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9.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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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28절 29절 말씀입니다. 신약 367페이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6교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오늘 본문은 우리가 걸을 길,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이라는 진영 밖으로 나간 선진들처럼 우리 역시 이 길로 걸어갈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에서 지치고 뒤처지고 주저 앉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히브리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늘 본문, 시내산과 시온산을 비교하는 것이 히브리서 전체를 해석하는 틀로서 작용을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과 우리 자신을 살필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1절은 먼저 우리를 돕는 증인들이 구름같이 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을 증인이라고 칭한 것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경주를 이미 마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하는 경주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론
그러나 우리를 방해하는 죄는 매우 끈질깁니다.
세상은 우리의 경주에 걸리적거리는 것을 끊임없이 놓습니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제사장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죄는 매우 끈적하며 잘 달라붙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그 틈을 결코 놓치지 않고 달라붙습니다. 또한 내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도, 그 끈적함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가 기회만 되면 달라붙습니다.
그 이전까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언약은 정확히 말하면 족장 개인과 하나님과의 1:1의 언약, 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의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천사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이 모세오경을 부인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시내산 언약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내산 언약이 없으면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제사는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의 방해와 죄의 끈적거림 속에서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해나가기란 힘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2절에서 우리의 구주를 말합니다. 왜냐면 믿음의 경주를 먼저 하신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우리에게는 경주라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담긴 경주를 경주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저자는 은연중에 모세가 맺었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세우신 언약을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히브리서의 마지막을 가며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2절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믿음의 조물주이며 완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말그대로 믿음을 만드신 분이시고 믿음을 완성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지난 시간 설명했듯이 믿음의 삶이란 세상이란 진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안주하고 있던 것에서 나와서 예수님께서 가신 험하고 좁은 길로 가는 삶입니다. 험하고 좁은 길입니다. 지금까지 탄탄대로라고 생각되던 길을 가던 사람이 이 길을 가기가 쉽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차를 타고 간다면, 고속도로를 놔두고 비포장도로로 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하는 말은 너희가 간 곳, 너희가 도착한 곳은 그곳이 아니다입니다. 우리말로는 19절에 있는 ‘이른 곳이 아니라’라는 표현입니다.
그래, 이 길은 정말 좁고 험한 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던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이정표나 목적지가 있는 길도 아니다. 하지만 길을, 바닥만 보고 걷지 말고 눈을 들어 앞을 봐라. 누가 있느냐.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선두에서 달려가고 계시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해 길을 만들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좁고 험한 길이라고 투덜대고 힘들어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예 길을 새로 만들고 계시지 않느냐. 그러니, 이 길로 가자. 힘을 내서 이 길을 가자 라고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2절 마지막에 말하듯이, 이 길 끝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3절 4절에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길을 만드셨나. 예수님을 적대하는 죄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참으시고, 인내로서 이 길을 개척하시지 않았느냐? 너희는 그렇게 죄와 싸우며, 피흘려 목숨을 걸고 이 생명의 길로 가고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벌써 목숨을 바치셨다. 그런데 너희는 길을 나선지, 이 길로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못하겠다고 투정부리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서두에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목표로 나아갈 곳은 시내산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와 살로 새롭게 개척하신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좁고 험한 길입니다. 시선을 예수님께로 고정하지 않으면 결국 비틀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시내산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불이 활활 타고 있지만 암흑과 어둠이 완전히 덮고 있는 곳입니다. 폭풍이 불어오고 나팔소리와 말소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음성이 들리는 곳입니다. 20절의 말씀은 출애굽기 19장 12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언약을 맺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바로 근방에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올라갈 수 있는 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을 때, 그 산은 짐승조차 올라갈 수 없는, 불과 암흑, 폭풍이 가득한 산이 되었습니다. 마치 한 밤중에 폭발하는 화산과 같은 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를 향해 먼저 질책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너희가 지금 비틀대고 힘들어서 못하겠다,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는 이 길이 어떤 희생, 댓가를 치르고 이루어진 길인지 아느냐라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것이 5절부터 11절까지 이어지는 징계라는 주제에서 나옵니다. 사실 이 징계라는 말은 훈련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 더욱 이해하기 쉽습니다. 정확히 이 징계란 말은 옛날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분명 다른 것을 배우러왔는데, 가르쳐 줘야 할 것은 가르치지 않고 온갖 것을 시키며, 여러 방식으로 시험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줍니다. 어떤 때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그래서 힘들어 할때는 모르는 척 눈앞에서 가르쳐줄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힘으로 터득하게 합니다. 그렇게 쌓인 지식은 어떻게 됩니까. 단순히 머리로 얻는 지식이 아닌 몸에 새겨지는 지혜가 됩니다. 그렇게 제자의 몸과 마음이 자신이 가르칠 것으로 완전히 준비되고 가르칠 것이 새겨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본 징계란 단어의 뜻입니다.
이것이 시내산 언약때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백성은 왕을 섬길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볼 자격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약도 모세가 대신 올라가서 체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을 때, 백성을 대표해서 올라간 모세조차도 두려워서 떨어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 사람의 인지를 초월한 무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초월한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가 금송아지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 쉽습니까.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 벅참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과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시내산 언약은 왕과 백성의 봉신관계를 상징하는 언약이었지만, 그 시작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방법은 제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의 언약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모님과 다른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 자녀란 특히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단순히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인맥과 관계, 유무형의 모든 것을 다 이어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업을 잇는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업을 잇기를 원하십니다. 당연히 우리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언약은 전혀 다르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시내산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시온산에 있습니다. 그곳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도시입니다. 마치 태초에 아담이 그랬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직접받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회는 하늘책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이 말은 그곳에서 기업을 물려받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다 똑같이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민의 심판자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심판자라는 말은 재판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하늘의 장자가 아닌 자에게는 시내산에서 임하셨던 것처럼 심판하실 것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온전케된 의인들의 영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픔도 어떤 질고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완전하신 다스리심만이 온전히 임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힘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패잔병처럼 되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더 이상 이 길로 못가겠다라고 주저앉거나, 세상의 방식을 적당히 섞어서 이 길로 가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타협을 하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수 있겠습니까. 우리말 표현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업을 이을수 있겠습니까.
시내산과 시온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변호사를 통해서만 판사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판사에게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할 정도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과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이전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하나님께도 나아갈 수없고, 세상에서도 먹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 어떤 누구에게도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2절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우리에게 친근한 표현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축 처진 어깨를 바로하고 풀린 다리에 다시 힘을 주라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며, 이미 승리의 길을 달려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25절에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힘을 내십시오. 힘없이 축 처진 어깨를 바로 하십시오. 그런 패배감을 가져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패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왜 승리한 우리가 힘없이 축 쳐져 있습니까.
그래도 걷기 힘듭니까. 그 길을 가기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달려나가기가 힘이 드십니까. 13절에 뭐라고 합니까.
거역하다라는 말은 비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역은 싫어요라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이런 말입니다. ‘에이~ 그렇게 말고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껴가는 것입니다. 비슷하고, 마주친 것같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라.
시내산에 있는 자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안에 있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하나님을 배반, 다른말로 하나님에게서 돌아선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희 발이 똑바로 되도록 길을 맞추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천국백성이 된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결코 하나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뭐라고요? 뭐를 맞추라고요? 네, 길을 맞추어라! 그 길을 달려갈 수 있도록 발에 힘을 주라, 발을 맞추라는 말이 아닙니다. 길을 맞추어라! 어디까지 길을 맞춥니까. 나만 똑바로 달릴수 있을정도면 됩니까. 아닙니다.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멸망해도,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고침을 받을 만큼 맞추어라 라는 말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힘들게 하느냐? 그 세상을 바꾸어라! 세상에 너희를 맞추지 마라. 반대로 세상을 너희에게 맞추어라! 라고 히브리서는 당당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늘 아버지의 품안에 있고, 이제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지만 흔들립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지금도 우리의 본질은 하늘에 있지만, 실제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브리서를 읽는 사람들, 그 때 당시 핍박받고 순교하던 사람들에게 이런 힘과 능력이 있습니까. 이런 권력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있습니까.
현재 우리나라는 위기가운데 있습니다. 믿는 우리 역시 흔들리고 있는 이 땅위에 있기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독이는 말도 있고 불안해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할까요. 왜냐면 우리가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11장에 이야기했듯이 벌써 이 믿음의 길을 다 걷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증인들이 구름같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인들은 저 멀리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마라톤의 마지막 지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코스를 달리는 주자들을 응원하듯이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응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나라가 흔들리고 민중들이 불안해한다고 함께 불안해하지 말라. 그 대열에 동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구주께서 앞서달려가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가 눈앞에 있다. 그런데, 왜 세상에 너를 맞추려고 하느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능력없는 분이시냐. 이 길로 달려가기 위해 너희를 훈련시키신 아버지께서 그렇게 보잘 것 없는 분이시냐!
그러니 담대하게 나가라. 세상에게 너희를 맞추지 마라! 오히려 너희가 이 어두운 세상의 기준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 라고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담대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8절에 흔혜를 받자라는 말은 감사하자라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두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경건함과 하나님경외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이 업을 잇게 하신 아버지께 물어봅시다. 그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구주께서는 이미 세상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세상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세상보다 크신 분이 세상에 맞출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담대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담대함으로 굽은 어깨를 펴고, 풀린 다리에 다시 한번 힘을 주고 일어나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앞서 달리신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이 땅은 흔들리지만, 하나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원수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심판하실 거룩하신 전능자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분명 불안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서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감사함으로 나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때는 제자들이 가장 흔들리고 불안하고 낙심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있었기에 제자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흔들린다고 세상에 장단을 맞추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 그 평강을 서로에게 권면하며, 담대함과 감사함을 구합시다. 그래서 언제나 은혜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오히려 이 흔들림을 통해 이 나라의 죄악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길수 있게 되기를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든든한 자녀들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청년1부 수련회
다음세대축제와 태신자 전도주일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