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6.수요예배순서

수요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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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
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ㅇ찬송가 86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ㅇ이금보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
ㅇ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3장 13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구약 85페이지입니다. 합독하겠습니다.
(NKRV)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
서론
우리는 피곤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다. 그러나 우리의 아픔과 지침, 힘든보다 더욱 심한 것이 당시 이스라엘이었다. 이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임했는지 살펴보며 위로와 은혜, 겸비함을 얻길 소원합니다.
서론
본론
1 모세의 성장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반문하고 그 반문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세의 질문은 많은 원망을 담은 질문입니다. 인생을 살며, 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중 많은 것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모세의 질문은 그런 우리의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의 질문에 가장 깊고 세세하게 대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당시 바로는 모세를 키운 공주
그러나 그 다음대 바로와 문제가 많았음
본론
모세를 후계자로 키우려했기에 벌어진 것이 아닐까?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그게 탄로난 후에야 나선 것, 15절에 이르러서야 바로가 나선 것은 이때문으로 보임. 그전에 벌써 히브리인 사이에서 소문 다났음.
이것으로 보아 모세는 후계자 싸움에서 거의 패배한 것으로 보임.
모세의 정체성을 바꾸며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13절에 보다시피 매우 시니컬합니다.
물론 자신의 목적은 히브리인,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지만 그를 위해 첫 번째로 권력을 잡으려했음. 그러나 실패.
2. 모세의 행동 - 그의 동포들이었음. 당연히 노예의 지지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머릿수를 지닌 이스라엘이었기에 하나로 규합되어 지도자가 되면 가능성있음.
13절에 우리말 번역에 빠져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소서’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13절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기까지 성경 외적 이야기---------------------------------
진짜 모세의 의도는 알 수없음. 하지만 그가 동포를 구원하려 한 것은 사실로 보임.
모세가 그 하나님께 말했다.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내가 그들에게 너희의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라고 말하면 그들이 내게 그의 이름이 뭐냐고 말할텐데 저가 그들에게 뭐라 말해야 합니까?”
11절에서 그는 그의 형제들의 무거운 노동을 보게 됨. 이것은 나중에 25절에서 하나님께서 보심과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형제로 여긴다.
그는 히브리인이자 그의 형제인 한 남자와 애굽인인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이 질문이 정말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입장에서 묻는 질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제 제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가야하는데, 그 백성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인도하여야 합니까. 라고 공손하게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모세가 돌려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걸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 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당신 뭔데?”입니다.
모세는 또 다른 한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 찾는다(12절 좌우를 살펴보고 사람이 없음)
모세는 그 한 남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애굽인이 히브리인에게 한 것을 그대로 돌려준다
특히 그의 이름이 뭐냐라는 질문은 그가 뭘 할수 있냐?라는 말로 바꿀수 있습니다. WBC라고 유명한 주석은 아예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왜냐면 신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 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당시 신들은 모두다 자기만의 영역이 있었습니다. 태양신이 있고 달의 신이 있습니다. 바다의 신도 있고 땅의 신도 있고 하늘의 신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름은 그 신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애굽인도 히브리인을 치고, 모세도 애굽인을 쳤다. 같은 단어가 쓰인다. 결과가 다르다. 히브리인은 살았지만 애굽인은 죽는다.
13절에 다음날 이번에는 히브리인이 히브리인을 ‘치고’ 있는 것을 본다.
모세가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한다. ‘왜 치느냐?’ 네 동포다.
그 히브리인(동포를 치던 히브리인) 왈 : 왜? 나도 죽이려고(죽이다, 도살하다, 살육하다)? 단순히 죽이다보다 좀더 강하다.
모세는 히브리인을 ‘형제’로 여기지만, 히브리인에게 모세는 그냥 애굽인을 쳐죽인 ‘애굽인’이었다. 이 인식은 나중에도 나온다.
왜냐면 모세는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자로서 배운 것은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그의 무력이 괜찮기 때문에 광야에서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오히려 모세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왜냐면 모세의 입장에서 조상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방치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오랜 세월동안 이집트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고, 수많은 아기가 물에 빠져 죽을 때도 침묵했던 무능력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저 족장들 몇 명만 믿었던 신입니다. 또한 지금은 광야 한 가운데서 아무도 없는 산에, 떨기나무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치는 자. 너는 죽인 자.그런데 무슨 재판관?
14절 다스리는 자, 재판관()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모세의 의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애굽인에게 모세는 ‘이집트왕자인척’하는 자였고, 히브리인들에게 모세는 그저 ‘이집트왕자’에 불과했다.
모세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내가 이 꼴이 되고, 이스라엘이 노예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대체 무엇을 했냐고 묻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이는 자’였고, 자신의 어머니인 바로도 모세에게 ‘죽이는 자’가 된다.(15절)
그가 권력을 구했다.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인들에게 이집트왕자인척 하는자, 왕위를 찬탈하려는 자였다. 실패한 후, 자신의 동족을 형제로 여기며 히브리인의 지도자, 통치자, 판관 다른 말로 사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와 히브리 양쪽에서 ‘죽이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14절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우상들을 섬겼다는 것을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버지의 하나님이지 내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아파할 때, 외면했던 분이 아니냐라고 이집트의 신들만 못한 분이 아니냐라고 하나님께 온갖 원망을 담아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도망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누가 죽이는 자와 함께 있으려 하는가.
도망간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우물곁에 앉아있었다.
때마침 미디안 제사장의 딸 7명이 우물물을 길어 양떼를 먹이기 위해 다가왔다.16절
이것은 모세가 11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며 ‘내가 누구이기에’라고 했던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11절에서 ‘내가 누구이기에’는 나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모세의 질문, 그의 이름은 무엇이냐는 당신은 누구이고, 당신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큰 일을 할 수 있느냐라는 원망어린 질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양치기들이 나타나 그녀들을 쫓아내었다. 모세는 우물 옆에 앉았다가 일어나서 위협을 당하고 내쫒기고 있는 그녀들을 도와주었다.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도왔다. 양치기들을 내쫒았고, 양떼에게 같이 물을 먹였다.
모세가 왜 이랬는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양치기들에게 쫓겨나는 모습에서 애굽에서 쫓겨나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성경은 13절에서 모세가 ‘그 하나님께’ 말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반대로 14절에서는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모세의 이런 질문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옳은 태도인지를 은연중에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녀들을 ‘도왔다’
그런데 그녀들의 반응은 다르다.
이런 모세의 원망어린, 그리고 의심어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알맞은 대답을 주십니다.
그녀들은 모세가 우리를 구해주었다라고 말한다19절
모세의 행적을 매우 자세하게 말한다.
17절에서는 모세가 양떼에게 물을 준것만 말한다.
그것이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우리 말로는 이 이름의 뜻은 홀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분정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창조되었고 근원이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 심지어 신들역시도 근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시지 않는 영원 불변하는 스스로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모세가 자신들을 구원해주었고, 물을 길어주었고(특히 여기 매우 강한 강조가 들어간다), 양떼에게 물을 주었다고 세세하게 다 말한다.
19절은 한명이 말하는게 아닌거같다. 7명이 돌아가며 어떤때는 다같이 말하는것같다. 그가 우릴 구해줬어. 물도 길어줬어! 맞아맞아. 양떼한테 주기도 했다구! 하고 여러명이 말한 것을 모아넣은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히브리어로 이 이름은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해석을 다르게 하면 여러 가지가 되는데, 가장 단순하게 해석하면, 나는 나다입니다. 그리고 새번역에는 각주를 달아서 ‘나는 되고자하는 대로 될 나다’ 라고 해석합니다. 왜냐면 이 이름은 미완료라는 끝나지 않는 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그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해석대로 영원불변이며, 그 스스로 있으신 모든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나됨은 나임이다. 나될 것이 나임일 것이다.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이것은 무엇이든지 될수 있으며 어떤 것도 할 수 있지만, 결코 변하지 않고 구별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 하나님의 이름 4글자는 하나님의 영원불변하심, 편재하심, 전지전능하심을 한번에 담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에 그분의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며,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신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만물이 신이라 결코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불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확실하게 구별하십니다. 그 전지전능하심으로 모든 만물을 초월해 계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을 인지할 수 없고, 하나님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초월해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며,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19절에서 그녀들은 모세를 ‘한 애굽 남자’라고 표현한다.
11절에서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기 전 ‘한 애굽 남자’를 찾는다. 그가 찾지 못하고 죽였다. 그러나 사실 모세가 찾던 ‘한 애굽 남자’는 그 자신이었다.
모세의 의심어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매우 단순하지만 가장 잘 설명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바꾸려 했다면, 애굽에서 쫓겨났을까.
그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자로서 쫒겨났다.
하지만 미디안, 이 황량한 땅에서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세의 약함과 악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이후 르우엘은 자신의 딸들을 구해준 모세를 집으로 데려오고 그에게 자신의 딸을 준다.
모세는 애굽에서 자신이 애굽인인 한 남자인지 몰랐다.
그리고 15절을 통해 이런 하나님께서 바로 너희의 아버지들의 하나님이심을 다시한번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섬기는 모든 것보다 위에 계신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며, 이제는 바로 너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내려오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에서야 애굽인인 한 남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자 그는 이제 죽이는 자가 아니라 구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안에서 모든 자들이 살아있으며, 그 아버지들, 조상들도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고통당하고, 그 이해할 수도 인정할수도 없는 고통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자녀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모든 고통을 품어주시고 그들의 모든 눈물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이 생기고 자식이 생긴다.
그리고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양치는 자가 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했던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말씀은 의심어린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서 모든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너가 의심하는 것처럼, 백성들이 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이다. 순조롭게 바로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가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내 손이 뻗어져서, 20절 표현 내손을 들어 그나라를 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빈손으로, 가난하게 가는 것이 아닌, 애굽의 보물들을 약탈하여 풍족하게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는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백성을 압제한 애굽이 받을 댓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뜻이다.
게르솜은 내몰리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습니다. 8절처럼 건지심을 받습니다. 애굽은 약탈을 당합니다. 취함을 당합니다. 22절에서 취하리라라는 단어는 약탈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8절에서 건지다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원래 이 단어의 뜻의 떼어내다 찟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물에 의해 붙잡혀 있는 사람을 건지다라고 쓰입니다. 즉, 압제자의 손에서, 죄의 사슬에 의해 붙잡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손은 그의 손을 찢어내어서라도 그의 자녀들,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손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자녀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에게는 찢어내는 손길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든지, 영원불변하시고, 무소불위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찢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쫓겨나서야 애굽인의 모습을 버렸다.
그는 쫓겨나서야 죽이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가 되었다.
그는 쫓겨나서야 원래 조상들이 했던 일(목축)으로 돌아갔다.
분명 같은 손이며, 같은 일을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손길,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손길임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패배했을 때, 그는 오히려 본모습을 찾았고, 승리할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는 쫓겨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나가는 자가 될 것이다.
믿지 않고 의심하고 있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던 바로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저 기적의 역사를 눈앞에서 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세의 요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던 바로와 똑같습니다.
이제 애굽인인 한 남자가 아니다. 요셉을 형들에게 인도했던 한남자, 그 역할을 이어받아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할 한 남자가 되었다.
이후 24절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계속해서 권면하며, 모세의 불만과 원망을 받아주시며, 위로하십니다. 왜냐면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신들, 우상들이 아닌 자신들의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다.
드디어 사람이 준비되었다. 내쫒김과 패배, 실패를 통해 모세가 준비되었다. 백성들이 애굽신에게서 떠났다.
24절에서 사람들이 준비되고,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 들으신다. 기억하신다.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신다. 24절의 뉘앙스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가 아니다.
결론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이삭을 기억하시고 야곱을 기억하신다. 그 한명한명을 다 기억하신다. 그들이 살았던 생애 그들의 실패, 그럼에도 했던 순종들을 기억하신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한명한명의 신음을 들으시고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약속했으니까 억지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한명한명을 들으시고 기억하신다.
모세에게 임재하신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능하신 손으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십니다.
25절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듣고 기억으로 끝내지 않는다. 이제 보신다(돌보다가 아니라 보다다). 그리고 아셨다(기억하다가 아니라 아신다). 이 알다는 경험으로, 체험으로 실질적으로 아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며, 원망할 때도, 그래서 믿음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실족할 때도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것에서 우리를 떼어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우리가 실족할 때도, 세상의 논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강하게 느껴질 때도, 그래서 좌절해서 낙심해 있을 때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위로하시고 다시한번 힘을 주십니다.
듣고 기억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지금 보고, 신음하는 그들의 자리에 가서 함께 아파하고 경험해서 아셨다는 뜻이다.
사람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나님의 아심이 완성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영원한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심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안에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항상 구원의 손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가장 완전한 행하심, 역사하심이 드러날 것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고생한다.
또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악과 붙고 세상의 모든 논리와 하나되어서 하나님을 시험하며, 흔드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를 찢는 손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하나님의 손길을 찢는 손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같다.
이 모든 실패를 통해, 때로는 미디안으로 내쫒김을 통해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안에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우리의 자녀들도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와 위로속에서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잇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세가 죽이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로 준비되고,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족장들이 했던 양치기로 돌아간 것처럼,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우상들도, 애굽왕도, 애굽인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 울부짖었던 것처럼
우리의 준비됨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그 준비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2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심은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직접적으로 아심이다. 우리의 신음과 힘들어함을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신다. 우리가 언제 기쁘고 행복해하는지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의 준비와 하나님의 아심이 만나,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가 드러나실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 바쁜 세상, 힘든 세상에 매몰되지 말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이 과정임을 기억하자.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축복과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원한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
ㅇ 돌아오는 주일은 성례주일로 지키며 1부 2부 예배시간에 성찬식이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과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주는 태신자와 식사입니다.
ㅇ교회 대청소가 있습니다. 9월 27일 금요일 6시입니다. 청소도구를 가져와주시기 바랍니다.
ㅇ교구별 릴레이기도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내일은 3,7교구이니 1층 게시판을 참고하시어 함께 기도하길 바랍니다.
ㅇ중직자 및 직분자들께서는 당일 주차장이 혼잡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시기 바랍니다.
ㅇ이번주 목요전도는 3남, 5여전도회입니다.
ㅇ이번주 금요기도회 특송은 2교구입니다.
ㅇ1여전도회 10월 한달 연속철야기도가 있습니다.
ㅇ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ㅇ결혼소식입니다.
감천2구역 심우술 안순남 집사님의 장남 심재윤군의 결혼식이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1시에 JW웨딩컨벤션센터 4층 그랜드볼룸에서 있습니다.
교회출발은 오전 11시 30분입니다.
함께하실분은 11시 30분까지 교회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90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손잡으시고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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