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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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본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다윗이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다윗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보며 우리에게 은혜가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우리의 맘 속에 너무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회개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까요
요즘 뉴스에 조두순이 곧 출소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우리들은 법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 마땅하다든지, 교도소에서 썩게 해야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만약 조두순이 회개하고 대학7부 엘티에서 같이 예배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어떤 마음이 먼저 드나요?
저는 네팔에서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이 청년은 부탄에서 도망쳐 나온 청년입니다. 이름은 솔로몬으로 개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형이 갱단에 살인을 당하자 자신의 친구들과 그 가해자를 묶어놓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칼로 잘라냈습니다. 그렇게 하고 네팔로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도망자로 살아가던 중 예수님을 믿게되고 회개한 뒤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면 모든 죄가 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주셨다고 하는데, 회개만 하면 된다는데 정말 그걸로 되는 것일까 한번 같이 나눠보기 원합니다.
구약의 제사
출애굽기 32장 30절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하고
방금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하겠다라고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말미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회개 기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속죄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내가 회개하면 끝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셔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속죄 즉 회개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께서 오케이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면 모든 것이 이전과 같아질까요?
사도행전 9장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아나니아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이루워졌습니다. 사울 자신이 성도들을 핍박하던 것과 같이 자신이 핍박을 받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회개함과 동시에 바울로 불리면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지만, 어찌 이런 고난이 있을까요.
죄의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하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13절에 다윗이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무엇이라 이야기하는지 보기 바랍니다.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않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머지 죄값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아들은 죽음을 당합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누이 다말을 범하게 되고 암논은 또 다른 아들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그의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저질러 자신의 어머니 즉 다윗의 아내들을 대낮에 강간을 저지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 죄의 대가가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회개를 통한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실지 마실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용서해주실 것을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죄의 결과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범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상실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공동체에 범죄하였을 때에, 가족에 범죄하였을 때에, 내가 음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등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것과 더불어 그 죄의 결과는 공동체와 가족과 자신에게 상흔을 남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려움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을 요청하신 것처럼 거룩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늘 실패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께 메달려야합니다. 예수님께 기대있어야 합니다. 그 포도나무에 딱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우리의 신분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메이커 holiness Made by Jesus 라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이 옷에 때가 타겠죠. 가끔은 김치 국물이 묻기도 하겠죠.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돌아다닌 다면 우리는 창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거룩이라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이 거룩의 옷을 날마다 빨아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날마다 이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