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밖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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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9 διδαχαῖς ποικίλαις καὶ ξέναις μὴ ⸀παραφέρεσθε·* καλὸν γὰρ χάριτι βεβαιοῦσθαι τὴν καρδίαν,* οὐ βρώμασιν ἐν οἷς οὐκ ὠφελήθησαν οἱ ⸁περιπατοῦντες. 10 ἔχομεν θυσιαστήριον ἐξ οὗ φαγεῖν οὐκ ἔχουσιν °ἐξουσίαν οἱ τῇ σκηνῇ λατρεύοντες.* 11 ὧν γὰρ εἰσφέρεται ζῴων τὸ αἷμα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εἰς τὰ ἅγια διὰ τοῦ ἀρχιερέως, τούτων τὰ σώματα κατακαίεται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12 διὸ καὶ Ἰησοῦς, ἵνα ἁγιάσῃ διὰ τοῦ ἰδίου αἵματος τὸν λαόν,* ἔξω τῆς ⸀πύλης ἔπαθεν.* 13 τοίνυν ἐξερχώμεθα πρὸς αὐτὸν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τὸν ὀνειδισμὸν αὐτοῦ φέροντες·* 14 οὐ γὰρ ἔχομεν ὧδε μένουσαν πόλιν ἀλλὰ τὴν μέλλουσαν ἐπιζητοῦμεν.* 15 ⸂διʼ αὐτοῦ [οὖν]⸃ ἀναφέρωμεν θυσίαν αἰνέσεως διὰ παντὸς τῷ θεῷ, τοῦτʼ ἔστιν καρπὸν χειλέων ὁμολογούντων τῷ ὀνόματι αὐτοῦ. 16 τῆς δὲ εὐποιΐας καὶ ⸆ κοινωνίας μὴ ἐπιλανθάνεσθε·* τοιαύταις γὰρ θυσίαις εὐαρεστεῖται ὁ θεός.* 17 Πείθεσθε τοῖς ἡγουμένοις ὑμῶν καὶ ὑπείκετε, αὐτοὶ γὰρ ἀγρυπνοῦσιν ὑπὲρ τῶν ψυχῶν ὑμῶν ὡς λόγον ⸀ἀποδώσοντες,* ἵνα μετὰ χαρᾶς τοῦτο ποιῶσιν καὶ μὴ στενάζοντες· ἀλυσιτελὲς γὰρ ὑμῖν τοῦτο.*

9 διδαχαῖς ποικίλαις καὶ ξέναις μὴ ⸀παραφέρεσθε·* καλὸν γὰρ χάριτι βεβαιοῦσθαι τὴν καρδίαν,* οὐ βρώμασιν ἐν οἷς οὐκ ὠφελήθησαν οἱ ⸁περιπατοῦντες.
여러가지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다니지 말라. 마음이 은혜로 강하게 되는것이 좋은 것이다. 음식으로 말고, 그 음식으로는 돌아가는 자들이 유익을 얻지 못한다.
음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유익을 얻지 못한다.
매우 실제적이다. 왜냐면 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들에게 음식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물질이 넉넉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그 물질이 사라지면 없어진다.
그러나 은혜로 강하여 지면, 그런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
10 ἔχομεν θυσιαστήριον ἐξ οὗ φαγεῖν οὐκ ἔχουσιν °ἐξουσίαν οἱ τῇ σκηνῇ λατρεύοντες.*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다 그러나 장막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결코 먹을수 없다.
하늘 장막과 지상 장막.
지상장막은 먹을게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지상장막, 세상의 주인이 아니기에 그 장막에 있는 것을 먹을 권한이 없다.
하늘 장막은 멀리 있고, 먹을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 곳에 가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먹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11 ὧν γὰρ εἰσφέρεται ζῴων τὸ αἷμα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εἰς τὰ ἅγια διὰ τοῦ ἀρχιερέως, τούτων τὰ σώματα κατακαίεται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왜냐면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해 대제사장을 통해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밖에서 불태워지기 때문이다.
12 διὸ καὶ Ἰησοῦς, ἵνα ἁγιάσῃ διὰ τοῦ ἰδίου αἵματος τὸν λαόν,* ἔξω τῆς ⸀πύλης ἔπαθεν.*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문밖에서 고난당하셨다.
피는 지성소를 통해 우리를 지성소로.
몸은 불태워지기 위해 십자가로.
13 τοίνυν ἐξερχώμεθα πρὸς αὐτὸν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τὸν ὀνειδισμὸν αὐτοῦ φέροντες·*
그러니까 그분에게 나아가자. 진영밖으로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14 οὐ γὰρ ἔχομεν ὧδε μένουσαν πόλιν ἀλλὰ τὴν μέλλουσαν ἐπιζητοῦμεν.*
여기에는 영원한(머물) 도시가 없다. 반대로 우리는 장차 머물 도시를 구하는 사람들이다.
15 ⸂διʼ αὐτοῦ [οὖν]⸃ ἀναφέρωμεν θυσίαν αἰνέσεως διὰ παντὸς τῷ θεῷ, τοῦτʼ ἔστιν καρπὸν χειλέων ὁμολογούντων τῷ ὀνόματι αὐτοῦ.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찬송의 제물을 가져가자. 이것이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되심을 인해서 영원한 속죄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의 제사를 가지고 가면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백, 그분의 이름으로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다.
16 τῆς δὲ εὐποιΐας καὶ ⸆ κοινωνίας μὴ ἐπιλανθάνεσθε·* τοιαύταις γὰρ θυσίαις εὐαρεστεῖται ὁ θεός.*
(잊지말아야할 것) 잘 사는것(바르게 사는 것) 나누며 사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이런 제물을 기뻐하신다.
바르게 함, 나누며 삶,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찬양의 입술의 열매를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기뻐하신다.
17 Πείθεσθε τοῖς ἡγουμένοις ὑμῶν καὶ ὑπείκετε, αὐτοὶ γὰρ ἀγρυπνοῦσιν ὑπὲρ τῶν ψυχῶν ὑμῶν ὡς λόγον ⸀ἀποδώσοντες,* ἵνα μετὰ χαρᾶς τοῦτο ποιῶσιν καὶ μὴ στενάζοντες· ἀλυσιτελὲς γὰρ ὑμῖν τοῦτο.*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을 순종하고 복종하라 왜나면 그들은 너희의 영혼을 위해서 갚아야 하는 것처럼 깨어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이 기쁨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없을 것이다.

18 Προσεύχεσθε ⸆ περὶ ἡμῶν·* πειθόμεθα γὰρ ὅτι καλὴν συνείδησιν ἔχομεν,* ἐν πᾶσιν καλῶς θέλοντες ἀναστρέφεσθαι. 19 περισσοτέρως δὲ παρακαλῶ τοῦτο ποιῆσαι,* ἵνα τάχιον ἀποκατασταθῶ ὑμῖν.

18 Προσεύχεσθε ⸆ περὶ ἡμῶν·* πειθόμεθα γὰρ ὅτι καλὴν συνείδησιν ἔχομεν,* ἐν πᾶσιν καλῶς θέλοντες ἀναστρέφεσθαι.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왜냐면 우리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행하니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선한 양심 = 선한 사상체계
19 περισσοτέρως δὲ παρακαλῶ τοῦτο ποιῆσαι,* ἵνα τάχιον ἀποκατασταθῶ ὑμῖν.
내가 더욱 빨리 너희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행해주시오.

본문 구조

우리는 은혜로 강해진다.
9절 수많은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다니지 마라. 우리는 음식이 아닌 은혜로 강해진다.
몸은 음식으로 튼튼해질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오직 은혜다.
음식에 끌려가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코가 꿰이는 것이다. 마치 사냥꾼이 덫을 놓을 때, 음식을 놓는 것과 같다.
당시 음식은 사람들의 생명이었기에 더욱 음식에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더 좋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사람들은 끌려간다. 그것을 위해 온갖 가르침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로 강해진다.
10-11절 9절의 연속, 우리가 은혜로 강해지는 이유
세상에는 지상 장막이 있다.
그런데, 세상의 지상장막을 섬기는 자들도 그 제물을 먹느냐? 먹지 못한다.
우리가 이상한 가르침을 따라 지상장막에 들어간다고 그 제물을 먹고 마시고 즐기고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을 것같은가?
세상 장막도 세상의 법칙에 따라 운영된다. 우리가 하늘 장막의 섬기는 자이며, 하늘의 시민권자인데, 세상의 장막에 들어가서 제대로 누리고 살수 있을 것같은가?
은혜로 강해지기 위해? 세상은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니니 그리스도를 따라 영문밖으로 나아가자
1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문밖으로 나아가셨다.
예수님께서 먼저 진영밖, 영문밖으로 나가셨다.
자신의 백성을 깨끗게 하려고,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고 나가셨다.
이것은 출33장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 회막밖, 진영밖에 모세가 장막을 설치한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자, 그 진영밖으로 나오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위해, 진영밖으로 나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13절 그러니 우리도 나아가자. 예수의 치욕을 짊어지고 나아가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2가지 밖에 없다.
이대로 안쪽에, 세상이라는 장막에서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든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진영밖으로 나가든지.
하지만 그 길은 그리스도의 치욕을 짊어지고 가야한다. 쉽게 갈 수 없다.
14절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머물 곳이 없다.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고 나가야 한다.
당연히 망설여지고, 힘들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면 살아지는 것이 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원히 세상에서 살 것인가
지금 있는 집에서, 지금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누리면서 살 수 있나
결국 죽음의 때, 심판의 때는 올 것이다.
그때, 소돔과 고모라를 억지로라도 나온 롯은 살고, 나머지들은 죽은 것처럼 죽을 것이다.
우리는 롯정도가 아니라 장차 올 도시, 영원히 머물 성을 찾는 자들이다.
그러니 진영밖으로, 나아가자. 치욕스런 길이지만, 바보같은 길이지만, 그리스도를 따라 나아가자.
그냥 따라가면 강해지나? 예수를 따라 영문밖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
영문밖에 나아간다고, 치욕을 짊어졌다고 마음대로 우리가 내키는대로 가면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군대이기 때문이다.
1. 찬송의 열매를 드리자.
15절 치욕을 짊어지고 가는데, 찬양하라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 되심을 통해 영원한 속죄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짊어진 치욕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장막에서 섬기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의 입술에 불평과 힘겨움의 소리가 아닌 찬송의 열매가 있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리자.
2. 찬송의 열매는 삶의 열매다.
16절 그냥 찬송하는게 아니다. 선행과 나눔, 바르게 사는 것과 나누며 사는 것이 함께 할때야 우리의 찬양의 제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3. 이를 위해 앞에서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기도하라
17절 앞에서 인도하는 자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너희를 인도한다. 너희가 그들을 무시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나 예배할 때, 근심과 답답함이 있다면, 너희가 아무리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선행과 나눔을 실천한다 할지라도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
매우 무서운 경고다.
또한 앞에 선 자에게도 매우 무서운 경고다. 빚진 자의 심정없이 선다면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라는 뜻이다.
18절 그러니 따르는 양이나 이끄는 목자 둘다 올바르게 따르고 올바로 이끌수 있도록 기도함이 중요하다.
설교
서론
우리는 항상 힘든 삶을 사는 것같습니다. 평안해도 그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그렇게 삽니다. 힘든 시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위로와 평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위로와 평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지치지 않고, 조그마한 것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조그만 돌부리를 오히려 뽑아버릴 수 있는 강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강해지며, 그를 위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와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가장 먼저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강해진다.
9절에 은혜로서 굳게함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우리가 은혜로 강해지고 은혜로 강해짐이 좋다는 뜻입니다.
9절은 음식과 은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튼튼히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을 강하게 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몸이 강해도, 마음이 약하면, 무엇이든지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9절은 우리의 마음이 강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들, 가르침들에 끌려다니지 말라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은혜로만 강해집니까. 세상에는 마음을 지키고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몸을 단련하기 위해 시작해도, 깊게 들어가면 마음을 단련하는 것까지 가르칩니다. 세상이라고 마음의 강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에 치우친 세상이기에 그만큼 중심을 잡는 마음이 중요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는 오직 은혜로 강해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근거로 나오는 것이 10절과 11절입니다. 10절과 11절은 지상 제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드려지는 제사와 제단입니다. 분명 제단이 있지만, 그 제단을 섬기는 자들조차 그 제단에서 드려지는 제물, 음식을 먹을 권한이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11절은 땅에 있는 제단은 땅에 있는 규칙대로 피는 성소로, 육체는 영문밖에서 불살라진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씀대로 세상은 세상의 원칙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몫은 없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의 제단에 제물을 드려봐야, 그 제물에 대한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앞서가신 예수 그리스도조차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1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심문당하실 때,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문밖에 나아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뒤따라오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거룩이라는 죄악에 물든 사람은 결코 갈수 없는 그곳을 향한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이 세상의 방식으로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말그대로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말씀하십니다.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 피와 살을 받아먹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해지고, 강해지기 이전에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문밖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영문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삶의 기반도 없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영문밖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그 십자가의 치욕을 우리도 지고 가야 합니다.
왜 우리는 강해지고 싶습니까. 좀더 잘 살기 위해서아닙니까. 지금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 더욱 굳건해지고, 강건해져서 더욱 멋진 삶을 살고 싶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강건해질 자리는 그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문밖으로 나아가는 곳이며,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신 길에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짊어진 짐만으로도 버거운데 그리스도의 치욕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래서 더욱 망설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여기에는 우리가 머물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영구한 이란 말의 원 뜻은 머물다, 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가 사는 자리 내가 일하는 자리, 그래서 내가 얻을 자리를 보고 그것을 위해 더욱 굳건해 지길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벌써 그 자리, 세상과 어울리려는 자리에 그리스도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어울리려는 그 자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원히 살 거입니까.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 땅에서 영원히 누릴 것을 준비하고 그를 위해 강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저 천국에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자리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앞서 12장 13절에서 말씀 드렸듯이 길에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발에 길을 맞추는 자로 강건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저 소위 말해 영혼없이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강건해지지 않는다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우리가 영문밖으로 나아왔고,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고 우리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징집병으로 끌려온 자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왕자로서 공주로서 참여한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길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므로 영문밖으로, 예수께로 나아가는 길에 몇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찬양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길이 힘들다고 어렵다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과 불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라는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왜냐면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한번의 완전한 제사를 드렸기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만으로도 기쁨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슬플 때, 입에서 찬양이 떠나지 않기 바랍니다.
둘째, 찬양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선행과 나눔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형제 자매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행, 바르게 사는 것과, 나눔, 나누며 사는 삶을 바라십니다. 그리고 찬양과, 바르게 삶과 나누며 삶이 하나될 때 우리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됩니다.
그러니 서로 돌아보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발에 길을 맞춘다는 것은 내 발에 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에 길을 맞추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장서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모두가 알다시피, 오직 이 일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때, 그들은 그들의 삶과 죽음으로 뒤따르는 자들을 인도했습니다. 언제나 빚진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이 말씀은 묵상한 저에게 큰 경고입니다. 빚진자의 심정을 잃는다면, 앞선 자가 아니라 뒤쳐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히브리서의 당시에도 앞선자였다가 뒤쳐진자가 된, 인도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담담히 모든 인도자들이 빚진자의 심정으로 행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앞선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 17절 마지막에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인도자이자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공생애기간에도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귀신을 쫓지 못해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원하십니다.
결론
은혜로 강해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문밖으로, 우리에게 강요하는 세상의 틀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의 길을 따라갈 때만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갈 때, 힘든 일들이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시험거리들이 무수히 우리를 방해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입술에 찬양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릴 수 있는 기쁨의 제사입니다. 찬양을 귀히 여기시고 찬양의 열매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찬양의 열매는 바르게 삶과 나눔이 합쳐질 때,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시는 제사, 예배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한걸음마다 찬양이 새겨지는 역사가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선 자를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근심이 아닌 기쁨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자가 되어, 나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모두가 강해지는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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