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권면,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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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분석
본문분석
20 Ὁ δὲ θεὸς τῆς εἰρήνης,* ὁ ἀναγαγὼν ἐκ νεκρῶν τὸν ποιμένα τῶν προβάτων τὸν μέγαν ἐν αἵματι διαθήκης αἰωνίου, τὸν κύριον ἡμῶν Ἰησοῦν⸆, 21 καταρτίσαι ὑμᾶς ἐν παντὶ ⸆ ἀγαθῷ εἰς τὸ ποιῆσαι τὸ θέλημα αὐτοῦ, ⸇ ποιῶν ἐν ⸀ἡμῖν τὸ εὐάρεστον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ᾧ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20 Ὁ δὲ θεὸς τῆς εἰρήνης,* ὁ ἀναγαγὼν ἐκ νεκρῶν τὸν ποιμένα τῶν προβάτων τὸν μέγαν ἐν αἵματι διαθήκης αἰωνίου, τὸν κύριον ἡμῶν Ἰησοῦν⸆,
평강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영원한 언약의 피로 우리주 예수를 이끌어내신,
21 καταρτίσαι ὑμᾶς ἐν παντὶ ⸆ ἀγαθῷ εἰς τὸ ποιῆσαι τὸ θέλημα αὐτοῦ, ⸇ ποιῶν ἐν ⸀ἡμῖν τὸ εὐάρεστον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ᾧ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여러분을 잘 준비시켜서 모든 선한 일을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그분 앞에서 기쁜 것을 우리 안에서 행하기를 원한다. 영광이 그에게 영원하기를. 아멘.
22 Παρακαλῶ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ἀνέχεσθε τοῦ λόγου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καὶ γὰρ διὰ βραχέων ἐπέστειλα ὑμῖν.
22 Παρακαλῶ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ἀνέχεσθε τοῦ λόγου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καὶ γὰρ διὰ βραχέων ἐπέστειλα ὑμῖν.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로하노니, 그 위로의 말을 참아달라. 왜냐면 내가 간단하게 썼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
- 위로의 말
사실에 기초한 소망중에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학적 틀을 주었다.
역사적인 틀이다.
23 Γινώσκετε τὸν ἀδελφὸν ⸀ἡμῶν Τιμόθεον ἀπολελυμένον, μεθʼ οὗ ἐὰν τάχιον ἔρχηται ὄψομαι ὑμᾶς.
23 Γινώσκετε τὸν ἀδελφὸν ⸀ἡμῶν Τιμόθεον ἀπολελυμένον, μεθʼ οὗ ἐὰν τάχιον ἔρχηται ὄψομαι ὑμᾶς.
우리의 형제 디모데가 풀려난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빨리 오면 내가 그와 함께 너희를 볼것이다.
그냥오지 않고 디모데와 내가 간다.
위로
본문해석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다.
가장 큰 위로는 영생과 부활이다.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셨다.
하나님의 위로속에는 평강이 있다. 거룩과 의가 있는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히 12:14)
우리가 따라야 할 분이시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속성이다.
동시에 우리는 평강을 아무리 추구해도, 가질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평강이시기에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신다.
위로는 아무런 목적없이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일어나서 다시 나아가게 하기 위해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 위해 위로하신다.
히브리서의 저자를 통해 위로하신다.
이 온전함을 다른 단어와는 달리, 준비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준비되는 것.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위로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함이 그 앞에, 그분 앞에, 하나님앞에 즐거운 것이 되도록 이루신다.
또한 혼자 일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신다.
그리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에서 그에게는 모호한 표현이다. 하나님인지, 예수님인지 모호하다.
이는 우리를 온전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심으로,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그 준비됨을 위해 우리를 위로 하신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그 위로는 매우 따뜻할 때도 있고, 우리를 높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줄 때도 있고, 아주 강경한 어조로 우리를 채찍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다.
23절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저 글로만 위로를 전하지 않고, 디모데와 함께 로마의 성도들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가는 히브리서의 저자와 디모데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성령님은 하늘의 영광의 보좌가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준비시켜, 하나님의 눈앞에 온전케 되게 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앞에서 온전케 됨이 영광이 아닌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로 문안하기를 원하신다.
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서로서로 돌아보며 평안을 빌며 위로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하신다.
설교
서론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른 서신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는 축복과 권면으로 서신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며,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문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말하십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이루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되길 원하시는지 말씀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22절과 23절을 통해 히브리서의 목적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절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권면, 명령을 하며, 25절에서 마지막 축복을 합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면 본문은 20,21절의 축복, 22-23절의 위로, 24절의 마지막 권면, 25절의 축복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20절과 21절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을 칭하며,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는 우리의 대장이시자, 목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부활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냐면,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우리의 하늘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자 대장이자 가장 큰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평강이 주어질 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의 피, 구약에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그 보다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첫 번째는,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약에서도 그렇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그저 말씀이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약속을 결단코 지키고 마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3번째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겠다. 다른 말로 평강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앞서 12장 14절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추구해야 할 존재이며, 이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살렘왕, 평강의 왕 멜기세덱이 가졌었고,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며 가졌던 평강입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평강이란 참 힘든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추구하라 하셨고, 그를 위해 은혜로 강해짐이 아름답다 말씀하셨고, 그 강해짐으로 영문밖으로 나아가라 권면하셨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예 신경도 쓸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세상풍파에 시달려 지쳐버리고, 휘청거린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평강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케 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준비된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잘 준비되어서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왜 모든 선한 일에 라는 표현을 쓸까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과 사람에게 선한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 선한 일,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고 이루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선한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원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으로 괴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길을 만들 정도로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이며,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며 축복이 되기를 히브리서는 축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셔서, 영광이 삼위 하나님께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축원을 끝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이런 축복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강해지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아프고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단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채찍질에 끄떡도 하지 않을 강한 아들 딸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했듯이, 모든 심판받고 멸망받을 것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시며,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위로의 책입니다. 22절의 권면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위로의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게 위로하시는 책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말해도 위로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나오는 특별한 비교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숫자의 비교입니다. 당장은 세상사람들이 우리보다 많은 것같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응원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있으며, 하늘의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수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숫자가 많은 것에 쏠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숫자가 높아야하고, 사람도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며 내 의견이 다르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보다 선진들이 더 많고,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더 많다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비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중요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시내산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하늘 성전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셋째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 살며,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진영밖, 영문밖으로 나올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옷을 입고, 세상방식과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승리하심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을 오히려 우리에게 맞추는 강한 용사가 될 것을 권면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홀로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마치, 23절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위로를 글로만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함께 너희에게 가서 함께 하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와 히브리서의 저자가 로마로, 박해의 현장으로 가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마지막 권면은 문안하라입니다. 이말은 심방하라는 말입니다. 그 심방이 목숨을 건 심방이 될 수 있지만, 찾아가서 함께 고난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나누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이 꽃피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고,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여지고, 더욱 축복받으며, 하나님앞에 더욱 겸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믿고 은혜로 강해지며,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