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탁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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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탁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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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4절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διαφορώτερον

다르다 뛰어나다
이 뛰어남은 하나님의 우편과 관련된다. 우편에 앉고 그와 비견되는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천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모세가 시내신 율법을 부여받을 때, 불꽃가운데서 부여받았다. 그런데 불꽃은 천사와 연관된다. 천사를 통해 부여받은 율법을 범하면 얼마나 큰 벌을 받는가.
그런데, 하나님 아들을 통해 직접받은 복음을 부인하면 얼마나 큰 벌을 받을 것인가!
예수님은 유일하고 절대적이시다. 그래서 많은 것(조상)이 아닌 유일한이다.
히브리서 전문가들은 히브리서를 설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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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예수님과 천사가 비교되지 않는다에 대한 근거구절이 나온다.
5절 시편2편과 삼하의 다윗언약 , 아들됨
티니 : 의문소사, 누구에게 , 의문소사는 강세가 첫음절에 있다.
언젠가 천사들가운데 누구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내아들이다 너는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겠다.
에이스다음에는 항상 대격이 들어감. 움직임을 표현.
아버지가 되었다면 전에는 아들이 아니냐?
예수님의 부활 자체가 대관식이다. 대속이후 부활자체가 새로운 생명, 거듭남, 낳은 것이다.
시2의 그리스도의 통치 선언이 바로 ‘니가 내 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그 사람됨은 다윗언약에서 이미 말해졌다.(다윗의 혈통). :7과 :13을 연결시켰다.
시2의 삼하7의 아들이 다르다. 앞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뒤는 메시아로서의 아들을 뜻한다. 이 둘이 연결되다.
6절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 세상에 데려 오셨을 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이 그에게 경배하게 하셨다.
1절과 2절의 주요동사는 랄레오, 대화다. 그런데 5절과 6절은 레고다. 일종의 선언이다. 인간들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것이다.
맏아들을 그 거주지에 들이실 때.
히브리서에서 중요한 개념은 안식이며 히브리서의 1차독자들이 고려하는 중요한 자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자들’이다.
신명기의 모압평지는 고원이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모세가 준 말씀이다.
:43의 70인역 인용이다.(:7이기도 하지만).

προσκυνησάτωσαν

주어로하여금 그분께 경배하게 하라 -> 천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구원자를 경배하게 하라.
장자 : 이스라엘 민족
오이코매낸 : 주거지 - 애굽, 광야에서 가나안이라는 주거지로 이끌어감.
이에 대한 견해는 3가지가 있다.
첫째 : 초림 - 장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기도 하지만 아담으로 해석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오실 때라고, ‘다시’를 넣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낟
둘째 : 재림 - 아담은 장자가 아니다. 그러니 다시 이끄실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셋째 : 출애굽 - 이세상이란 단어는 세상으로 해석될수 없다. 주거지다. 그렇다면 맏아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끄심을 나타낸다.
어떤 논거든지 근거는 있다. 또한 6절의 인용구는 LXX상으로 :7보다는 :43이 가깝다.
어찌되었든, 이 구절은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맏아들 이스라엘을 말한다.
7절 한편 천사들에 대해서는 , 그의 천사들을 바람, 사역자(일꾼들)을 불꽃으로 만드신다.
그의 천사들을 바람, 사역자(일꾼들)을 불꽃으로 만드신다.
아들과 천사들사이의 근거를 말하고 있다. 누가 이기겠냐?
소수와 다수사이의 대결.

λειτουργοὺς

봉사자, 사역자. 예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다.
섬기는 자가 가장 주요하다.
8-9절 주는 당신으로 되어 있다. 시편에는 왕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주(당신)은 그리스도다. 동류는
8절에서 주(당신)은 하나님
동료를 뜻한다.
아들되신 그리스도는 분명 천사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일하지만 그저 일꾼이 아닌 아들이며, 왕이다. 그렇기에 함께 명령을 받는 천사들과는 비교할수 없이 뛰어나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이여, 영원합니다.
바람은 지나간다. 불꽃도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다.
하나님 나라의 지팡이(지휘봉)는 공평하다.
당신이 나라를 다스리실 때 공평하게 다스리신다.
불법 : 법이 없는 상태 , 법을 지키나 안지키나 상관없는 상태.
디아 투토 : 이것때문에.
동류 : 하나님께 뭔가를 함께 받은 사람들.
7절과 8절은 대조다.
*1-4절을 보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성경 곧곧에서 가져와서 제시한다.
다 노래다. 설교자가 설교 개요를 이야기하고 찬양하고 있다. 2장에서는 시편 8편을 노래한다. 그리고 다같이 부릅시다. 라고 하는 노래가 ‘시편 118편’이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시니 사람이 우리를 어찌하리요.’ 제창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천사들, 불꽃 바람이 등장하는 것은 시내산 언약 당시 있었던 현상을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노래를 마음에 두고 있다. 이 노래는 콜로세움에서 성도들이 들짐승의 밥이 되어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응원자들이 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이 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이 상황은 비교된다.
엄청난 상황에서 주어진 시내산 율법과
초라한 상황, 구유에서 태어나신 한 아기를 통해 선포된 복음을 비교한다.
우렁찬 소리속에서 나온 시내산 언약과 그 소리가 길가에 들리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통해 주신 복음.
천사는 다수고 우렁차고 대단하나, 하나님의 무게중심은 그곳에 있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10-12절
10 그리고
당신은 처음에, 주여,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또한 그 하늘은 당신의 손의 작업물입니다.
*히브리서의 독특한 표현은 한정되었는데, 한정된 대상을 한정되지 않는 것처럼 표현한다. ‘이 개념을 정확히 모르지 않느냐?’ 수식하는 것은 청중이 충분히 알지만 수식받는 것은 청중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1-3절.
*70인역의 인용을 그대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
11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당신은 남을 것이며
모든 것은 겉옷과 같이 낡아져
그것들 : 하늘과 땅
남다 : 디아가 들어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남는다. 계속해서 계신다.
ὡς : 비교를 의미함.
12망토처럼 당신께서 말아올리시리니 겉옷처럼 그것들은 변화될 것이나 당신은 같으시며 당신의 연대는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당신은 역시 그리스도다. 대놓고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 )
여기서 바뀌다는 예상되는 바뀜이다. 의미있고 쓸모있음에서 의미없고 쓸모없음으로 바뀌어간다.
땅과 하늘, 사람이 보기에 신과같은 그것조차 영원하지 않다.
*로마의 집값은 비쌋다. 그들은 교회를 할수 없었다. 가장 비싼 집은 875000데나리온이다. 145달란트였다. 1달란트가 은으로 33kg이다. 100달란트면 은이 3톤이다. 당시 로마의 셋돈 가격이 100-150데나리온이다.
레이포 : 떠나다.
13절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그 천사들중 누구에게라도
나의 오른편에 앉아라.
내가 너의 적들을 너의 발의 발판이 되게 할 때까지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시편 110:1 NKRV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천사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다윗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14절
모든이는 섬기는 영이 아니냐?
구원을 상속할 자들을 섬기기 위해 보내신
여기서 포인트는 2개다
천사는 구원을 상속받는 이 ,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섬기기 위해 보냄을 받은 영들이다.
상속받다가 현재형이다. 지금도 상속받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지금도 믿는 자들이다. 즉, 그 믿음을 굳게 잡을 때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포스텔로는 특별한 준비와 사명으로 보내는 것이다.
천사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보냄받았다. 그것은 섬김이다.
구원이라는 것을 기업으로 받을 사람들 때문에 보냄받은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위해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그렇다)
설교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 히브리서의 배경과 서론을 살펴보았습니다. 말씀드린대로 히브리서에서 확실히 알수 있는 것은 한가지 뿐입니다. 히브리서는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클라우디우스황제의 고난이든, 네로황제의 박해이든, 도미티아누스 황제때 박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큰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해 초대교회에서 매우 잘 알려진 누군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적은 서신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것이 설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회중에게 설교한 것을 누가 받아적었고, 그 설교자에게 검수를 받은 후, 회람서신으로 돌려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신이든지 설교문이든지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란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조상들에게 주신 계시들과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계시를 비교하며, 하나님과 아들의 말할수 없는 거룩하고 깊은 교제와 그리스도의 낮으심과 높으심에 대해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우월성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함께 본문을 살펴보며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4-14절은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의문 하나가 생깁니다. 왜 갑자기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는거지?라는 의문입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면 본문을 이해하기 매우 힘듭니다.
그에 대한 답을 천사와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얼핏보면 둘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둘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인식합니다. 왜냐면 천사의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7절에서도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을 봐도 알수 있습니다. 또한 -19에는 우레, 번개, 구름, 불등이 나옵니다. 특히 :18에는 하나님께서 불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불이 가득했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십계명과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통으로 주신 것이지만, 그 중간에 불, 즉 천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율법이 천사를 통해 주어진 것으로 인식을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천사들과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주어진 율법을 어겨서 우리의 조상들이 그렇게 큰 댓가를 치루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버린다면 어떤 벌이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와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천사에 비해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탁월하며 얼마나 뛰어나신 분이시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는 아들이심의 선언과 아들되심의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7과 :14의 본문을 인용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그리스도와 천사의 본질적인 차이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너는 내 아들이다와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라는 구절은 많은 차이가 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나면 자식입니까 자식이 됩니까. 자식이라고 합니다. 자식이 된다는 말은 뭔가 다른 방법으로 해서 원래 내 자식이 아니지만 이제 내 자식이 되었다는 라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히브리서의 기자는 :7을 먼저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뒤에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리라는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메시아로서의 직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신 분, 바로 메시아이시다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들이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이라면, 뒤에 아들되다는 메시아라는 직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세상에 구주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한절에서 증명합니다.
그 후 이어지는 6절을 통해 성자 하나님이자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분이라고 확실하게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바람은 있다가 사라집니다. 불꽃도 결국 꺼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영영하다고 히브리서는 노래합니다. 이것은 천사들 조차 없어질 그 날이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고 영원하시며,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마찬가지임을 나타냅니다. 이 영원함은 10절에서 12절을 통해 다시 울려 퍼집니다. 땅과 하늘, 정말 영원해 보이는 이 땅과 하늘도 마치 옷과 같이 낡아질 것이지만 주께서는 다함이 없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천사도 없어지고, 땅도 없어지고, 하늘조차 낡아서 사라져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그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로마의 땅값이나 집값은 너무나 비쌌습니다. 기록에 남아있기를 당시 가장 비싼 로마의 집은 87만5000데나리온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달란트로 따지면 145달란트입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잘 상상이 안되시죠. 우리에게 달란트라고 하면 100달란트는 기본이고, 심지어 우리는 1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들이니까요.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강남에 있는 가장 비싼 집이 145달란트라는 뜻입니다. 이것 때문에 요즘 강남의 집값을 알아보니 15억에서 30억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145달란트가 가장 비싼 집이니 약 30억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시 로마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싸니 교회를 지을수가 없었죠. 그래서 보통 세들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집의 월세가 한달에 100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이걸 계산하니 167만원이 되더군요. 엄청나게 비싸지만 내지못할 돈은 아닙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자기 건물은 없이 세들어서 예배를 드리거나, 보통은 각 가정집에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그 때 믿는 자의 대부분은 자유민과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생명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하나님을 예배할 장소마저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그 모든 것이 결국 옷과 같이 낡아질 것을 말합니다. 몇 년 지나면, 아무리 오래 가도 10년이 넘으면 입기 힘든 옷입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이전에는 관리를 조금만 잘못해도 좀이 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낡아져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조차 사라질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존하시며, 하나님의 보좌는 영영합니다. 그리고 그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오늘은 말씀에서 계속 비교되는 것은 말했듯이 천사들과 예수님입니다. 다수와 소수입니다. 히브리서는 설교일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히브리서가 만약 정말 설교라면, 설교자는 처음에 1-4절에 설교 개요를 말한 다음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다 아는 찬양을 잠시 하는 것처럼 히브리서의 기자는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너는 내아들이라를 찬양합니다. 2장에서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고 라고 찬양합니다. 마지막 13장에서는 우리가 담대히 말한다는 표현을 통해 다함께 찬양하자고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왜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까. 바로 콜로세움에서 환희와 노래소릿 가운데서 순교한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소수였습니다. 다수인 로마시민들에게 둘러쌓인 가운데 들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들개에 물리거나 사자에게 찢겨 죽었습니다.
이와같이 허다한 천사들을 통해 주어진 모세의 율법과 초라한 말구유에 오신 한분을 통해 증거된 복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레와 천둥과 번개가 가득한 가운데 들려졌던 율법과 예수님 단 한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 복음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게중심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콜로세움의 다수의 사람들의 조롱과 노랫소리가 아닌 이제 들짐승에 의해 찢겨 죽을 소수의 사람들의 기도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듣고 계셨습니다.
그당시 145달란트나 하는 그 화려하고 웅장한 집에 있으신 것이 아닌,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함께 모이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했던 그 장소를 하나님께서는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웅장하고 엄청난 수의 천사들이 바로 구원받을 상속자, 우리를 섬기기 위해 보냄받은 것이 아니냐! 지금은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위용과 화려함으로 장식하는 모든 것이, 맏아들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모두다 그 아들에게 경배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소수로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적습니다. 그중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좁고 험한길을 따라 사는 자는 더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적은 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그 좁고 험한 길로 가기 원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처럼 우리역시 이 길을 걷는 동안 흔들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실족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어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자신이 태어난 그 강, 고향으로 되돌아오듯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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