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이 움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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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중하시므로
설명 5단계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 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1)다음날,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세워두었다.
2)그 이틑날 아침에는 -> 얼굴이 땅에 닿았고,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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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호와의 손이 엄중히 더 하사 -> 독한 종기의 재앙
4. 이에 그들이(블레셋)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
->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이썬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5.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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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가 표현할 때에 매우 다양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 등등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하나님의 자존성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자존성은 - 자기 존재의 독립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원인 이 되시며,
자존적인 하나님은 자신 안에서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자기에게 의존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어떠한 필요도 없이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조종할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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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궤의 성경적 의미
하나님의 궤의 성경적 의미
내용정리의 핵심 - 하나님의 궤에 대한 일반적 의미
하나님을 상징하는 구약의 성물 , 궤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아니다.
공관적인 광대성 - 너무나 광활하셔서 한계가 없으시며, 모든 곳에 있을 수 있으십니다.
-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욥답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기도하였던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
감히 하나님을 법궤에 갇히게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법궤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하신
매우 의미 있는 성구 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출애굽부터 성막의 법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제사장과 모세를 만나시던 성구였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나타내는 상자입니다.
언약궤의 두 돌비인 십계명과 ,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한오멜을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이 언약궤가 가장 먼저 갔습니다.
제사장 백성인 고핫 자손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다녔습니다.
광야를 여행할 때에도,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도, 여리고 성을 돌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들어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엘리제사장 가문의 타락으로 인해서 언약궤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급한 나머지 가지고 가게 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는데, 이제 하나님의 의사와 관계없이 ,
세상의 나라처럼 우상으로 나의 필요를 따라서 사용하는 물건처럼, 언약궤를 가져가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며, 전능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인격적이신 우리와 소통하고 싶으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어느 순간 그 관계는 너무나도 의미가 없고, 그저 나의 필요를 위해서 급하게 사용하는 마지막 무기로 사용하는 이스라엘백성과 엘리제사장과 그의 아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은 잠시 블레셋에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사무엘상 4장 5절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언약궤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전투에 나설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10절에 이렇게 그 전투의 결과를 말합니다.
“10절 -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절 -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저희에게는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세상의 주관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를 빼앗긴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5가지 장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5가지 장면
그후에 오늘 5장에서는 장면이 바뀝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자신들의 우상처럼 사용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전에 들어놓게 됩니다.
블레셋은 여러 신을 섬겼는데,
그분에 곡물, 큰 물고기 라는 뜻으로 머리와 손은 사람 모습을 하고 나머지
하반신은 물고기 형상을 하나 블레셋 족속의 주신으로 농사를 주관하는 신으로 불리는 우상입니다.
물고기 형상을 g나 블레셋 족속의 준신으로 농사를 주관하는 신으로 불리는 우상입니다.
블레셋 족속이 해변가에 살았고, 평지에 있었기에 농사에 필요하며, 물을 주관하는 신이
그들에게는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 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 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질문 1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가지고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하십니다. 그이후에 궤를 만지기만 해도 죽고, 날리가 나느데,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격하시고, 다른 민족에게는 이렇게 관대하시는가?
2. 블레셋 사람들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2. 블레셋 사람들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우상의 곁에 두어도 하나님은
허락하시고 보고 계십니다.
법궤를 두는것이 하나님의 결정없이는 결코 진행될수 없는데,
왜 하나님은 스스로의 영광을 가리는 장소에 까지 법궤를 두는 것을 허용하시는가?
3.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3.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당연히 가질수 있는 의문은 하나의 장면으로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설명이 됩니다. 어떻게 일하시는 지, 왜 그렇게 블레셋까지 법궤를 빼앗기도록 허락하시고, 우상의 전까지 법궤를 두는 것을 보고 계셨는지가 나옵니다.
사무엘상 기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손을 두번이나 언급합니다.
그 손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살펴봅시다.
1)다음날,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세워두었다.
1)다음날,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세워두었다.
2)그 이틑날 아침에는 -> 얼굴이 땅에 닿았고,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있더라
2)그 이틑날 아침에는 -> 얼굴이 땅에 닿았고,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있더라
3) 여호와의 손이 엄중히 더 하사 -> 독한 종기의 재앙
3) 여호와의 손이 엄중히 더 하사 -> 독한 종기의 재앙
독한 종기 재앙으로 그들을 쳐서 망하게 하시고,
11절에서는 사망과 환란으로 다스리십니다.
죽지 안니한 자는 독한 종기로 더욱 다스리십니다.
독한 종기는 신명기 28장에서 불 순종할때에 말하시는 질병과 재앙중에 하나 인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고 기뻐한 블레셋을 엄히 다스리시는데 사용하십니다.
4. 이에 그들이(블레셋)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4. 이에 그들이(블레셋)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들이 부르짖어
->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이썬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이썬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5.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5.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두번이나 나오는 여호와의 손의 어원적 의미는
power ⇔ hand n. — power or possession of controlling influence conceived as in terms of the hand; can be used to highlight immanent activity.
힘과 능력입니다.
그분의 손이 우리를 향하실때 사랑과 인애와 자비이지만,
그분의 뜻을 반하는 이들을 향할때에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두렵습니다.
이 분이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으셨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이방 민족에게 우상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스스로 살아계시며, 그 어떤 우상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부분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이방나라의 다곤 같은 우상이 아닌, 스스로 살아계신 절대자 이신것을
보이십니다. 블레셋 나라는 엄청난 재앙과 혼란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며, 그리고 이스라엘의 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보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결론을 내리고 마치려 합니다.
첫째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스스로 자존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 나 전능하십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그분에게 필요한것이 없으며,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스스로 어디에나 계시며, 어디에 한정되지 않으십니다.
피조물의 어떠한 도움 없이도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것이 그분의 것이며,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신분 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분, 능력이 많으신분, 홀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능력이 많으신분, 홀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자녀로 올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을 다시 사랑하시는 것처럼,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를 영원한 언약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로 그분을 만나는 길을 우리에게 여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마음을 달라고, 우리를 자녀삼으시며,
자녀 될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언약은 영원합니다.
어저깨나 오늘이나 영원히 그분은 스스로 움직이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 패했으며, 법궤를 잃어버린 실패와 좌절속에 있지만,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기로 하셨기에, 블레셋을 질병과 호란으로
다스리시고, 블레셋 백성과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블레셋 백성과 방백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다시 그들 스스로 이스라엘로 법궤를 옮기는 일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없이도 모든것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것이 필요없으신 분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고,
선지자를 세우고, 예배자로 그들을 처서 세우십니다.
우리도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합시다.
우리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신실함에 감사합시다.
내가 하나님을 법궤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그분의 마음과 말씀을 의지하여 살기보다, 내가 믿고 싶은데로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함부로 하였는지 살펴보고,
주님 이 고난의 주간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길 원한다며
기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