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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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views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구원,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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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본문해석
1 Πᾶς γὰρ ἀρχιερεὺς ἐξ ἀνθρώπων λαμβανόμενος ὑπὲρ ἀνθρώπων καθίσταται τὰ πρὸς τὸν θεόν, ἵνα προσφέρῃ δῶρά τε καὶ θυσίας(제물, 도살해야 얻을수 있는 예물) ὑπὲρ ἁμαρτιῶν,
하나님을 향한 것들, 그것을 가져간다
2 μετριοπαθεῖν δυνάμενος τοῖς ἀγνοοῦσιν καὶ πλανωμένοις,
모든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향한 것들 , 그것을 가져간다
(능 : 하나님을 향한 것들을 맡는다, 가져간다.; 수 : 하나님에 대한 것들에 대해 세움을 받았다)
사람들가운데서 취해져서 사람들을 위해 (제사장이) [그래서 하나님의 것을 맡음] , 어디로 가져간다 성물과 제물을 죄를 위해서 가져간다.
지식이 없는 자와 방황하는 자를 위해서(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좌우로 치우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의 연약함을 공감함)
ἐπεὶ(원인절을 이끔) καὶ αὐτὸς περίκειται ἀσθένειαν 3 καὶ διʼ αὐτὴν ὀφείλει, καθὼς περὶ τοῦ λαοῦ, οὕτως καὶ περὶ αὐτοῦ προσφέρειν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바로 그 자신도 연약으로 쌓여있다(자신도 연약하다). 그래서 그 연약때문에 죄를 죄에 관해서 가져오는데, 백성에 관해서 가져오듯이, 그 자신에 관해서도 속죄제물을 가져온다.
4 καὶ οὐχ ἑαυτῷ τις λαμβάνει τὴν τιμὴν ἀλλὰ καλούμενο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καθώσπερ καὶ Ἀαρών.
누구든지 스스로 취하지 못한다. 존귀는 , 그러면? 하나님에 의해서 불러주셔야, 마치 아론도 그러했던 것처럼.
아론이 자청도 투표도 아닌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정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야 가능하다.
모세가 아닌 아론이 대제사장이 된 이유는 모세는 백성들과 함께 지내질 못했기 때문이다.(왕궁, 미디안).
백성과 함께 고생을 해야 대제사장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육신하신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다.
5 Οὕτω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ὸν ἐδόξασεν γενηθῆναι ἀρχιερέα ἀλλʼ ὁ λαλήσας πρὸς αὐτόν·
Υἱός μου εἶ σύ, ἐγὼ σήμερον γεγέννηκά σε·
6 καθὼς καὶ ἐν ἑτέρῳ λέγε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하지 않으셨다. 스스로를 영화롭게 대제사장이 되는 일에, 오히려 그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너는 내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라고 말씀하하셨다.
하나님께서 ‘니가 임명받아야겠다’고 불러주셨다.
또한 다른 시편에서도 뭐라고 하냐면,
‘너는 제사장이다. 영원토록 그 세대까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7 ὃς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δεήσεις τε καὶ ἱκετηρίας πρὸς τὸν δυνάμενον σῴζειν αὐτὸν ἐκ θανάτου μετὰ κραυγῆς ἰσχυρᾶς καὶ δακρύων προσενέγκας καὶ εἰσακουσθεὶς ἀπὸ τῆς εὐλαβείας, 8 καίπερ ὢν υἱός, ἔμαθεν ἀφʼ ὧν ἔπαθεν τὴν ὑπακοήν, 9 καὶ τελειωθεὶς ἐγένετο πᾶσιν τοῖς ὑπακούουσιν αὐτῷ αἴτιος σωτηρίας αἰωνίου,
8-9그런데, 그분은 배우셨다. 그분이 그것들로부터 고생을 당한 인내를 배우셨다. 그리고 온전하게 되셨다.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되셨다. 그분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7절은?
그분은 그분의 육체에 있는 날들에 간구와 소원을 아뢰었다 누구에게? 하실수있는 부에게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수 있는 그분에게, 어떻게? 강한(우렁찬) 부르짖음과 눈물로써, 그리고 들렸다. 그의 경건하심으로
기도가 하나님앞에 수락이 됨.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시고
온전케되신 다음에, 그분을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이유가 되셨다.
10 προσαγορευθεὶ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ἀρχιερεὺς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하나님에 의해서 임명이 되었다. 대제사장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시편 110편에 예언되었던)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실수 있느냐에 대한 답.
설교
서론
히브리서에서 중요한 강조점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입니다. 대제사장에 대한 내용이 2장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설교제목 중에도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 큰 대제사장이라는 설교제목도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구원의 근원이지만, 이 역시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연관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구원의 근원되시기 위해 기꺼이 대제사장직에 오르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본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대제사장이라는 직위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대제사장은 1절에 설명하는 것처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백성들중에서 함께 있는 자입니다. 자신도 백성들처럼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먼저 속죄제를 드려야 대속죄일에 온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대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속성중 하나가 드러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과 함께 있는 자여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해서 백성과 공감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공감이라는 말은 2절에 용납이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살며,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 성전을 관리하며,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지만, 스스로가 불완전하며, 죄악투성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지성소에서 죽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연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사는 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그들의 고민을 알고 들어주며 함께 나눌수 있는 자가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등, 모든 제사에서 중보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중보, 중재자란 양쪽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는 모세가 아니라 아론입니다. 모세는 선지자라고는 칭하지만 대제사장은 아닙니다. 왜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백성과 함께 있던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 이후에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전혀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실제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론은 태어나면서부터 모세가 올때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 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어려움과 아픔을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떠난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신을 요구하자 우상을 만드는 죄악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이해하고 그 백성들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모세가 아닌 아론이 대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대제사장은 이런 공감의 능력이 있는 자였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공감은커녕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힘쓴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만들고 로마의 화폐가 아닌 유대의 화폐로 받았습니다. 중간에 환전상을 만들고 환전상으로부터 돈을 받았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는 유대인들은 이중으로 대제사장들에게 자신의 예물을 말그대로 강탈당해야 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기록을 보면, 제사장들중에 굶어죽은 자가 종종 나왔다고 합니다. 왜냐면 원래 제사를 집례하게 되면 제물중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받아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그에 영합한 권력을 잡은 자들은 그 제사장이 제사의 몫으로 받은 제물들을 뺏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몫조차 뺏긴 제사장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서민의 삶은커녕 같은 제사장의 삶조차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원래 대제사장은 사독계열, 다른 말로 아론의 자손들만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두개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독계열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독계열 제사장의 계보는 중간기에 완전히 끊겨버립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그당시 왕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공감의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정통성을 지켜주던 혈통조차 끊겼습니다. 그렇게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아론도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던 백성들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가장 고귀한 직분을 맡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론보다 더욱 잘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7절에 나온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 이는 겟세마네의 기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우리와 같이 연약하지도 않으신데,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당하시고, 우리와 같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차마 하지 못하는 통곡과 눈물을 대신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들으심을 얻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필요가 전혀 없는 아들이심에도 가장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이라는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능력이 있는 성부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셨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고난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 그대로 행하십니다. 이것은 6절과 10절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절에서는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말합니다. 10절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말합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제사장과 대제사장입니다. 기자의 실수일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한대로 제사를 드린 후, 자신의 몫이 없으면 굶어죽을 정도로 힘든 제사장의 삶과, 그 모든 제사장과 백성들의 삶에 완전히 공감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온전히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그정도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깊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서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이며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살다보면, 성경말씀과 우리의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너무나 복된 말씀이지만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살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들은 우리의 상황과 처지는 알지못하고 단순히 이렇게 해야한다는 교훈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시기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아예 우리 마음을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흔들리면, 성령님의 집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울면 성령님이 같이 웁니다. 가족중 한 사람이 힘들면 모두가 힘든 것같이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한 가족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칭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에 함께 공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맡기기 원합니다.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시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우리의 구원의 근원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분안에서 안식을 얻으며, 우리의 일함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다시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대제사장되신 우리의 구주와 함께 이 좁은 길을 걸어갈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