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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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 를 보면서

1. 그리스도를 추구하지 않는 우리 모습과 같은 자

1. 바리새인들이 아마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 중 아주 많은 것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 (William Barclay)는 바리새인이 6 천 명을 넘지 않았으며, 제한된 수의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 일종의 선별 된 형제가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법에 대해 진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신학 적 보수 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구약이 계시 된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구약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책, 오경 (Pentateuch)은 문자 그대로 믿고 실천할 영감받은 윤리 강령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떤면에서 바리새인 종교의 가장 큰 영광은 문자 그대로 율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율법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는 것은 서기관의 목표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지키는 것이 결정된 목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서, 니고데모는 종교 생활의 의미를 추구하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우리를 대표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참된 교회가 창립 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삶 - 변화 관계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 교회 속에 있지만, 예수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삶과 변화의 관계를 전혀 모른자

2. 그는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참된 교회가 창립 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삶 - 변화 관계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니고데모는 학자였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위대한 학생 이었기 때문에 그가 바리새인이라는 사실에서 완전하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분명합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을 알아 보았습니까? 니고데모는 "사람들을 정복하는 자"를위한 그리스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종과 문화가 굉장히 섞여있는 곳이 아니라 칼, 제임스, 조셉 또는 피에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분에 관해서는 조금.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는 최초의 기독교 세기에 중요했습니다. 대부분 유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이름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문화뿐만 아니라 그리스어에 노출 된 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흔히 자녀에게 두 가지 이름 인 그리스어 이름과 히브리어 이름을주었습니다. 분명히 니고데모는 그리스의 교육을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더욱이, 히브리어 이름보다는 그리스 문자로 알려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니코 데 무스는 아마도 히브리어 문화보다 그리스어를 선호했을 것이고 실제로 헬라 니스트, 즉 그리스어로 구약을 읽고 보았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철학의 범주에 비추어 그것에서. 그러므로 유대인의 밤에 온전히 고등 교육받은 사람 일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 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가 많은 고등 교육을받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우리는 많은 세기에 걸쳐 교육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라고 말 해왔다. 그 결과 우리 나라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받은 사람들이이 경주에서 이제껏 보아온 사람들을 갖게되었습니다. 한 남자가 요리를 씻으려면 고등학교 교육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우리 시대를 특징 짓는 불안은 유대인들처럼 캠퍼스에서 분명합니다. 니고데모의 예가 무엇이든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이 사람의 영적 소요와 갈망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3. 니고데모는 정치가 였고 , 권력자 였다.

3.셋째, 니고데모는 정치가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 집결위원회의 일원"이라는 서신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산 헤드린의 일원임을 의미합니다. 산 헤드린은 우리 정부의 입법부, 행정부 및 사법부에서 일반적으로 나누는 모든 힘을 결합한 유대교에서 가장 큰 입법 기관이었습니다. 당연히 로마 규칙에 따라 산 헤드린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제한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재판에서 산 헤드린 회원들이 사형을 선고 할 수 없었던 때가있었습니다. 아직도 산 헤드린 (Sanhedrin)은 이스라엘의 주요 권위자였다.
니케데우스가 유대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가족 중 한 명 이었을지 모르는 동일한 그림의 일부입니다. 심지어 정치인의 엘리트 기관의 기준에 의해 측정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정의 기본은 요셉푸스가 고대 유물에서 니코 데 무스라는 이름이 두드러지는 고위 유대인 가정을 두 번 언급 한 사실에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 통치자 인 아리스토 불루스가 로마의 황제 폼페이 (Pompey) 법정의 대사를 필요로했을 때 대화를하기 거의 100 년 전에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또한이 시간 이후, AD 66-70 년 유대 전쟁 중, 고 리온 (Gorion)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수비대의 항복을 협상 할 책임이 있으며, 그는 니고데모 (Nicodemus)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세대에 살았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면 니코 데 무스가 정치인 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잘 알려진 가족 중 한 곳에서 온 고학력자뿐만 아니라 매우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록펠러, 아스토르, 스티븐슨, 아인슈타인, 아이젠 하워보다 훨씬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의미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대표 할 남자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요? 또는 당신이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종류?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기록한 이유는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교육, 정치, 문화 및 종교에서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니코 데 무스에게는 큰 필요가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아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불행하고, 잃어버린 영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알고 있는가?

요한복음 2:23–24 ESV
Now when he was in Jerusalem at the Passover Feast, many believed in his name when they saw the signs that he was doing. But Jesus on his part did not entrust himself to them, because he knew all people
요한복음 2:23–24 KRV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한복음 2:23
니고데모는 유대인과 율법주의 자로서
사실로 서의 예수님,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확인한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를 메시아로 보는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 로 부터 오신 선생으로 알고 있었다.
랍비 여 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의 율법 적 지적인
상황만을 찾고 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묻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너희는 새로운 출생에 대해서 말하지만, 우리는 너희가 경험했거나 들은 그 어떤 것보다 더 근복적이고 더 중요하며 더 삶을 변화시키고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새로운 출생에 증언할 수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개선이 아니라, 본성 전체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개임의 인품의 변화와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의 종말에 능력으로 탄생시킬 새로운 질서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것과 상관이 있다.
그들이 충성되고 훌륭한 유대인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보거나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들 역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출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성령 이라는 것은 분 명하다.
15

당신은 구원의 여정에서 어디에 있는가?

구원의 여정은
예정 - 소명, 중생, 회심(믿음,회개), 칭의 ,양자, 성화/견인. 영화

첫번째 그리스도의 칭의 : 죄의 용서, 양자됨, 하나님과의 화목, 영광스러운 자유

죄의 용서, 양자됨, 하나님과의 화목, 영광스러운 자유
여기서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분여 되고, 믿음에 의해 수용되고, 우리의 양심을 자유롭게 한다.

두번째 : 그리스도의 중생, 내적 부르심, 회심, 갱신, 성화 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새롭게 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새롭게 하신다.
여기서 부류의 복은 성령의 중생시키 시는 사역에 의해 분여되며,
우리를 새롭게 하며, 죄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속한다.
중생이란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세번째 : 보존, 견인 , 영화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원한 기업을 위해 인간을 보호하시며, 인간을 고통과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보존 견인 영화에 의해 인간이 영원한 구원을 소유하게 하신다.
세번째 부류의 복은 우리의 완전한 구속의 보증으로서 성령의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인 치시는 사역에 의해 우리에게 분여되며,
우리의 몸과 영혼을 비참과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한다.
첫번째 부류의 복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돌아보게 하며,
두번째 부류의 복은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하늘에 계신
살아 있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세번째 부류의 복은 모든 대적들을 복종시키시고 자신의 나라를 아버지께 양도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게 한다.

나는 거듭난 자로서 살고 있는가?(성화)

죄를 단번에 극복하거나 특별한 성령 체험으로 궁극적인 믿음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 어디에서도 없다.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할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육신과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신자를 자처할수 있는가?”
그러나 분명히 신자는 그동의 삶을 돌아보면 반드신 하나님이 그동안 인격을 변화시켜주셨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거룩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런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ㅇ낳다.
즉 성화는 엄청난 노력이 소요되는 평생의 과업이다.
고린도후서 5:17 ESV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passed away; behold, the new has come.
고린도후서 5:17 NKRV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깊은 성령 체험을 추구하는 속에서
죄를 단번에 극복하거나 특별한 성령 체험으로 궁극적인 믿음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 어디에서도 없다.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할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육신과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신자를 자처할수 있는가?”
그러나 분명히 신자는 그동의 삶을 돌아보면 반드신 하나님이 그동안 인격을 변화시켜주셨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거룩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런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않다.
즉 성화는 엄청난 노력이 소요되는 평생의 과업이다.
빌립보서 3:9–14 ESV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come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from God that depends on faith—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may share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that by any means possible I may attain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this or am already perfect, but I press on to make it my own, because Christ Jesus has made me his own. Brothers, I do not consider that I have made it my own.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lies behind and straining forward to what lies ahead, I press on toward the goal for the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빌립보서 3:9–14 NKRV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90
니고데모와 비슷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님 지파,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 율법으로 바리새인,

고난도 달콤하게 받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빌립보서 2:12–13 ESV
Therefore, my beloved, as you have always obeyed, so now, not only as in my presence but much more in my absence,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both to will and to work for his good pleasure.
빌립보서 2:12–13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바울이

되자.

두렵고 떨림으로 힘써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느긋한 태도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그렇게 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된 협력이다.
성화는 하나님도 일하시고, 우리도 일하는 신인협력의 과정이다.
성령은 우리 영혼에 칭의의 열매를 허락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켜 자기와 협력하도록
이끄신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를 자신의 완전한 소유로 다시 삼으심으로써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통해 이 일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 성황의 과정에서 성화는 인격적인 일이다.
첫사람 아담과 그리스도의 사이에서
ㅇ어떤
타락 상태에서 우리는 각자의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아담의 형상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인도될 때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그리스도인 각 사람의 독특한 삶 속에서 짜 넣는다.
그리고 점점 그분을 똑같이 닮아 간다.
이것이 성령께서 중생을 통해 시작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영화에서 마침내 절정을 이룰것이다.
고린도후서 4:17 ESV
For this light momentary affliction is preparing for us an eternal weight of glory beyond all comparison,
고린도후서 4:17 NKRV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마치 고투와 고난과 시련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손 안에 있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영광을 만들어 내신다.
그리고 때로는 거룩함에 이르는 힘든 과정을 파악하는 법을 배운다.

내 삶은 주의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로마서 12:1–2 ESV
I appeal to you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데살로니가전서 5:23 ESV
Now may the God of peace himself sanctify you completely, and may your whole spirit and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데살로니가전서 5:23
데살로니가전서 5:23 NKRV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로마서 12:1–2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도 그렇지 않다고 고백하면서 번번히 무너지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지만, 우리 잊지 맙시다.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 것이다.
주님이 오실때에 우리 맘과 몸을 드릴것인데,
피흘리기 까지 거룩함을 힘쓰고, 주님을 닮아가기에 힘쓰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 삶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하는것에 평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자녀답게 사는것이 가장 먼저 입니다.
내 삶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도록 인도하시는 길에서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와 연합하고자 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그 부탁은 결코 권유가 아닙니다.
옵션이 아닙니다.
그저 해도 되고 , 않되는것이 아닙니다 .
우리 모두다 주인에게 갈 것이기에,
그 나라에 갈 것이기에,
변화되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아직도 마음조차 없고, 나에게 전혀 그런 필요를 못 느끼신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니고데모와 같습니다.
지식으로 예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의 성경의 언급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서 그렇게 예수님을 찾아온 다음에 ,
요한복음 7:50 NKRV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요한복음 7:52 NKRV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7
7장50절
에서는 예수님을 옹호하다가 갈릴리 사람이냐며, 비난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9:39 NKRV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한복음 19장 50절
에서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분명히 그가 변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전과는 다름,
밤이 아닌, 낮에, 와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시신을 장례 합니다.
우리 거듭납시다. 그리스도로 닮아 갑시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분의 길을 우리가 혼자 가는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공동체와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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