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쁨을 선택하며 기도로 평강을 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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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빌립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조금 살펴보면,
로마의 카이사르가 살해된 후 뒤이어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물리치고, 로마 황제의 자리(가이사 아구스도)에 오른다.
그리고 나서 그는 빌립보시에 많은 로마 군인들, 제대 군인들, 로마에서 쫓겨난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을 거주시켰다. 그래서 빌립보를 로마의 특별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 시민들을 로마의 시민들로 대우하여 로마인들에게 부여했던 동일한 특권을 그들에게도 부여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 내의 로마인들에게 부여했던 동일한 특권을 그들에게도 부여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식민지의 시민들이지만, 로마시민들과 똑같은 특권을 누리는 특별한 시민들이 되었다. 이때부터 빌립보의 주민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재판권을 가질 수 있었으며 당시 악명이 높던 인두세와 토지세를 감면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다. 그들은 빌립보를 자랑했고, 로마의 시민이 된 것을 자랑했으며, 로마의 관습과 정신을 따르고 로마법을 준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식민지의 시민들이지만, 로마시민들과 똑같은 특권을 누리는 특별한 시민들이 되었다. 이때부터 빌립보의 주민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재판권을 가질 수 있었으며 당시 악명이 높던 인두세와 토지세를 감면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다. 그들은 빌립보를 자랑했고, 로마의 시민이 된 것을 자랑했으며, 로마의 관습과 정신을 따르고 로마법을 준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바울은 어제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지역에 살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자랑하고, 로마의 관습과 정신을 따르고,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너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다. 그리스도인은 장차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매일 매일 우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며, 예수님을 향해 달려갈 때에,
우리의 낮은 몸이, 쉽게 죄를 짓고, 넘어지는 육신에 속한 연약한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아,
내가 전한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그래서 나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영광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인 너희들에게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기를,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본론

1. 주 안에 서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매일 매일 우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며, 예수님을 향해 달려갈 때에,
우리의 낮은 몸이, 쉽게 죄를 짓고, 넘어지는 육신에 속한 연약한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아,
내가 전한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그래서 나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영광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인 너희들에게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기를,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서다" 라는 표현은 “지속하다, 버티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초소를 지키는 군인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군대에 가면, 부대 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매일 두시간씩 초소 근무를 선다.
많게는 아침에 한번, 밤에 한번씩 총 4시간을 설 때도 있다.
근무 시간을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대로 따르는 것인데다가,
계급이 낮을 수록, 야간 근무에 걸릴때가 많다.
아침이나 밤이나 2시간씩 서있는 것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새벽 2-4시 이렇게 걸리면, 잠을 푹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근무를 서니까,
초소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
이 때 초소를 지속적으로, 지키며, 버티고 있을 때 쓰는 단어가 바로, “서다"라는 단어이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제대한 군인들이 많고, 경주 문화에 익숙한 그들에게,
잠자고 싶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초소를 지키고 서 있어야만 하는 군인들처럼,
초소를 지키는 군인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전력 질주하여 우승한 경주자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도 그 믿음을 지키며,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서 있으라 라는 것이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한순간 번쩍 했다가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변함없이, 흔들림없이,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야겠다라는 것이다.
놀랍고 위대한 일,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일보다,
내 삶의 자리에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나의 믿음을 지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서 있으십니까 ?
주 안에서, 주님의 뜻과 계획 아래, 그 분의 섭리 가운데, 순종하며 서 있으십니까 ?
매일 매일 한 순간, 여러분의 믿음을 지키며, 버티며,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쫓아 달려가고 있으십니까?
하늘 나라의 시민된 저와 여러분의 발이 우리의 반석 되시는 주님 안에 굳게 서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2-3)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두번째 권면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라는 것이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지금 2절에는 두명의 여인들이 나온다.
현대는 보통 아버지로부터 그 성을 물려받는데, 당시 마게도냐인들은 자신들의 성을 모계로부터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이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었다.
이런 사회 배경 아래 이 두 여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3절에 보니까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이라고 묘사한다.
즉, 이 여인들은 교회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여인들에게 한 바울의 권면은 무엇인가 하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는 것이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두 여인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죠.
즉, 두 여인이 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 게 성도들간에 적지 않은 갈등과 다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 게 성도들간에 적지 않은 갈등과 다툼을 겪 을 때가 있습니다. 속담에 “한 어미 자식도 오롱이 조롱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창조하신 이상 서로 다른 점은 누 구나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차이로 인한 갈 동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일 심 동체(-心同體)라고 혼히들 말하지만, 현 실은 어떻습니까? 같이 마음을 나누고 살을 나눈 부부라 할지라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해 갈둥하고 심지어 파경(破鏡)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두 자녀도 다르듯이,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창조하신 이상 서로 다른 점은 누 구나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일심 동체(-心同體)라고 혼히들 말하지만, 같이 마음을 나누고 살을 나눈 부부라 할지라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다.
11: 18)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율 굳 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천한 것 찾지 못하였노니"(계 3:2)
그러면 과연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들입니다.
융 찾지 못하였노니"(계 3:2)
한 성령을 받고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몸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갈등이 있으며 그 안에서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 니다.
아주 작은 문제서부터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다름 가운데, 자신을 변호하면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상처만 크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과연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초자연적 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들입니다. 한 성령을 받。L 같은 믿음을 가 지고,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몸입니다(엠 4:4-6) , 이 땅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할 사명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하나될 수 있 는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 고, 교회 안에는 갈등이 있으며 그 안에서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 니다. 더 나아가 서로 갈등이 생길 때 우리 가 흔히 취하는 태도는 자기를 변호하고 상 대방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은 거의 보지 못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받 은 상처만 크게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이처 럼 섭섭한 마음과 상한 감정만을 생각하다 보니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 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섭섭한 마음과 상한 감정에 사로잡히다보면, 오히려 갈등은 점점 더 커져서 교회 안에서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그랬던 것이다.
그들이 어떠한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이 빌립보 교회 공동체에 쓴 편지에도 언급될 정도로,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던 그들의 갈등은 교회에 큰 어려움, 분열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향한 바울은 권면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서로 화해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영원한 생명의 유업을 함께 누릴 자들이기 때문에, 화해와 용서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울이 쓴 표현은 같은 “마음을 품으라.” 였다.
서로 화해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영원한 생명의 유업을 함께 누릴 자들이기 때문에,
빌립보서에 이 표현을이 동일하게 쓴 곳이 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갈등이 있을 때, 하나가 되지 못할 때, 분열이 있을 때에, 품어야 될 마음은 바로 예수의 마음이라구요.
그 예수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면, 바로 겸손의 마음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늘의 모든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을 낮추신 그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을 품는 것,
그것이 분열되고 깨어진 관계를 하나되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에 따른 십자가의 죽으심이었다.
그 십자가의 피로 하나된 우리 성도들이기에, 우리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 겸손하게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성도들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 보면 계속 문제만 커집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갈등을 겪고 있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가장 큰 공통 분모가 었 다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자기 십자가로 허 무시고 한 몸여러분, 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우 리 성도들은 주님의 피로 가까워진 존재입니 다(엠 2:13 , 14). 주님만이 우리의 하나됨을 가능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 입니다.

3. 주 안에서 기뻐하라 (4-7)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통한, 세번째 바울의 권면은,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의 세번째 권면은 바로 기뻐하라이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실 ‘기쁨’은 벌립보서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 라고
이 짧은 편지 속에 기쁨에 대한 표현이 무려 열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 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항상’ 기뻐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는 사실입니다.
할 만합니다.
신뢰의
우리는 시시때때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따지 고 보면 인생에는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는 기쁜 일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더 많습니 다.
과거의 아픔이 우리 인생을 짓누릅니다. 여러가지 실패와 관계의 어려움, 질병,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등 억울한 일을 수시 로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는 말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의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였을 때에 염려와 걱정을 하지,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하나님께 아뢰 라’ 고 말한 것은, 염려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며,
염려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선한 염려를 하고 있을지라 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불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염려이든 부 정적인 염려이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 다. 오스왈드 챔버스 (Oswald Chambers) 는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는것이며,그분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욕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둘 이상의 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염려이다.
아무리 선한 염려를 하고 있을지라 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불신앙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하나님께 아뢰 라’ 고 말한 것은, 염려가 하나님을 옹전히 의지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선한 염려를 하고 있을지라 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불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염려이든 부 정적인 염려이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 다. 오스왈드 챔버스 (Oswald Chambers) 는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는것이며,그분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욕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둘 이상의 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염려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염려이든 부 정적인 염려이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 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분에
오스왈드 챔버스 (Oswald Chambers) 는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는것이며,그분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욕이다”라고 했습니다.
다. 오스왈드 챔버스 (Oswald Chambers) 는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는것이며,그분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욕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둘 이상의 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염려이다.
주지하다시피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둘 이상의 관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염려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나와 함께 하실 것을 알고 믿고 있는데, 또 한편으로 어떡하지? 라고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한다.
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욕이다”라고 했습니
다.
바울은 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 고…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 뢰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주지하다시피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보면, 그 아이들에게는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어쩜 저렇게 해맑을까?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부모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
우리 부모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 이야 철이 없으니까 그렇지 !’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의 그러한 행 동은, ‘우리는 엄마 아빠를 절대적으로 믿는 답니다’ 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의 그러한 행 동은, ‘우리는 엄마 아빠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그러므로 여러 분의 삶에 늘 염려거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하나 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의 삶에 늘 염려거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한다 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바울은 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 고…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 뢰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하나 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의 삶에 늘 염려거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한다 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기도하라고 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 구를 하라’ 하고 끝낼 수도 있는데, ‘감사함 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감사하 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선인 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비를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분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도 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도 감사 제목이 됩 니다. 죄악으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 들을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 고, 대신 죽게 하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 랍습니까? 그 은혜는 우리가 평생 찬송하고 감사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우 리의 삶 중에 시시때때로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작은 은혜의 손길들을 다 기억한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감사의 기도는 우리 믿는 자의 기본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기도하라고 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 구를 하라’ 하고 끝낼 수도 있는데, ‘감사함 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덧붙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감사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우 리의 삶 중에 시시때때로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작은 은혜의 손길들을 다 기억한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감사의 기도는 우리 믿는 자의 기본 자세인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기쁨의 원천이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삶의 모습이다.

결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세가지 권면은,
주 안에서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세 가지 권면 가운데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무엇이죠?
바로 “주 안에서" 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그분께 순종하며 따라가며,
주 안에서 그 믿음을 지키고 시서며,
주 안에서 겸손하게 같은 마음을 품으시고,
주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평강와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채워지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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