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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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지시해야한다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 하심 (4 : 13-5 : 11)’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지식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대부분은 현재 상황이나 과거의 사건을 집중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가 지금 사는 방식을 지시해야한다는 사실로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미래 사건의 확실성에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17은 앞절과 이어지는 연속성은 겸손의 주제이다. 겸손은 진실로 지혜로운 자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은혜를받는 자세이다(4 : 6). 그것은 회개의 묘사에서 명령 받았다 (4:10). 겸손의 반대는이 새로운 구절 직전의 질문에 암시된다. "그러나 네가 - 네가 이웃을 판단 하겠느냐?"야고보는 겸손의 반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만이라고 부른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분이시다.
같이 공부했던 박사님이 화재로 소천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하루하루를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루가 소중하다. 그 소중한 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미움으로 살아간다면 그건 분명 교만인 것이다.
거만하지 말라. (4 : 13-17) 앞절과 이어지는 연속성은 겸손의 주제이다. 겸손은 진실로 현자의 특징입니다 (3:13). 하나님의 은혜를받는 자세입니다 (4 : 6). 그것은 회개의 묘사에서 명령 받았다 (4:10). 겸손의 반대는이 새로운 구절 직전의 질문에 암시됩니다. "그러나 네가 - 네가 이웃을 판단 하겠느냐?"야고보는 겸손의 반대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만이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정말 교만으로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겸손을 배우며 안개같은 인생에서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날로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되길 바란다.
디벨리우스는이 구절과 이전 구절 (1976 : 230) 사이의 문학적 연결을 강조하고있다. 데이비드는 또한 주제의 연속성을 놓치고 4 : 1-12 (1982 : 171)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안다. 그는 아마도 호이 레턴 톤 (hoi legontes)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지나치게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와 율법은 야고보에 의해 다루어 진 두 개의 별개의 계급을 안다 : 4 : 13-17의 상인과 5 : 1-6의 부유 한 집주인. 법령은 emporeusometha라는 용어 ( "사업을 계속 함")와 제임스가이 단계에서 충분히 교회의 일원이되지는 않았을 여행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는 수사적 인 주소 "지금 오라!"로 끝난다. 숫자는 기독교인의 그룹으로 골라 내야한다 (1980 : 190). 그렇다면 제임스는 실제로 편지를 읽는 크리스천들의 이익을 위해 교회 밖에서 수사 학적으로 사람들을 언급 할 것입니다. 야고보가 그들에게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삼가고 그들에 대해 명확한 기독교 적 언급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가능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데이빗은 제임스가 교회의 일부가 아닌 "부유 한"사람들에게 수사적으로 연설하기 위해 (5 : 1에서와 같이) 복수형을 예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견지에서 절에있는 "plousioi"라는 용어의 회피는 그가 기독교 공동체 내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우리에게이 중요한 부분에 대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분이 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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