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9)
Notes
Transcript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평상성과 관련이 있는 말: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다. 예방과 관련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된다는 말을 떠올릴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위기의 상황에서나 우리가 고백해야할 말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피난처라는 말은 요새나 산성, 반석과 같은 말과 동의어 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위기의 순간 뿐 아니라 매일 매일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산성을 짓거나 요새를 건설한다는 것은 위기의 때를 위하여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일 매일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고대에는 특별하게 성으로 둘러쌓여 있어야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는 근거와 같습니다.
현대로 말하자면 치안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야 매일 매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나의 피난처라고 말하는 것은 매일 매일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2절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으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된다는 말은 이렇게 매일 매일 먹고마시고, 일어나고 눕고, 평안한 잠을 자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때 주께서 집을 세우고, 공동체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여호와라는 피난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1-2절 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삶의 환경이 잔인한 사자처럼 나를 찢어버릴 것 같은 상황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피난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하신다는 그분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전에 김동호 목사님께서 설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런 표현이 참 인상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었다가 도대체 어디에 쓸려고 합니까? 이런 때 안쓰고....표현이 참 거시기 합니다만 ...김목사님이 의도하는 바는 이런 뜻입니다. 입술로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말고, 실전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난처로 삼고 전심으로 기도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3. 다윗의 시편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루어 달라는 호소를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악인들에게서 위기에서 구해달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만약에 제가 죄악에 치우쳐서 살았다면 그냥 나를 내버려 두시고 악인들에게 당하게 해주세요. 이게 보통의 영성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자에게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지 한 번 보세요.
3-5절입니다.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이것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순종하여 살았습니다. 바로 율법의 기능중에 긍정적이 좋은 기능은 우리를 거룩하게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율법의 모든 기능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제사적인 기능 그거는 불완전한 것이니까 폐지 된 것이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제사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지금은 레위지파도, 제사장도, 제물도 필요 없습니다. 또 하나가 율법은 정죄하는 기능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셔서 우리에게는 율법의 정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이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이 성품이 어떠한 가를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촉구하는 기능이 있는데, 성령께서는 이런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측면에서 볼 때 다윗은 거룩함의 열매가 가득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삶속에도 거룩함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룩함의 열매가 가득한 인생을 복되게 하십니다. 결코 악인처럼 대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안에서 정죄가 없을 뿐 아니라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4. 거룩한 삶은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이중적인 담대함을 가지고 살도록 부름을 받았는데요, 죄사함에 대한 담대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십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담대함입니다. 성령을 의지함으로 그래서 열매를 맺음으로 갖는 담대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룩한 삶이 가져다 주는 담대함은 이런 것들입니다. 1) 주께서는 의인과 악인 사이에 심판자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6절) 2)모든 만민들에 대하여 공평하게 심판하신다는 확신으로 모든 만민들을 불러 세우고 그 가운데서 심판하시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 있을 때 어떻게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감과 담대함이 있을 때 만민을 소집하고 여호와의 심판을 보자는 것입니다. 3) 이런 담대함은 하나님은 속 사람을 감찰하신다는 확고한 지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자신감이 있습니까? 거룩한 삶이 있는 자들에게 나오는 자신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담대함이 강하지 못합니다. 거룩한 삶으로 담대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5.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의 확신을 갖습니다. (10-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피난처로서 승리의 보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평상성과 관련이 있는 말: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다. 예방과 관련이 있다.
2.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여호와라는 피난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율법이라고 하는 선명한 삶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4. 거룩한 삶은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5.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의지하면 승리 가운데 살고 감사와 찬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