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수아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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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וַיֹּ֨אמֶר מֹשֶׁ֜ה אֶל־הָֽאֱלֹהִ֗ים הִנֵּ֨ה אָנֹכִ֣י בָא֮ אֶל־בְּנֵ֣י יִשְׂרָאֵל֒ וְאָמַרְתִּ֣י לָהֶ֔ם אֱלֹהֵ֥י אֲבוֹתֵיכֶ֖ם שְׁלָחַ֣נִי אֲלֵיכֶ֑ם וְאָֽמְרוּ־לִ֣י מַה־שְּׁמֹ֔ו מָ֥ה אֹמַ֖ר אֲלֵהֶֽם׃

14 וַיֹּ֤אמֶר אֱלֹהִים֙ אֶל־מֹשֶׁ֔ה אֶֽהְיֶ֖ה אֲשֶׁ֣ר אֶֽהְיֶ֑ה וַיֹּ֗אמֶר כֹּ֤ה תֹאמַר֙ לִבְנֵ֣י יִשְׂרָאֵ֔ל אֶֽהְיֶ֖ה שְׁלָחַ֥נִי אֲלֵיכֶֽם׃

15 וַיֹּאמֶר֩ ע֨וֹד אֱלֹהִ֜ים אֶל־מֹשֶׁ֗ה כֹּֽה־תֹאמַר֮ אֶל־בְּנֵ֣י יִשְׂרָאֵל֒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אֱלֹהֵ֨י אַבְרָהָ֜ם אֱלֹהֵ֥י יִצְחָ֛ק וֵאלֹהֵ֥י יַעֲקֹ֖ב שְׁלָחַ֣נִי אֲלֵיכֶ֑ם זֶה־שְּׁמִ֣י לְעֹלָ֔ם וְזֶ֥ה זִכְרִ֖י לְדֹ֥ר דֹּֽר׃

16 לֵ֣ךְ וְאָֽסַפְתָּ֞ אֶת־זִקְנֵ֣י יִשְׂרָאֵ֗ל וְאָמַרְתָּ֤ אֲלֵהֶם֙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נִרְאָ֣ה אֵלַ֔י אֱלֹהֵ֧י אַבְרָהָ֛ם יִצְחָ֥ק וְיַעֲקֹ֖ב לֵאמֹ֑ר פָּקֹ֤ד פָּקַ֨דְתִּי֙ אֶתְכֶ֔ם וְאֶת־הֶעָשׂ֥וּי לָכֶ֖ם בְּמִצְרָֽיִם׃

17 וָאֹמַ֗ר אַעֲלֶ֣ה אֶתְכֶם֮ מֵעֳנִ֣י מִצְרַיִם֒ אֶל־אֶ֤רֶץ הַֽכְּנַעֲנִי֙ וְהַ֣חִתִּ֔י וְהָֽאֱמֹרִי֙ וְהַפְּרִזִּ֔י וְהַחִוִּ֖י וְהַיְבוּסִ֑י אֶל־אֶ֛רֶץ זָבַ֥ת חָלָ֖ב וּדְבָֽשׁ׃

18 וְשָׁמְע֖וּ לְקֹלֶ֑ךָ וּבָאתָ֡ אַתָּה֩ וְזִקְנֵ֨י יִשְׂרָאֵ֜ל אֶל־מֶ֣לֶךְ מִצְרַ֗יִם וַאֲמַרְתֶּ֤ם אֵלָיו֙ יְהוָ֞ה אֱלֹהֵ֤י הָֽעִבְרִיִּים֙ נִקְרָ֣ה עָלֵ֔ינוּ וְעַתָּ֗ה נֵֽלֲכָה־נָּ֞א דֶּ֣רֶךְ שְׁלֹ֤שֶׁת יָמִים֙ בַּמִּדְבָּ֔ר וְנִזְבְּחָ֖ה לַֽיהוָ֥ה אֱלֹהֵֽינוּ׃

19 וַאֲנִ֣י יָדַ֔עְתִּי כִּ֠י לֹֽא־יִתֵּ֥ן אֶתְכֶ֛ם מֶ֥לֶךְ מִצְרַ֖יִם לַהֲלֹ֑ךְ וְלֹ֖א בְּיָ֥ד חֲזָקָֽה׃

20 וְשָׁלַחְתִּ֤י אֶת־יָדִי֙ וְהִכֵּיתִ֣י אֶת־מִצְרַ֔יִם בְּכֹל֙ נִפְלְאֹתַ֔י אֲשֶׁ֥ר אֶֽעֱשֶׂ֖ה בְּקִרְבֹּ֑ו וְאַחֲרֵי־כֵ֖ן יְשַׁלַּ֥ח אֶתְכֶֽם׃

21 וְנָתַתִּ֛י אֶת־חֵ֥ן הָֽעָם־הַזֶּ֖ה בְּעֵינֵ֣י מִצְרָ֑יִם וְהָיָה֙ כִּ֣י תֵֽלֵכ֔וּן לֹ֥א תֵלְכ֖וּ רֵיקָֽם׃

22 וְשָׁאֲלָ֨ה אִשָּׁ֤ה מִשְּׁכֶנְתָּהּ֙ וּמִגָּרַ֣ת בֵּיתָ֔הּ כְּלֵי־כֶ֛סֶף וּכְלֵ֥י זָהָ֖ב וּשְׂמָלֹ֑ת וְשַׂמְתֶּ֗ם עַל־בְּנֵיכֶם֙ וְעַל־בְּנֹ֣תֵיכֶ֔ם וְנִצַּלְתֶּ֖ם אֶת־מִצְרָֽיִם׃

13 וַיֹּ֨אמֶר מֹשֶׁ֜ה אֶל־הָֽאֱלֹהִ֗ים הִנֵּ֨ה אָנֹכִ֣י בָא֮ אֶל־בְּנֵ֣י יִשְׂרָאֵל֒ 1/4
וְאָמַרְתִּ֣י לָהֶ֔ם 1/8
אֱלֹהֵ֥י אֲבוֹתֵיכֶ֖ם 1/16
שְׁלָחַ֣נִי אֲלֵיכֶ֑ם 1/2
וְאָֽמְרוּ־לִ֣י מַה־שְּׁמֹ֔ו 1/4
מָ֥ה אֹמַ֖ר 1/8
אֲלֵהֶֽם׃1/2
모세가 그 하나님께 말했다(칼 바익톨) “보시옵소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칼 분사)1/4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칼 완)1/8
너희의 아버지들의 하나님이1/16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칼 완)1/2
그러면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의 이름이 뭐냐1/4
저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1/2
: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다.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하면 그들이 내게 그의 이름이 뭐냐고 말하면 저가 그들에게 뭐라 말해야 합니까?”
이름을 묻는다.
다소 반항적인 어투다.
그러나 이집트의 신화에 익숙해져있는 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창세기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족장이나 다른 자들이 쓴다.
어떻게 조화시킬 수있을까.
답은 성경은 우리를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한 말보다 읽는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서 적혀졌다.
성경은 형사들이 취조한 취조문서도, 역사적 사실의 보관을 위한 실록도 아니다.
구원을 위한 책이다. 그래서 라반도 여호와라는 명칭을 쓴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아마, 로 볼때,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엘샤다이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해를 돕고, 그 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성호를 쓴 것이다.
출애굽기 6:3 NKRV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또한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모세를 부르고, 기적을 보이시고, 거룩함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지칭한다.
즉, 모세의 태도가 얼마나 비틀려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 누구야?
14 וַיֹּ֤אמֶר אֱלֹהִים֙ אֶל־מֹשֶׁ֔ה 1/4
אֶֽהְיֶ֖ה 1/8
אֲשֶׁ֣ר אֶֽהְיֶ֑ה 1/2
וַיֹּ֗אמֶר כֹּ֤ה תֹאמַר֙ לִבְנֵ֣י יִשְׂרָאֵ֔ל 1/4
אֶֽהְיֶ֖ה 1/8
שְׁלָחַ֥נִי אֲלֵיכֶֽם׃1/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4
나는 ~다(칼 미완)1/8
나는 ~다(칼 미완)1/2
그래서 그가 말씀하셨다(칼 바익톨)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칼 미완)1/4
내가 ~다(칼 미완)가1/8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칼 완)1/2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다.” 그래서 그가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 나다 인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나님은 관사가 붙지 않는다. 즉, 모세의 공격적인 말투를 질책도 대응도 하지 않고 잔잔히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칭호가 아닌, 하나님, 그 자신 그대로라고 소개하신다.
이것은 미완료로 쓰였기 때문에, 어떤 것도 될수 있음을 나타내는데, 다른 말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떤 모습이든지 가능하시며, 그럼에도 그 본질과 능력은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내가 내가 되는 내가 나임이 곧 나다.
우리는 우리가 되기 위해 이루어져 있는 요소들이 많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요소들은 또한 달라진다. 돈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환경에 의해서도 변한다. 주위 사람에 의해서도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결코 하나님의 나임을 건드릴수 없다.
모세의 반항적인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스스로가 어떤 분인지 짧은 말로 깊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것도 말한다. 이스라엘 ㅇ백성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는 것이다.
이신론적이면서 범신론적이다.
전지전능, 무소불위, 영원불변
15 וַיֹּאמֶר֩ ע֨וֹד אֱלֹהִ֜ים אֶל־מֹשֶׁ֗ה כֹּֽה־תֹאמַר֮ אֶל־בְּנֵ֣י יִשְׂרָאֵל֒ 1/4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אֱלֹהֵ֨י אַבְרָהָ֜ם אֱלֹהֵ֥י יִצְחָ֛ק וֵאלֹהֵ֥י יַעֲקֹ֖ב 1/8
שְׁלָחַ֣נִי אֲלֵיכֶ֑ם 1/2
זֶה־שְּׁמִ֣י לְעֹלָ֔ם 1/4
וְזֶ֥ה זִכְרִ֖י 1/8
לְדֹ֥ר דֹּֽר׃1/2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칼 미완)1/4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1/8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칼 완)1/2
이것이 내 영원한 이름1/4
이것이 나의 명칭1/8
대대로 1/2
: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것이 내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나의 명칭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완전한 성호에 하나를 더 붙인다. 길게 붙인다.
전지전능, 영원불변, 무소불위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도 영원한 성호이다.
16 לֵ֣ךְ וְאָֽסַפְתָּ֞ אֶת־זִקְנֵ֣י יִשְׂרָאֵ֗ל וְאָמַרְתָּ֤ אֲלֵהֶם֙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נִרְאָ֣ה אֵלַ֔י 1/4
אֱלֹהֵ֧י אַבְרָהָ֛ם יִצְחָ֥ק וְיַעֲקֹ֖ב 1/8
לֵאמֹ֑ר 1/2
פָּקֹ֤ד פָּקַ֨דְתִּי֙ אֶתְכֶ֔ם 1/4
וְאֶת־הֶעָשׂ֥וּי לָכֶ֖ם 1/8
בְּמִצְרָֽיִם׃1/2
17 וָאֹמַ֗ר אַעֲלֶ֣ה אֶתְכֶם֮ מֵעֳנִ֣י מִצְרַיִם֒ 1/4
אֶל־אֶ֤רֶץ הַֽכְּנַעֲנִי֙ וְהַ֣חִתִּ֔י 1/8
וְהָֽאֱמֹרִי֙ וְהַפְּרִזִּ֔י 1/16
וְהַחִוִּ֖י 1/32
וְהַיְבוּסִ֑י 1/2
אֶל־אֶ֛רֶץ זָבַ֥ת חָלָ֖ב 1/4
וּדְבָֽשׁ׃1/2
18 וְשָׁמְע֖וּ 1/4
לְקֹלֶ֑ךָ 1/2
וּבָאתָ֡ אַתָּה֩ וְזִקְנֵ֨י יִשְׂרָאֵ֜ל אֶל־מֶ֣לֶךְ מִצְרַ֗יִם וַאֲמַרְתֶּ֤ם אֵלָיו֙ יְהוָ֞ה אֱלֹהֵ֤י הָֽעִבְרִיִּים֙ נִקְרָ֣ה עָלֵ֔ינוּ 1/4
וְעַתָּ֗ה נֵֽלֲכָה־נָּ֞א דֶּ֣רֶךְ שְׁלֹ֤שֶׁת יָמִים֙ בַּמִּדְבָּ֔ר 1/8
וְנִזְבְּחָ֖ה 1/16
לַֽיהוָ֥ה אֱלֹהֵֽינוּ׃1/2
19 וַאֲנִ֣י יָדַ֔עְתִּי 1/4
כִּ֠י לֹֽא־יִתֵּ֥ן אֶתְכֶ֛ם מֶ֥לֶךְ מִצְרַ֖יִם לַהֲלֹ֑ךְ וְלֹ֖א בְּיָ֥ד חֲזָקָֽה׃
כִּ֠י לֹֽא־יִתֵּ֥ן אֶתְכֶ֛ם מֶ֥לֶךְ מִצְרַ֖יִם 1/8
לַהֲלֹ֑ךְ 1/2
וְלֹ֖א 1/4
בְּיָ֥ד חֲזָקָֽה׃1/2
20 וְשָׁלַחְתִּ֤י אֶת־יָדִי֙ וְהִכֵּיתִ֣י אֶת־מִצְרַ֔יִם 1/4
בְּכֹל֙ נִפְלְאֹתַ֔י 1/8
אֲשֶׁ֥ר אֶֽעֱשֶׂ֖ה 1/16
בְּקִרְבֹּ֑ו 1/2
וְאַחֲרֵי־כֵ֖ן 1/4
יְשַׁלַּ֥ח אֶתְכֶֽם׃1/2
21 וְנָתַתִּ֛י אֶת־חֵ֥ן הָֽעָם־הַזֶּ֖ה 1/4
בְּעֵינֵ֣י מִצְרָ֑יִם 1/2
וְהָיָה֙ כִּ֣י תֵֽלֵכ֔וּן 1/4
לֹ֥א תֵלְכ֖וּ 1/8
רֵיקָֽם׃1/2
22 וְשָׁאֲלָ֨ה אִשָּׁ֤ה מִשְּׁכֶנְתָּהּ֙ וּמִגָּרַ֣ת בֵּיתָ֔הּ 1/4
כְּלֵי־כֶ֛סֶף וּכְלֵ֥י זָהָ֖ב 1/8
וּשְׂמָלֹ֑ת 1/2
וְשַׂמְתֶּ֗ם עַל־בְּנֵיכֶם֙ וְעַל־בְּנֹ֣תֵיכֶ֔ם 1/4
וְנִצַּלְתֶּ֖ם 1/8
אֶת־מִצְרָֽיִם׃1/2
구조
13절 모세의 반문(반박) : 당신이 누군데 그런 능력을 행할수 있느냐
신에게 이름이란 그 신의 능력을 뜻하기도 함.
당시 신관은 다신교로 각각 다스리는 영역이 있었음
하지만 모세의 입장에서 하나님은 이름이 없는 신 -> 다스리는 영역이 없는 신+자신의 민족을 노예로 400년간 방치한 신 -> 믿을 수 없다.
그래서 히브리어에는 ‘그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다.
모세를 부르시고, 호렙산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신 그 하나님께 모세가 지금 이야기하는 태도나 내용이 맞나?라는 것이다.
모세의 정체성이 정말로 이스라엘인, 언약을 이어받은 자가 맞냐는 뜻이다.
14절 하나님의 대답 : 거룩한 이름을 말함-> 스스로 있는자(I AM WHO I AM)
스스로 있는 자는 칼 미완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나됨, 나될 것임, 끝나지 않은 나됨이 바로 나이다 라는 뜻이다.
모습도 변할 수 있으며,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모든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천지의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동시에 이 천지의 모든 만물에 그분의 손길과 모습이 담겨져 있다.
즉, 범신론적이며 동시에 이신론적이다.
범신론 -> WCC
이신론 -> 과학자(물리학자등 세계의 구조를 연구하며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저 설계자이며 손을 땠다고 생각함)
그 당시 : 신의 역할과 범위가 정해져있음.
하나님의 이름, 테트라그라마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은 어떤 근원도 아니고(보통 신화는 근원은 근원일뿐이다(그리스로마 신화 제우스, 바벨론등 고대근동의 마르둑, 바알, 북유럽신화)
그래서 테트라그라마톤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무소불위(편재)하심, 영원불변하심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각자 신을 생각하고 신에게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짧은 4가지 철자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스스로가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설명하신다.
거기에는 모세를 향한 꾸짖음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왜냐면 모세의 모든 것을 모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고, 이집트의 왕자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후, 어떤 좌절과 실망에 빠졌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며, 간접적으로 돌려물은 말인, 백성들을 향한 물음에도 대답하신다. 바로 ‘나인 분’이 보내셨다고 해라고 하신다.
비꼬는 물음임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그 물음조차도 답을 주신다. 가장 작은 소리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15절
하나님께서는 한번더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또’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하나님의 성호인 ‘여호와’를 알리고, 그 이름속에 담긴, 전지전능하심, 무소불위하심, 영원불변하심을 말하지 않으신다. 대신 그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시고 영원불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 아버지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 표현은 이 모든 아버지들이 하나님안에서 살아있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인 너희 이스라엘을 분명 보호하시고 돌보시겠다는 약속의 표현이다.
16-22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세세하게 말씀하신다. 모세가 먼저 보내심을 받고 가겠지만, 이집트왕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 뒤로 하나를 더 보내신다. 바로 하나님의 손을 보내신다. 히브리어로 보내다와 손을 뻣다는 같은 단어이다. 20절에 내가 내 손을 들어에서 들어라는 단어는 12절, 14절에서 나오는 보내다와 똑같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8절에서 직접 내려와서 건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직접 역사하신다는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의 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함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다.
8절에서 건진다는 구원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22절에서 이 단어는 취하다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떼내어 오다. 약탈하다. 구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물에서 건지다라고 쓰이기도 한다. 물에 의해 결박당한 자를 때내어서 온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손이 하나님을 믿는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손, 사랑의 손이지만, 믿지 않는자, 하나님의 자녀, 백성을 핍박하는 자에게는 약탈의 손, 찢는 손이 된다는 뜻이다.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반문하고 그 반문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세의 질문은 많은 원망을 담은 질문입니다. 인생을 살며, 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중 많은 것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모세의 질문은 그런 우리의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의 질문에 가장 깊고 세세하게 대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모세의 정체성을 바꾸며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13절에 보다시피 매우 시니컬합니다.
13절에 우리말 번역에 빠져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소서’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13절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모세가 그 하나님께 말했다.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내가 그들에게 너희의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말하면 그들이 내게 그의 이름이 뭐냐고 말할텐데 저가 그들에게 뭐라 말해야 합니까?”
이 질문이 정말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입장에서 묻는 질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제 제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가야하는데, 그 백성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인도하여야 합니까. 라고 공손하게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모세가 돌려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걸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 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당신 뭔데?”입니다.
특히 그의 이름이 뭐냐라는 질문은 그가 뭘 할수 있냐?라는 말로 바꿀수 있습니다. WBC라고 유명한 주석은 아예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왜냐면 신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 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당시 신들은 모두다 자기만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태양신이 있고 달의 신이 있습니다. 바다의 신도 있고 땅의 신도 있고 하늘의 신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름은 그 신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모세는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자로서 배운 것은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그의 무력이 괜찮기 때문에 광야에서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오히려 모세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왜냐면 모세의 입장에서 조상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방치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오랜 세월동안 이집트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고, 수많은 아기가 물에 빠져 죽을 때도 침묵했던 무능력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저 족장들 몇 명만 믿었던 신입니다. 또한 지금은 광야 한 가운데서 아무도 없는 산에, 떨기나무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내가 이 꼴이 되고, 이스라엘이 노예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대체 무엇을 했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우상들을 섬겼다는 것을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버지의 하나님이지 내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아파할 때, 외면했던 분이 아니냐라고 이집트의 신들만 못한 분이 아니냐라고 하나님께 온갖 원망을 담아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11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며 ‘내가 누구이기에’라고 했던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11절에서 ‘내가 누구이기에’는 나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모세의 질문, 그의 이름은 무엇이냐는 당신은 누구이고, 당신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큰 일을 할 수 있느냐라는 원망어린 질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13절에서 모세가 ‘그 하나님께’ 말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반대로 14절에서는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모세의 이런 질문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옳은 태도인지를 은연중에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원망어린, 그리고 의심어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알맞은 대답을 주십니다.
그것이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우리 말로는 이 이름의 뜻은 홀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분정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창조되었고 근원이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 심지어 신들역시도 근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시지 않는 영원 불변하는 스스로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로 이 이름은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해석을 다르게 하면 여러 가지가 되는데, 가장 단순하게 해석하면, 나는 나다입니다. 그리고 새번역에는 각주를 달아서 ‘나는 되고자하는 대로 될 나다’ 라고 해석합니다. 왜냐면 이 이름은 미완료라는 끝나지 않는 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그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해석대로 영원불변이며, 그 스스로 있으신 모든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나됨은 나임이다. 나될 것이 나임일 것이다.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이것은 무엇이든지 될수 있으며 어떤 것도 할 수 있지만, 결코 변하지 않고 구별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 하나님의 이름 4글자는 하나님의 영원불변하심, 편재하심, 전지전능하심을 한번에 담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에 그분의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며,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신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만물이 신이라 결코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불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확실하게 구별하십니다. 그 전지전능하심으로 모든 만물을 초월해 계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을 인지할 수 없고, 하나님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초월해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며,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모세의 의심어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매우 단순하지만 가장 잘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세의 약함과 악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15절을 통해 이런 하나님께서 바로 너희의 아버지들의 하나님이심을 다시한번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섬기는 모든 것보다 위에 계신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며, 이제는 바로 너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내려오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안에서 모든 자들이 살아있으며, 그 아버지들, 조상들도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고통당하고, 그 이해할 수도 인정할수도 없는 고통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자녀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모든 고통을 품어주시고 그들의 모든 눈물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말씀은 의심어린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서 모든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너가 의심하는 것처럼, 백성들이 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이다. 순조롭게 바로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가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내 손이 뻗어져서, 20절 표현 내손을 들어 그나라를 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빈손으로, 가난하게 가는 것이 아닌, 애굽의 보물들을 약탈하여 풍족하게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백성을 압제한 애굽이 받을 댓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습니다. 8절처럼 건지심을 받습니다. 애굽은 약탈을 당합니다. 취함을 당합니다. 22절에서 취하리라라는 단어는 약탈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8절에서 건지다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원래 이 단어의 뜻의 떼어내다 찟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물에 의해 붙잡혀 있는 사람을 건지다라고 쓰입니다. 즉, 압제자의 손에서, 죄의 사슬에 의해 붙잡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손은 그의 손을 찢어내어서라도 그의 자녀들,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손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자녀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에게는 찢어내는 손길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든지, 영원불변하시고, 무소불위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찢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분명 같은 손이며, 같은 일을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손길,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손길임을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고 의심하고 있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던 바로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저 기적의 역사를 눈앞에서 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세의 요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던 바로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계속해서 권면하며, 모세의 불만과 원망을 받아주시며, 위로하십니다. 왜냐면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모세에게 임재하신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능하신 손으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며, 원망할 때도, 그래서 믿음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실족할 때도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것에서 우리를 떼어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우리가 실족할 때도, 세상의 논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강하게 느껴질 때도, 그래서 좌절해서 낙심해 있을 때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위로하시고 다시한번 힘을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원한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심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안에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항상 구원의 손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악과 붙고 세상의 모든 논리와 하나되어서 하나님을 시험하며, 흔드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를 찢는 손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하나님의 손길을 찢는 손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우리의 자녀들도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와 위로속에서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잇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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