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4.금요기도회설교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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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구약84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남여 회장단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지난 시간 우리는 모세가 살인하고 미디안으로 쫓겨난 사건을 통해 나타난 모세의 정체성문제를 보았습니다. 모세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잘 살게 만드는 문제를 다루는 애굽사람임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게르솜을 낳고 한 말을 통해 자신이 이제는 애굽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도 아닌 이방땅에 사는 이방인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약속의 땅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을 원하시지만, 전혀 다름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임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은혜를 알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른 서신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는 축복과 권면으로 서신을 끝마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며,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오늘 본문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면, 모세가 등장하거나 말을 하기 전에는 항상 ‘모세’라는 이름이 쓰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인지는 6절에 가서야 나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되어있지만 히브리어에는 단순히 그가 말했다라고만 적혀있습니다. 반면 모세가 말할 때나 등장할 때는 항상 모세라는 이름이 쓰입니다. 그러면,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세라는 이름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때는 종이가 귀함. 문맹도 많음) 오늘 말씀은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세라는 사람에게 집중하도록 구성되었다는 뜻입니다.(우리말은 편의성 때문에 생략).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시는데, 정작 모세는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문제, 단 한번도 이스라엘인이 되어본적이 없는 모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본문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말하십니다.
그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그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이루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되길 원하시는지 말씀합니다.
호렙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내산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알고 간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양떼가 먹을 풀을 찾아 광야 깊숙이 들어가다보니 도착한 곳입니다. 그러나 시내산으로 모세를 이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양치기로 있게 한 것도 하나님이시고, 오직 양떼를 위해서 미디안의 서쪽, 광야 깊숙한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탈굼은 모세가 간 미디안의 서쪽 방향이 그가 보통 양을 치는 루트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그런 주요한 루트를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22절과 23절을 통해 히브리서의 목적을 위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세를 호렙산으로 이끄신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에 임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자, 천사를 보내어 떨기나무를 예비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불이 붙었지만 타지않는 그 떨기나무를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세를 하나님의 곁으로 이끄십니다. 이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정의 공통점은 모두 자연스럽게 모세를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때처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명하여 호렙산으로 오라고 했다면, 모세가 따랐을까요. 이후에 나타난 모세의 반응을 보면,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절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권면, 명령을 하며, 25절에서 마지막 축복을 합니다.
모세를 모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올 수있도록 모든 상황을 이끄셨습니다.
모세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먼저 가까이 오지 말고 신을 벗으라는 말로서, 모세를 준비시키십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은 예배, 섬김을 뜻합니다. 당시 종은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가 한 말중에는 발에 신을 신기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방의 제사장들은 제사를 할 때 누드로 했다고 합니다. 말그대로 신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그저 양치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살게될 모세를 가장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6절을 통해 지금 모세가 보는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십니다. 그저 이름없는 신,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택하고 부르신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하면 본문은 20,21절의 축복, 22-23절의 위로, 24절의 마지막 권면, 25절의 축복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일상적으로 다니던 그 길에서 벗어나 호렙산까지 오게 하시고, 불이 붙은 떨기나무를 보게 하시고, 그 앞에서 신을 벗어 예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배하는 하나님이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변화시김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먼저 20절과 21절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을 칭하며,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하고 이제 80세의 미디안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미디안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미디안의 주 사업은 무역과 광업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안인들은 광야라는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에 많은 무역을 했다고 합니다. 요셉을 애굽에 판 자들도 미디안인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는 많은 귀금속과 광물들이 났기 때문에 그것들을 채굴해서 파는 광산업이 주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디안은 환경은 좋지 않지만 부유한 나라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는 우리의 대장이시자, 목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부활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냐면, 영원한 언약의 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상업도 채광도 아닌 목축을 하고 있는 모세는 사회의 비주류중에 비주류라 할 수있습니다. 그는 제사장 집에 딸린 양치기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우리의 하늘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자 대장이자 가장 큰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평강이 주어질 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의 피, 구약에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그 보다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영원한 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꿈을 꾸게 하십니다.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첫 번째는,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약에서도 그렇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께서 그저 말씀이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약속을 결단코 지키고 마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7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나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이 본 것, 자신이 들은 것에 따라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보시고 들으신 것, 그래서 결정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을 말씀하십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들으시고 아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도망가기전 잠시 보고 들은 것, 그래서 조금 알게된 그 지식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과 결과까지 완전히 꿰뚫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3번째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겠다. 다른 말로 평강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일방적으로 움직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입장이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애굽인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노릇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십니다. 8절 처음에 뭐라고 나옵니까. 내가 내려가서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내려가다와 마지막에 데려가다는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올라오게 할 것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앞서 12장 14절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추구해야 할 존재이며, 이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살렘왕, 평강의 왕 멜기세덱이 가졌었고,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며 가졌던 평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올라가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하심에 함께 하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걷자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평강이란 참 힘든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추구하라 하셨고, 그를 위해 은혜로 강해짐이 아름답다 말씀하셨고, 그 강해짐으로 영문밖으로 나아가라 권면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평강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예 신경도 쓸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세상풍파에 시달려 지쳐버리고, 휘청거린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평강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직접 내려왔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애굽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21절에서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케 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준비된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잘 준비되어서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왜 모든 선한 일에 라는 표현을 쓸까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과 사람에게 선한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 선한 일,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고 이루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선한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원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으로 괴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켜 하나님 나라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길을 만들 정도로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제가 누구인데 그걸 하겠습니까”입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이며,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며 축복이 되기를 히브리서는 축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셔서, 영광이 삼위 하나님께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축원을 끝냅니다.
모세는 지명수배자입니다. 바로 앞에는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고,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을 살인자, 실패한 혁명가, 양치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언자로 부르시고, 선지자라고 말씀하시는데, 모세는 계속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신이 행했던 실패들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이런 축복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분명 강해지는 과정은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아프고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단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채찍질에 끄떡도 하지 않을 강한 아들 딸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했듯이, 모든 심판받고 멸망받을 것들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시며, 우리의 모습을 자랑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뭐라 대답하십니까. 모세에게 넌 실패자가 아니야. 넌 살인자가 아니야. 넌 단순한 양치기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까. 그저 한마디만 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애써서 모세가 누구인지, 모세의 정체성이 세계관이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있음만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위로의 책입니다. 22절의 권면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위로의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알맞게 위로하시는 책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말해도 위로가 될 터인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나오는 특별한 비교가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언자로, 선지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대변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을 대변하게 한 단체나 인물의 생각입니다. 자신을 보낸 단체나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대변인의 위치가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택하시고 보내십니다. 단순히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십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인자이든, 실패자이든, 40년간 양만친 일개 양치기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의 곁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가 하는 말과 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숫자의 비교입니다. 당장은 세상사람들이 우리보다 많은 것같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응원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있으며, 하늘의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항상 수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숫자가 많은 것에 쏠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숫자가 높아야하고, 사람도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며 내 의견이 다르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나를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쌓아져 만들어진 현재의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 할수 없는 일을 판단합니다. 스스로 틀을 만들고 그 틀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보다 선진들이 더 많고,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더 많다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나오라 하십니다. 모세를 일상적인 루틴에서 벗어나 호렙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가까이 오게 하십니다. 그에게 신을 벗게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여 경외함으로 예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떻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함을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비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중요하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시내산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하늘 성전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라 하시는데, 우리는 그럼에도 내가 만든 우물속에 있으려 할 때 있지 않습니까. 불이 붙은 떨기나무를 보면서도 저 떨기나무는 불타지 않지만 나는 불탈걸야 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셋째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 살며, 세상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진영밖, 영문밖으로 나올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옷을 입고, 세상방식과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승리하심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을 오히려 우리에게 맞추는 강한 용사가 될 것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가 누구인지 굳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홀로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내 능력이 어떤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셨고,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입니다.
마치, 23절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위로를 글로만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함께 너희에게 가서 함께 하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와 히브리서의 저자가 로마로, 박해의 현장으로 가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마지막 권면은 문안하라입니다. 이말은 심방하라는 말입니다. 그 심방이 목숨을 건 심방이 될 수 있지만, 찾아가서 함께 고난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나누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쁨이 꽃피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지금도 모든 만물의 유지가 그분께 달려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변하지 않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 일을 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힘들어지고,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여지고, 더욱 축복받으며, 하나님앞에 더욱 겸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믿고 은혜로 강해지며,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어떠함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으로 점점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태신자 전도주일 이후 정착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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