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2.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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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ㅇ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4장27절에서 31절 말씀입니다. 구약87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27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28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30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7교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길을 나선 모세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보았듯이, 그의 마음이 아직까지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애굽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왜 모세는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에게 노하셨을까요. 함께 본문을 나누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27절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부르시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모세의 경우와는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 바로를 만나라라고 분명한 목표와 목적지를 정해주십니다. 그러나 아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광야로 가라는 말씀밖에 하지 않습니다.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나기는 하지만, 아론은 호렙산이라는 목적지를 듣지 못합니다. 그저 광야로 나가라는 말씀만 듣습니다.
본론
4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어디인지 확실한 목적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다른 말로 하면 광야로 가서 모세를 찾아라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쉽게 말해 사막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끔찍한 광야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으러 가야합니다. 그것도 40년 전에 헤어진 동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약속이라도 받았는데, 아론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10절은 모세의 핑계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우시겠다고 했고, 이적까지 보이시자, 모세는 더 이상 하나님께 뻗뻗하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르게 모세가 하나님께 말할 때, 앞에 ‘오 주여’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이 말은 왕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말을 할 때, 먼저 허락을 구하는 표현입니다. 즉, 좀더 예의를 갖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12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며, 이미 아론이 모세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고있다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아론이 꽤 오랜 기간을 광야에서 헤메고 다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돌아와 이드로를 만나고, 여정을 준비하고 다시 호렙산으로 돌아올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시일은 알수 없지만 모든 시일을 합치면 최소한 며칠에서 몇주까지 광야에서 있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속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본 모세는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핑계를 댄 것입니다. 10절에 나오듯이 자신은 말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셨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 애굽에서 산 노인이 광야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자신의 동생인 모세를 만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론의 순종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며칠, 몇주가 걸렸든지 광야에서 헤메었든지 하나님의 산에 와서 모세를 만났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변하지 않으시고 모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답하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지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특히 12절에는 하나님께서 너의 입에 함께 있겠다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가 겪었던 고난과,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 했던 수고역시 기록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인의 종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자신의 볼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갔다오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해줄 주인이 어디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매우 단호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답합니다. 이 말을 원문그대로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 오 주여 제발 보낼 손을 보내소서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직역하지 않고 오 주여 주님이 원하시는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해석을 합니다. 모세는 왜 이렇게 표현을 했을까요?
27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런 엄청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론이 어떻게 했다라는 말씀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갔다,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다, 모세에게 입맞추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정말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왜냐면 3장 20절에서 바로가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치겠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손을 들어라는 표현이 바로 손을 보낸다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29절에서 31절까지 나오는 장로들과 백성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9절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한 표현이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이스라엘 장로라는 표현은 46번이 나오는데 비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단 3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9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에스겔8장에서 쓰였습니다. 에스겔 8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 70명이 한명도 빠짐없이 우상숭배하는 장면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그저 장로들의 생각만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로서 모여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한 표현 그대로 다시 하나님께 말한 것입니다. 보통 말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싸울 때,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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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30절에 분명 모인 것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인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모세가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가기 싫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상황을 다시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당시 엄청난 성세를 떨치던 애굽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애굽사람을 죽인 것으로 볼 때, 무예도 전수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디안에 와서 한 것은 양치기였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미디안의 주요산업은 목축이 아니라 중계무역과 광업입니다. 양치기란 정말 하층민들이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 이드로는 그에게 양치기를 시켰을까요? 아마 모세가 저지른 살인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모든 국가들도 애굽을 종주국으로 섬기고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합니다. 실제 가나안 정복전쟁 당시 발견된 문서를 보면, 가나안민족들이 애굽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문서도 있습니다. 중계무역이 주인 미디안에서 모세가 두각을 나타낸다면, 당연히 애굽에 모세의 위치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양치기를 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모세를 중용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출애굽기 18장에서 이드로가 모세의 부인과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모세가 모든 재판을 직접 하는 것을 보고 체계를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40년동안 이드로는 모세에게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오직 양을 치기 위한 지식말고는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이드로는 결코 모세에게 높은 직위를 맡길 생각이 없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입니까. 애굽의 노예로 있습니다. 노예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모인다고 하면 지배계층이 허락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모인다해도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엄중한 감시속에서 모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30절에 백성이 모인 자리에 애굽의 병사들과 감독들이 나와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자칫 반역과도 같은 말,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들으셨다는 말씀을 듣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은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처음에는 자신이 결혼하고 자식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둘째의 이름을 엘리에셀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40년전에 도망갔던 모세란 자가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라는 말만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40년간 양치기를 했습니다. 양을 치러 나가면 미디안 광야의 특성상 풀을 찾아 계속 이동을 해야 합니다. 며칠씩 노숙을 해야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며, 홀로 밤을 보낼 때,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특히 400년이 넘게 애굽에 있으며 그 문화에 우상에 젖어있던 이스라엘이 이름도 모르던 우리 조상의 신이 ‘여호와’이시며, 그분께서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을 믿고, 그 말만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모세가 편하게 잠을 잘수 있었을까요. 3장 1절에서 나온 것과 같이 80세가 되었는데도, 자기 소유의 양떼 하나 없이 끝까지 소위 삯꾼으로 부려먹히던 모세였습니다. 물론 이드로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를 받아주고 애굽으로부터 숨겨주고, 딸을 주고 살 곳을 주었다는 것만해도 그는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납니다.
31절에 뭐라 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이 믿었다로 시작합니다. 들었다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다라고 하기도 전에, 그 이름만을 듣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었고, 그 즉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드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애굽의 나날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큰 일이 벌어지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그래서 지금도 그 여파로 고생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이 계속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분명 모세는 수많은 밤을 근심과 울분, 한을 삭히며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마치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문도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산으로 가서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10절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는 말은 모세의 한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정말로 말을 못한다기 보다는, 40년의 세월중 수많은 나날을 홀로 광야에서 보내며,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한이 어린 표현입니다.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도 분명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또한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모세를 향해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진노하시며 14절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14절의 핵심은 아론입니다. 아론이 말을 잘하고 그가 모세를 이미 만나러 나오고 있다라고 말씀합니다(개역개정을 제외하고 4개는 모두 이렇게 번역). 그리고 이미 아론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27절에서 아론이 하나님의 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모세가 이야기하는 이 산에서 모세를 만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렇게 거부하고 안될거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만은 온전히 순종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모세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까. 단순히 모세가 순종하지 않아서 진노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마치 사탄이 아담을 유혹할 때 햇듯이 그대로 받아서 말하고 있어서 진노하십니까.
28절에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을 말합니다.
그것보다 모세가 자신에게 갇혀있기 때문에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형제들에게 배반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디안광야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라는 말과 이방인이라는 말은 똑같은 말입니다. 나그네가 되었다는 것은 모세가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세는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4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밤을 한숨과 울분속에서 지새웠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호화로운 잠자리가 아닌, 유목민의 천막에 누워서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8절에서 모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이 아니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내가 기적을 행할 것이다가 강조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 아론이 지금 그를 만나기위해 오고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세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신은 쫓겨나고 버림받고 숨어 이방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모세를 버렸다면, 모세를 잊었다면, 하나님의 명을 받은 아론이 기쁨으로 가득차서 모세를 만나러 올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애굽의 노예민족이라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힘들었을 텐데, 호렙산까지 그 광야길을 80이 넘은 노인이 기쁨으로 올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모세가 아직도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따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모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다는, 자신에게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30절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30절에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때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아론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고, 우리의 모든 고난을 보셨다는 그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아론뿐만 아니라 모세의 가족이 모세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모세가 처음에 물에 버려졌을 때, 모세를 구할수 없어 지켜보았던 것처럼, 그의 가족들이 모세를 잊지 않고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역시 이적을 보고 믿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보다 이적이 중요한 사람은 모세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한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람같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강조한 모세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고 모세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데 집중한 아론입니까.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따르지 못해서, 결국 할례까지 시행하지 않았던 모세입니까. 애굽의 삼엄한 감시와 경고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모였고, 그 자리에 가지도 못했지만 그저 귀에 들리는 소문만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까.
모세는 혼자 생각하며 혼자 상상하며, 버림받았고, 소망이 없다고 낙심하고 한을 품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한대로 그는 이방인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역시 계속 그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모세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만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된 사람은 오직 모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불순종으로 진노하실 것이었으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면 애굽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애굽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모세가 자신의 시야,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고, 자신의 형제를 보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인데, 그 한가지조차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모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들의 마음을 돌리셨는데, 모세의 마음은 변화시키지 않으셨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종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기 원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끝까지 참으시고 계십니다. 주위 모든 상황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자 거짓말같이 모든 상황이 풀림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16절에 모세에게 뭐라 말씀하십니까. 모세가 아론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론이 장자인데 모세가 아론보다 훨씬 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쫓겨나기 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길 꿈꿨던, 그 꿈을 이루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택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증거로 지팡이를 말씀하십니다. 이적을 일으킨 지팡이를 손에 잡고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다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났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의롭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역시 삶의 곤고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잠이 들수 없는 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아닌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준비됨은 분명 모세의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앞에 설 담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비록 우리는 보지 못하여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앞에 설 담력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보며 기도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절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내 좁은 시야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넓은 은혜의 바다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앞에 우리 또한 준비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그를 위해 기도할 수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던 모세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모세의 기도
그의 미디안광야 40년
이스라엘의 인도자 40년
그의 나이 120세 향수.
그를 위해 기도할 수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던 모세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총회를 위해
교육부서를 위해 특별히 11월 14일에 있을 수능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