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20.금요기도회설교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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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여호수아 6장 16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구약 327페이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특송 : 청년 1부 2부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명령중 빠질 수 없는 명령이 있다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명령일 것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기 위함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산파들을 통한 계책이 좌절된 후, 바로는 갓난 아기를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정말 극악한 법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 수많은 아기들이 나일강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명의 아기의 생명이 스러질 때마다, 온 가족의 마음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일하심은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알 수 있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 거룩으로의 부르심은 지금 우리에게도 변함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거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래 요구하신 거룩은 어느정도일까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신약의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이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나온 온전히 바침이라는 단어를 통해 살펴보며,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론
1장 22절의 바로의 명령이 있기 전, 한 레위인남녀가 결혼을 합니다. 왜 있기전으로 보이냐면, 아론의 존재 때문입니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 아론이 태어나서 자라고 있었다면, 아론이 태어났을 때는 이런 끔찍한 명령이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이미 태어났고, 미리암은 오늘 본문에서 보다시피 영리하게 말할 줄 알았다는 것을 볼 때, 모세의 부모님이 결혼 한 것은 바로의 명령이 공포되기 전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여리고성의 함락 직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여리고성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니 그 바쳐진 것을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들이 두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을 때, 바로의 명령이 떨어졌고, 모세가 그 대상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히 바치다, 온전히 바쳐진 것, 바쳐진 것으로 번역된 단어가 헤렘입니다.
그리고 2절에 따라 아주 이쁜 아기가 태어나게 됩니다. 너무 이뻐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3달동안 키우게 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3개월이 되면 어떻습니까. 다들 아시겠지만 손도 발도 매우 작고 정말 가장 이쁘고 귀여울 때입니다. 동시에 밤마다 울어재낄 때입니다. 그래서 3절에 더 이상 숨길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갈대상자, 정확히 말해 파피루스로 상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역청과 나무진액을 바릅니다. 참고로 이당시 파피루스로 2m가 넘는 배를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갈대사이에 그 상자를 놓아두게 됩니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모든 가족들이 모세를 그렇게 버려야 하는 것을 애통해하며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미리암조차 멀리서 계속 동생을 지켜볼 정도입니다. 상자밖으로 아기 우는 소리가 처음에 크게 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못하고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가족의 심정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 헤렘이란 단어는 온전히 바치다뿐 아니라, 진멸하다, 멸하다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목욕을 하러 온 바로의 딸이 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구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공주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공주는 아버지, 바로의 뜻을 거역하고 모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헷갈리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헤렘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19에서 쓰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9절을 통해 모세는 다시 가족의 품에 들어가게 되고,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키우는데, 월급을 받으며 키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20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거기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 되어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즉, 우상숭배에 대한 말씀에서 처음으로 나옵니다. 얼핏보면 우상숭배가 얼마나 큰 죄인지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헤렘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레27장입니다. 21절과 28절에서 쓰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영영히 바쳐진 것, 온전히 바쳐진 것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28절 마지막에 헤렘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아기들이 나일강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파피루스 상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기들은 결국 며칠동안 물위에 떠있다가 지쳐서 죽거나, 물에 빠져서 죽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봐도 헤렘이라는 단어가 정말 난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우상에게 제사, 예배드린 자를 헤렘시켜라. 그런데, 물건이나 땅이 헤렘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극히 거룩하다라는 표현은 오직 하나님께 드린 것중에서도, 속건죄와 속죄제, 화제등 제사와 관련되어서만 쓰입니다. 그래서 제사가 드려지는 제단과 제물인데, 제물도 그냥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대로 정해진 제단에서 드려지는 것만이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됩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거룩하다라는 표현은 오직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실 것만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은 이스라엘이지만, 바로를 향해 단 한마디로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추측하건데,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알현한 것처럼, 바라에게 간청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의 뜻을 바꿀 힘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사람과 바로는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 상위의 인간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렘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레위기 27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헤렘이 사람에게 적용되었을 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그 누구도 모르게 움직이셨습니다. 그 슬픔과 울부짖음을 보시고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앞서 :19에서 우상숭배,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를 헤렘시켜라, 멸해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증거가 모세의 탄생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27장 28절 바로 뒤인 29절에서 헤렘이 사람에게 적용되면 어떻게 하라고 나오는지 아십니까? 헤렘된 사람은 죽이라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헤렘이 적용되면 절대로 무를수 없다라고 합니다.
모세의 탄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권세의 허망함입니다.
여기서 헤렘의 양면성이 나타납니다. 물건이나 땅이 헤렘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합니다. 그래서 그 물건이나 땅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 누구도 그것을 건드릴수 없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을 위해 있는, 하나님께 온전히 소속된 제사장만이 헤렘된 물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나 양이 헤렘되었다면 그 고기는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땅이 헤렘되었다면 그 땅은 제사장의 기업이 됩니다. 그래서 민수기18장에서는 제사장의 몫을 하나님께서 정하시며 14절에 헤렘된 모든 것은 네 것이라고 아론을 향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야기하십니다.
그 당시 그렇게 절대적인 권세를 자랑했던 바로지만, 한 아기가 자신의 궁전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딸이 자기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차 자신들에게 가장 큰 방해가 될 아이를,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아이를 자신들의 돈을 주고 키우게 하고, 애굽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로서 세상 권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단 한 걸음도 멈추게 할 수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헤렘되면 그 사람은 결코 살수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죽어야 합니다. 어떤 수단을 써서도 그 사람을 빠져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 당시 이스라엘이 알았을까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의 가족조차 모세가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모세의 생명이 구해지고, 공주의 딸이 된 것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바로와 애굽역시도 몰랐습니다. 그저 수없이 죽어가던 아기중 한명의 예외일 뿐이었습니다.
왜냐면 헤렘은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헤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말씀에 잘 순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헤렘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복과 화를 애굽에 선포하십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서 그 절차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헤렘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극히 거룩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모세를 구한 공주는 하트셉투스라는 여자로, 나중에 이집트역사에 드물게 여황제가 되는데, 절대적인 권세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 21년간 이집트를 바로의 자리에 올라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여자가 바로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 여황제가 다스릴 때는 이집트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여성군주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담이후 모든 사람은 죄악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죄와 사람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사람에게 헤렘이 적용되면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헤렘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 그것도 지극히 거룩함과 사람의 죄악이 정면 충돌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헤렘이란 단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시내산 언약을 하기전 :20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헤렘은 정말 난해한 단어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헤렘은 진멸하고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진멸하다라는 단어는 헤렘말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약속의 땅이 헤렘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이집트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일이 발생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모세라는 한 아기의 생명을 구한 공주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헤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과 약속한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호르마를 점령하기 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이땅, 가나안땅을 헤렘시킬 것을 서원합니다. 그러나 그때, 호르마 점령때, 사람은 헤렘시켰지만 가축과 탈취물들은 헤렘시키지 않았다고 모세는 신명기 3장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신명기 7장에서 가나안땅을 헤렘시키라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13장에서는 아예 가축까지 칼날로 헤렘시켜라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13장에서 헤렘의 직접적인 대상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게 한 성읍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결국 점령되지 않은 가나안민족들은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전파하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다른 신,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3장에 따르면, 그 성읍들, 가나안의 모든 성읍들은 사람뿐아니라 가축들까지 모두다 헤렘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까지 모두 헤렘시키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헤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는 것, 사람이 죽는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아기들의 피를 가만히 두고 보셨습니까.
물론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점령한 모든 성에는 헤렘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헤렘은 가축까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온전한 헤렘, 가축까지 죽이고, 물건은 하나님께 돌리는 헤렘을 명했을 때,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아간의 범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8장 2절에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가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온전한 헤렘이 실행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가지 재앙중 첫 번째 재앙이 무엇입니까.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무엇입니까. 모든 장자의 죽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이 헤렘되는 것을 원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헤렘을 통해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땅이 헤렘되게 되면 그 땅은 레위기27장의 말씀에 따라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의 기업이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갚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인 나일강 자체를 피로 변하게 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을 통해 바로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남자 아기들을 죽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셨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살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렘은 단순히 싹 쓸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을 헤렘시키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구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영원한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땅에 이스라엘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소유인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에서 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가축과 탈취물까지 온전히 헤렘시켰다면, 그 거룩하신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온전히 이방의 빛이 되어 가나안뿐 아니라 세계의 빛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약 200년간 애굽은 혼란기를 겪게 됩니다. 출애굽 때 왕인 아멘호텝2세 이후 둘째인 아멘호텝3세가 왕이 되지만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둘째인 3세가 죽기 전에 먼저 그의 장자가 죽습니다. 그 이후 등극한 아멘호텝4세는 종교개혁과 천도를 단행하지만 그가 죽자 원상복구되어버립니다. 그 다음 등극한 투탕카멘은 18살의 나이에 죽습니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죽음 이후 아예 왕조가 18대 왕조에서 19대 왕조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스라엘의 빛됨을 통하여, 이제 헤렘을 통한 죽음이 아닌,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하심이 들어있었습니다.
즉, 이집트 18대왕조의 부흥과 패망이 이스라엘민족에게 달려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모세를 건진 하트셉수트의 통치덕분에 이집트가 강력해져서 그 이후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참고로 이 투트모세 3세는 제위기간의 반을 하트셉수트, 모세를 건진 공주와 함께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 투트모세라는 파라오역시 하나님께서 공주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온전한 헤렘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리고의 온전한 헤렘은 곧 아간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의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의 헤렘은 그저 사람을 헤렘시키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은 헤렘된 땅, 하나님의 소유가 된 지극히 거룩한 땅, 그래서 그 땅에 살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제사장밖에 없는 땅, 에덴과 같은 땅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 권세, 정말 강력해 보입니다. 실제 오늘 본문에 나오듯 바로의 말 한마디로 수많은 이스라엘의 아기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남은 가나안의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덫과 올무가 되어 결국 다같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8대 왕조를 살펴보니 어떻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복을 받았고 이스라엘 때문에 벌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신왕조를 세우고 2대로 물려받은 투트모세1세가 이스라엘을 박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것을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딸인 하트셉수트가 모세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모세가 자라고 광야에서 단련받는 기간인 80년동안 애굽에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애굽은 강성해졌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루어놓았던 심판을 실행하셨습니다. 나일강에서 흘려졌던 갓난 아기들의 피를 갚으셨습니다. 그 결과 출애굽이 이루어졌고, 동시에 18대 왕조의 몰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전히 헤렘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온전한 헤렘을 위해서는 우리가 죽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거룩해진다면, 그 누가 헤렘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상 자발적인 헤렘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바로 헤렘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극히 거룩함은 제사, 제물, 헤렘에게만 나오는 칭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삼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헤렘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모습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또한 헤렘되셔서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모여 있던, 그때까지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에게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지극히 거룩함을 받을 자격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결론
라고 말씀하신 :3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서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거룩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우리의 삶, 생활로 나타나는 거룩함, 구별됨이라 우리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거룩함은 오직 헤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헤렘된 모든 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뺏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강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렘을 통해 우리를 지극히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됨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가 지극히 거룩하다는 것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지극히 거룩함이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바랍니다.
라고 :12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헤렘을 통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그 사랑으로 위로받고 재충전받기를 원합니다.
마치 배가 작은 키를 통해 움직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이라는 배의 키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그 사랑으로 위로받고 재충전정도가 아니라 새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도 그 헤렘에 걸맞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실 뿐,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헤렘이라는 과정을 통과시키게 하기 위해 태초부터 기다리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언제나 믿음가운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니 헤렘된 자, 죽은 자,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 생명을 얻은 자 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원래 내가 죽어야 했음을 기억하시며, 하나님과 사람앞에 낮아집시다. 또한 우리의 낮아짐으로 하나님의 높으심을 드러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헤렘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복을 걷어찼습니다. 눈앞에 황금과 가축, 물질에 눈이 멀어 지극히 거룩함을 걷어찼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눈앞에 이익, 명예, 편안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세대축제
태신자 전도주일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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