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설교20과 나는 그를 바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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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설교20과

서론
지난 한주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말씀과 기도로 함께 했는가?
사실 잘 안된다. 모르면 할 생각을 안하고, 알아도 하고싶지 않다. 마치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운동을 해야하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다이어트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다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고난을 주실 때도 있다. 오늘은 고난당한 예례미야가 지은 애가를 살펴보자
본론
오늘 본문은 솔직히 예레미야애가에서 약간 예외적인 본문이다. 왜냐면 애가는 계속해서 슬픔과 좌절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고난중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있는 자들임을 믿는다.
문제는 기도한다고 해도 우리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고난의 상황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길게는 몇년까지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다. 분명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노래하고 그 긍휼을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3장 1절을 보라 뭐라고 하나.
()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누구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하는가? 바로 하나님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한다.
말은 맞는 말이다. 선지자로 부름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정도의 고난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고난의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말한다.
이 내용이 18절까지 나온다. 또한 3장에는 없지만 1장, 2장, 4장은 슬프다로 시작한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민족이 당하는 수치가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분명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고 긍휼하시다. 성실하시고 선하시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다.
이 모든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을 가슴속 깊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난에 흔들리고 원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선지자라해서 다르지 않다. 다 흠이 있고 다 연약함을 예레미야는 오늘 우리가 보는 애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 죄때문임도 알고, 민족의 고난이 민족이 지은 죄때문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고난과 수치를 기뻐하는 주변민족과 그것을 조롱거리로 삼는 자들을 보며 화를 낼수 밖에 없다. 우리또한 그러지 않겠는가. 가족을 놀리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라고 마지막에 말한다.
슬퍼하며, 화도 내지만, 결국 하나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 설교제목처럼 예레미야는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처럼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사실을 알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랄 수 있다. 지금 내 상황이나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놔두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확신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일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했지만 예레미야도 어떤 때는 화를 내고 슬퍼하고 이 상황에서 구원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은 이렇다.
()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하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내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상황도 내 생각에 따라 바뀌길 바라지만, 진정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은 잠잠히 하나님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렸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겠는가. 십자가에서 내려오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내려오게 되면, 우리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 손도 발도 제대로 못쓰고 십자가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완전히 온전하게 되어서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기전보다 건강하고 능력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
사는건 쉬운게 아니다. 어렵고 힘든 때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는 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일지 알 때 가능하며, 둘째, 하나님의 주권과 일하심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우리는 십자가를 당할 때, 십자가에서 내려오길 바라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고, 새롭게 부활하길 바라신다. 그래서 이전의 헐어버리고 장애를 가진 몸과 마음을 벗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되어 강건하고 기쁨으로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최고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 하나님을 바라며, 고난속에서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같이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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