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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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삶의 기준

시편 1편 302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상황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상황도 잘 살펴 보아야겠지만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시편 1편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삶을 위한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 또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어떤 것을 기본 원리로 해서 서야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먼저 새겨야 할 것은 복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은 복이 있는 사람을 정의 해줍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영어로는 the counsel of the wicked)라고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눈 한번 살짝 감고 대충 두리뭉슬하게 명확한 기준없이 죄악으로 기울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죄를 지은 듯 안지은 듯, 죄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변명들을 만들어내도록 내 속에서 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특별하게 악한 조언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렇게 조언해주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어떻게 합니까? 한 발짝 두 발짝 그 조언을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준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악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카운셀링을 듣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고 한 두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죄악의 길로 들어서서 그것이 삶의 기준이 되고, 삶의 원리가 되고, 삶을 유지하는 방법과 가치관이 된 것을 말합니다. 그 길을 쭉 습관적으로 따라가고 그것이 자연스런운 것입니다. 이런 자가 죄인의 길에 선자입니다. 그러나 복이 있는 사람은 죄악을 실행하였다가도 그것이 내 삶이 아니지, 내 길이 아니지, 나는 이 따위로 살면 안된지 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거부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노라고 말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단지 앉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모의하고, 사람들을 죄악의 길로 가도록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대에는 성문 앞에 앉는다는 말은 성에서 유력한 자가 되어 장로로서 판결을 하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죄악을 모의하고, 주도하고, 결정하고, 선동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인의 괴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명예로운 자들과 함께 앉아서 의로운 일, 거룩한 일,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지혜를 모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절 의인들의 모임)
4) 정리하자면 무엇입니까? 복있는 사람은, 죄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한 두 걸음씩 슬금슬금 따라가는 자가 아닙니다., 죄에 푹 빠져 살지도 않고, 죄를 모의하고, 죄를 도모하고, 앞장서서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정의하자면 어떤 사람입니까?
2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영어로는 1절에서 세개의 동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walk, stand, sit”이런 것을 하지 않는 자가 복있습니다. 긍적으로 정의할 때는 한 동사를 사용하는데 “meditates” 묵상한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말의 본래 의미는 중얼중얼 거리다는 뜻입니다. 중얼거리면서 그 뜻의 의매를 새기는 것이겠지요. 중얼중얼 거린다는 것은 암송해서 중얼중얼 거린다는 것이겠지요. 이 사람이 하는 것은 즉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얼중얼 거리면서, 자기의 귀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사람입니다. 죄인의 카운셀링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카운셀링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그 카운셀링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의 목적과 방향과 가치를 두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매일 매일의 일과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의로운 자들과 함께 앉아서 사람들을 깨우치고, 지혜로 이끌고, 옳은 대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묵상이라는 단어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이런 복이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3절의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습니다.
4. 죄인의 꾀를 따라서, 완전이 죄인이 되고, 결국은 주동자가 된 죄인의 괴수는 어떤 모습일까요? 4-6절까지가 그 모습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요” 악인들은 결코 의인들의 복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 대신에 형통함 대신에 그들이 차지할 상급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몫은 무엇입니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유일한 결과 입니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로 넘어가서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슬쩍 끼어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 속임을 해서 의인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꽃과 같은 눈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안그런 채, 자신의 죄악을 숨기고 선량한 시민인 것처럼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하나님이 재판장이신 한 의인의 자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5. 결론적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6절은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여호와와 동행하는 길입니다. 이런 명확한 길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2) 악인의 길은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은 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 가본 길이니까, 아쉬우니까? 가봐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보트 프로스트의 “가보지 않은 길을” 여기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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