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본질

히브리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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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Σκιὰν γὰρ ἔχων ὁ νόμος τῶν μελλόντων ἀγαθῶν,* ⸂οὐκ αὐτὴν⸃ τὴν εἰκόνα τῶν πραγμάτων, κατʼ ἐνιαυτὸν ταῖς αὐταῖς θυσίαις ⸆ ⸀ἃς προσφέρουσι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οὐδέποτε ⸁δύναται τοὺς προσερχομένους τελειῶσαι·* 2 ἐπεὶ ⸂οὐκ ἂν⸃ ἐπαύσαντο προσφερόμεναι διὰ τὸ μηδεμίαν ἔχειν ἔτι συνείδησιν ἁμαρτιῶν τοὺς λατρεύοντας ἅπαξ κεκαθαρισμένους;* 3 ἀλλʼ* ἐν αὐταῖς ἀνάμνησις ἁμαρτιῶν κατʼ* ἐνιαυτόν·* 4 ἀδύνατον γὰρ αἷμα ⸉ταύρων καὶ τράγων*⸊ ⸀ἀφαιρεῖν ἁμαρτίας. *5 Διὸ εἰσερχόμενο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λέγει·*

Θυσίαν καὶ προσφορὰν οὐκ ἠθέλησας,*

σῶμα δὲ κατηρτίσω μοι·

6 ⸀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εὐδόκησας.

7 τότε εἶπον· Ἰδοὺ ἥκω,

ἐν κεφαλίδι βιβλίου γέγραπται ⸆ περὶ ἐμοῦ,

τοῦ ποιῆσαι ὁ θεὸς τὸ θέλημά σου.*

8 ἀνώτερον λέγων ὅτι

⸂Θυσίας καὶ προσφορὰς⸃ καὶ 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ἠθέλησας οὐδὲ εὐδόκησας,

αἵτινες κατὰ ⸆ νόμον προσφέρονται, 9 τότε εἴρηκεν· Ἰδοὺ ἥκω τοῦ ποιῆσαι ⸆ τὸ θέλημά σου.* ἀναιρεῖ τὸ πρῶτον ἵνα τὸ δεύτερον στήσῃ,* 10 ἐν ᾧ θελήματι ἡγιασμένοι ἐσμὲν ⸆ διὰ τῆς προσφορᾶς τοῦ ⸀σώ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φάπαξ.

11 Καὶ πᾶς μὲν ⸀ἱερεὺς ἕστηκεν καθʼ* ἡμέραν λειτουργῶν καὶ τὰς αὐτὰς πολλάκις προσφέρων θυσίας, αἵτινες οὐδέποτε δύνανται περιελεῖν ⸁ἁμαρτίας,* 12 *⸀οὗτος δὲ μίαν ὑπὲρ ἁμαρτιῶν προσενέγκας θυσία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εοῦ,* 13 τὸ λοιπὸν ἐκδεχόμενος ἕως τεθῶσιν οἱ ἐχθροὶ °αὐτοῦ ὑποπόδιον τῶν ποδῶν αὐτοῦ.* 14 μιᾷ γὰρ προσφορᾷ τετελείωκε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τοὺς ⸀ἁγιαζομένους.* 15 Μαρτυρεῖ δὲ ἡμῖ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μετὰ γὰρ τὸ ⸀εἰρηκέναι·

16 Αὕτη ⸆ ἡ διαθήκη ἣν διαθήσομαι πρὸς αὐτοὺς

μετὰ τὰς ἡμέρας ἐκείνας,* λέγει κύριος·

διδοὺς νόμους μου ἐπὶ καρδίας αὐτῶν

καὶ ἐπὶ ⸂τὴν διάνοιαν⸃ αὐτῶν ἐπιγράψω αὐτούς,

17 ⸆ καὶ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καὶ τῶν ἀνομιῶν αὐτῶν

οὐ μὴ ⸀μνησθήσομαι ἔτι.*

18 ὅπου δὲ ἄφεσις °τούτων, οὐκέτι προσφορὰ περὶ ἁμαρτίας.

*교회가 기득권을 만들다보니 예수님의 일을 교회의 일로 만들었다. 중세 신부들은 왕들의 고해성사를 들었고, 국가기밀을 알고 권력을 휘둘렀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제사, 더 좋은 제물, 그리하여,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누리는 자들이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가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쓰신다.
그럼에도, 율법, 옛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삶속에 남아있다. 오히려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히브리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1 Σκιὰν γὰρ ἔχων ὁ νόμος τῶν μελλόντων ἀγαθῶν,* ⸂οὐκ αὐτὴν⸃ τὴν εἰκόνα τῶν πραγμάτων, κατʼ ἐνιαυτὸν ταῖς αὐταῖς θυσίαις ⸆ ⸀ἃς προσφέρουσι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οὐδέποτε ⸁δύναται τοὺς προσερχομένους τελειῶσαι·*
율법이 장차 올 선한 것들에 대한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 참 것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다. 해마다 같은 제물, 그것들을 제사장들이 나아가지만, 나아가는 자들을 더이상 온전케하는 것을 할수 없다.
2 ἐπεὶ ⸂οὐκ ἂν⸃ ἐπαύσαντο προσφερόμεναι διὰ τὸ μηδεμίαν ἔχειν ἔτι συνείδησιν ἁμαρτιῶν τοὺς λατρεύοντας ἅπαξ κεκαθαρισμένους;*
왜 그러냐 멈출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배드리는 자들이 죄들의 양심 여전히 가지지 못하고 단번에 깨끗하게 되어서 다시 죄를 의식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예배 드리는 자들이 죄를 떠난 양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즉, 예배 드리는 자들이 죄를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염소와 황소의 피를 뿌리는 제사를 할 수밖에 없다.
3절에서 이어지지만, 이런 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오히려 자신의 죄를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2절에서 ‘하나도 없다’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죄를 가지지 않고 하는 제사도 없으며, 죄를 떠나게 하는 제사도 없음을 뜻한다.
더이상 죄에 집중하지 않고,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된 것에 집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디에 집중을 하고 있는가.
3 ἀλλʼ* ἐν αὐταῖς ἀνάμνησις ἁμαρτιῶν κατʼ* ἐνιαυτόν·*
그러나 매년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
2절과 3절은 대조이다.
제사는 죄를 기억하게 하고, 죄악에 대한 양심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고 죄악에 대한 양심을 주신다.
제사의 목적은 정결함이다.
그러나 제사는 그 본질인 정결함은 이룰수 없다. 표상일뿐이다.
그에 비해 그리스도를 믿고 섬김은 표상, 겉모양은 없지만, 본질, 죄악에 대한 양심을 주신다.
양심 : 종합한 사고작용
우리의 사고 작용이 자꾸 죄를 생각나게한다. 잡념, 악한 생각이다.
2절에서 나온 죄악의 양심, 죄악의 종합적 사고작용은 죄악에서 떠난 사고작용을 말한다.
하나님앞에서 정확하고 종합적인 생각, 죄로부터 분리된 사고작용.
제물을 보며, 죄를 기억할 것이다. 아 내가 또 잘못살았구나.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우리가 또 잘못살았습니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한주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은혜, 이기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게 산 나때문에 예배드리는게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린다.
4 ἀδύνατον γὰρ αἷμα ⸉ταύρων καὶ τράγων*⸊ ⸀ἀφαιρεῖν ἁμαρτίας.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 Διὸ εἰσερχόμενο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λέγει·*
Θυσίαν καὶ προσφορὰν οὐκ ἠθέλησας,*
σῶμα δὲ κατηρτίσω μοι·
그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말씀하셨다. 당신은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몸을 나에게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율법에 따른 제사의 속죄에 만족하시지 못하셨다.
구약, 선지서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제물로서의 몸을 준비하셨다
동시에 성전으로서의 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으니까. 장차 예배의 섬김이, 성전의 섬김이가 될 몸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성전이자 예배 그 자체이다.
6 ⸀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εὐδόκησας.
당신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7 τότε εἶπον· Ἰδοὺ ἥκω,
ἐν κεφαλίδι βιβλίου γέγραπται ⸆ περὶ ἐμοῦ,
τοῦ ποιῆσαι ὁ θεὸς τὸ θέλημά σου.*
그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보십쇼. 제가 옵니다. 성경에 저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저가 왔습니다.
8 ἀνώτερον λέγων ὅτι
⸂Θυσίας καὶ προσφορὰς⸃ καὶ 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ἠθέλησας οὐδὲ εὐδόκησας,
αἵτινες κατὰ ⸆ νόμον προσφέρονται,
위에서 이야기하기를 제물들과 예물들 번제들 속죄제물들을 원하지도 않으시고 기뻐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율법을 따라서 드려지는 것들입니다. 라고 말씀 하실 때
9 τότε εἴρηκεν· Ἰδοὺ ἥκω τοῦ ποιῆσαι ⸆ τὸ θέλημά σου.* ἀναιρεῖ τὸ πρῶτον ἵνα τὸ δεύτερον στήσῃ,*
그때, 보십시오 내가당신의 뜻을 행하려고 옵니다.라고 하셨다. 첫것을 폐하셨다. 두번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궁극적 속죄를 이루실 때, 동물을 제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가 자신을 드릴 것을 이미 말씀하셨다.
인신제물은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이삭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안받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신데 제물로 받으셨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며, 꼭 사람이 죽어야 되냐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제사의 불완전함을 대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몸을 제물로 바쳐야함을 시편40편에서 이미 말씀하신다.
노아 때, 이렇게 드릴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셔서 우리를 위해 또한 하나님을 위해 완전한 제사를 드렸다.
요즘 기독교를 비판하는 자들은 기독교가 결국 구약에서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대했던 인신제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말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죄의 심각성과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희생을 다시한번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물론 그 당시 성도들이 순교한 것이 제사도 아니었고, 우리 역시 우리를 제사로 드릴수도 없지만, 우리가 받은 구원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함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구원의 소중함보다 당장 우리에게 와닿는 여러 것들이 더욱 크게 느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첫째와 둘째는 성막을 말한다. 언약은 새언약이라는 표현을 쓴다.
10 ἐν ᾧ θελήματι ἡγιασμένοι ἐσμὲν ⸆ διὰ τῆς προσφορᾶς τοῦ ⸀σώ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φάπαξ.
두번째 것의 뜻가운데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 단번에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예물을 통해
11 Καὶ πᾶς μὲν ⸀ἱερεὺς ἕστηκεν καθʼ* ἡμέραν λειτουργῶν καὶ τὰς αὐτὰς πολλάκις προσφέρων θυσίας, αἵτινες οὐδέποτε δύνανται περιελεῖν ⸁ἁμαρτίας,* 12 *⸀οὗτος δὲ μίαν ὑπὲρ ἁμαρτιῶν προσενέγκας θυσία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εοῦ,* 13 τὸ λοιπὸν ἐκδεχόμενος ἕως τεθῶσιν οἱ ἐχθροὶ °αὐτοῦ ὑποπόδιον τῶν ποδῶν αὐτοῦ.*
모든 제사장들은 세워져서 날마다 섬기며 반복적으로 같은 제물들을 계속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이상 죄를 속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 이후에도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예물을 드렸다. 무의미하다.
한편 이분은 죄를 위해 하나의 제물을 가져왔다. 영원토록 갈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나서 그분의 원수들이 그분의 발등상으로 모일 때까지 기다리신다.
14 μιᾷ γὰρ προσφορᾷ τετελείωκε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τοὺς ⸀ἁγιαζομένους.*
하나의 제물로 그분은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토록 온전케 하셨다.
15 Μαρτυρεῖ δὲ ἡμῖ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μετὰ γὰρ τὸ ⸀εἰρηκέναι·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거하십니다. 말씀하십니다.
16 Αὕτη ⸆ ἡ διαθήκη ἣν διαθήσομαι πρὸς αὐτοὺς
μετὰ τὰς ἡμέρας ἐκείνας,* λέγει κύριος·
διδοὺς νόμους μου ἐπὶ καρδίας αὐτῶν
καὶ ἐπὶ ⸂τὴν διάνοιαν⸃ αὐτῶν ἐπιγράψω αὐτούς,
17 ⸆ καὶ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καὶ τῶν ἀνομιῶν αὐτῶν
οὐ μὴ ⸀μνησθήσομαι ἔτι.*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후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이 날들 후에 그를 향해서 그쪽으로 맺을 언약이다.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지성속에 그것을 새겨놓아서 그들의 죄를 그들의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보시고도 눈감으시는 것이 아니다. 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눈을 뜨고 살펴봐도 기뻐하실 정도로 만드시는 것, 그 길을 우리에게 예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 않을것이라 하신다. 이것은 눈가리고 아웅, 알면서도 모르는 척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는 될 수 없었던 존재,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셔서 기쁨으로 가게 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한가지 의무로 다가온다. 바로 자녀다운 삶, 그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다.
18 ὅπου δὲ ἄφεσις °τούτων, οὐκέτι προσφορὰ περὶ ἁμαρτίας.
더이상 죄를 위한 헌물이 없다. 이것들이 사하여진 곳에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가지 주제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헛됨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두 번째 것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둘은 따로 교훈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은혜이자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이 은혜이자 능력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본문은 율법이 단지 그림자임을 말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9장에서는 당장 죽을 위기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속죄와 재림에 대해 말하며, 그들에게 그 위기에 지지 않을 것을 말했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권면은 10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하지만 10장의 권면이 나온 이유가 9장이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율법의 헛됨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은 어떤 것 때문에 헛됩니까. 율법의 헛됨이라는 말은 앞서 히브리서에서 제사의 헛됨 성전의 불완전함등 많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본문은 다시한번 반복합니다.
그 반복의 첫 번째 이유는 율법의 헛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쭉 말했지만, 다시한번 율법이 참 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그 당시 율법에 익숙한 성도들을 향해서 익숙하지만 이미 죽은 율법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계속해서 머무를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왜 율법이 헛된지, 율법에는 없고, 그리스도에게는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죄의 양심이라고 2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번역들에는 죄의식, 죄에 대한 의식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게 9장 7절에서 말한 양심과 같은 말입니다.
양심은 말씀드렸듯이, 종합적인 판단을 뜻합니다.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 기준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헬라어로 양심의 뜻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다른 말로 바꾸면 종합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양심이라는 말을 통해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 이전의 제사는 결코 줄수 없는 능력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죄의 양심이라는 말은 죄를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즉,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죄가 아님을 알고 죄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2절과 3절에서 말하는 바는 구약의 제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완성하시고, 둘 째 장막을 이루신 이후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나, 진짜 중요한 능력이 죄를 떠나고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설명하는 것이 4절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를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제사를 드리다면, 속죄제로 드려지는, 좀더 직접적으로 도살되는 황소와 염소, 양, 비둘기같은 제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소가 울부짖으며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죽어가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까요. 아니면 끔찍하다는 생각을 먼저할까요. 익숙해지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처음 제사를 접하면 끔찍하다는 생각부터 할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이 되어 한꺼번에 엄청난 수의 제물이 도살되는 것을 보고 성전에 가득한 피비린내를 맡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서 경건한 자는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하는구나 라고 자신의 죄를 다시한번 생각할 것입니다.
네, 방금 말했듯이 ‘아 내 죄가 저렇게 끔찍하구나’ 가 제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능입니다. 그 이상은 결코 아닙니다. 동시에 반복적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통해, 이 제사가 하나님께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합니다. 2절에 이미 말했듯이 섬기는 자들,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었다면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1절에서 4절의 말씀을 통해 말하는 바는, ‘제사는 죄를 상기시킬수는 있어도 은혜를 상기시킬수는 없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배가 그렇습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아 내죄가 이렇게 끔찍하구나. 이번주동안에도 엄청난 죄를 내가 저질렀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버러지, 벌레라고 불렀는데, 나는 버러지보다 못하구나. 라고 생각하게 합니까.
우리의 예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더하게 합니다. 내가 일주일동안 한번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기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한순간도 잊지 않으셨구나. 자식은 부모를 잊어도 부모는 자식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초대하시고 그 초대를 위해 지난 한주를 은혜로 덮으셨구나.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예배드릴 때, 가지는 생각과 감정일 것입니다. 만약 예배때,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은혜가 생각나지 않고, 내 죄의 끔찍함이 먼저가 된다면, 그 예배는 온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제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초라함, 벌레보다 못함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상기하게 되고, 기뻐할 수 있는 근원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를 위해 준비되셨습니다. 그것을 이제 5절부터 18절에 이르기까지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5절에서 7절까지를 통해 이미 시편 40편에 메시아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예비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8절과 9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모든 제사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음을 다시한번 증언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구약의 선지서에서도 수차례에 걸쳐서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드려지는 제물로 예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좋아하십니까. 쉽게 말해 사람을 제물로 죽이거나 불태워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기사를 들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삭을 제물로 받으실 의향이 전혀 없음을 그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데리고 오던지 말던지, 숫양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지만, 그가 구원할 수 있었던 대상은 자신의 가족에 불과했습니다. 의인의 권속, 가족만이 의인의 영향력아래에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아들을 제물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노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형제, 자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우리가 모두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왜 하나님께서 인신공양을 금지하셨을까요. 저는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물로 선택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제물이 됩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가난해서 스스로 팔던지, 아직 아이라 스스로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못하던지입니다. 공통적으로 상황으로든지 뭐로든지 강압적으로 제물로 만듭니다. 결국 인신제사란 하나님의 이름아래 벌어지는 살인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사랑하시기에 스스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랑으로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장 심판할 수 있지만, 원수들만 따로 모아질 그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찾아질 그날을 기다리고 계심을 13절과 14절을 통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셨음을 16절에서 18절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서론에 말했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은혜이자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죄가 무엇인지 알며, 떠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배때 내 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덮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주도 죄가운데 살았구나가 아니라 이번주도 하나님의 은혜가 단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나를 지키셨구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지치고 피곤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으로 이 은혜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죄의 모습이 아닌 은혜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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