 행복한 자다. 너는 복된 자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포하시는 것같습니다.
당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광야에 장막을 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나안 입성을 위한 전투와 전쟁을 치뤄야하는 더욱 힘든 현실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해지지 않은 진로와 관계의 어려움에 잃어버린 삶의 길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같아보입니다. 삶의 환경이 변한 것은 없었고 변할 것도 없어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여 축복합니다. 변할 것 없는 변할것 같지 않은 우리의 삶에 행복한 자다. 너는 복된 자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포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도우시며, 광야의 힘든 시기 앞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의 상황과 환경이 변하지 않는 것 같고 현실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와 광야의 기나긴 여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모세가 축복하던 또 축복한 직후에는 상황이 변해야하는데, 그 삶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훈련도 시키셨지만, 눈앞에 결과와 관계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눈앞에 주어진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결과를 지금 얻지 못할지라도 내삶에 함께하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어떤 결과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입니다.
청년여러분, 지금 어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살아가십니까? 또 지금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장 가나안 땅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지금 잘되는 것이 당장 잘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잘 안되는 것이 기도하고 기다릴 때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삶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감사와 행복을 확인하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으로 행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갈 목적의 미래가 아니라, 치열하게 전쟁하고 고민하고 어려운 지금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생각할 때,
영어 단어의 행복, 즐거움을 뜻하는 두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Pleasure 과 joy 입니다. 프레졀은 일반적으로 쓰는 '즐거움'입니다. 감각(시각, 청각, 촉각 등 )에 의해 느끼는 '일시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기는 하나 일시적인 행복, 본능적인 즐거움을 뜻합니다.(금요일 저녁 퇴근후 시켜먹는 통닭과 콜라한잔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소확행이라는 행복은 이런 행복과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Joy는 그것보다 저 지속성있는 깊은 즐거움을 말합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데, '시간', '영속성'이 있는 즐거움입니다.
You have joy, Israel! (NET성경 )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행복은 이런 행복입니다. 한순간 느끼고 없어지는 행복이 아닌, 세상의 기쁨과 내 본능적인 만족을 채우는 기쁨이 아닌, 영원하고 영속적인 행복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행복한 사람이라 축복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조금 의아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훈련도 시키셨지만, 눈앞에 결과와 관계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눈앞에 주어진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결과를 지금 얻지 못할지라도 내삶에 함께하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어떤 결과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와 광야의 기나긴 여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모세가 축복하던 또 축복한 직후에는 상황이 변해야하는데,
하나님께서 훈련도 시키셨지만, 눈앞에 결과와 관계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훈련도 시키셨지만, 눈앞에 결과와 관계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You have joy, Israel! (NET성경 )
You have joy, Israel! (NET성경 신33:29)
청년여러분, 지금 어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살아가십니까? 또 지금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장 가나안 땅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지금 잘되는 것이 당장 잘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잘 안되는 것이 기도하고 기다릴 때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삶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감사와 행복을 확인하는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으로 행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갈 목적의 미래가 아니라, 치열하게 전쟁하고 고민하고 어려운 지금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행복합니다.
26절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이여~라고 시작하는 이 축복의 문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참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말씀입니다. 여수룬은 의로운 사람을 뜻 하는 이스라엘의 별칭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제가 할아버지 댁에 가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신보다 훨씬 커버린 키와 큰덩치를 안으시며 “우리 똥강아지”라고 외치며 엉덩이를 다독이십니다. 네 맞습니다.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귀여움에 상징인 강아지로 불리는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이처럼 할아버지 눈에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며 깨물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이 아닌 사랑을 담아 애칭을 붙여 강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
<감동이, 동이동이, 예쁜이, 귀염둥이… 2주 뒤에 이땅에 태어 날 뱃 속에 있는 저의 아이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지어놓은 이름도 있지만, 그 이름보다 이 애칭으로 아이를 부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강아지, 내새끼라고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는 애칭이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스라엘의 별칭인 여수룬으로 부르시며 그 큰 사랑을 드러 내셨습니다. 그가 너를 도우 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를 도우시고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편파적입니다. 사랑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편파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상 어떤 것 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점적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 편파적인 사랑의 결과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죄로 가득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편파적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금도 이순간에도 편파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독점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혹 실수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행복합니다.
3. 우리를 행복하게 하실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하나님은 앞을도 돕는 방패가 되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운,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감 모두 바뀌어야한다.
구원의 가치를 진짜 알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가치를 진짜 알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모르니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진짜를 받았는데 가짜를 받은 것 같이 살아가니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가치를 알기 위해서 그것을 받기 전에 상태가 중요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사탄의 종노릇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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