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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바라보는 시선
그리스도인의 바라보는 시선
주님이 칭찬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
() “41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진심일까, 아니면 재물일까? 복음서에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봉헌합니다.(,) 그 가치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누구나 재물은 귀중하며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여인은 기쁨으로 아낌없이 바쳤기에 예수님께서 그 정성에 칭찬 하십니다. 설교시간에 목사님은 가끔 헌금을 강조 할 때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소개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런 뜻에서 여인에게 칭찬을 하셨을까요?
<성경 배경>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면 이방인의 뜰이 있고, 이어서 문으로 들어가면 여인의 뜰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 미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뜰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고 가르치신 후 여인의 뜰로 가셨습니다. 여인의 뜰에는 13개의 헌금궤가 있었습니다. 헌금궤중에 7개는 성전세를 내는 헌금궤입니다. 그리고 6개는 낙헌제의 예물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것들은 나팔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윗부분은 넓고 아랫부분은 좁아서 마치 나팔과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이 헌금궤들은 각각 다른 목적을 위해 헌납하도록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물을 위한 곡물, 포도주, 기름 등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희생 제물을 태우는데 사용되는 나무, 제단위의 번제로 드려질 향료, 금그릇 들의 유지비 등을 위한 헌금궤입니다.
헌금궤 중 7개는 성전세를 내도록 한 것이고, 6개는 자유롭게 봉헌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매일 드리는 제물이나 성전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돈을 넣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팔궤 옆에 앉아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과 사두개인,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질책하신 후 피곤함을 느껴 고개를 떨어뜨리고 계셨습니다.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고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연보궤는 카조퓔라키온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물, 금고라고 번역되면, 헌금궤를 의미합니다. 렙돈은 그리스의 최소 화폐 동전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들은 옷차림으로 구별이 되었을 것입니다.
()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헌금 액수가 아니라 전체 소유 가운데 바친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기준으로 가난한 여인의 헌금을 판단하셨습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서 많은 헌금을 바쳤지만 그들의 풍족한 재산에 비하면 적은 양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재산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부를 바쳤기 때문에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습니다.
예수님이 과부의 헌금을 칭찬한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입니다. 금전상으로 볼 때 그녀의 헌금은 성전의 재정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헌금을 평가할 때 물질주의나 황금만능주의 입장에서 평가한 것이 아니고 순수한 신앙의 입장에서 평가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헌금 문제로 상처를 받은 성도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예수님의 과부의 헌금을 칭찬한 것은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소재로 풍족한 형식적인 희생과 믿음을 지적하십니다. 특히, 이 이야기는 앞 장에서 다룬 바 있는() 서기관들의 위선적 경건을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1)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심
성전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명목의 모금함에 헌금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부자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란 뜻으로 도라(dw'ra)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도론(dwvron 은사, 예물, 헌금, 선물) 목적격 복수로 사용된 것으로, 부자의 헌금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연히 가난한 과부의 헌금 행위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보시고'라는 말을 :41에서는 에데오레이(ejqewvrei)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의도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누가는 에이덴(eiden)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 예수께서 우연히 과부의 헌금 행위를 접하고 알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서기관들의 자기 자랑과 허영심에 의하여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 것에 비하면, 항상 구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 행위는 비록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 가난한 과부의 헌금
성경에서 '과부'(chvran 케란)는 가난한 사람으로, 흔히 구제의 대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penicra;n 페니크란)이라는 말로 꾸며지고 있습니다. 페니크란(penicra;n) 이란 말은 '굽실거리는, 거지 같이 보이는' 것을 의미하며, 광범한 의미에서의 가난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과부의 형편이 그만큼 초라하고 옹색하였다는 뜻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금액은 두 렙돈(lepta; duvo 렙타 뒤오)입니다. 이 금액의 가치는 1페니의 1/16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래 '빈약한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렙돈' 1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렙돈 1개는 허락하지를 않아 2개를 드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연보 궤는 헌금함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은 많이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부자의 동전은 아마 요란하게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때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과부인 그녀는 빈민이었습니다. 렙돈은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의 가장 작은 단위였습니다. 두 렙돈은 1/64 데나리온이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마가복음서를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로마의 화폐단위를 같이 설명한 것입니다. 고드란트는 로마의 화폐단위입니다. 이 여인은 한 렙돈을 내면 되었지만 두 렙돈을 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예수님의 눈에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심지어 그녀는 많이 연보한 부자보다 많이 넣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비록 그녀가 드린 예물은 금전적인 가치는 적었지만 희생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큰 것입니다. 예물의 가치는 그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낸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의 작은 두 렙돈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한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44절) 부자들의 예물은 풍족한 가운데 낸 것이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던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서기관의 외식을 설명하시고 이어서 바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설명하셨습니다. 과부의 헌신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의 부정적인 예를 설명하시고 가난한 과부를 긍정적인 모델로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 중에 예배당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보다는 형식과 습관에 얽매여 예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일상에서도 윗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외모도 정갈히 하고 의복도 귀중한 것으로 골라 입고 가거늘 하물며 우리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예배하러 갈 때에는 어떠한 복장과 어떠한 마음으로 임해야 할지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할려고 예배당에 가면서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가슴에 품고 가면서 주님께 그 무엇을 내어 드리고 무엇을 감사하다고 에배당을 찾는지 한심하다 못해 측은한 마음마저 들 때가 한두 번은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배 자들이 예배에 몰두하는 순간에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 벨 소리로 마음이 흩어지게 하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으로 용서가 될는지요? 헌금은 감사한 마음에 주님께 올리는 정성의 표시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감사는 물론이며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생명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예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마음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께 습관처럼 몇 천 원 몇만 원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해방감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예배당 문을 박차고 나가지는 않는지요? 많고 적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마음인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헌금에 대하여 칭찬하신 것은 부자는 나쁘고 과부는 착하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의 전부가 아니며, 많고 적음이 아니고, 어떤 마음가짐이냐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의 소유를 전부 바치라는 것이 아니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마음가짐이 하나님께 전부를 드릴 수 있느냐? 와 모든 물질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아느냐 입니다. 무작정 가난한 과부를 미화 하거나 부자를 배척하려는 뜻이 아니며, 당시에 가진 자의 횡포를 지적하면서 많이 가진 자들이 어려운 자들을 괴롭혀서 착취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시대의 헌금도 하나님께 드림으로 복 달라고 거래하는 물질이 아니고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 가진 자들은 율법이 정한 자유와 해방을 베풀어야 하였음에도 겉으로만 지키는 척하였고 과부와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야할 물질은 오히려 움켜지고 베풀지 않았고 그 물질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대노하시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헌금은 기쁨과 감사로 드려야 합니다. 억지로나 자랑으로 내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이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였기에 예수님은 책망하시고 작은 것을 드린 여인이 성경에 기록되며 칭찬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중에는 가난한 자의 몫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 내것이라고 하면 주님께서 네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물질 안에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할 인금과 구제의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 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