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아버지의 마음 씨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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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을 찾으려면

명확해야 한다.
Imprint 가 있어야 한다.
Insight 가 있어야 한다.
제목: 길 잃은 양을 찾는 예수님 본문: -7절
본문

15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 병든 사람들 ,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 하시고 환영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 불만을 가지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율법이 기준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인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법 위반이고 잘못 된 일이었습니다. 하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영혼을 살리는 것인데, 그 정신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살려야 하는 데 그들은 말씀을 들을 자격도 없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잃은 양의 비유인 것입니다.
우리 4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오늘 말씀은 목자가 양 한마리를 찾으려 길을 떠나는 모습을 설명한다.
1 양의 성격
1. 여러분 양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까 5번 고속도로를 가다보면 양 농 장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양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양의 좋은 이미지 : 순백색 뛰노는 모습, 순수함, 그자체 , 뉴질 랜드나, 대관령에 뛰노 는 양의 모습
, 그래서 양 같이 순수한 사람, 양같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도 우리를 좋게 생각해서 그렇게 비유했을거라 착각한다.
실제 양의 모습: 이기적이다. 자기 중심적이다. 겁이 많다. 고집이 쎄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고 싶어 한다. 성경 / 우리가 양 같아서 다 제 갈길로 갔다. / 는 말씀
양은 연약하다 - 적으로 부터 자기를 보호할 아무 것도 없다. 날카로운 이빨, 발톱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양은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양을 놓치는 사자나 호랑이는 -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고양이입니다.
방향 감각이 없다/ 길을 잃어버리면 집을 찾아 올 수 없다. / 목자가 찾지 않으면 죽은 양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실제 양의 모습은 - 지저분한다.
실제 양의 모습은 - 지저분한다.
- 아둔하다.
그래서 양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이 : 목자 이다. / 오늘 말씀은 단순히 양을 찾는 목자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찾아 떠난 목자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거것이다. /
적용 : / 길을 잃어 도저히 집을 찾아 올 수 없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 이런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내 주셔서 이땅 가운데 오시고,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양이라고 비유합니다.
왜 양은 길을 잃습니까? 우리는 왜 예수님을 의지 하지 않습니까?
1)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아 않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게다가 목소리가 안들리면 앞의 양만 따라갑니니다.
2)먹을 풀만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2)먹을 풀만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안내한 초장에서 풀을 뜯게 되지만 이내 또 다른 풀을 찾아 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풀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양들의 움직임에 보지 못하고 처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3) 양의 앞길에 구덩이가 있고 벼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안내를 받아 풀을 뜯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양들은 발이 구덩이에 빠지거나 돌밭을 걸다가 발이 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엔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 낙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앞길에도 시험과 환난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10장에서도 발견되는데, 거기서도 그 말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런데 어떻합니까? .. 양이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
2 목자는…
누가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읽어버린 것 3가지를 말씀합니다. :양, 드라크마, 아들
오늘 말씀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기로 : 잃어 버렸을 때, 찾았을 때
참 목자는
1, 찾아 내기까지 찾아다닌다.
오늘 말씀 4절을 읽겠습니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말씀을 통해 알수 있는것/ 목자는 그 1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자기의 갈길을 멈추지 않았다. / 그가 멈추는 것은 양 한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는 것이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성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마을 공동으로 양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도 서너 명이 됩니다.이들은 저녁이 되어 양들을 우리에 집어넣을 때 숫자를 셉니다.
그러면 몇 마리의 양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의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던 길을 되 집어 갑니다. 그래서 찾아 갖고 오는 데 벼랑으로 추락한 양을 위해선 자신도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며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그 양을 구해냅니다. 그러나 보통 목자 같으면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 돌아와 주인에게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주는 참 목자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일일이 알아야하며 그 이름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주는 참 목자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일일이 알아야하며 그 이름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2. 양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오늘 말씀 5절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양을 짐심으로 사랑 한 목자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양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기 친구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했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양을 짐심으로 사랑 한 목자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양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기 친구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했겠습니까?
양을 가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음/ 사랑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 계산이 안서는 것 입니다. 양 한마리를 잡았는데, 양 몇십마리의 비용을 들여서 잔치를 했을 것입니다.
계산을 뛰어넘는 사랑/
청년이 - 월급을 150만원을 받는데, 너무 외로워 강아지를 한마리 키웠습니다. - 여친도 없고 , 정말 강아지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 강아지가 병에 걸렸어, - 그 강아지 이제
고등학교 교사 김희진(45·가명)씨가 키우는 개, 청아(7)는 이날도 항암제를 맞느라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잡종견인 청아는 털이 푸석하고, 콧방울에 윤기가 없다. 오른쪽 앞다리에 링거를 꽂은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청아가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재작년 4월,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더니 항문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동네 동물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몰랐다. 청아는 그 상태로 6개월이 지나서야 대학동물병원을 찾았고, 시한부 선고(1개월)를 받았다. 청아는 혈액암이 온몸으로 퍼진 말기 암이었다.
1시 30분, 서울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부속동물병원에는 방광염, 심한 양파중독(개나 고양이가 양파를 먹었을 때 적혈구가 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05/2011020500318.html
청아도 7마리 개 중 하나. 청아는 건국대 동물병원에서 암진단을 받은 이후 일주일에 1번씩 항암치료를 해 1년 반이 넘도록 목숨을 연명해왔다. 의료진들은 "정말 잘 버텨내고 있어 기적 같다"고 했다. 그간 청아의 치료비로 김씨가 쓴 돈은 약 2000만원. 혈액검사, MRI 촬영 등 초진비만 90만원이었고, 이후 사람용 항암제를 투약해왔다. 당연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남들은 '잡종 개에게 왜 돈을 쏟아붓느냐'고 하지만 미혼인 제겐 자식과 같아요. 청아는 한강을 좋아하는데, 올봄에 꼭 산책을 시켜주고 나서 떠나보내고 싶어요
/ 바로 이분은 강아지를 너무나 사랑해서 이제 자기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05/2011020500318.html
② 양의 무리들을 잘 먹이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주는 목자입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양의 고기는 먹고 그 털로 따뜻하게는 하지만 그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일 줄 모르는 목자는 양을 흩으는 못된 목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병든 자를 고쳐주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 주는 목자입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믿음을 강하게 해 주며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해 줌으로 치료해 주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한 자를 싸매어 주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양은 그의 성품이 단순하고 우직하기 때문에 적은 일에도 상처를 입게 마련입니다. 이들을 방치해 두면 잃은 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들을 위로의 말씀으로 싸매어 주어야 합니다(겔344).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성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마을 공동으로 양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도 서너 명이 됩니다.이들은 저녁이 되어 양들을 우리에 집어넣을 때 숫자를 셉니다.
그러면 몇 마리의 양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의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던 길을 되 집어 갑니다. 그래서 찾아 갖고 오는 데 벼랑으로 추락한 양을 위해선 자신도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며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그 양을 구해냅니다. 그러나 보통 목자 같으면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 돌아와 주인에게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3.양이 돌아온 것이(회개)가 기뻤다 .
우리 7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양 99마리가 있는 것으로 인한 행복 보다- 한마리가 돌아온 행복이 더 큰 기쁨 이라고 말씀 .
여러분과 제가 방황하고 길을 떠나 있을때 , 주님이 찾아와 주셨고, 여러분이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주님의 최고의 기쁨인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 예수 이름이 온땅에 선포돠네, 잃어버린 영혼 예수 이름 듣고 돌아오네, 하나님 기뻐 노래 하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하나님 기뻐 춤추시리 - 열방이 주께 돌아올때
다윗이 언약괘가 다시 돌아 올 때, 너무 기뻤던 것이다.
이렇게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과 상봉시킴으로 교회 전체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잃어버린 주님 자신의 양을 찾아 궁극적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자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잃어버린 영혼들을
끝까지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알아서 오니까/ 이것은 영혼을 찾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 친구는 이제 / 안나오니까
2.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이해관계를 넘어서 영혼에 관심을 가지면 - 이제 사람의 영혼이 보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 안물 안궁 -
안물어봤는데요, 안궁금한데요. -
3. 회개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찾으시는 목자되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세번이나 반복되는 이 말씀이 야 말로 주님의 마음에 가깝지 않을 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양, 즉 세상의 방황하는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방황하는 양들이었으며, 목자 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친히 목숨을 버리시고 양의 문으로 인도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양이며(, ),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목자이시다(; ).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10장에서도 발견되는데, 거기서도 그 말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주는 참 목자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일일이 알아야하며 그 이름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② 양의 무리들을 잘 먹이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주는 목자입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양의 고기는 먹고 그 털로 따뜻하게는 하지만 그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일 줄 모르는 목자는 양을 흩으는 못된 목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며 병든 자를 고쳐주는 목자가 양을 돌보아 주는 목자입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믿음을 강하게 해 주며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해 줌으로 치료해 주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한 자를 싸매어 주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양은 그의 성품이 단순하고 우직하기 때문에 적은 일에도 상처를 입게 마련입니다. 이들을 방치해 두면 잃은 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들을 위로의 말씀으로 싸매어 주어야 합니다(겔344).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성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마을 공동으로 양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도 서너 명이 됩니다.이들은 저녁이 되어 양들을 우리에 집어넣을 때 숫자를 셉니다.
그러면 몇 마리의 양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의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던 길을 되 집어 갑니다. 그래서 찾아 갖고 오는 데 벼랑으로 추락한 양을 위해선 자신도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며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그 양을 구해냅니다. 그러나 보통 목자 같으면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 돌아와 주인에게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은 절벽을 타고 내려가십니다. 늦은 저녁이 되어 벌써 어둠이 짙어졌어도 양의 생사와 안위를 먼저 생각합니다. 한 마리쯤이야 하고 버리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양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도 양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도 생명을 건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2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오직 이스라엘 집 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또 가나안 여자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1.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갖자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앓은 양인 그를 찾으신 기쁨을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우리는 잃은 양 무리들에게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 목자의 음성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담임 목사님 말씀이 참 와다았다.
내가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잃은 양에 대한 비유,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가복음 15장을 “소외된 자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1. 구원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셨습니다
관심, - 관찰 - 사랑 이 생기는 것입니다.
안물안궁 ? -
본문 5절과 6절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과 상봉시킴으로 교회 전체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잃어버린 주님 자신의 양을 찾아 궁극적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양에 대해 기본적인 특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양은 기질이 온순하고 둔합니다. 눈도 어둡습니다. 늑대의 공격을 받지만 자기 보호본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의 생존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렸습니다. 종종 목자들은 잃어버린 양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왜 양은 길을 잃습니까?
1) 먹을 풀만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안내한 초장에서 풀을 뜯게 되지만 이내 또 다른 풀을 찾아 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풀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양들의 움직임에 보지 못하고 처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녀가 아파 보세요,, 내가 아픈 것이 낫지..
2) 양의 앞길에 구덩이가 있고 벼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안내를 받아 풀을 뜯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양들은 발이 구덩이에 빠지거나 돌밭을 걸다가 발이 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엔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 낙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앞길에도 시험과 환난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강아지 가 너무 좋다. 암에 걸린 강아지,,,, ㄴ날도 덥고 기운도 없는 데, 주님이 주신 좋은 기회다?
강아지 가 너무 좋다. 암에 걸린 강아지,,, ,
암 수술을 시켜준다. 하는 것인다. 계산 이 안선다.
진짜 의미는 ?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1) 회개하고 돌아 온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그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말합니다. 참 냉정한 아버지, 무정한 아버지처럼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집 나간 자식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거지같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아들이 돌아올 때 변해버린 모습이었지만  아버지는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때 맨 발로 뛰어나가 맞습니다. 아들이 돌아와서 잘못을 고백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부터, 그 시간부터 이미 용서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자에 어버이 친(親)자를 아십니까? 나무 목(木) 변에 설립(立)자를 위에 붙이고 볼 견(見)자를 붙이면 어버이 친(親)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우뚝 서서 자식이 어디에 있나, 자식이 무엇을 하나 찾아보기 위하여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바로 어버이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안된다. 개입하고 싶어진다.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린다.
주님이 지켜 보고 계시는 것이이다. 내가 돌이켜야 한다. 스스로 해야 한다.
탕자의 비유도 양을 찾는 비유도 돌이키기를 주님의 마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강아지 암수술
-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1. 목자의 마음을 주세요 (마음은 사랑이다)
계산이 안서기 때문에, - 양 한마리를 사랑하는 마음
- 강아지 암수술
2. 관심을 가져라 관심- 관찰- 표현 안물안궁( ) 먼저 찾아갔던
3. 찾아 다녀야 합니다.
eg) 윌리암 부스 - 관심, 구세군, or 관심, 사역이 되는 것이다.
1.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갖자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앓은 양인 그를 찾으신 기쁨을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우리는 잃은 양 무리들에게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 목자의 음성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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