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6.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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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2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구약 83페이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중등부 고등부 교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이 당시 이스라엘은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산파들을 통한 계책이 좌절된 후, 바로는 갓난 아기를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정말 극악한 법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 수많은 아기들이 나일강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명의 아기의 생명이 스러질 때마다, 온 가족의 마음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일하심은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알 수 있길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른 서신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는 축복과 권면으로 서신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며,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1장 22절의 바로의 명령이 있기 전, 한 레위인남녀가 결혼을 합니다. 왜 있기전으로 보이냐면, 아론의 존재 때문입니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 아론이 태어나서 자라고 있었다면, 아론이 태어났을 때는 이런 끔찍한 명령이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이미 태어났고, 미리암은 오늘 본문에서 보다시피 영리하게 말할 줄 알았다는 것을 볼 때, 모세의 부모님이 결혼 한 것은 바로의 명령이 공포되기 전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두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을 때, 바로의 명령이 떨어졌고, 모세가 그 대상이 된 것입니다.
본문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말하십니다.
그리고 2절에 따라 아주 이쁜 아기가 태어나게 됩니다. 너무 이뻐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3달동안 키우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3개월이 되면 어떻습니까. 다들 아시겠지만 손도 발도 매우 작고 정말 가장 이쁘고 귀여울 때입니다. 동시에 밤마다 울어재낄 때입니다. 그래서 3절에 더 이상 숨길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갈대상자, 정확히 말해 파피루스로 상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역청과 나무진액을 바릅니다. 참고로 이당시 파피루스로 2m가 넘는 배를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갈대사이에 그 상자를 놓아두게 됩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모든 가족들이 모세를 그렇게 버려야 하는 것을 애통해하며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미리암조차 멀리서 계속 동생을 지켜볼 정도입니다. 상자밖으로 아기 우는 소리가 처음에 크게 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가족의 심정이 상상이 가십니까.
그리고 21절에서는 그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이루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되길 원하시는지 말씀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욕을 하러 온 바로의 딸이 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구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공주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공주는 아버지, 바로의 뜻을 거역하고 모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22절과 23절을 통해 히브리서의 목적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9절을 통해 모세는 다시 가족의 품에 들어가게 되고,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키우는데, 월급을 받으며 키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절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권면, 명령을 하며, 25절에서 마지막 축복을 합니다.
그 당시 수많은 아기들이 나일강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파피루스 상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기들은 결국 며칠동안 물위에 떠있다가 지쳐서 죽거나, 물에 빠져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면 본문은 20,21절의 축복, 22-23절의 위로, 24절의 마지막 권면, 25절의 축복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은 이스라엘이지만, 바로를 향해 단 한마디로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추측하건데,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알현한 것처럼, 바라에게 간청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의 뜻을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사람과 바로는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 상위의 인간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20절과 21절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누구도 모르게 움직이셨습니다. 그 슬픔과 울부짖음을 보시고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그 증거가 모세의 탄생입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을 칭하며,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모세의 탄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권세의 허망함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는 우리의 대장이시자, 목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부활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냐면,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그렇게 절대적인 권세를 자랑했던 바로지만, 한 아기가 자신의 궁전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딸이 자기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차 자신들에게 가장 큰 방해가 될 아이를,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아이를 자신들의 돈을 주고 키우게 하고, 애굽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로서 세상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단 한 걸음도 멈추게 할 수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 당시 이스라엘이 알았을까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의 가족조차 모세가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모세의 생명이 구해지고, 공주의 딸이 된 것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바로와 애굽역시도 몰랐습니다. 그저 수없이 죽어가던 아기중 한명의 예외일 뿐이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우리의 하늘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자 대장이자 가장 큰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평강이 주어질 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의 피, 구약에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그 보다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복과 화를 애굽에 선포하십니다.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첫 번째는,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약에서도 그렇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그저 말씀이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약속을 결단코 지키고 마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모세를 구한 공주는 하트셉투스라는 여자로, 나중에 이집트역사에 드물게 여황제가 되는데, 절대적인 권세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 21년간 이집트를 바로의 자리에 올라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여자가 바로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 여황제가 다스릴 때는 이집트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여성군주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3번째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겠다. 다른 말로 평강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왜 이집트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일이 발생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모세라는 한 아기의 생명을 구한 공주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앞서 12장 14절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추구해야 할 존재이며, 이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살렘왕, 평강의 왕 멜기세덱이 가졌었고,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며 가졌던 평강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당시 성도들에게 평강이란 참 힘든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추구하라 하셨고, 그를 위해 은혜로 강해짐이 아름답다 말씀하셨고, 그 강해짐으로 영문밖으로 나아가라 권면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강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예 신경도 쓸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세상풍파에 시달려 지쳐버리고, 휘청거린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평강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아기들의 피를 가만히 두고 보셨습니까.
21절에서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케 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준비된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잘 준비되어서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왜 모든 선한 일에 라는 표현을 쓸까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과 사람에게 선한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 선한 일,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고 이루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선한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원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으로 괴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길을 만들 정도로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열가지 재앙중 첫 번째 재앙이 무엇입니까.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무엇입니까. 모든 장자의 죽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갚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인 나일강 자체를 피로 변하게 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을 통해 바로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남자 아기들을 죽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셨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살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이며,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며 축복이 되기를 히브리서는 축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셔서, 영광이 삼위 하나님께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축원을 끝냅니다.
그 이후에도 약 200년간 애굽은 혼란기를 겪게 됩니다. 출애굽 때 왕인 아멘호텝2세 이후 둘째인 아멘호텝3세가 왕이 되지만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둘째인 3세가 죽기 전에 먼저 그의 장자가 죽습니다. 그 이후 등극한 아멘호텝4세는 종교개혁과 천도를 단행하지만 그가 죽자 원상복구되어버립니다. 그 다음 등극한 투탕카멘은 18살의 나이에 죽습니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죽음 이후 아예 왕조가 18대 왕조에서 19대 왕조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이런 축복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강해지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아프고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단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채찍질에 끄떡도 하지 않을 강한 아들 딸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했듯이, 모든 심판받고 멸망받을 것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시며,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즉, 이집트 18대왕조의 부흥과 패망이 이스라엘민족에게 달려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모세를 건진 하트셉수트의 통치덕분에 이집트가 강력해져서 그 이후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참고로 이 투트모세 3세는 제위기간의 반을 하트셉수트, 모세를 건진 공주와 함께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 투트모세라는 파라오역시 하나님께서 공주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위로의 책입니다. 22절의 권면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위로의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게 위로하시는 책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말해도 위로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나오는 특별한 비교가 있습니다.
이 세상 권세, 정말 강력해 보입니다. 실제 오늘 본문에 나오듯 바로의 말 한마디로 수많은 이스라엘의 아기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18대 왕조를 살펴보니 어떻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복을 받았고 이스라엘 때문에 벌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신왕조를 세우고 2대로 물려받은 투트모세1세가 이스라엘을 박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것을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딸인 하트셉수트가 모세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모세가 자라고 광야에서 단련받는 기간인 80년동안 애굽에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애굽은 강성해졌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루어놓았던 심판을 실행하셨습니다. 나일강에서 흘려졌던 갓난 아기들의 피를 갚으셨습니다. 그 결과 출애굽이 이루어졌고, 동시에 18대 왕조의 몰락이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숫자의 비교입니다. 당장은 세상사람들이 우리보다 많은 것같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응원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있으며, 하늘의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수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숫자가 많은 것에 쏠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숫자가 높아야하고, 사람도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며 내 의견이 다르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보다 선진들이 더 많고,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더 많다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라고 말씀하신 :3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비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중요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시내산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하늘 성전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셋째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 살며,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진영밖, 영문밖으로 나올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옷을 입고, 세상방식과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승리하심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을 오히려 우리에게 맞추는 강한 용사가 될 것을 권면하십니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홀로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라고 :12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마치 배가 작은 키를 통해 움직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이라는 배의 키로 삼으셨습니다.
마치, 23절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위로를 글로만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함께 너희에게 가서 함께 하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와 히브리서의 저자가 로마로, 박해의 현장으로 가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마지막 권면은 문안하라입니다. 이말은 심방하라는 말입니다. 그 심방이 목숨을 건 심방이 될 수 있지만, 찾아가서 함께 고난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나누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이 꽃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실 뿐,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고,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여지고, 더욱 축복받으며, 하나님앞에 더욱 겸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믿고 은혜로 강해지며,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언제나 믿음가운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세대축제
태신자 전도주일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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