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과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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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본문해석
7 이스라엘 자손들은 번성하고(애를 많이 낳고) 늘어나서 엄청 많아지며 매우 강력해졌다(숫자). 그래서 그들의 땅을 가득 채웠다.
:28의 명령이 실행된다.
하지만 반쪽이다. 땅의 정복과 다스림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라기보다는 -22의 명령이 실행된 것이다.
사람이어야 하는데, 짐승이 되었다.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 -> 시련 예고
이전까지는 요셉의 영향력으로 건드리지 못했다. 요셉이 실질적인 애굽의 통치자, 다스리는 자였기 ㄸ문이다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요셉의 다스림이 결합되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이 온전히 실행되었기에 이스라엘이 평안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명령은 빠졌다.
시련이 찾아온다.
9 새로운 왕은 많고 강대하다를 다시 반복한다. 7절에서 나온 단어를 그대로 반복한다. 많이지는 과정, 번성하고 늘어남은 빠졌다.
그런데 그 과정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애굽은 하나님의 명령을 모르며, 그 명령에 따른 과정도 모르며, 결과만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복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실행될 차례가 되었다. 애굽이 정복해서 노아시대로 가던지,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애굽이 복음화 되던지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이미 애굽의 우상에 젖어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정복하시기 원하는 땅은 애굽땅이 아니었다.
이 2가지가 합쳐진 결과
당연히 이스라엘이 정복당한다.
10 현명해지자(스스로 지혜롭게 되자) 만약 전쟁이 나면 그들이 적이 되어 우리와 싸우고 이 땅을 나갈수도 있다.
애굽도 이스라엘이 그 땅에 계속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본문 전체를 통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2장 23절에 가서야 부르짖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그 전까지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철저하게 하나님vs애굽의 구도로 가고 있다.
번성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언약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출애굽기는 정복의 책이다.
애굽을 정복하고 자신의 일인데도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세상과 똑같이 되어 있는 백성들을 굴복(정복)시키신다.
그 과정에서 광야라는 환경을 정복하신다.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 구름기둥, 반석에서 나오는 물로 광야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 정복당해 항복하고 하나님을 따르게 한다.
완전히 정복되어 하나님의 포로된 백성에게, 살길, 십계명을 주시고 포로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신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마지막 40장은 성막 봉헌과 성막에 충만한 여호와의 영광이다.
시내산이 1장에 나오고 율법과 언약이 20장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라.
출애굽기의 제목대로, 출애굽한 장수는 반도 안되지만, 언약과 성막에 관련해서 19장부터 40장까지 계속된다.
번성과 정복을 완료하신 하나님, 원래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신 하나님께서,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를 맺고 싶어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11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애굽, 그러나 그 본질은 하나님과의 싸움.
12 하나님의 능력, 승리하심 -> 절대 막을수 없음.
결과 : 더욱 번성 => 애굽인 : 매우 두려워함.
13 이스라엘을 더욱 학대.
하지만 막을수 없는 하나님
14 고된 노동의 내용 -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그러나 효과가 없음
하나님vs애굽 -> 승자 : 하나님
나중에는 하나님vs이스라엘이 나옴.
그때 애굽처럼 직접 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광야를 치심. 그래서 광야의 굴복(positive : 만나, 메추라기, 불기둥구름기둥, 반석에서 나오는 물 ; negetive : 불뱀, 험한 길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정복하심.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정복에 정복당한 척만 함. 그래서 광야 40년이 시작됨.
왜 애굽은 광야는 그렇게 정복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그렇게 정복하지 않았을까.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백성을 향한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설교
서론
출애굽기라고 하시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모세가 떠오를 수도 있고, 10가지 재앙이 떠오를 수도 있고, 광야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만나와 메추라기가 떠오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를 한마디로 하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출애굽기를 정복의 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정복하시고, 광야를 정복하시고, 그 두가지 정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정복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그 정복은 미완료로 끝나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정복의 책, 출애굽기를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출애굽기는 요셉과 형제들, 그 세대 사람들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이후 요셉이 없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이 두가지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7절을 살펴보면 3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생육했다 번성했다 온땅에 가득했다입니다. 물론 불어났다 매우 강했다도 있지만 저는 앞에 3가지 생육, 번성, 온땅에 가득 다른 말로 충만을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이 3가지 단어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가지 단어는 창세기 1장 21,22절과 28절 쓰인 단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정복과 다스림이 없었습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요셉이 애굽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알다시피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 식량을 주관했고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스라엘이 고센땅에 사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애굽 전체가 굶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요셉의 손에 모든 애굽인의 생명이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셉이 애굽을 정복하고 다스렸다라고 표현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아는 자가 없어지자, 그 정복과 다스림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번성과 정복, 혹은 다스림이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요소인 정복이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6절까지 나오는 요셉과 족장들의 죽음이 중요합니다. 그때까지는 번성의 명령은 지키지 못해도, 정복의 명령은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복의 명령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시작하십니다. 원래 사람이 지켜야할 명령인데,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 번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정복과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면 7절의 생육, 번성, 충만은 창세기 1장 28절과 똑같은 단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22에서 이 3가지 단어가 똑같이 나옵니다. 21절과 22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에 사는 것과 하늘에 사는 것이 생육, 번성,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번성으로 끝난다면, 이스라엘은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그저 짐승들, 물고기들, 새들도 생육, 번성, 충만은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정복을 누가 시도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애굽인이 정복을 시도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애굽을 정복하고 10절에서 바로 말한 것처럼 출애굽해야 하는데,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권한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지 못하고, 정작 하나님을 버리고 죄에 의해 정복당한 애굽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정복하려고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짐승이 되었습니다. 1장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반응이 나옵니까. 이스라엘의 반응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바로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학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이 아닌 바로의 농노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마냥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습니다.
이렇게 끝났다면 출애굽기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서십니다. 바로의 정복, 학대에 대응하여, 번성으로 맞서십니다. 그래서 12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간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애굽인이 근심한다고 하는데, 이 근심하다라는 단어는 걱정한다 정도가 아니라, 매우 두려워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분명 정복을 시도하는 것은 애굽인이고,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은 이스라엘인데, 반대로 정복자인 애굽인이 더욱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벌어지는 사사기의 상황과 완전히 반대됩니다.
왜냐면 이스라엘과 애굽인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명령을 실행하지 못하고 짐승이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처음은 하나님과 애굽의 싸움으로 시작됩니다. 짐승이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우시고자 정복을 시작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아예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어 사람이 아닌 소나 말과 같은 짐승으로 써먹으려는 애굽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애굽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흙 이기기는 요즘 말해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등을 넣고 반죽하는 일입니다. 벽돌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의 일이란 것은 애굽의 특성상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나일강의 물을 퍼날라서 논밭에 뿌려야 하는 일같은 것들입니다.
즉, 아무생각없이 몸만 사용해야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시키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만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12절처럼,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번성시키면서 하나님 자신이 나설 그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사람이 해야 하는 정복을 대신 이루실 것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하기를 원합니다. 출애굽기는 정복의 책입니다. 그리고 그 정복은 원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루어야 할 사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았다시피, 이스라엘은 그럴만한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는 아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마치 사람이 아닌 짐승같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 21-22절에 나오는 짐승들같이 생육하고 번성하기만 했지, 정복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애굽에 의해서 정복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노예, 짐승이 되어서 살게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십니다. 학대받는 중에 더욱 크게 번성하게 하십니다. 먹을 것도 없고, 힘도 없는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하여, 학대하는 애굽인들이 더욱 두렵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차서 하나님께 상달될 그 때를 기다리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차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리는 세상에서 너무나 미약하기만 합니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악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조금씩 우리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법은 점점 세상의 편리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간통죄는 오래전에 폐지되었습니다. 점점 전도하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퀴어축제, 동성애는 더욱 퍼지고 있습니다. 평등이란 이름하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고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우리를 억압하는 법안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우리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 때처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갈 때를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습을 인정합시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정복할 기력이 없음을 인정합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한번 이 땅을 정복하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이땅을 정복해가는 우리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