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7.수요예배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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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종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ㅇ찬송가 91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ㅇ방재숙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ㅇ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 8장 6절입니다. 신약 360페이지입니다. 교독하겠습니다.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서론앞서 살펴본 7장은 그리스도 예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직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그 직무와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본론오늘 본문 8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신지 말하며 시작합니다. 그분은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 누구도 앉지 못하는, 거룩한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동시에 2절을 통해 그분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합니다.우리의 구주께서는 하늘의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로 계시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라는 지극히 높은 곳에 있지만 동시에 그분의 직무인 중보를 결코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장막에서 섬긴다는 것은 제사장의 직무 그자체를 뜻합니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일하다, 돕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높은 곳에서도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장막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보면 하늘 성전이 건물로 표현된 것이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곳도 휘장안입니다. 지금도 장막으로 표현합니다. 휘장은 헬라어로 펄럭인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성전이 건물이라면, 성전문을 닫으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막이라면, 밑으로 기어서라도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막은 움직일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움직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긴 것이 장막, 쉬운말로 텐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막, 이 텐트는 유대인의 삶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유목을 했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집을 지어 사는 것보다 텐트에서 사는 것이 익숙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장막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 성전이 아닌 하늘 성막을 지어놓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전을 우리와 함께 만들어가시기를 원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라는 -22절의 말씀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막에서 섬기는 자로서 직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의 무엇을 섬기고 돕는 것입니까. 그것은 6절에 나와있습니다.여기서 나오는 직분이라는 단어는 예배, 사역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직분은 바로 예배의 직분입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이 예배가 끝나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휘장안에 들어가서 아직도 나오고 있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잃은 양들을 찾고, 그 양들이 모두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한마음으로 한 성령안에서 예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그리고 이제는 그 예배를 돕고 섬기는 자로서 우리 곁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께서는 더 아름다운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이렇게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누구보다 우리와 가까이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더 좋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기에 우리 한명한명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가 이제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도 더 좋은 예배를 드리는 분이십니다. 그저 염소, 양, 소의 살과 피가 아닌, 자신의 살과 피로 드렸고, 또한 우리와 성령을 통해 진정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실 만한 예배를 지금도 드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이를 통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예배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물론 이땅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완전하지 않기에 우리는 예배속에서 은혜를 느낄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는데, 그 임재는 전혀 느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기 카톨릭은 매우 엄숙하고 장엄한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예배중간중간 의식도 많습니다. 신부들의 복장도 엄숙합니다. 화려하고 웅장해보입니다. 불교는 어쨌든 형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경배드리는 대상이 이렇다는 것을 눈으로 직관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공통적으로 이 둘은 종교의식중 볼거리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앞에 있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이 십자가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 있습니다. 진짜 예배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입으로 찬양하고 말씀을 읽고 듣는 것밖에 없습니다.우리의 예배에는 보는 것이 빠져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보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들은 보는 것에 매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조명부터 시작해서 어떤 교회들은 이 화면을 통해 여러 가지 자료를 띄우기도 합니다. 교회뉴스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배가 끝나지 않은 광고시간에 말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보는 것이 없는 예배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은 성소에서 우리를 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해야할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예배할 수있겠습니까.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그래서 히브리서는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제사, 로마의 카타콤에서 수만의 군중들에게 둘러쌓여 죽어가는 우리의 처참한 모습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니란 것을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바로 믿음으로, 하늘 장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장막은 5절에 말했듯이 이전에 모세가 보았던 장막입니다. 우리는 그 장막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그 어떤 예배보다 탁월한 예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섬기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와 말씀, 찬양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본질에 집중하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성도들은 유대인으로 오래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켰던 그 모든 계명과 말씀들은 무의미한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7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새언약이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것도 새언약이다. 이런 말을 하는 배경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구약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성도들에게 구약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 그들은 이 말씀을 핑계삼아 다시 유대교로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만큼 환난이 심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구약, 오래된 약속이지만, 그들에게는 현재의 약속이며, 몇 년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평생을 지켰던 약속입니다. 오히려 새언약보다 더욱 익숙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기에 13절을 말한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에게 8절에서 12절까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합니다. 왜냐면 예레미야서의 중요한 주제는 성전훼파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때 유대인들이 그렇게 완고했던 이유가 성전이 파괴될 리가 없다는 믿음이 큰 이유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 예레미야서에 새 언약에 대해 적혀 있음을 히브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너희가 아직도 헷갈려하는 그 예루살렘 성전이 벌써 한번 무너졌던 성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전이 아니라 그 성전을 성전되게한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란 사실을 말하는 것이 8절에서 1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커녕 평생 한번도 이스라엘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모여있는 이 교회가 세상이 아닙니까. 세상에 속해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세상이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처음에는 매일 모여서 그렇게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애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도 나중에는 매일 못모이고 주일에 모였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러했는데, 우리가 별다를게 있겠습니까. 우리도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 말했던 가톨릭과 불교의 종교의식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세상에서 수많은 볼 것들과 할 것들속에 파묻혀서 있다고 옵니다. 당연히 볼것이 없는 예배가 참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예배는 새언약의 예배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예배이며, 그 섬김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장막에서 제사장으로 우리를 돕고 계시는 예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예배의 탁월성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보이는게 없고, 너무 오래 이렇게 해왔기에 변화를 주어야 하고, 그래서 새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배때 어떻게 새마음과 새뜻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니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결론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나 중보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그 중보의 절정은 하늘 장막에서 예배의 중보자로 계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좋은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하나님께도 더욱 나은 예배를 드리는 분이십니다.그러나 우리가 모이는 이 장소보다 더욱 멋지고 아름답고 웅장한 장소, 우리가 보기에 더욱 나아보이는 예배처소는 많습니다. 다른 종교들의 예배장소를 보십시오. 온갖것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에 있는 성막을 말합니다. 건물이 아닌 텐트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텐트는 모세가 보았던 것이며, 우리의 최초이자 본질적인 예배의 처소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장막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약속에 근거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로서 더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이 예배는 우리에게 더 좋은 예배이며, 하나님께도 더욱 기쁜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에는 보는 것이 빠져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예배는 사람이 보기에 혹하고 뭔가 거룩해 보이고 압도할만한 것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온전히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삼으며 예배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안에서 예배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는 새언약,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예배입니다. 더 좋은 예배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너무도 많지만, 그 웅장함과 화려함은 천국의 그 어떤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추구하고, 사람의 눈에 멋져보이고 있어보이는 것이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험한 십자가의 자리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그래서 천국의 기쁨이 우리의 예배와 예배가 되는 우리의 삶의 언제나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ㅇ이번주 목요전도는 1남전도회입니다. ㅇ이번주 금요기도회 특송은 아브라함, 모세, 안나, 루디아입니다.ㅇ2남전도회 주관 가족찬양대회가 있습니다. 7월 7일 주일 저녁예배후에 하며 대상은 3인 이상 가족입니다. ㅇ2019년 부서별 여름성경학교 및 수련회가 진행됩니다. 주보를 참고하시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ㅇ1여전도회 6월 한달 연속 철야기도가 있습니다. ㅇ환우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41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나라이 임하옵시며,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아멘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손잡으시고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
종
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ㅇ찬송가 369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ㅇ김금자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
ㅇ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신약 363페이지입니다. 교독하겠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앞서 살펴본 7장은 그리스도 예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직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그 직무와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드렸듯이 히브리서의 첫 수신자들, 당시의 성도들은 큰 환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람인 이상 그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고문과 끔찍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빠져나온다하더라도, 지금까지 모았던 재산을 억울하게 강탈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본론
오늘 본문 8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신지 말하며 시작합니다. 그분은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 누구도 앉지 못하는, 거룩한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동시에 2절을 통해 그분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삶은 평안합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으로 세상을 우리를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때는 눈에 보이는 고난이 있었기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지만, 은밀히 우리를 공격하는 이 시대는 우리 스스로 공격받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하늘의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로 계시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라는 지극히 높은 곳에 있지만 동시에 그분의 직무인 중보를 결코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장막에서 섬긴다는 것은 제사장의 직무 그자체를 뜻합니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일하다, 돕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높은 곳에서도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스스로를 추스르며, 다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장막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보면 하늘 성전이 건물로 표현된 것이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곳도 휘장안입니다. 지금도 장막으로 표현합니다. 휘장은 헬라어로 펄럭인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성전이 건물이라면, 성전문을 닫으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막이라면, 밑으로 기어서라도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막은 움직일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움직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긴 것이 장막, 쉬운말로 텐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막, 이 텐트는 유대인의 삶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유목을 했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집을 지어 사는 것보다 텐트에서 사는 것이 익숙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론
성전이 장막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 성전이 아닌 하늘 성막을 지어놓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전을 우리와 함께 만들어가시기를 원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열어주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선 우리에게 몇가지를 요구합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첫째는 옛 생각,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지금까지 히브리서는 새 것에 대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새 언약, 새로운 길, 두 번째 성전, 그 모든 새 것들의 탁월함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새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 것이 된다는 것은 옛 방식, 습관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라는
우리가 새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구뿐 아니라 옷까지 싹 새 것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그 집은 어떻게 됩니까. 옛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집의 새 것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침대를 들여놔도, 나는 평생 바닥에서 잤으니 계속 바닥에서 잘거야 라고 하면 침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새집이 깨끗해도 청소를 잘 안하는 습관이 있다면 금방 더러워질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새 언약을 받고, 옛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22절의 말씀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22절에서 마음에 뿌림을 받았다는 말을 마음이 씻겨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악한 양심, 죄악에 속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음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막에서 섬기는 자로서 직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의 무엇을 섬기고 돕는 것입니까.
그것은 6절에 나와있습니다.
마음이 씻겼다는 말은 이해를 하겠는데, 몸이 맑은 물로 씻은 것과 우리가 새 것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여기서 나오는 직분이라는 단어는 예배, 사역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직분은 바로 예배의 직분입니다.
제사 때, 사람을 정결하게 할 때 쓰이는 것은 맑은 물이 아닙니다. 암송아지의 재를 섞어 만든 잿물입니다. 잿물을 우슬초에 적셔 뿌리면 깨끗함을 얻습니다. 그것이 옛 제사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재가 아니라 맑은 물로 우리 몸이 씻겼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이 예배가 끝나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휘장안에 들어가서 아직도 나오고 있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잃은 양들을 찾고, 그 양들이 모두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한마음으로 한 성령안에서 예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 새로운 방식으로 씻겼으니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몸에 밴 습관도 새로운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저 마음이나 말이 아닌 우리의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느 상황이든지, 우리가 믿는 대로, 훈련해온대로 움직일수 있는 상태입니다. 군인이 처음에 전쟁에 나가면 패닉에 빠집니다. 하지만 몸은 평소에 한 훈련을 기억하고 무의식중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전투를 수행하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몸이 옛 방식이 아닌, 새 방식으로 훈련하라고 오늘 본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예배를 돕고 섬기는 자로서 우리 곁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께서는 더 아름다운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둘째로 소망의 고백, 다른 말로 소망의 믿음을 굳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누구보다 우리와 가까이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더 좋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기에 우리 한명한명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23절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소망의 고백을 굳게 잡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믿고 있는 믿음을 소망가운데서, 굳게 잡으라는 뜻입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믿음은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정말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예배의 자리로 나아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옵니다. 내일 살아갈 것을 걱정하지만, 주일 예배에 나아와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나도 모르게 먼저 생각하며 챙기게 됩니다. 왜 우리가 그런 믿음을 지닐수 있습니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삶이 내 모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며,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가 이제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도 더 좋은 예배를 드리는 분이십니다. 그저 염소, 양, 소의 살과 피가 아닌, 자신의 살과 피로 드렸고, 또한 우리와 성령을 통해 진정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실 만한 예배를 지금도 드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면 믿음이 있다면, 그 때가 언제가 될까. 그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 때를 바라는 마음, 소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계속 기도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낙심해본 적 있지 않습니까? 낙심할 때, 주변사람의 도움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를 통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예배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셋째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입니다.
물론 이땅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완전하지 않기에 우리는 예배속에서 은혜를 느낄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는데, 그 임재는 전혀 느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 미쁘신, 꼭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서로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기 카톨릭은 매우 엄숙하고 장엄한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예배중간중간 의식도 많습니다. 신부들의 복장도 엄숙합니다. 화려하고 웅장해보입니다. 불교는 어쨌든 형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경배드리는 대상이 이렇다는 것을 눈으로 직관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공통적으로 이 둘은 종교의식중 볼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앞에 있는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이 십자가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 있습니다. 진짜 예배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입으로 찬양하고 말씀을 읽고 듣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부르시지 않고 함께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에는 보는 것이 빠져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보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들은 보는 것에 매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조명부터 시작해서 어떤 교회들은 이 화면을 통해 여러 가지 자료를 띄우기도 합니다. 교회뉴스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배가 끝나지 않은 광고시간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격려해야 할까요. 사실 격려라는 말은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좀더 적극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24절에서 격려라는 말은 원어로 옆과 찌르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럼 격려라는 말은 옆에서 푹 찔러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가지는 격려라는 이미지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격려라고 하면 감싸주고 다독거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정신을 차리도록 푹 찔러라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옆에서 찔러라는 말은 사랑과 선행이 서로 찔리게 해라는 말입니다. 겨울에 손이 시립니다. 그런데, 장갑도 없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형편도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을 비비죠. 그러면 열이 나서 좀 나아집니다. 사랑과 사랑을 격려해라는 말은 사랑과 선행을 서로 맞부딛혀 찔리게 해서 열이 팍팍 오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옆구리를 아프도록 푹 찔리면 순간 아프면서 화가, 다른 말로 열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보는 것이 없는 예배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은 성소에서 우리를 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해야할 대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예배할 수있겠습니까.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제사, 로마의 카타콤에서 수만의 군중들에게 둘러쌓여 죽어가는 우리의 처참한 모습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니란 것을 말했습니다.
자, 그런데, 무작정 이렇게 찔러야 할까요? 옆사람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성경에서 찌르라고 하니까 찌르자. 하고 팍팍, 옆구리에 피멍이 들든지 말든지 찔러야 할까요. 그래서 24절 상반절에 서로 돌아보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히려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바로 믿음으로, 하늘 장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장막은 5절에 말했듯이 이전에 모세가 보았던 장막입니다. 우리는 그 장막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서로 돌아보라는 말은 이해하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서로를 보는 것만 아니라 서로의 상황을 따라 이해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냥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상황은 어떤지, 그렇다면 어느 부분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 그래서 그 사람처럼 되어서 이해하다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앞에서 옆을 찌르는 것이 격려라고 했습니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찌르게 되어서 열이 나게 되고, 그래서 사랑과 선행을 안하면 안되겠구나 라는 상태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라 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그 어떤 예배보다 탁월한 예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섬기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와 말씀, 찬양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본질에 집중하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격려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 된다면,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그 사람이 격려를 받고 열이, 힘이 나서 다시 일어서게 될까요. 찔려서 마음아파하고 상처를 받게 될까요.
그런데 그 당시 성도들은 유대인으로 오래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켰던 그 모든 계명과 말씀들은 무의미한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해없는 격려는 사랑의 격려가 아닌 공격일 뿐입니다. 그래서 24절은 먼저 서로 돌아보아서 이해하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그 사람을 돌아보고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격려하라는 뜻입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7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새언약이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것도 새언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고 믿음과 소망을 가지는 것도 힘든데, 서로를 정말 면밀하게 살펴서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로서 사랑과 선행을 이어갈 것을 적극적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리 저리 다 살피나. 나도 사랑과 선행이 안되는데, 무슨 옆의 형제 자매에게 격려를 해야 하나.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배경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구약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성도들에게 구약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 그들은 이 말씀을 핑계삼아 다시 유대교로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만큼 환난이 심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구약, 오래된 약속이지만, 그들에게는 현재의 약속이며, 몇 년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평생을 지켰던 약속입니다. 오히려 새언약보다 더욱 익숙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기에 13절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8절에서 12절까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합니다. 왜냐면 예레미야서의 중요한 주제는 성전훼파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때 유대인들이 그렇게 완고했던 이유가 성전이 파괴될 리가 없다는 믿음이 큰 이유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 예레미야서에 새 언약에 대해 적혀 있음을 히브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실 날, 아니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로 갈 그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먼저 일지는 모릅니다. 또한 그날 전에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예수께서 이땅에 성육신 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그날은 분명히 다시 올 것입니다.
너희가 아직도 헷갈려하는 그 예루살렘 성전이 벌써 한번 무너졌던 성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날, 하나님 앞에서 설 그날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옛 방식에서 벗어납시다.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나뿐 아니라 주위 형제들을 격려하여 함께 달려갑시다. 그것이 35절에 말씀하시는 큰 상을 향한 길입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전이 아니라 그 성전을 성전되게한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란 사실을 말하는 것이 8절에서 1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커녕 평생 한번도 이스라엘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결론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모여있는 이 교회가 세상이 아닙니까. 세상에 속해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세상이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처음에는 매일 모여서 그렇게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애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도 나중에는 매일 못모이고 주일에 모였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러했는데, 우리가 별다를게 있겠습니까. 우리도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 말했던 가톨릭과 불교의 종교의식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세상에서 수많은 볼 것들과 할 것들속에 파묻혀서 있다고 옵니다. 당연히 볼것이 없는 예배가 참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악한 양심, 죄에 매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믿음과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서로를 이해하여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삶을 통해 훈련된 방식인 것처럼 온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일입니다.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배는 새언약의 예배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예배이며, 그 섬김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장막에서 제사장으로 우리를 돕고 계시는 예배입니다.
이 때문에 26절부터 31절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다. 결코 죄의 노예로 돌아갈수 없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예배의 탁월성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보이는게 없고, 너무 오래 이렇게 해왔기에 변화를 주어야 하고, 그래서 새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배때 어떻게 새마음과 새뜻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니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결론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삶을 뒤돌아봐라고 32절부터 34절까지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니 어떻습니까.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까. 저렇게 살아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소유를 포기하고 하늘의 영원한 소유를 쌓고 있습니다. 물론 시험에 들때도 있었고, 넘어졌던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지나, 여기 이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나 중보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그 중보의 절정은 하늘 장막에서 예배의 중보자로 계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좋은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하나님께도 더욱 나은 예배를 드리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부담감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10장 마지막, 39절에서 우리가 어떤 자인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이는 이 장소보다 더욱 멋지고 아름답고 웅장한 장소, 우리가 보기에 더욱 나아보이는 예배처소는 많습니다. 다른 종교들의 예배장소를 보십시오. 온갖것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에 있는 성막을 말합니다. 건물이 아닌 텐트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텐트는 모세가 보았던 것이며, 우리의 최초이자 본질적인 예배의 처소임을 말합니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리고 그 장막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약속에 근거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로서 더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이 예배는 우리에게 더 좋은 예배이며, 하나님께도 더욱 기쁜 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에는 보는 것이 빠져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의 예배는 사람이 보기에 혹하고 뭔가 거룩해 보이고 압도할만한 것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온전히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증거삼으며 예배합니다.
우리가 벌써 믿음을 가졌으니,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며, 오늘 말씀처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안에서 예배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는 새언약,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예배입니다. 더 좋은 예배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너무도 많지만, 그 웅장함과 화려함은 천국의 그 어떤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추구하고, 사람의 눈에 멋져보이고 있어보이는 것이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험한 십자가의 자리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의 기쁨이 우리의 예배와 예배가 되는 우리의 삶의 언제나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
ㅇ이번주 목요전도는 2여전도회입니다.
ㅇ이번주 금요기도회 특송은 3교구입니다.
ㅇ2남전도회 주관 가족찬양대회가 있습니다. 7월 7일 주일 저녁예배후에 하며 대상은 3인 이상 가족입니다.
ㅇ2019년 부서별 여름성경학교 및 수련회가 진행됩니다. 주보를 참고하시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ㅇ새가정부 수련회가 이번주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있습니다. 장소는 경주 성호리조트이며 금요일 오후 1시에 출발합니다. 해당되시는 분들은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ㅇ환우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384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손잡으시고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