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람을 쓰신다는 것의 의미
Notes
Transcript
1.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자 하는가?
2.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3. 과연 이 두가지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충분히 받은걸까?
- 열심히 직장생활 혹은 생계활동을 하고 있으며, 교회에 다니고 있음.
- 이 두가지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충분히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4. 진정으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의 모습
- 시대적 배경상 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사회적 위치?
- 고대 사회에서 왕족은 0.3프로, 귀족은 0.7프로, 지방지주는 2프로, 부유층은 7프로였다.
- 그물과 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은 부유층이었을 것.
- 이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른 믿음”에 있음.
- 부유함을 포기하고, 가난하며 고통스럽게 살라는 의미가 아님.
-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임.
- 이 시대는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90%에 달하는 열악한 시대였고, 예수님께서는 그 90%의 열악한 계층에 속해 있었음. 반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하루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는 부유층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특별히 부족함이 없는 자들임.
- 그런데도 이들은 그 모든 계층적 이익과 부를 포기한채 예수님을 택함. 일부러 가난하고 고난스러움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권리와 소유를 포기하고 따름.
- 사도 바울역시 마찬가지, 그는 7프로의 부유층이 아닌 0.7프로의 귀족이었음. 그러나 누구도 그가 로마시민권을 가진 0.3프로의 귀족인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가문의 위상과 부를 등지고, 예수님을 택한 것임.
- 이들의 공통점은 일부러 가난과 고통을 선택한 것이 아님. 이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과 귀한 것들로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소유보다 예수님의 귀함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기쁨을 나타낸 것임.
- :11에는 낮은 자를 높이 드신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무척 잘못 표현된 것, 낮은 자가 아니라 마음이 낮은 자를 들어 쓰신다는 표현임.
- 즉, 우리의 것들을 낮게 여기고 하나님의 것들을 귀히 여기는 자들을 들어서 쓰시는 것이 하나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낮아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을 위해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
5.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습(2)
- 이 본문에서 우리가 조금 더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임. 이 표현 역시 부정확한데,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위한 어부라고 표현해야만 함.
- 어부는 물고기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 먹고 팔고 생계를 유지하는 존재임.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에게 사람을 위한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임. 가뜩이나 부유한 이들에게 있어서 또한 어부였던 이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위한 어부가 되라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을 것임. 물론 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들에게 예수님이 기적을 보여주시긴 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람을 위한 어부가 되라고 하는, 자신의 직위와 부를 포기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는 말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 것이 당연함.
- 하지만 이들은 즉시, 자신의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음, 이것이 바로 예수님, 하나님이 이 제자들을 쓰신 이유임. 우리는 과연 우리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고, 거기에 사람들을 위해 희생까지 치를 수 있을까? 고민해보아야 함.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는 것임,
-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가난하게, 힘들게 사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임. 이것은 아주 거룩하고 힘든 임무임. 처음부터 가난하고 힘들게 살자!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즉시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냐는 의미임.
- 사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임. 우리는 그것을 앎에도 도무지 그것을 놓고 하나님께로 집중하지 못함. 지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함. 누군가에겐 돈, 누군가에게는 자존심, 누군가에게는 가족,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무엇인가 있을 것임.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나에게로 초대해야만 함.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함.
-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며 버린 것들을 평생 버리고 살진 않았음. 그 이유는 우리가 가난과 초췌함을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다만 우리에게 그런 것들보다 하나님을 귀하게,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임.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다른 것들보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함.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형통한 삶이 되는 것임.
6. 종언
- 신약성경의 독특한 특징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함.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보내다, 부르다 라는 동사가 굉장히 많이 나옴. 한국적인 표현이 아니라 어색할 수 있지만, 이런 표현은 보통 보내짐을 받았다 혹은 부르심을 받았다와 같이 수동적인 표현임. 또한 그런 수동적인 동사를 취한 주체, 즉 보낸 사람, 부른 사람은 나오질 않음. 그것은 우리를 보낸, 우리를 부른 사람이 하나님이기 때문임.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존재이던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임.
그러나 그 동사의 주체, 즉 보낸 사람, 부른 사람은 나오질 않음. 그것은 우리를 보낸, 우리를 부른 사람이 하나님이기 때문임.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존재이던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임.
- 우리의 소유와 귀해보이는 것에 집착하느라 하나님이 부른 존재임을, 하나님이 보낸 존재임을 우리 스스로가 잊어서는 안됨.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 나를 따라오라고, 사람을 위한 어부로, 000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
- 즉시, 우리의 것들을 버려두고, 우리에 것에 더는 집착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