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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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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논쟁사
제 6강 역사적 예수연구 논쟁
계몽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역사인식의 혁명적 변화는 역사실증주의로 표현된다. 증명될 수 없는 사실이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듯이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사실은 더 이상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성경 특히 복음서의 예수에 관한 내용의 인식에 일대 전환점을 주게 되었고 결국 복음서의 예수에 관한 기사 대부분은 신화로 취급받게 되었다. 2000년 전 실제로 팔레스타인땅에서 생존하셨던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흔적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붐을 이루게 되었고 이를 소위 역사적 예수연구 라 한다. 이 변화된 신학환경에서 제기된 질문은 전통적인 두 본성론의 기독론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적 예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다.
6.1 역사적 예수연구의 시작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는 Friedrich David Strauss(1808-1874)를 꼽을 수 있다. 1835년 그가 쓴 예수전에서 초자연주의와 합리주의의 잘못을 비판했다. 초자연주의라함은 복음서가 신인의 지상적 생애를 기적으로 가득 차 있는 역사로 보고한 그대로를 참이라 인정하는 것이고 합리주의의 잘못은 복음서의 진술을 전체적으로 참이라 인정하되 부분적으로 오류들을 인정하고 이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쉬트라우스의 예수전은 두 가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무엇이 신화인가? 와 이 신화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첫째 질문은 역사적 비판의 문제이고 둘째 질문은 종교사적 재구성의 문제이다. 쉬트라우스에 따르면 마태와 누가의 탄생기사는 서로 모순된다고 보며 동방박사나 어린이 박해기사는 믿을만한 것이 못되고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기적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도그마에 얽매어있지는 않았으나 기적은 부인하였다. 신화적인 것이 어떻게 예수와 결부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를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 상상물의 결과로 보았다. 쉬트라우스는 복음서에 소개된 예수의 이야기가 대부분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보았고 이런 입장으로 인해 당시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제까지 기독교가 신봉해 온 영원한 이념이 한 개인의 삶 속에 구현되었다는 교리는 쉬트라우스의 역사비판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되었다. 그 대신 쉬트라우스는 헤겔철학의 추종자로서 그 이념이 많은 사람의 삶 속에서 구형된다고 주장하였다. 예수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다는 전통적인 교리를 바꾸어 온 인류가 그리스도처럼 신성과 인성을 갖춘 성육신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예수가 아니라 온 인류가 기독론적 진술의 주제라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쉬트라우스는 취리히대학의 교리학 교수로 채용되는 것이 막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쉬트라우스처럼 역사적 비판적 연구를 수용하지 않는 신학은 비학문적이라는 낙인을 찍히게 되었다.
6.2 마틴 켈러의 소위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역사적 예수연구라는 자유주의신학의 주장에 새로운 도전이 제기되었는데 이 도전은 신약성경에 대한 주석적 연구에 근거한 주목할만한 시도였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Albert Schweitzer로 예수의 선포의 주제가 하나님나라의 도래였으며 종말론이 예수의 중심관심사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리츨이 시도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나라를 도덕적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며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해석된 것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당대에 하나님나라의 도래가 실현될 것으로 믿었으나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다. 슈바이처의 주장은 비록 그의 주장의 과격함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지만, 신약성경의 예수를 더 이상 자유주의신학의 눈으로 보지 않도록 해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슈바이처에 앞서 신약의 예수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마틴 켈러이다. 1892년 마틴 켈러(Martin Kaehler)는 “소위 역사적(historische) 예수와 역사적(geschichtliche) 성경적 그리스도”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역사적 예수를 묻는 질문의 방식은 성경이 그리스도를 묻는 방식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복음서저자들 자신은 신앙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고 그 안에서 예수의 사역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졌는가를 소개한다. 우리는 이 증언을 신약에서 역사적(historische) 예수 그리스도의 형식이 아니라 다른 역사적(geschichtliche)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으로 만난다. 그리스도론적 탐구는 역사적 비평의 기술로 다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좇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의 신성이 문제가 안되고, 십자가와 부활은 지상으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이미 처음부터 목적된 것으로 이해되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하나로 보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론은 사도들의 선포에 따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20세기 전반부의 새로운 기독론적 연구의 방향이 결정된다. 역사적 예수연구로부터 신앙의 그리스도를 향한 신정통주의신학의 길이 열렸다.
I. 마틴 켈러의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칼 브라아텐)
마틴 켈러는 그의 유명한 책 Der sogenannte historische Jesus und der geschichtliche biblische Christus, 1892에서 19세기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독창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이 책에서 켈러는 신약해석의 중요한 범주로 “케리그마”라는 말과 Historie historisch 와 Geschichte geschichtliche라는 역사를 나타내는 단어를 최초로 구분지어 사용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켈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지난 시대의 연구를 부정하면서 교회의 케리그마 속에 살아있는 성서 전반의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적극적이고 신앙론적인 관점에 자극을 주었다. 이런 주제들을 전제로 하여 다시금 켈러의 주장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예수의 생애 학파”에 대한 공격
켈러가 출생한 1835는 David Friedrich Strauss 가 예수생애를 출판함으로 독일신학 내에서 예수연구에 불을 지른 해였다. 그가 사망한 1912년은 일부 역사가들이 예수의 존재에 대해 실재여부와 신화여부를 두고 논쟁하던 때였다.
칼 바르트는 켈러가 “예수생애 연구”에 대하여 평범한 말로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의 불변의 공헌이며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CD I,2,64).
켈러 이전 예수생애연구에 몰두하던 학자들은 결국 역사적 예수를 찾는 작업을 포기하고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이관시켜 놓았다. 슐라이어마허는 예수의 하나님의식의 잠재력을, 칸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성의 개념을, 헤겔은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적인 통일성에 대한 개념 등이 강조점을 두었다. 하르낙류의 후기자유주의신학은 역사적 예수를 하나님의 아버지 됨, 인간의 형제애, 그리고 각개인의 영혼의 무한한 가치로 규정지었다. 이들이 모두 켈러에게 절박한 경고의 외침을 하도록 자극을 준 것들이었다. 켈러는 “현대 작가들의 역사적 예수는 우리들에게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숨긴다. 역사적 예수 연구운동이 다루었던 예수는 인간의 창작예술의 한 종류에 불과했고 비잔틴 기독론의 악명높은 도그마적 그리스도보다 더 나을게 조금도 없다”(16)고 비판했다. 이들의 시도에는 역사과학이 사도들의 설교를 지나서 진정한 역사적 예수에게로 침투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성서가 말하는 사도적인 예수상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A. 역사적-과학적 이유
켈러의 복음서 분석은 그로 하여금 복음서가 당시의 역사과학의 표준에 의해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기준들:
1) 복음서들이 유일한 자료이기에 이들을 떠나서 예수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복음서 이외의 다른 고대의 자료들이 없으므로 예수는 주후 100년 경 교회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라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2) 이들 자료에 대한 목격자들(증인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비평학자들의 관심은 자료의 어느 부분들이 증인들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복음서들은 주로 예수의 생애 중 매우 짧고 결정적인 기간만을 다룬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서론이 긴 수난설화”라고 불리어질 수 있다. 제4복음서를 제외하고 볼 때도 여러 가지 수난설화들을 조화시켜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다.
4) 결국 3복음서들과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들의 차이로 인해 성경의 예수 이야기가 순수하게 사실적인 자료에 대한 충실한 회상인지에 대해 회의가 든다. 요한복음을 부정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복음서들과 조화시킬 수도 없기에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전기를 쓴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 덧붙여 켈러는 당시의 학자들 사이에서 역사적 예수연구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보강하고자 제안되었던 심리학적 분석의 예수 상을 거부했다. 그는 복음서기자들이 메시아의 심리상태는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다소 비판적인 견해 이면에는 사실상 복음서에 대한 상관적이고 긍정적인 견해가 자리 잡고 있다. 신약은 이를 가지고 과학적인 예수전기를 있는 문서들의 수집품이 아니다. 예수의 내적 심리상태의 전개과정을 밝혀줄 수 있는 글도 아니다. 켈러는 복음서가 “교회를 설립한 설교의 실행”을 기록해 놓은 문서라고 말했다. 이는 후에 양식비평의 전제를 미리 간파하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설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증거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찬양의 의미로 해석된 사도들의 회상에 기인한 문서다. 사도들은 역사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들의 관심은 역사자체가 아니라 역사적이면서도 초역사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된 예수 그리스도상이다. 이로 인해 켈러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 및 개념들을 제안한 최초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상, 사도적인 케리그마, 신앙고백적인 문서로서의 신약, 사도적인 설교로서의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 그리스도의 의미, 초역사적인 구세주, 교회의 선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선포, 사도시대의 회상들, 고백적인 선포들, 부활하신 주님 등등.
B. 신학적 근거
켈러는 복음서가 과학적(학문적)인 예수 상을 위한 자료로서 믿을만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신자들에게 믿을만한 구세주 상을 소개해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를 찾고자 했던 신학자들은 사도적(교회적) 이고 교리적인 예수를 벗겨야만 역사적 예수 상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이들의 말처럼 그런 예수가 신약의 진짜 예수라면 기독교는 1900년 동안 우상을 숭배해 온 것이다. 그러나 켈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리 속에 표현된 신앙에 대한 관심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의 본성을 의미하고 그것 때문에 그가 신앙의 대상이 되자만, 그러나 이 신앙을 제1계명과 충돌하는 데까지 이끌고 가지는 않으며, 또 우리들로 하여금 피조물을 신격화 하도록 이끌지도 않는다”(84). 반면에 예수의 전기작가들이 그에게 갖는 최대의 관심은 그가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하는 가정이다. 이 상황은 역사적 연구와 교의학 간의 관심의 충돌이 가능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켈러가 통찰한 사실은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서는 예수전이나 심리학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철저한 비판의 결론이 오히려 교의학적 예수 상에 더 다가가게 만든다. 예수전은 그를 위한 자료 자체의 문제로 불가능하다. 예수전은 신약의 예수의 독자성에 의해 금지된다. 그렇다고 켈러는 역사적으로 해결할 주제를 신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초대교회의 신자들에 의해서 케리그마적으로 묘사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상하고 다른 예수 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을 지적한다.
C.변증론적 근거
켈러의 변증론적 관심은 교회 주변이나 밖에 있는 지적 회의론자들이라기보다 교회 안에 있는 위협당한 기독교인의 신앙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예수전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제한된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인의 신앙과 내용이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 예수전 연구의 역사적 비평결과에 대한 철저한 거부로 자신의 주장을 옮긴다. 이런 입장의 정리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개연성은 그것의 대상에 대한 지식은 될지언정 신앙을 보증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판단한다. 켈러가 신앙과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예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출발점은 오직 신앙만을 통한 은혜에 의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의 교리였다. 이는 구원의 사실이 인간이 마련해 놓은 업적들(도덕, 종교, 지성, 철학, 신학, 역사적 업적)에 의해 의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연구결과에 대한 본질적인 신앙의 의존은 신앙을 학자들의 지식에 굴복시키는 시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켈러의 진짜 관심은 칭의론적 교리를 기초로 외부로부터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를 저지하는 일이었다.
II. 역사적이고 성서적인 그리스도에게 신앙적으로 접근하는 일
켈러의 기본입장은 신약을 신앙의 견지에서 유래된 신앙의 문서로 분석하는 비평적인 현상학적 작업을 하는 신앙을 선호한다.
A.방법론적인 출발점으로서의 신약
켈러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자기의 신학, 특히 자신의 교의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신칭의는 그의 인식론의 핵심이다. 기독교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믿는 산 신앙을 전제로 한다. 이 신앙은 신학적인 지식의 자료가 아니고 계시에 대한 지식의 매개일 뿐이다. 신앙은 신학지식에 절대로 필요한 전제인데, 그 이유는 역사만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하는 실재인 초역사적인 것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역사로 계시의 사건들로 불리 우는 어떤 사실들을 추출할 수 있다는 가정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B.신앙과 성령의 증언
켈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단순히 나사렛 예수만이 아니고 그는 역시 약속되고 찬양을 받은 살아계신 메시야이기 때문에, 또 그는 단순히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해서 설교만 한 게 아니고, 그의 역사 및 전 역사와 함께 하는 인격 속에 하나님의 계시나 자기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의 성서적인 상속에 뒤 섞여 있는 초역사적인 특색이 제거된 어떤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신앙이 아니다. 그와 같은 예수는 단지 신앙이 우상적인 영웅숭배와 구별될 수 없는 예수론에 이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와 의미의 신앙적 판단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성령의 증거 없이는 신앙은 필연적으로 합법적으로 공인된 교회전통의 제단위에 지성의 희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C. 성령과 살아계신 그리스도
신앙은 진정한 인격적인 관계에서 수용하는 쪽이다. 성령은 신앙이 그리스도의 임재의 실재를 고백하는 이 관계를 중개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들의 현재의 생활로 가져다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다가가게 된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죄인을 복종과 신앙과 회개에로 압도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신앙이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 파악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는 현대적인 역사편찬의 역사적 예수와는 대조적이다. (역사적인) 이성은 신앙의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실재를 이행할 수 없다. 오직 성령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다. 켈러는 예수전 연구가 성령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D.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설교된 그리스도이다.
성령에 의한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말씀의 설교를 통해 신앙체험 중에서 하나의 실체로 된다. 현재의 설교는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그 말씀 중에 진짜로 참석함에 의해서 창조적인 힘을 가져온다. 성령께서 이 말씀이 바로 살아계신 그리스도라는 확신을 창조해 낼 때, 인간의 말은 신앙을 위한 하나님의 말이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상의 표현이다.
E. 설교되는 그리스도는 교회에 의해 고백되는 그리스도이다.
신앙을 눈뜨게 하는 설교는 교회와의 관련 속에서 형성되는 설교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은 교회 안에서만 가능하고 이런 고백이 바로 예수의 메사야성에 대한 설교 중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단지 그에 대한 역사적, 형이상학적, 심리학적 관심 등은 신앙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담는 역사적인 그릇이다. 성령이 교회를 통해서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령의 역사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성령과 교회가 있다.
이제 켈러에게 가장 심각한 질문이 등장한다: “만일 신앙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그리스도의 설교에 관련된다면 교회가 그 자체의 그리스도 상을 제시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F. 교회의 그리스도는 성서적인 그리스도이다.
교회의 케리그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각 시대가 그것의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정신을 쏟아 놓는 추상적인 도식이나 개념이나 원리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성서적인 그리스도이다. 교회에 의해서 설교되는 그리스도상은 성서 속에 제시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성서적인 케리그마에 의해서 중재되지 않고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
G. 성서적인 그리스도는 사실적인 그리스도다.
켈러에 의하면 신앙이란 순수한 사실에 대한 과학적인 복구에 의존하지 않고, 사도공동체가 나사렛 예수를 그들의 메시지의 본질적인 요소로 맞이하는 한 그에게 의존한다. 신앙은 역사 안에서 메시지의 본질적인 요소를 박탈당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인 토대가 그것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케리그마 안에 부여된다. 지상의 예수 외에 다른 그리스도는 없다. 예수의 본질적인 용모들은 사도의 증언 속에 뒤엉켜서 혼합되어 있다. 신앙은 과거에 어디에서 나타난 맹목적인 사실들의 복합체로서의 “소위 역사적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것은 애매모호한 전설이 아니라 명백한 인간적인 생활인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78). 그래서 켈러는 역사에 대한 두 독일단어의 차이점에 대해서 취급하고 있다. 그는 역사학적인 historische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geschichtliche 그리스도가 신앙의 기반과 내용이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이다. 이는 당시의 일반적인 역사개념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이는 오히려 현대의 실존주의적 역사개념에 가깝다. 켈러시대의 역사가들은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와 해석된 역사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켈러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개념의 철저함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켈러는, “순수히 역사적인 견해로부터 어떤 위대한 인물의 진정한 역사적 요소는 그가 후대에게 끼쳐주게 될 인격적인 영향이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결정적인 영향력을 소우했는가? 성서와 교회사에 의하면 그것은 그의 제자들의 신앙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38). 켈러에게 있어서는 이 사실이 우리가 예수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도들의 신앙을 통해서 중재받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앙은 예수의 부활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예수라고 하는 인물은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그가 만들어 내는 결과 중에서 생활하고 활동한다. 그는 신앙과 설교와 고백과 교회의 증거 속에서 산다. 그에 의해서 결과된 역사적인 해석의 생생한 연속을 무시하고 예수에 대한 순전히 객관적인 사실들에만 의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앙은 예수의 실제적인 부활을 그리스도 상의 양보할 수 없는 요소로 전제한다.
H. 지상의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동일성
만일 신앙의 기반과 내용으로서의 사실적, 성서적 그리스도가 지상의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포함한다면, 즉시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켈러는 신앙을 위해서는 지상의 예수가 본질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교회를 세운 사도시대의 설교의 전승에 의해서만 예수를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본래 예수에 대한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였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가 예수와 동일하지 아니한가? 사실 켈러는 지상의 예수와 무관하신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는 사실을 반대할 경우, 우리는 역사적인 실재에 근거한 기반이 없는 과격한 가현설적 관념론에 이르게 될 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신앙의 종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그리스도의 성서적인 상이 진실로 지상의 예수와 부활하신 주님하고 같은 인물이라고 하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전망은 없다. 반면에 낮아지신 그리스도와 높이 올리신 그리스도가 동일인물이라는 연속성이 기독교신앙을 위해 절대적으로 본질적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결정적이다.
만일 이 연속성을 포기한다면 신화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케라그마라는 그리스도 상은 예수의 완전한 실재 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신앙이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의미는 예수의 존재와 일치한다. 의미와 존재는 엄격히 상관적이다. 사실과 해석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와 그리스도는 떼어놓을 수 없는 단일체이다. 켈러는 지상의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동일성을 주장하면서 성령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동일성은 성령에 의해서 증거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와 동일시한다. 이 동일성의 문제는 성령과 신앙과 증거의 문제이다. 이것은 역사과학의 가장 훌륭한 연장과 가장 예리한 조사에 의해서도 성취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II. 바이스와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연구
요한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 1863-1914)는 유대인에 대한 예수의 선포(설교)와 관련된다. 당시 유대인들은 묵시적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들은 시대의 파국적 종말과 초자연적 왕국의 출현을 대망하고 있었다. 바이스에 따르면, 당시 유대인들의 사상에 비추어 보면, 예수의 선교와 선포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리츨이 잘못 소개했던 것과 같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윤리적 이상의 사랑이 아니라 유대적 종말론에서 말하는 낯선 영역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지 않고 그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다. 그의 제자들의 선교여행도 그 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그 가까움에 대한 경고였다. 이에 대한 반응에 실망하여 예수는 그 나라의 신속한 도래를 위해, 그리고 그 나라에서의 자신의 통치를 위해 속히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모든 유대 묵시작가들이 계속해서 인자에게 부여했던 모든 영광을 지닌 채로 자신의 목숨을 값으로 치루었다. 예수 상에 대한 이러한 바이스의 견해는 우리로부터 예수를 격리시키고 우리에게 전적으로 복음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이스 스스로도 자신의 종말론적 해석이 매우 극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 안에서 겨우 윤리적 가르침만이 최종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면에서 바이스는 리츨에 의해 매력적으로 각색된 역사적 예수 상을 파괴하는데 공헌했다.
바이스는 기술하길, 모든 보존된 이야기들, 모든 살아남은 어록들은 원시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특정한 관심의 부분들에 대한 반증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전래된 것에 대한 선별은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관심들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더 넓은 관심에서 우리는 그들이 예수에 관해 무엇을 말하는 가를 복음서들에서 읽는 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원시 기독교의 삶과 신앙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것인지를 읽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자료들은 우리에게 예수 자신이 아니라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에 의해 채색된 예수 상을 보여준다.
초대교회의 가장 철저한 종말론적 해석을 보여주는 사람은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였다. 그는 스스로 그가 가르친 바를 실천한 점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아도 합당한 인물이다.
예수의 생애를 저술하고자 하는 비판적 회고(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06)에서 슈바이처는 예수를 교회의 도그마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세울 것을 목표로 촉발된 동기임을 인식하면서 예수에 대한 해석에서 종말론적 해석의 도입을 전적으로 추구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슈바이처 자신은 전통적인 기독론의 도그마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슈바이처가 보기에 당시의 예수이해에는 예수를 현대화하는 데서 실수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리츨은 당시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자신들의 이상을 예수에게 소급해서 맞추어 읽음으로 당시대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의 교사로 소개했다. 우리는 예수가 그 시대에 속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의 시대와 연관되어 해석되어져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의 가르침과 삶이 그의 당시의 종말론적 신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가 실수한 것은 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다는 점이었다. 역사적 예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시대를 살았었고 그러하기에 그는 우리에게 낯선 사람이었고 수수께끼이다. 마찬가지로 슈바이처는 바울의 사상도 종말론적 경향성에 영향받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예수와 초대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에 속해있었다면, 우리는 슈바이처가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아마도 슈바이처는 이에 대해, 종교의 진리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상관없는 형태로 표현되어야 했었으므로 이는 단순하게 그리고 용이하게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슈바이처는 “우리는 종교의 진리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슈바이처가 제시한 해답은 예수의 가르침 안에서 종교적 사랑이라 부르는 어떤 특별한 영적인 힘 그리고 이는 시대가 흐르더라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남는 그래서 이것이 유대인들의 묵시적 세계관이든, 헬라시대이든, 중세이건 혹은 현대이건 간에,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세계에 대한 부정의 경험을 통해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다. 세계부정의 종말론적 세계관 안에서 예수는 적극적 사랑의 윤리를 선포했다.
이 선포가 의미하는 바는 어떻게 슈바이처가 예수의 사랑의 종교의 본질적 핵심과 그 자신의 세계관을 연결시키는 가를 관찰함으로 드러난다. 슈바이처는 세상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지녔고 특별히 시대의 긍정적인 기질에 대해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합리적인 사고로 선언하면서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가 도달한 철학은 생명에의 경외의 인식에 집중되었다.
우리는 세상이 단순한 우연의 결정체가 아니라 생명의 결정체임을 안다. 자기 자신과 같이 모든 사람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고 대체적으로 슈바이처에 있어서 세상의 생명 혹은 삶은 단지 생물학적 의미 이상의 우주적 투쟁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은 세상에 대해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모두 지니고 있다. 인간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속해 있는 한 인간은 수동적이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 주위에서 벌어지는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능동적이다. 수동적인 관계는 포기라는 비관적으로 이끌어 나가지만 이러한 포기는 내적 자유를 가져다주면서 나아가서 사랑의 윤리 자체로 표현되는 긍정의 단계로 인도한다. 따라서 예수의 본질적 가르침은 종말론적 환경으로부터 이탈되면서 현대사고의 상황 속에서 재진술 된다.
6.3. 불트만의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니”(,16)의 바울의 진술은 칼 바르트에게나 불트만에게도 모두 기독론의 핵심원리이다. 양자는 이 원리를 부활전의 역사적 예수에 연결시켰다. 역사적 예수는 신앙과 신학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불트만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질문은 실제로 신약성경이 전달해 주고 있는 부활이후의 사도적 증거에 집중하고 있다는 부활의 빛에 비추어진 그리스도선포에 관련되어 있다. 이는 마틴 켈러에 의해 소개된 신학적 진술을 더 극단화 시킨 결과이다. 20세기 중후반기에 불트만의 제자들 사이에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바르트의 경우는 부활전의 예수를 왕같은 인간의 관점으로 수렴해 나갔지만, 반면에 불트만은 신약성서신학의 종교적 역사적 전제로서만 관련시키려 했다. 이는 1926년 불트만 자신이 예수전을 기술했다는 사실로 볼 때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말하길, 기독교의 신앙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케리그마가 존재한 이후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의 행동으로 선포하고 십자가에 달리신자와 부활하신 자를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언행동으로 선포하는 그 케리그마가 존재하는 한 말이다. 이에 따라 불트만의 기독론은 내용적으로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한다. 바르트로부터의 결별은 불트만이 생각을 더욱 사도적 증언을 우리에게 결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오히려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실존에 말걸어 오심으로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생각에 모아졌다. 이미 초기 불트만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말하려 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오직 믿음 안에서 만나게 되신 분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단순히 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코 역사적인 절차에 따라 밝혀진 방식으로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수의 역사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그런 방식이 아니라 말걸어 오심으로부터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걸어 오심이 신약성경 안에 사도적 증언으로 소개된다. 이로써 사도적 증언이 오늘도 나에게 말걸어 오심으로 다가온다. 시도적 증언은 당시나 오늘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 선 인간에게 말걸어 오시는 사건으로 실존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불트만의 해석학의 핵심적 원리다.
불트만의 신약성경의 기독론적 진술을 해석하기 위한 원리는, 오늘날 역사적인 사실과 신비적인 사실로 얽혀 있는 세계상에 대한 진술과,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진술, 그러면서 동시에 동정녀 탄생과 선재 그리고 부활하신 분이시라는 진술 등 이런 사실 앞에 해석학적 과제가 놓여 있다. 따라서 신약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불트만의 말에 따르면 신화적 요소를 없애는 것이 아닌 실존적으로 해석한다는 원리인 탈신화화 작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불트만에 따르면 신화론적 진술에 속하는 내용은 기적이야기, 동정녀 탄생 예수의 선재, 하나님의 아들됨, 빈 무덤, 예수의 승천 등이다. 이런 모든 진술들은 하나같이 구시대의 세계상으로서 현대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들로 불트만은 보았다. 오히려 이런 진술들이 주는 의미는 예수의 역사적 실체가 주는 의미 구원의 행동과 사건을 표현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의미를 말하고자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가운데 객관적인 표상등은 포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불트만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불트만은 십자가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역사적 사실보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는가에 있다.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밖에서 신비하게 이루어진 객관적인 삽자가형의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 가운데 십자가는 당시의 역사를 넘어서 우주적 사건으로 그리고 현대의 일부분으로 세상에 대한 심판으로 인간에 대한 심판의 해방의 사건이 된다. 그런데 이는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선포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활은 불트만에 따르면 믿을 수 있는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후에 불트만은 예수의 신성도 마찬가지로 해석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으로 고백한 세계교회협의회의 명문을 분석하면서 그는 칼케돈을 그리이스적 사고를 객관화시킨 것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기독론적 신앙고백이 우리의 사고에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고 함. 이미 신약의 기독론적 부분에서 예수는 자기 자신에 있어 객관화된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고, 예수의 본성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의미를 표현하려 했다. 즉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세계내적 근원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위해 행동하시는 것을 말하려 했다. 예수의 신성은 예수를 우리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은혜로 선포하는 그 설교가 울려 퍼지는 자리로 우리를 놓을 때 그 가운데 입증된다. 하나님이란 표현도 하나님의 행동의 사건과 관련 하에서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도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특별한 상상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다 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도 그리스도가 하신 하나님신앙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나 그의 삶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 아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하는 예수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일어났지 그 이전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고, 그의 십자가를 통해 이뤄진 죄사함과 삶의 가능성에 저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6.4 불트만 이후의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논쟁: 케제만을 중심으로
케제만이 1953년 10월 20일 마르부르크동문회에서 행한 강연 중 서론과 결론을 소개함.
서론
1. 현금의 상황에 대하여
지난 세대 동안 독일에서의 신약연구 가운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질문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뒷전으로 밀렸다는 사실은 현시대에 일어난 변혁의 특징을 보여 준다. 그러나 지난 2백년 전 이래로 우리의 학문은 이 질문에 의해 이끌려 왔고 진행되어 왔고 핵심주제로 인정되어 왔다. 본질적으로 이는 두 사실과 관련되어 있는데,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신학의 논쟁과 종교개혁적 신학주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신학과 말씀선포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질문을 결정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복음의 축소와 왜곡이 발생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양식사비평은 공관복음저자들에 의해 제공된 예수의 사신의 대부분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 원시교회공동체신앙의 영향이 그 안에 여러 층으로 간직되어 있음을 입증했다.
우리는 진정한 예수의 전승이 오직 원시기독교의 설교 안으로 유입되었고 이 설교로부터 수집되었고 전승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복음의 고유한 담지자와 형성자가 부활신앙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불트만은 이런 진단으로부터 나온 결론을 극단화시킨 인물이다.
불트만은 자신의 저서들 안에서 고대종교들의 틀로 예수에 관한 묘사를 분석하면서 후기유대교의 상으로 연결 지으며 원시기독교의 선포의 전개로 설명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신앙은 올리우신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 이해되고 역사적 예수는 올리우신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 것도 부여해 주는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이런 논쟁은 지금까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불트만은 근본적으로 켈러의 책의 주제를 단지 자기방식대로만 토대로 삼고 규정했다. 주석적이면서도 조직적인 비판으로 무장한 변증학에 대해 한세대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늘날 점점 종말을 고해가고 있다. 옛 논쟁은 다시금 재 점화되고 확실하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학문은 반대를 통해 발전해 나가며 불트만의 과격함은 즉각적인 반응을 촉구한다. 그러나 단지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재에도 예외없이 역사적 예수의 문제와 신앙에 있어서 그 의미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필연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학자들이 갖추어야만 하는 역사와 역사성에 대한 적절한 이해에 대한 질문과 씨름하게 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비판이 제기된다.
우선 우리는 공관복음서기자들이 매우 진정성이 높은 전승자료를 소개했음을 입증하도록 애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특별히 신뢰성을 지켜야 하는데 만일 전체가 아니더라도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수난과 부활전승들에 대한 신뢰도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케리그마 역시 사실의 전달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신뢰를 두고자 한다. 세 번째로 세계사의 체계적인 개념에 병행하면서 그 안에 그리고 그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구속사가 고유한 법칙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신앙과 교회의 역사들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로 묘사하는 일에 나아가고자 한다.
역설적으로 자유주의가 교회적으로 더 번성하는 시대 가운데 자유주의의 공격 속에서 증대되는 역사적 신학적 비판 속에서 신학의 전선이 혼돈을 경험한다는 것은 최근의 신학에 나타난 유익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00년 동안 비판적 연구는 역사적 예수를 교회의 교의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시도했으며 그런 시도들이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역사적 예수를 더 이상 선포된 믿어진 내용으로부터 깨끗하게 충분히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의 이러한 비판의 반대자는 분명하게 의구심에 흔들리게 됨으로, 극단적인 회의에 문을 열어주게 되었고 역사(Historie)에 대한 직접공격의 포기와 함께 계시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 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하나의 관점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다른 관점에 맞서게 되며 다른 상대자와의 입장의 교환이 무의미하게 진행되지 않는 한 다른 한편의 입장에 다가오도록 이끌어 준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놓여진 역사(Geschichte)의 틀 안에서 역사(Historie)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한다.
2.결론
지상의 예수에 대한 무관심은 올리우신 주님과 낮아지신 주님을 동일하게 보는 원시기독교의 입장을 오해하거나 가현설적으로 공허하게 만들거나 간과해 버린다.
우리의 문제가 지닌 문제점은 교회공동체는 올리우신 주님과 지상의 주님의 동일성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리우신 주님으로부터 지상의 주님을 제외시켜 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우리가 확신하건대 아마도 역사적h 순수 사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선포와 그의 공동체 사이의 연결과 긴장에 의해 해석되어진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은 시간의 불연속성과 케리그마의 다양성 안에서 복음의 연속성을 묻는 질문일 때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도 그런 질문을 제기하고 그 가운데 우리는 더 이상 공유하지 않지만, 자유주의자들의 예수전 연구의 정당성도 확인하게 된다.
복음서는 부활절 이전과 이후 자신을 주님으로 계시했던 분에 잇대어 있다. 그 가운데 그분은 교회를 하나님 가까이로 자유와 책임의 신앙 안으로 세워주었다. 당시에 주님은 증명할 수 있는 자격없이 그리고 메시아임을 주장하지 않은 채 행동하셨고, 그러나 제 4복음서가 하나님의 독생자로 부르는 그 전능하심 안에서 행동하셨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를 종교사적으로도 그리고 심리학적으로도 또 역사적h으로도 최종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어디에선가 아마도 그에 관해 역사적G 우연성으로 진단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의 문제는 우리의 창안물이 아니라 그 자신이 우리에게 남긴 수수께끼다. 역사가는H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할 것이나 그는 풀 수 없다. 이는 오직 십자가와 부활 이래로 그를 자신의 주님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자유를 전달해주신 분으로 고백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우연성은 복음의 요구와 용서가 만나는 곳, 전에는 지상의 역사로서 그러나 지금은 올리우시고 선포되신 주님의 역사로서 예수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는 신앙을 지닌 그 사람들에게 맞추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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