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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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מִזְמ֥וֹר לְתוֹדָ֑ה הָרִ֥יעוּ לַ֝יהוָ֗ה כָּל־הָאָֽרֶץ׃

2 עִבְד֣וּ אֶת־יְהוָ֣ה בְּשִׂמְחָ֑ה בֹּ֥אוּ לְ֝פָנָ֗יו בִּרְנָנָֽה׃

3 דְּע֗וּ כִּֽי־יְהוָה֮ ה֤וּא אֱלֹ֫הִ֥ים הֽוּא־עָ֭שָׂנוּ וְלֹא אֲנַ֑חְנוּ עַ֝מֹּ֗ו וְצֹ֣אן מַרְעִיתוֹֽ׃

4 בֹּ֤אוּ שְׁעָרָ֨יו׀ בְּתוֹדָ֗ה חֲצֵרֹתָ֥יו בִּתְהִלָּ֑ה הֽוֹדוּ־ל֝וֹ֗ בָּרֲכ֥וּ שְׁמֹֽו׃

5 כִּי־ט֣וֹב יְ֭הֹוָה לְעוֹלָ֣ם חַסְדֹּ֑ו וְעַד־דֹּ֥ר וָ֝דֹ֗ר אֱמוּנָתוֹֽ׃

1 מִזְמ֥וֹר לְתוֹדָ֑ה
הָרִ֥יעוּ לַ֝יהוָ֗ה
כָּל־הָאָֽרֶץ׃
감사의 시
여호와께 기뻐 외치라(히필 명령)
그 모든 땅이여
감사의 시작 : 선포
기뻐 외치라 : 전장의 함성으로 쓰이는 말. 그 결과나 군세가 어떻든지, 승리를 믿고 외치는 것.
대상 : 나뿐이 아니라, 모든 땅, 창조물이 포함.
2 עִבְד֣וּ אֶת־יְהוָ֣ה
בְּשִׂמְחָ֑ה
בֹּ֥אוּ לְ֝פָנָ֗יו
בִּרְנָנָֽה׃
여호와를 섬겨라(칼 명령)
기쁨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오라(칼 명령)
기뻐뛰며
여호와를 섬김이란 기쁨이다.
여호와를 섬김이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내 상황이 어떻든지 나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실 복과 은혜를 기다리며,
또한 주인이 오는 것을 보고 팔짝팔짝 뛰는 강아지처럼.
기쁨으로 하나님과 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강아지가
3 דְּע֗וּ כִּֽי־יְהוָה֮
ה֤וּא אֱלֹ֫הִ֥ים
הֽוּא־עָ֭שָׂנוּ
וְלֹא אֲנַ֑חְנוּ עַ֝מֹּ֗ו
וְצֹ֣אן מַרְעִיתוֹֽ׃
알아라(칼 명령) 여호와,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다(칼 완)
그리고 그분의 것은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목장의 양떼다
여호와께서 어떤 분인지 알아라!
감사의 시이지만 감사가 먼저 나오지 않는다.
여호와의 섬김의 태도, 기쁨이 먼저 나오고
하나님을 앎이 나온 후에 감사가 나온다.
하나님을 앎이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신, 우리의 보호자이심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것임을 아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분, 하나님의 목장안에 있는 양떼임을 아는 것이다.
비록 잠시 그 목초지에 푸른 풀이 없는 것같지만,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들이 솓아날 것이다.
4 בֹּ֤אוּ שְׁעָרָ֨יו׀ בְּתוֹדָ֗ה
חֲצֵרֹתָ֥יו בִּתְהִלָּ֑ה
בְּתוֹדָ֗ה חֲצֵרֹתָ֥יו
הֽוֹדוּ־ל֝וֹ֗ בָּרֲכ֥וּ שְׁמֹֽו׃
בִּתְהִלָּ֑ה הֽוֹדוּ־ל֝וֹ֗
בָּרֲכ֥וּ שְׁמֹֽו׃
감사함으로 그의 문으로 들어가라(칼 명령)
찬양으로 그분의 뜰로
그분께 감사하라(히필 명령)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피엘 명령)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피엘 명령)
감사-찬양-감사-찬양이 반복된다.
감사로 하나님의 성의 문을 연다
찬양으로 하나님의 성의 마당으로 간다.
그곳에서 다시 감사하고 찬양한다.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가까워짐을 보여주고 있다.
5 כִּי־ט֣וֹב יְ֭הֹוָה לְעוֹלָ֣ם חַסְדֹּ֑ו
וְעַד־דֹּ֥ר וָ֝דֹ֗ר אֱמוּנָתוֹֽ׃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은 대대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사를 할 수있는 근본적인 원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성실하심의 영원함
1절 : 범위 - 온땅 ; 5절 : 시간 - 영원
구조
1절 감사의 시
여호와께 기뻐 외치라(히필 명령)
그 모든 땅이여 -> A
2절 여호와를 섬겨라(칼 명령)
기쁨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오라(칼 명령)
기뻐뛰며 -> B
3절 알아라(칼 명령) 여호와,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다(칼 완)
그리고 그분의 것은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목장의 양떼다 ->C
4절 감사함으로 그의 문으로 들어가라(칼 명령)
찬양으로 그분의 뜰로
그분께 감사하라(히필 명령)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피엘 명령) ->B’
5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은 대대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A’
해석
A, A’
범위 : 온땅A 영원A’
기쁨의 이유 : 선하심, 인자하심, 성실하심이 온땅에 있고 영원까지 있다.
B B’ : 가까이 오라
B : 기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오라 -> 가까이 올수록 더욱 큰 기쁨(그냥 기쁨-> 기뻐뛰며(주인을 만난 강아지가 어쩔줄 몰라 자신도 모르게 춤추듯이))
하나님을 섬김이란 기쁨이다. 내 상황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치 강아지와 같이 기뻐 뛰며 나아오는 것이다. 그저 주인의 존재에 기뻐하고 주인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김이다.
B’ :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위치, 하나님의 성에 들어가고 거하기 위해서는, 감사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문을 통과하는 출입증은 감사다. 앞서 2절이 강아지와 같은 기쁨을 말했다. 4절에서는 그 기쁨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뻐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쁨과 감사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찬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성문을 통과할 때 찬양하고 그의 궁정, 그 뜰에 모여 함께 송축하는 것이다.
감사와 찬양은 점점더 강해진다. 처음엔 칼형이다가 마지막 송축은 피엘형으로 한다. 즉, 하나님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큰 감사와 찬양이 나오는 것이다.
앞서 B(2절)에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큰 기쁨이 나오고 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빛에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도 바울 : 사도중 작은 자(서기 55년 3차 전도여행, ) 모든 성도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5년지남 가택연금, ), 죄인중의 괴수(생애마지막,감옥 ) -> 의의 면류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갔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하지만 어떻게 의의 면류관을 기대할수 있었을까.
그 답이 C(3절)이다.
감사는 앎이 있기에 가능하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바울이 그 악한 상황에서도 의의 면류관을 확신했던 것도 하나님을 더욱 알았기에 가능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은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주신 목장에서 뛰어오는 양임을 아는 것이다.
비록 다가가면 더욱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또한 이 앎은 기쁨과 감사로 둘러쌓여있다. 하나님을 알았기에 기쁨과 감사가 나온다.
그리고 그 기쁨과 감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온 땅과 모든 시간에 선하심과 인자하심, 성실하심을 알리신다.
감사함으로 그분의 양임을 증명하길.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와 성실을 온땅에, 모든 시간에 알릴 수 있는 자가 되길.
설교
서론
시편 100편은 히브리시가 가지는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교차대구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과 5절이 서로 보완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2절과 4절이 서로 내용을 보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은 그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제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0편을 보기 위해서는 1절과 5절을 한꺼번에 보고 2절과 4절을 같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3절을 봐야합니다. 그렇게 한번 봐서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3절에서 내용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3절의 내용이 2절 4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1절과 5절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수 있어야 비로서 시편 100편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드러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3편으로 수렴되는 전반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처음에 시편 100편 1절은 감사의 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이 것은 이 시의 장르, 이 시가 어느때 불러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지어진 시이며, 그래서 감사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첫째, 감사는 승리의 확신에서 시작합니다.
시의 주제가 감사인데, 시편 100편은 감사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감사의 시라는 제목이 붙지 않은 시편 136편은 25절이라는 긴 절 전체가 감사찬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감사의 시라는 시편 100편은 감사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고 하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즐거운 찬송이라는 말은 기쁨의 함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좀더 의역해서 즐거운 찬송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원 뜻은 함성, 고함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전장에서 외치는 함성입니다. 즉, 전쟁에서 돌격하기 전 사기를 고취시기며, 우리의 승리를 확신하며 지르는 함성을 뜻하는 말이 즐거운 찬송의 원 뜻입니다.
이 단어가 왜 즐거운 찬송이 되냐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기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우리나라의 축구같은 종목이 결승전에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 전체가 들썩들썩합니다. 이겨라고 온갖 함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만약에 결승에서 승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너나할 것없이 완전 하나되는 축제가 열립니다. 그런데, 국운을 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1절은 이 승리의 함성, 기쁨의 함성을 온땅, 모든 피조물들에게 외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승리를 확신하며 즐거운 찬송, 기쁨의 함성을 지를 수 있습니까. 그 이유가 바로 5절입니다.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 성실하심이 영원히 있기 때문에 우리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에 이르는 선함과 인자, 성실로 인해 이제 모든 땅에게 기쁨의 함성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간을 선함과 인자, 성실로 덮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승리의 확신, 기쁨의 함성을 온땅과 그 위에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들리도록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승리를 확신하고 기쁨의 함성질렀던 온땅의 모든 믿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승리로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둘째,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다가감을 묘사한 것이 2절과 4절입니다.
2절은 가장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말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섬김의 태도입니다. 그냥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기뻐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내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나의 주관자,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너무나 기뻐하며, 그 기쁨가운데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섬긴다는 기쁨은 하나님께 다가갈수록 점점더 커집니다. 처음에는 그냥 기뻐합니다. 점점더 하나님의 모습이 커질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술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부르는 찬양, 남이 부르니 나도 부르는 찬양,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하는 노래가 아닌, 하나님이 커짐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손에 든 전리품, 승리의 댓가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바로 하나님께 가까이가는 출입증입니다. 전장에서 귀환하여, 그 힘든 싸움을 마치고 당당히 성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 손에 든 전리품, 내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성의 문 열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싸움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고 시편 100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감사로서 문을 연 승리자는 기쁨의 개가, 승리의 찬송을 높이 부릅니다. 동시에 점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의 안뜰, 오직 하나님께 허락받은 자만이 들어가는 안뜰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점점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커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저 멀리 있는 하나님입니다. 분명 내게 승리를 주실 것이고, 내 승리의 원천이 되시지만,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쁨의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며, 온땅에 선포합니다. 그 결과로 얻어진 것들,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감사로서 드립니다.
그러다보면 내 안에 하나님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하나님께서 나의 전부임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2절과 4절은 이런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결국 나보다 높으신 하나님으로 내 전부가 채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는 하나님을 앎으로 완성됩니다.
이제 가까이 다가가며 우리는 3절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쁨의 함성을 외쳤습니다. 그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 열매가 크든지 작든지, 기쁨으로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갑니다. 감사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성의 안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나를 하나님으로 채우는 경험을 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멀리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을 알지만 내가 분투해서 얻은 승리이며, 내가 얻어낸 전리품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남들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왔고, 때로는 기쁨은커녕 무감정하게 하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처음부터 지키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궁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승리, 완전한 승리가 아니지만, 장차 올 완전한 승리가 내것임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게 해주십니다.
이처럼 감사는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결론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혹자들은 현대 시대에 추수감사의 의미가 많이 쇠태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더욱 자주 많이 추수하고 있습니다. 매 달마다 일한 댓가를 받게 됩니다. 세일즈를 하는 분들은 하루하루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체험하게됩니다.
그럼에도 어떤 때는 나 자신이 비참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 고생을 하고도 손에 쥔 것, 통장에 들어온 것을 볼 때마다 힘겨워지고, 한숨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갈 때, 항상 기쁨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내 마음이 채워질수록 내가 얼마나 작고 비천한 존재인지 느낄 때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쓴, :9에서 그는 자신을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칭합니다.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쓴 :8에서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던 바울은 :15에서 자신을 ‘죄인중에 괴수’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그것조차 잊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인 것처럼 살 때도 있습니다.
삶에 시련이 닥칠 때, 승리의 함성, 전장의 함성은커녕 비굴한 신음소리도 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적의 칼날, 세상의 공격앞에서 비굴해져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막아주시고 우리 앞서 전진하시는 우리의 대장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보다 내 손안에 있는 전리품, 세상에서 얻은 것에 눈이 어두워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강한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궁정, 하나님의 존전에 이르러,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했던 모든 싸움이 그저 하나님의 소유이신 목장에서 있었던 일의 일부임을 아시게 하십니다.
내 기쁨도, 내 슬픔도, 내 고난도, 내 아픔도, 내 자랑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세상이 나를 버려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과의 싸움, 나와의 싸움, 그 모든 순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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