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3.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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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20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신약 369페이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야고보서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약). South Korea.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특송 : 영아 아동 유치부 교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른 서신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는 축복과 권면으로 서신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며,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히브리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늘 본문, 시내산과 시온산을 비교하는 것이 히브리서 전체를 해석하는 틀로서 작용을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과 우리 자신을 살필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본론
본문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말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제사장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이루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되길 원하시는지 말씀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22절과 23절을 통해 히브리서의 목적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그 이전까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언약은 정확히 말하면 족장 개인과 하나님과의 1:1의 언약, 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의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천사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이 모세오경을 부인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시내산 언약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내산 언약이 없으면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제사는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절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권면, 명령을 하며, 25절에서 마지막 축복을 합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저자는 은연중에 모세가 맺었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세우신 언약을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히브리서의 마지막을 가며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면 본문은 20,21절의 축복, 22-23절의 위로, 24절의 마지막 권면, 25절의 축복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18절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하는 말은 너희가 간 곳, 너희가 도착한 곳은 그곳이 아니다입니다. 우리말로는 19절에 있는 ‘이른 곳이 아니라’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먼저 20절과 21절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서두에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목표로 나아갈 곳은 시내산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을 칭하며,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시내산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불이 활활 타고 있지만 암흑과 어둠이 완전히 덮고 있는 곳입니다. 폭풍이 불어오고 나팔소리와 말소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음성이 들리는 곳입니다. 20절의 말씀은 출애굽기 19장 12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언약을 맺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바로 근방에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올라갈 수 있는 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을 때, 그 산은 짐승조차 올라갈 수 없는, 불과 암흑, 폭풍이 가득한 산이 되었습니다. 마치 한 밤중에 폭발하는 화산과 같은 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산이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는 우리의 대장이시자, 목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부활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냐면,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우리의 하늘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자 대장이자 가장 큰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평강이 주어질 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의 피, 구약에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그 보다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내산 언약때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백성은 왕을 섬길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볼 자격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약도 모세가 대신 올라가서 체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을 때, 백성을 대표해서 올라간 모세조차도 두려워서 떨어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 사람의 인지를 초월한 무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초월한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가 금송아지 사건이었습니다.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첫 번째는,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약에서도 그렇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그저 말씀이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약속을 결단코 지키고 마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내산 언약은 왕과 백성의 봉신관계를 상징하는 언약이었지만, 그 시작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방법은 제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의 언약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3번째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겠다. 다른 말로 평강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언약은 전혀 다르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시내산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시온산에 있습니다. 그곳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도시입니다. 마치 태초에 아담이 그랬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직접받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회는 하늘책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이 말은 그곳에서 기업을 물려받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다 똑같이 하나님의 장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민의 심판자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심판자라는 말은 재판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하늘의 장자가 아닌 자에게는 시내산에서 임하셨던 것처럼 심판하실 것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온전케된 의인들의 영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픔도 어떤 질고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완전하신 다스리심만이 온전히 임하는 곳입니다.
앞서 12장 14절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추구해야 할 존재이며, 이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살렘왕, 평강의 왕 멜기세덱이 가졌었고,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며 가졌던 평강입니다.
시내산과 시온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변호사를 통해서만 판사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판사에게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할 정도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평강이란 참 힘든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추구하라 하셨고, 그를 위해 은혜로 강해짐이 아름답다 말씀하셨고, 그 강해짐으로 영문밖으로 나아가라 권면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하나님께도 나아갈 수없고, 세상에서도 먹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 어떤 누구에게도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강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예 신경도 쓸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세상풍파에 시달려 지쳐버리고, 휘청거린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평강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케 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준비된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잘 준비되어서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왜 모든 선한 일에 라는 표현을 쓸까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과 사람에게 선한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 선한 일,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고 이루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선한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원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으로 괴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길을 만들 정도로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25절에 거역하거나 배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이며,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며 축복이 되기를 히브리서는 축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셔서, 영광이 삼위 하나님께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축원을 끝냅니다.
거역하다라는 말은 비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역은 싫어요라고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이런 말입니다. ‘에이~ 그렇게 말고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비껴가는 것입니다. 비슷하고, 마주친 것같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이런 축복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강해지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아프고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단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채찍질에 끄떡도 하지 않을 강한 아들 딸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했듯이, 모든 심판받고 멸망받을 것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시며,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시내산에 있는 자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안에 있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하나님을 배반, 다른말로 하나님에게서 돌아선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는 위로의 책입니다. 22절의 권면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위로의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게 위로하시는 책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말해도 위로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나오는 특별한 비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천국백성이 된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결코 하나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숫자의 비교입니다. 당장은 세상사람들이 우리보다 많은 것같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응원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있으며, 하늘의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수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숫자가 많은 것에 쏠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숫자가 높아야하고, 사람도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며 내 의견이 다르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멸망해도,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보다 선진들이 더 많고,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더 많다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비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중요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시내산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하늘 성전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늘 아버지의 품안에 있고, 이제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지만 흔들립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지금도 우리의 본질은 하늘에 있지만, 실제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 살며,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진영밖, 영문밖으로 나올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옷을 입고, 세상방식과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승리하심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을 오히려 우리에게 맞추는 강한 용사가 될 것을 권면하십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위기가운데 있습니다. 믿는 우리 역시 흔들리고 있는 이 땅위에 있기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독이는 말도 있고 불안해하는 말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홀로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나라가 흔들리고 민중들이 불안해한다고 함께 불안해하지 말라. 그 대열에 동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23절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위로를 글로만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함께 너희에게 가서 함께 하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와 히브리서의 저자가 로마로, 박해의 현장으로 가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마지막 권면은 문안하라입니다. 이말은 심방하라는 말입니다. 그 심방이 목숨을 건 심방이 될 수 있지만, 찾아가서 함께 고난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나누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이 꽃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담대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8절에 흔혜를 받자라는 말은 감사하자라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두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경건함과 하나님경외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고,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여지고, 더욱 축복받으며, 하나님앞에 더욱 겸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믿고 은혜로 강해지며,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이 땅은 흔들리지만, 하나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원수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심판하실 거룩하신 전능자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분명 불안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서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감사함으로 나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때는 제자들이 가장 흔들리고 불안하고 낙심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있었기에 제자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흔들린다고 세상에 장단을 맞추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 그 평강을 서로에게 권면하며, 담대함과 감사함을 구합시다. 그래서 언제나 은혜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오히려 이 흔들림을 통해 이 나라의 죄악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길수 있게 되기를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든든한 자녀들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청년1부 수련회
다음세대축제와 태신자 전도주일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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