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굳게 잡으라

히브리서강해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52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해석

19 Ἔχοντες οὖν,* ἀδελφοί, παρρησίαν εἰς τὴν εἴσοδον τῶν ἁγίων ἐν τῷ αἵματι Ἰησοῦ,* 20 ἣν ἐνεκαίνισεν ἡμῖν ὁδὸν πρόσφατον καὶ ζῶσαν διὰ τοῦ καταπετάσματος,* τοῦτʼ ἔστιν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21 καὶ ἱερέα μέγαν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22 ⸀προσερχώμεθα μετὰ ἀληθινῆς καρδίας ἐν πληροφορίᾳ πίστεως ῥεραντισμένοι τὰς* καρδίας ἀπὸ συνειδήσεως πονηρᾶς καὶ λελουσμένοι τὸ σῶμα ὕδατι καθαρῷ·* 23 κατέχωμεν τὴν ὁμολογ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 ⸆ ἀκλινῆ,* πιστὸς γὰρ ὁ* ἐπαγγειλάμενος, *24 καὶ κατανοῶμεν ἀλλήλους ⸂εἰς παροξυσμὸν⸃ ἀγάπης καὶ καλῶν ἔργων,* 25 μὴ ⸀ἐγκαταλείποντες τὴν ἐπισυναγωγὴν ἑαυτῶν,* καθὼς ἔθος τισίν,* ἀλλὰ παρακαλοῦντες⸆, καὶ τοσούτῳ μᾶλλον ὅσῳ βλέπετε ἐγγίζουσαν τὴν ἡμέραν.*

26 Ἑκουσίως °γὰρ ἁμαρτανόντων ἡμῶν μετὰ τὸ λαβεῖν τὴν ἐπίγνωσιν τῆς ἀληθείας,* οὐκέτι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ἀπολείπεται θυσία, 27 φοβερὰ δέ τις ἐκδοχὴ κρίσεως* καὶ πυρὸς ζῆλος ἐσθίειν μέλλοντος τοὺς ὑπεναντίους.* 28 ἀθετήσας τις νόμον Μωϋσέως χωρὶς οἰκτιρμῶν ⸆ ἐπὶ δυσὶν ἢ τρισὶν μάρτυσιν ἀποθνῄσκει·* 29 πόσῳ δοκεῖτε χείρονος ⸀ἀξιωθήσεται τιμωρίας ὁ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αταπατήσας καὶ τὸ αἷμα τῆς διαθήκης κοινὸν ἡγησάμενος,* ⸋ἐν ᾧ ἡγιάσθη,*⸋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ῆς χάριτος ἐνυβρίσας;* 30 οἴδαμεν γὰρ τὸν εἰπόντα·*

Ἐμοὶ ἐκδίκησις, ἐγὼ ἀνταποδώσω⸆.*

καὶ πάλιν· ⸇

⸉Κρινεῖ κύριος⸊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31 φοβερὸν τὸ ἐμπεσεῖν εἰς χεῖρας θεοῦ ζῶντος.*

*32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ε δὲ τὰς πρότερον ⸀ἡμέρας, ἐν αἷς φωτισθέντες πολλὴν ἄθλησιν ὑπεμείνατε παθημάτων,* 33 τοῦτο μὲν ὀνειδισμοῖς τε καὶ θλίψεσιν ⸀θεατριζόμενοι,* τοῦτο δὲ κοινωνοὶ τῶν οὕτως ἀναστρεφομένων γενηθέντες.* 34 καὶ γὰρ τοῖς ⸀δεσμίοις συνεπαθήσατε καὶ τὴν ἁρπαγὴν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 ὑμῶν μετὰ χαρᾶς προσεδέξασθε γινώσκοντες ἔχειν ⸁ἑαυτοὺς κρείττονα ὕπαρξιν ⸆ καὶ μένουσαν.* 35 μὴ ἀποβάλητε οὖν τὴν παρρησίαν ὑμῶν,* ἥτις ἔχει μεγάλη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36 ὑπομονῆς γὰρ ἔχετε* χρείαν ἵνα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ποιήσαντες* κομίσησθε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37 ἔτι °γὰρ μικρὸν ὅσον ὅσον,*

ὁ ἐρχόμενος ἥξει καὶ οὐ χρονίσει·

38 ὁ δὲ δίκαιός ⸂μου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καὶ ἐὰν ὑποστείληται, οὐκ εὐδοκεῖ ⸉ἡ ψυχή μου⸊ ἐν αὐτῷ.

39 ἡμεῖς δὲ οὐκ ἐσμὲν ὑποστολῆς εἰς ἀπώλειαν ἀλλὰ πίστεω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ψυχῆς.*

19 Ἔχοντες οὖν,* ἀδελφοί, παρρησίαν εἰς τὴν εἴσοδον τῶν ἁγίων ἐν τῷ αἵματι Ἰησοῦ,*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가지고 있다.
20 ἣν ἐνεκαίνισεν ἡμῖν ὁδὸν πρόσφατον καὶ ζῶσαν διὰ τοῦ καταπετάσματος,* τοῦτʼ ἔστιν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그 길은예수께서 휘장을 통해서 새롭게(죽어서) 하셨다. 그런데 이 휘장은 그분의 육체다.
21 καὶ ἱερέα μέγαν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그런데 하나님의 집쪽으로 큰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어서,
22 ⸀προσερχώμεθα μετὰ ἀληθινῆς καρδίας ἐν πληροφορίᾳ πίστεως ῥεραντισμένοι τὰς* καρδίας ἀπὸ συνειδήσεως πονηρᾶς καὶ λελουσμένοι τὸ σῶμα ὕδατι καθαρῷ·*
우리가 악한 양심(사고체계)으로부터 마음을 뿌리고서 깨끗한 물로 몸을 씻어서 [풍성한] 확신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루살렘 성전에는 잿물로 씻는다. 암송아지 잿물이다. 하지만 깨끗한 물로 씻으라는 것은 그것에서 벗어나란 것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라
23 κατέχωμεν τὴν ὁμολογ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 ⸆ ἀκλινῆ,* πιστὸς γὰρ ὁ* ἐπαγγειλάμενος,
기울어지지 않는 소망의 고백을 잡자. 이는 약속하신 분이 미쁘시기 때문이다.
*24 καὶ κατανοῶμεν ἀλλήλους ⸂εἰς παροξυσμὸν⸃ ἀγάπης καὶ καλῶν ἔργων,* 25 μὴ ⸀ἐγκαταλείποντες τὴν ἐπισυναγωγὴν ἑαυτῶν,* καθὼς ἔθος(말하는 사람이 그러하기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관습 원리원칙) τισίν,* ἀλλὰ παρακαλοῦντες⸆, καὶ τοσούτῳ μᾶλλον ὅσῳ βλέπετε ἐγγίζουσαν τὴν ἡμέραν.*
24서로서로 잘 이해해야 사랑과 선행의 마찰이 일어나도록 해라.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원리원칙이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이해하라.점점더 [그만큼더]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하라.
- παροξυσμὸν는 옆에서 찌르다란ㄴ 뜻이다.
서로서로 잘이해해서 그 사람이 선한 일을 사랑을 하며 살수 있도록 매우 적극적으로 자극해라.
24절과 25절의 핵심은 서로 이해하라이다. 이해속에서 권면하라는 뜻이다.
26 Ἑκουσίως °γὰρ ἁμαρτανόντων ἡμῶν μετὰ τὸ λαβεῖν τὴν ἐπίγνωσιν τῆς ἀληθείας,* οὐκέτι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ἀπολείπεται θυσία, 27 φοβερὰ δέ τις ἐκδοχὴ κρίσεως* καὶ πυρὸς ζῆλος ἐσθίειν μέλλοντος τοὺς ὑπεναντίους.*
26 진리에 대해서 알게된 다음에 자발적으로(의도적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하면 더이상 죄에 대해서 제물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
매우 단호하게 말씀한다.
자발적인 죄, 의도적인 죄.
거룩함, 온전함을 우리는 마음에 두고 있는가.
물론 배교한 뒤, 회개한 후 돌아온 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에 합당한 권징을 받았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죄를 짓는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의 단한번의 제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속했다.
그러나 우리가 자발적으로 물흐르듯이 죄를 짓는 것은 그 제사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27 심판을 기대할수 밖에 없는 두려움과 불같은 질투가 불앞에 있는[대적하는] 자들에게 남아있다.
그 맹렬한 불같은 심판, 질투같은 심판앞에 설것인가.
아니면 믿음을 지키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는 하늘 성소로 들어갈 것인가.
28 ἀθετήσας τις νόμον Μωϋσέως χωρὶς οἰκτιρμῶν ⸆ ἐπὶ δυσὶν ἢ τρισὶν μάρτυσιν ἀποθνῄσκει·*
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들이 둘 혹은 셋의 증언에 기초해서 죽었다.
29 πόσῳ δοκεῖτε χείρονος ⸀ἀξιωθήσεται τιμωρίας ὁ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αταπατήσας καὶ τὸ αἷμα τῆς διαθήκης κοινὸν ἡγησάμενος,* ⸋ἐν ᾧ ἡγιάσθη,*⸋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ῆς χάριτος ἐνυβρίσας;*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그 피안에서 그가거룩하게 된 언약의 피를 속되다고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 사람이 얼마나 더 심한 값에 대해 합당하게 될 것인지를 생각을 해보시오.
30 οἴδαμεν γὰρ τὸν εἰπόντα·*
Ἐμοὶ ἐκδίκησις, ἐγὼ ἀνταποδώσω⸆.*
καὶ πάλιν· ⸇
⸉Κρινεῖ κύριος⸊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우리는 말씀하신 분을 알고 있다.
“나에게 디케에 맞게 보응하는 것이 있다. 나는 갚는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다.
*디케 : 정의 율법을 다스리는 여신으로 정의 율법, 법령을 말하는 단어.
주님의 백성에게는 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자녀에게는 얼마나 더 큰 의무가 있겠는가.
31 φοβερὸν τὸ ἐμπεσεῖν εἰς χεῖρας θεοῦ ζῶντος.*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두가지 경우를 표현한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다른하나는 그리스도께서 그사람에게 강하게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것으로 가는 과정을 표현
두가지가 비슷하게 보인다. 주님을 대적해서 깨지는 것. 주님께서그에게 역사해서 주님의 것으로 변해지는 과정도 그가 깨지는 과정이다.
여우리는 둘중 어떤 경우인가.
*32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ε δὲ τὰς πρότερον ⸀ἡμέρας, ἐν αἷς φωτισθέντες πολλὴν ἄθλησιν ὑπεμείνατε παθημάτων,* 33 τοῦτο μὲν ὀνειδισμοῖς τε καὶ θλίψεσιν ⸀θεατριζόμενοι,* τοῦτο δὲ κοινωνοὶ τῶν οὕτως ἀναστρεφομένων γενηθέντες.*
32너희는 비침을 받고서 많은 갈등[다툼] 고난을 인내한 날들을 생각해보라.
어떨때는 수치와 환란으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또 어떨때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자들의 친구라고 하는 취급을 당하고
자신이 수치를 당하기도하고, 그들과 한통속이라는 취급을 당했다.
34 καὶ γὰρ τοῖς ⸀δεσμίοις συνεπαθήσατε καὶ τὴν ἁρπαγὴν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 ὑμῶν μετὰ χαρᾶς προσεδέξασθε γινώσκοντες ἔχειν ⸁ἑαυτοὺς κρείττονα ὕπαρξιν ⸆ καὶ μένουσαν.*
그리고 갇힌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너희의 재물들을 강탈당함을 기쁘게 받았다. 왜냐면 더 좋은 계속될 재물이 있는줄 알았기 때문이다.
두가지 재물, 빼앗겼고, 빼앗길수 있는 재물, 결코 빼앗길수 없고 더 좋고 영원한 재물.
35 μὴ ἀποβάλητε οὖν τὴν παρρησίαν ὑμῶν,* ἥτις ἔχει μεγάλη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그러므로 담대함을 내버리지 마십시오. 그담대함이 큰 상[보상]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주님이 주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땅의 것인지, 하늘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36 ὑπομονῆς γὰρ ἔχετε* χρείαν ἵνα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ποιήσαντες* κομίσησθε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약속을 받아누리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아래쪽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처럼 짓밟힘을 당하더라도 머물러 있는 것이다.
37 ἔτι °γὰρ μικρὸν ὅσον ὅσον,*
ὁ ἐρχόμενος ἥξει καὶ οὐ χρονίσει·
아주 조금만큼, 그만큼이면 오시는 분이 오실것이다. 그리고 긴기간이 되게하지 않으실 것이다.
38 ὁ δὲ δίκαιός ⸂μου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καὶ ἐὰν ὑποστείληται, οὐκ εὐδοκεῖ ⸉ἡ ψυχή μου⸊ ἐν αὐτῷ.
그러나 내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의도를 가지고)방향을 바꾸면 내영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39 ἡμεῖς δὲ οὐκ ἐσμὲν ὑποστολῆς εἰς ἀπώλειαν ἀλλὰ πίστεω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ψυχῆς.*
그러나 우리는 방향을 바꾸는(뒤로 물러가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믿음에 속한자로서 생명을 보존할 자이다.
설교
서론
말씀드렸듯이 히브리서의 첫 수신자들, 당시의 성도들은 큰 환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람인 이상 그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고문과 끔찍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빠져나온다하더라도, 지금까지 모았던 재산을 억울하게 강탈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이에 비해 우리의 삶은 평안합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으로 세상을 우리를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때는 눈에 보이는 고난이 있었기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지만, 은밀히 우리를 공격하는 이 시대는 우리 스스로 공격받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스스로를 추스르며, 다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열어주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선 우리에게 몇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는 옛 생각,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는 새 것에 대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새 언약, 새로운 길, 두 번째 성전, 그 모든 새 것들의 탁월함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새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 것이 된다는 것은 옛 방식, 습관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새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구뿐 아니라 옷까지 싹 새 것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그 집은 어떻게 됩니까. 옛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집의 새 것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침대를 들여놔도, 나는 평생 바닥에서 잤으니 계속 바닥에서 잘거야 라고 하면 침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새집이 깨끗해도 청소를 잘 안하는 습관이 있다면 금방 더러워질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새 언약을 받고, 옛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22절에서 마음에 뿌림을 받았다는 말을 마음이 씻겨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악한 양심, 죄악에 속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음받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씻겼다는 말은 이해를 하겠는데, 몸이 맑은 물로 씻은 것과 우리가 새 것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제사 때, 사람을 정결하게 할 때 쓰이는 것은 맑은 물이 아닙니다. 암송아지의 재를 섞어 만든 잿물입니다. 잿물을 우슬초에 적셔 뿌리면 깨끗함을 얻습니다. 그것이 옛 제사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재가 아니라 맑은 물로 우리 몸이 씻겼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 새로운 방식으로 씻겼으니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몸에 밴 습관도 새로운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저 마음이나 말이 아닌 우리의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느 상황이든지, 우리가 믿는 대로, 훈련해온대로 움직일수 있는 상태입니다. 군인이 처음에 전쟁에 나가면 패닉에 빠집니다. 하지만 몸은 평소에 한 훈련을 기억하고 무의식중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전투를 수행하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몸이 옛 방식이 아닌, 새 방식으로 훈련하라고 오늘 본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소망의 고백, 다른 말로 소망의 믿음을 굳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23절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소망의 고백을 굳게 잡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믿고 있는 믿음을 소망가운데서, 굳게 잡으라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믿음은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정말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예배의 자리로 나아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옵니다. 내일 살아갈 것을 걱정하지만, 주일 예배에 나아와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나도 모르게 먼저 생각하며 챙기게 됩니다. 왜 우리가 그런 믿음을 지닐수 있습니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삶이 내 모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며,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면 믿음이 있다면, 그 때가 언제가 될까. 그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 때를 바라는 마음, 소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계속 기도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낙심해본 적 있지 않습니까? 낙심할 때, 주변사람의 도움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셋째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입니다.
처음에 미쁘신, 꼭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서로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부르시지 않고 함께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격려해야 할까요. 사실 격려라는 말은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좀더 적극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24절에서 격려라는 말은 원어로 옆과 찌르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럼 격려라는 말은 옆에서 푹 찔러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가지는 격려라는 이미지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격려라고 하면 감싸주고 다독거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정신을 차리도록 푹 찔러라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옆에서 찔러라는 말은 사랑과 선행이 서로 찔리게 해라는 말입니다. 겨울에 손이 시립니다. 그런데, 장갑도 없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형편도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을 비비죠. 그러면 열이 나서 좀 나아집니다. 사랑과 사랑을 격려해라는 말은 사랑과 선행을 서로 맞부딛혀 찔리게 해서 열이 팍팍 오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옆구리를 아프도록 푹 찔리면 순간 아프면서 화가, 다른 말로 열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 그런데, 무작정 이렇게 찔러야 할까요? 옆사람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성경에서 찌르라고 하니까 찌르자. 하고 팍팍, 옆구리에 피멍이 들든지 말든지 찔러야 할까요. 그래서 24절 상반절에 서로 돌아보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서로 돌아보라는 말은 이해하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서로를 보는 것만 아니라 서로의 상황을 따라 이해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냥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상황은 어떤지, 그렇다면 어느 부분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 그래서 그 사람처럼 되어서 이해하다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옆을 찌르는 것이 격려라고 했습니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찌르게 되어서 열이 나게 되고, 그래서 사랑과 선행을 안하면 안되겠구나 라는 상태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 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격려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 된다면,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그 사람이 격려를 받고 열이, 힘이 나서 다시 일어서게 될까요. 찔려서 마음아파하고 상처를 받게 될까요.
이해없는 격려는 사랑의 격려가 아닌 공격일 뿐입니다. 그래서 24절은 먼저 서로 돌아보아서 이해하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그 사람을 돌아보고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격려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고 믿음과 소망을 가지는 것도 힘든데, 서로를 정말 면밀하게 살펴서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로서 사랑과 선행을 이어갈 것을 적극적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리 저리 다 살피나. 나도 사랑과 선행이 안되는데, 무슨 옆의 형제 자매에게 격려를 해야 하나.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실 날, 아니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로 갈 그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먼저 일지는 모릅니다. 또한 그날 전에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예수께서 이땅에 성육신 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그날은 분명히 다시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날, 하나님 앞에서 설 그날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옛 방식에서 벗어납시다.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나뿐 아니라 주위 형제들을 격려하여 함께 달려갑시다. 그것이 35절에 말씀하시는 큰 상을 향한 길입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악한 양심, 죄에 매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믿음과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서로를 이해하여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인 것처럼 온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일입니다.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질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26절부터 31절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다. 결코 죄의 노예로 돌아갈수 없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삶을 뒤돌아봐라고 32절부터 34절까지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니 어떻습니까.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까. 저렇게 살아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소유를 포기하고 하늘의 영원한 소유를 쌓고 있습니다. 물론 시험에 들때도 있었고, 넘어졌던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지나, 여기 이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부담감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마지막, 39절에서 우리가 어떤 자인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가 벌써 믿음을 가졌으니,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며, 오늘 말씀처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