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0 [공동체 예배] 찢어져 드러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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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히스기야의 상황
히스기야의 상황
앗수르왕 산헤립이 치고 올라왔다.
당시에 맺었던 애굽 동맹이 박살날 위기다.
그런 상황에서 유다는 무엇을 의지하게 될 것인가?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질문한다.
4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사 36.4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랍사게를 통하여 발견하게 되는 것은 2 가지다.
애굽을 의지 하지 말라.
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36.6
2.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라
15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18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앗수르의 강력한 침공에 북이스라엘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남 유다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믿음이 시험받는 시대
믿음이 시험받는 시대
최 집사님 이야기
모르는 걸 질문하러 갔다니 면박을 주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더라.
그게 상처가 돼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전광훈씨
묻어두고 믿으라는 식의 믿음은 이제 통용될 수 없는 시대
10월 몇일 광화문 이승만 광장(?)에 모이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고인 설리
기독교 이름 ‘최진리'
하지만, 악플러들의 악플 세례에 끝내 인생을 끝냄.
참된 믿음을 찾을 수 있는가?
모르는 걸 질문하러 갔다니 면박을 주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더라.
그게 상처가 돼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히스기야가 찢은 것
히스기야가 찢은 것
히스기야는 오늘 3가지의 행동을 보여준다.
자기의 옷을 찢는다
굵은 베 옷을 입는다
여호와의 전으로 간다.
옷을 찢는 행동은 신성모독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대인들의 행동이다.
내가 ‘수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굵은 베 옷을 입는 것은 ‘상 중'임을 나타낼 때 입는 옷이다.
여호와의 전으로 간다. 자신이 의지할 것이 오로지 하나님 뿐임을 재확인 하는 것이다.
깊은 회개와 자기 드러남, 수치 등
오스왈트,
히스기야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왕이다 나라가 바로 그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숨어 버림으로써 체면을 유지하는 회개는 회개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의 회개는 인간의 견해가 아닌 하나님의 견해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의 왕 됨을 증명하는 옷을 찢어버린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왕 됨은 아무런 효력도 가치도 없다.
이것이 찢어지지 않고, 내가 아직 여전히 왕이라면- 랍사게의 침공을 막아낼 힘이 나에겐 없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의지했던 것을 찢은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찢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찢을 것인가?
회개의 시대다.
참된 회개를 요구하지만, 회개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회개하자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회개를 죄 뉘우침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회개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방향성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근본이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옷을 두동강 낼 수 있는가?
자신의 수치가 훤히 드러나도록 정직해질 수 있는가?
찢다.
찢다.
22 그 때에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37.1
엘리아김과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갔다,
히스기야 왕이 옷을 찢었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도 옷과 직물이 찢어질때 사용된다.
새옷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지 않는다,
예수님의 옷을 찢지 말고 제비뽑아 갖자,
그물이 찢어지지 않게 되었다 등.
이 표현을 잘 살펴보면, 한 번 찢어지면 다시 가져다 붙이지 못하는
‘나뉘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이 단어가 ‘나뉘다'라는 단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다시 하나가 될 가능성이 없는 찢어짐이다.
이 단어가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문장을 설명할 때 등장한다.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리고 ‘바위'가 터지고라고 되어있는 ‘터지다'가 찢어지다, 나뉘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바위가 터지
21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이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바위를 쪼개어 물이 솟아나게 하신 것과
오늘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찢어진' 사건에서
또 다른 영적 갈급함과 의지할 것 없어서 헤메고 방황하는 또다른 광야 세대에게
‘생명의 물'이 흘러 넘칠 가능성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다른 대체 가능한 용어들이 많은 데 특별히 이 본문에서 찢고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
‘찢어짐'이 다른 상황에서는 잘게 부수고 나누고 강제로 침입 당하도록
다른 상황에서는 잘게 부수다, 나누다, 강제로 침입하다로 사용되기도 한다.
‘찢어짐'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잘게 부수고 나누고 강제로 침입 당하도록
열어 젖히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잘게 부수시고 나누시고 죄인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달려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옷'을 찢으신게 아니라, 자신의 전인을 찢으셨다.
무엇을 찢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무엇을 찢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레미제라블-
미저러블,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있다.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9년을 감옥에 산 사람이다.
겨우 ‘작은' 죄를 저질렀을 뿐인데, 억울하게 산 것이 너무 분하고 증오가 가득하다.
장발장에게는 그것을 보상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에게 선의를 베푼 신부에게서 은식기를 훔쳐서 달아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왔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잡혀 돌아온 장발장에게 신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비싸고 중요한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것에 장발장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왜 다른가? 나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가?
다른 길이 과연 있을까?
영상을 보자-
나의 죄로 가득한 허공, 그런 세상을 벗어날 것이다.
장발장은 이제 없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돼! 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증명하던 죄인 증서를 찢어버리고 허공에 날려버린다.
밝은 제단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찢어발겨지고 수치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때 -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은혜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피를 받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찢을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 마음의 보좌를 찢어발기고 나의 수치와 더러움을 그대로 내어보이며
하나님께서 침입하셔서 우리 인생을 이리저리 휘저으시도록 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게 우리는 찢으면,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죽을 것 같고 희망이 없는 것 같지만,
찢어져 열어젖혀진 우리 마음에 주님께서
자신을 찢어 열어젖히신 주님의 은혜의 보좌를 놓으셔서
함께 하시며, 돌이키시며, 힘을 주실 것이다.
우리의 죄인 증서를 십자가 앞에서 찢어발기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는가?
11월 1일 부터 진행될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찢어 열어젖히고,
십자가 보좌로부터 은혜의 물과 피가 쏟아짐을 받아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찢어져 드러난 것이 ‘수치'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임을 기억하며
하늘을 찢으시고 우리에게 임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