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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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란?
안식일이란?
안식일의 의미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밀밭사이로 가로지르면서 지나가다가 시장해서 이삭을 잘라먹은 그 장면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을 가지고 주님과 논쟁을 붙는 장면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원에 갔을 때 자기가 배고프면 거기가서 먹어도 됩니다.
밀밭사이로 갈 때 배고프면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는데, 그릇을 가져와서 담거나, 낫을 가지고 추수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나그네에 대해서는 먹어도 된다는 율법이 있습니다.
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이렇게 율법에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가면서 먹은거에 대해서는 문제가 안됩니다.
제자들이 가다가 가지를 잘라다가 먹었습니다. 벼 이삭을 비벼먹어야 되는데, 겨 자체를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이게 바로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규정으로 바리새인들에게 걸린겁니다. 그러니까 낫을 대지 말라는 것은 추수하지 말라는 건데, 손으로 비볐다는 것이
하나의 추수로 들어가는거에요. 추수로 들어가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을 범했다는 이걸로 들어가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서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해서 먹었습니다.
이거 문제 아닙니까? 주님께 얘기한 것이고,
주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오늘 두 가지 예를 통해 이야기 하는 겁니다.
오늘 이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논점이 뭐냐면, 두 가지 큰 주제가 부딪혔는데,
첫번째 안식일의 계명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한 문제와 그 안식일에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 두가지의 문제가 논점으로 붙은 겁니다.
이 안식일 논쟁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왜 주님이 바리새인과 논쟁하고 성경에 남겼는지를! 집중해서 좀 보세요. 수면의 영에서 깨어나세요!
안식일의 계명을 왜 만들었는가? 그 안식일에 인간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냐면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틀려버렸기 때문에, 오늘 안식의 대해서 주님께 논쟁을 붙을 정도로 틀려버린거에요.
여러분, 이 문제가 잘못되면 여러분들은 주님앞에 나와야 될 예배와, 그런 모든 주일 이런 개념이 틀어지고, 이게 틀어지면 진정한 안식, 쉼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주일 얘기가 아닙니다. 안식일 얘기가 아닙니다.
안식이라는건 뭐냐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안식의 의미가 틀어지면,
오늘 바리새인 처럼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매이게 되고,
오히려 그것이 종교적인 습관에 매이게 되고, 여러분이 마땅히 누려야 되고,
마땅히 쉼을 얻고, 그 쉼을 갖고 세상에 나가서 파워있게 살아가야 될 그리스도인들이 다 무너져버리는거에요.
그게 굉장한 중요한 논점입니다. 이 두 가지 논점 때문에 예수님이께서 묻는거에요.
그들한테! 자, 성경에서 안식일을 처음이야기한 곳은 여기입니다.
십계명입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자,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첫번째는 누구나 종이나 아무나 일을 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왜 일을 하지 말라는가? 왜 안식일은 하나님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고,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이건 두번째와 연결되는 거에요. 두번째가 뭐에요?
천지창조와 연결되고 있는겁니다. 6일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날 안식했다.
그러니까 너는 일하지 말라! 원래 안식의 개념은 창조와 연결된 개념입니다.
창조와 연결될 때는 크게 2가지로 나타납니다.
지난 주도 제가 이야기했는데, 하나님이 6일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날 쉬신 것은
그 분이 그거를 만들고나서 너무 고되서 쉰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니라,
6일동안 만든 창조 작품이 뭐라구요? 완벽했다는 겁니다. 완벽했다!
완벽한건 손을 댈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as가 필요없다. 완벽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안식을 한 것은 뭐냐면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은 완벽하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인간들을 왜 쉬게 하냐면, 인간들이 뭘 쉬긴 쉬어요?! 한게 뭐가 있다고?! 빛을 가져왔어? 돌을 날랐어!? 한게 없잖아요. 그죠?
그런데 일하지말라 에는 어떤개념이 있냐면, 하나님이 창조한 완전한 창조의 역사가운데 인간들이 뭐에요? 땀흘릴 일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이 만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너무나 완벽하다는 걸 얘기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일하지 말라는건 뭐가 있냐면, 그 일을 안함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을 기리는 것에 사람의 힘과 사람의 노력과 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만들 그런게 없다는거에요. 여러분!
하나님 그분자체가 너무 완전한 분이니까, 너희는 그분만을 생각하고, 기리고, 그 분안에서 쉼을 얻는거지, 그날에 네가 뭔가를 움직여가면서 뭔가 다른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인간들은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게했고, 이해되십니까? 이말이! 그리고 그 하나님의 완벽한 천지창조에 대해서 바라보고 감격하며 누리라는 겁니다.
이게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이 창조의 원리가 결국 안식일이 깨진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이죠!
이 안식을 누리려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한게 있는데, 선악과를 먹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인정해야 되는 겁니다. 선악과는 분명히 금령의 나무고,
금령의 나무라는 것은 나에게 어떤 것을 금지시킬 수 있는 주권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주권자에게 도전하는거에요.
주권자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안식해야 될 사람이, 하나님께 도전하므로 어떻게 되요? 안식일이 깨지잖아요. 죄가 들어오잖아요. 안식이 깨지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뭐에요? 칠일째 안식하는 날에 8일이라는게 필요한 거에요.
하루가 더 필요한거에요. 왜냐면 안식이 깨졌기 때문에!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뭘하냐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고,
우리를 다시 그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한 날이 뭐에요? 그날이 주일이라는거에요. 그 다음날!
우리가 지키는 건 그 주일을 지키는겁니다. 주일의 원리도 안식일의 원리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어요. 뭐냐면,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여러분 주일에 교회가서 예배드리잖아요. 그게 무슨 뜻이냐면, 주님께서 이룬 구원은 완벽하다! 이걸 얘기하는거에요.
십자가의 구원은 완벽하다. as가 필요없다.
여러분, 이런 논리를 가지면 안됩니다. 내가 주님께 구원받았는데,
내가 살아가다가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내 구원이 끊어질까? 안끊어집니다!
이거 믿고 개떡같이 사실 분은 사십시오! 그러나 분명한건 이 땅에서 여러분은 개떡입니다.
아셨죠? 여러분 탕자를 이해하셔야 됩니다. 왜 탕자인지 아세요?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탕자입니다. 그러나 자 라는 것은 자식이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는거에요. 떠난 자가 종이었다면 받아줄 이유가 없는거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구원했다는 건 우리가 자식됐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식답지 않은 탕자가 있을 수 있어요! 자식다운 효자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자식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에 완벽하게 끌고갑니다.
이 다음에 가서 부끄러울 뿐이죠. 아버지 앞에! 죄송한거죠. 그 따위로 산게!
그래도 구원은 받는다는거에요.
완벽하다. 인간의 노력이 필요없다. 완전하다!
그걸 이야기하면서 두번째, 주일을 왜 우리가 지켜야 되냐면,
주께서 이룬 구원이 완벽하기 때문에! 다른말로하면 여러분을 그 구원까지 이루어갈,
주님의 능력이 완벽하니까! / 여러분이 주일날 어떤 일을 하고, 거기서 여러분을 위해 뭘 할 필요없이! 그 주님 앞에서, 날 인도하신 주님앞에, 바라보고 회복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여러분이 어떻게 되요?
신앙의 회복과 쉼이 있을 수 있다 없다? 없다! 이거에요.
이런 똑같은 원리로, 주일은 주님만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지 말라는거에요. 같은 개념이 지금 흘러가고 있단 말이에요.
안식일, 주일 이런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건 뭐냐면, 이 일 속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드러나야 되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고, 그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안식일의 주권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누구냐는 거죠!
그런데 주인이 안식일에 완벽한 주인이라고 말하는데,
또 한가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지만, 누구를 위해 있다구요?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분명히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입니다. 그 주님안에서 힘이 오는데, 그 안식일이 누구를 위하여 있다구요? 사람을 위해 있다는겁니다.
다른 말로 할께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건은 누구 때문이라구요? 우리때문이라구요!
사람을 위해 있다니까요!? 사람을! 사람을 위해 줬다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 이해해야 되요. 사람을 위해 줬는데, 나에게 뭐, 내가 받은게 뭐가 있어!?
그렇잖아요. 주일은 분명히 예수님이 주인이지만, 그걸 우리를 위해 줬다면서요.
그런데 여러분 주일날 어떠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있는 것 같습니까?
안그렇잖아요 다! 이게 뭐야! 이렇게 되잖아요.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착각하지 마세요.
저는 아기들을 참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들을 보면 성악설이 맞고 죄인이 맞습니다. 누가 성선설이라고 그랬어요? 자식을 안키워봐서 그래요!
자식키워보세요! 자기 같은 자식 3명만 키워봐! 절대 안그래요 여러분!
예전에 소유랑 온유랑 놀다가 소유가 탁 밀었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소유야, 온유야 미안해! 말하라고 했죠. 그럼 어떻게 해야되요? 온유야 미안해! 하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그걸 안해요! 끝까지 서 있어요.
김소유 너 사과해, 아빠 그냥 안 넘어가! 사과해! 빨리 하고 자유롭게 놀아! 빨리!
무시해요. 오히려 저를 째려봐요! 기가막힌거에요.
그러다가 너 혼나! 하고 매를 들고 방으로 끌고 가요. 애가 두렵죠. 웬만하면 저는 안때릴려고 하는데, 인내심이 약해요. 그런데 예전에는 쉽게 매를 잡았는데,
매로 하면 약빨이 좋아요. 그러나 감정이 남아있어요. 저도 안좋고 아이도 안좋아요.
그래서 이제는 매를 안잡으려고 노력해요. 애들이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방법을 바꿨죠! 시간이 좀 걸리지만, 확실한 방법!
제가 언제 한번 교회 아기들 잡을거에요! 예배 시간에 가만히 안있고, 떠들고!
특히 저녁예배 때! 제가 한 번 잡으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어떻게 하냐면,
잘못하면 애들을 데려가서 절대 안 때려요. 고함도 안쳐요. 조용히 얘기해요. 눈빛은 살아있게! 안되는거야! 안돼지! 사과해! 안돼! 으악!!! 통하지 않아!! 으악!! 소용없어! 으악!!
엄마도 소용없어! 이렇게 계속 이야기해요.
안돼!! 이게 어디서 울어? 이런거 안해도 되요. 이게 미치고 이런 거 없어요.
애가 난리를 치고 울어도, 안돼! 소용없어! 사과해야 나가! 안돼! 20분 동안 이렇게 하면
잘못했어요. 그러면 애가 항복해요. 3살짜리가 항복해요. 3살짜리가!
매로 했을 때 쉽게 했어요! 이야!! 이건 실력이 없는거에요.
그런데 20분동안 했어요. 여러분 그 짓을 왜 해요! 빨리 미안해 하고 가면 되죠!
안그래요? 이해 안가지 않아요!
여러분 같으면 드러워서 하고 갈거아니에요!
근데 애들이 그걸 안한다는거에요. 근데 애들이 그걸 안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영적인데서 똑같아요 사실은요!
하나님한테 끈질기게 개기잖아요. 고집부리잖아요.
하나님 죄송해요 한 번 하면 끝날 것을, 내 인생은 왜 이래요? 뭐에요?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뭐 이래요? 끝까지 고집부리잖아요. 안그래요?
영적으로 너무 똑같은걸 봐요! 놀랍다니까요. 걔를 위해서 한 번 해줘보세요!
안식을 너를 위해서,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한 번 해줘보세요! 뭐가 되나?
아이들이 원하는데로 해줘보세요. 걔가 뭐가 될거 같아요? 엉망이 되죠! 뭐가 되요?!
엉망이 되죠! 아이들을 풀어놨어요. 니 맘대로 해봐! 개판 됐어요.
색연필, 매직으로 냉장고, 컴퓨터, 옷 다 색칠해요. 난장판이에요.
여기도 했어? 이 정도로! 마음대로 해보세요? 뭐가 되나!? 한번 생각해보라구요!
너희를 위하여 있다는게 뭔가?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해줄 때, 자녀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면 자녀는 망가지는거에요.
대부분의 자녀가 원하는 것은 다 95%는 no에요. 그게 정확한거에요.
애들은 부모가 신경질나죠. 어느순간 자라면서 우리 엄마는 미치겠어, 잔소리꾼이야!
언제나타나서 뭐라고 해! 그죠?
애들이 그러잖아요. 여러분이 그랬잖아요. 청소년때 굉장히 반항했잖아요.
걔네들이 원하는대로 해보세요. 다 쓸데없는거에요. 다 공부안하는거고, 다 노는거고,
뽀로로를 보여주면 또 다른거 보여 달라고 그러고, 한 번 양보하면 더 양보하라고 그러고,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돌리고, 안그래요? 걔네를 위해 해주면 걔네가 뭘하냔말이에요. 지금 이 얘기를 하는거에요. 이 얘기를!
너희를 위하여 있다는게 뭐냐면, 너희를 만들겠다! 라는 의미가 있다는거에요 안식일은요! 사람을 위하여 있는데, 나는 뭡니까? 그 문제를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왜 주님이 안식의 계명과 율법을 줬냐면, 율법이라는 것은 바로 어떤 기준을 정해준단말이에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보호하고, 하나님께 다가가기 원하고, 주님 앞에 자라기 위해서 율법을 주는거에요. 얽매인게 아니라! 그 율법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온전히 자유로와 지는거에요.
부모가 나갈 때, 이거 이거만 건들지 말고 마음대로 놀아! 이러면, 아이가 그것만 안건드리고 마음대로 놀지만, 그냥 놀아! 그러면, 놀고가는건데, 야! 너 이건 왜 건드렸어?
이러면 애가 뭘 놀지 모르잖아요.
안식일의 율법은 그렇게 준거란 말이에요. 사실은 너희를 위하여 줬는데,
너희를 위하여가 너희 마음대로 가 아니라, 너희를 하나님이 만들겠다고,
이 안식일의 진짜 쉼과 은혜를 누리는 존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마음과 다짐이 그 안에 같이 포함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주님의 마음을 모르면, 여러분은 안식일에 온전한 반응을 못하는겁니다.
그게 보세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6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사를 왜 드려요? 내가 죄인이고, 우리 주님만이 날 받으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마음을 배우려고 제사 드린거 아닙니까?
여러분 예배 왜 드리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오늘 내가 주님의 마음을 갖고,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살겠다고 예배드리는거 아니에요?
여러분의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예배드리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제사를 드린다는 건, 아버지의 마음을 받는 다는 건 그건 자비로운 마음인데, 자비로운 마음을 배우지 않고, 자기게 드러난다면 그 제사는 온전치 않다는거에요.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주님의 마음이 중요하다는거에요.
어떤 사람이 자라면서 그 집이 너무 가난해서, 생선 조기가 오면 몸통을 잘라서 살을 주고, 엄마는 보통 머리 먹잖아요. 애가 물어보죠. 엄마는 왜 머리만먹어?
그래서 엄마가 엄마는 머리가 맛있어. 어두육미야! 그래서 생선은 머리가 맛있어서 그것만 먹어, 너네가 맛없는거 먹어라 이렇게 준거에요.
이 애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 생일날, 그 때 생각이 나서 조기를 넣어서 선물을 줬어요! 그래서 선물을 딱 봤더니, 뭐만 있는 줄 아세요? 머리만 있는거에요.
엄마가 깜짝 놀랬죠. 몸은 어디갔니?
어머니는 머리만 좋아하시잖아요. 어떻게 해야 되요? 십자가로 찍어야죠.
조기하나당 한 방씩이죠! 그걸 준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는거에요.
자기는 이렇게 말하겠죠! 나는 엄마 생일에 드렸어! 효자야! 기억했어! 엄마가 조기 뭘 좋아하는지도 알아! 엄마가 진짜 맛있다고 한걸 나는 깨닫고 있어!
뭔말인지 아세요?
바리새인들이 나는 율법을 지켰어! 나는 이렇게 했어. 나는 저랬어!
나는 하나님말씀 지키고 있어! 근데 그 안에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없다는거죠.
그러니까 무지한 자를 정죄한다는거에요. 지금 그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안식일을 너희를 위하여 줬는데, 아버지의 마음이 뭔지, 너희에 대한 마음이 뭔지를 알아야 되는데, 그 마음을 모르니까, 자기의 마음대로 안식일을 생각하고 죽여버렸다는거에요. 자기 마음대로 안식일을 지키니까 은혜가 없는거죠!
이걸 지금 얘기하고 있는거에요.
그러면 안식일에 흐르는 주님의 마음은 뭘까?
그것이 바로 다음 두 가지 예 속에 나타나요. 첫번재 3,4절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게 첫번째구요, 두번째는 5절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는, -6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사울을 피해서 다윗이 도망갈 때에 제사장 엘리멜렉에게 갑니다. 그가 진설병이라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성전 앞에 둥그런 떡이 12개 있습니다. 각 지파별로 있는 겁니다. 그게 양쪽에 두 줄로 있어요.
그것은 그 지파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것은 누가먹냐면, 매 안식일마다 그 진설병은 바뀌고, 그것은 제사장만 먹어야 되는 떡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배가고파서 거기로 뛰어들어왔을 때, 그걸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줘서 먹었다는거에요.
너가 이걸 읽지 못했느냐? 이거에요. 이게 왜 별안간 안식에 들어왔냐는거죠.
어떤 의미에서? 배고프면 줘라! 이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안식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있다는거죠. 제사장이 줬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겠죠?
제사장이 본것! 진설병을 줘야 되는 이유! 그것이 제사장이 준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하나님이 본게 있다는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보는 그 것!
그게 뭐냐는 거에요. 그들이 함께 할 때, 시장할 때 시장은 :6과 같은 단어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이거랑 같아요.
이거는 무슨말이냐면, 단순히 다윗이 육체적인 배고픔을 넘어서 영적인 굶주린 갈등에있었어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쫓고 하니까 삶이 곤고하잖아요. 나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데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는게 있잖아요. 너무 곤고한거에요. 배도 고프고, 정신적으로 쫓기고,
영적으로도 굶주린거에요. 진짜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하나님이 있나? 이해되세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움과 굶주림가운데 있는가?
이런 영적인 곤고함이 있었는데, 그게 누구한테 생각나냐면, 다른데가서 그걸 해결한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전으로 달려온거에요. 이해되세요?
먹는 문제를 넘어섰단말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면, 자기를 먹이고, 자기를 해결하고, 자기에게 안식을 줄 뿐은 세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앞에 달려갔어요. 하나님 앞에 달려온 갈망을 제사장이 본거에요.
거기다가 그 진설병을 준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을 찾는 자!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 하나님 앞에 안식을 누리는 자를!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는다는거에요.
그 얘기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요나서 2:4에 보면,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피하고 다시스로 갈 때, 물에 빠져서 큰 물고기가 잡아먹습니다. 그 안에서 그가 드린 기도문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도망간사람입니다.
그가 바다에 빠진건 징계고 심판이었습니다. 근데 물고기가 그를 먹고, 그 안에서 저 기도를 하는거에요.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죄책감과 낙망에 빠져서, 나는 선교사로 자격이 없구나! 나는 하나님의 일에 자격이 없구나!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죄책감으로 포기했을 때, 문뜩 저 기도를 읽고 회복한 말씀이에요.
요나가 하나님께 도망감으로 징계를 입고 빠졌는데, 그가 죽어가면서 어던 생각을 하냐면, 내가 하나님의 목전에 쫓겨났을 지라도 다시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이해되세요? 내가 지금 음부를 느낄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그것속에 회복이 있는거에요. 하나님이 물고기 뱃속에서 끄집어내잖아요.
선교사님이 이렇게 고백하는거에요. 내가 여태까지 살아가는 것이 곤고하고 힘이 없고, 제가 잘못했고, 내가 하나님의 선교사로 잘못했다 할지라도, 내가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안에서 내가 소망갖기 원합니다. 이 기도를 통해 다시 회복됐고, 달려갔다는거에요. 다윗의 이야기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거에요.
그 인생의 곤고하고 어려울 때, 그는 하나님 안에서 갈망함을 채우기 원했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원했고, 하나님을 통해서만 그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진설병을 줬다는거에요.
여러분 안식일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하나있어요. 지금!
안식에는요, 단순히 교회를 왔다갔다하는게 아니에요.
세상에서 6일동안 우리는 일을 해요. 세상에서 일을한다는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냐면,
아직 우리가 주님 나라갈 때까지, 이 땅의 죄인된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거에요.
비록 십자가의 구원을 받았지만,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온 모든 인간들은 뭐에요?
남자들은 땀을 흘려야 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느끼잖아요.
우리는 주님나라 갈 때까지 6일동안에 세상과 싸워야 되고 곤고하고 일하고 있단말이에요. 그러나 그 일 속에 곤고해서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나는 쉼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 속에, 이 경제의 불황속에, 내가 어떻게 가야됩니까? 할 때,
주일날 와서 너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너를 구원한 자가 누구냐?
너는 누구를 붙잡고 쉼을 얻고 갈망함을 해결하려고 할 때,
주일날 와서, 주님 다윗처럼! 나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만 갈망하고,
하나님을 통해서만 받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안식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가라는거에요. 그냥 쉼을 이야기하는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두번째 장면이 나오는거에요. 5절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자, 안식일에 제사장들은요, 일을 두배로 합니다. 왜냐면, 안식일에 제사를 드리니까!
일이 더 많아져요. 다른 말로 할께요. 목사는 주일에 일이 더많아요. 그렇잖아요.
목사 안되서 모르겠어요? 되보세요! 일이 더많아요. 주일에 더 많다구요.
다름 사람은 토요일이 되면, 아~ 이래요. 우리는 김이 나요.
준비해야 되니까!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햇는데, 제사장들은 두 배로 해도 왜 괜찮냔 말이죠!?
이 문제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제사장들이 안식의 일을 두배로 하는건 뭐냐면, 하나님 앞에 안식을 누리러온 백성들에게 주님의 마음과 사랑을 부어줘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회복시켜야 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한거란 말이에요.
다른 사람을 살리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기 위해서는,
그 두 배를 일했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찾아온 자에게 안식을 주기 위한 그 일!
여러분, 사람은요, 어떻게 만들어졌냐면,
주일날 이게 무슨 안식일이야 안식일은! 가서 교사하랴, 성가대 하랴, 예배하랴,
목사 되는게 나아! 똑같이 해!
목사 되보세요! 해보세요. 그리고 얘기해!
안하면, 교사 안하면, 성가대 안하면, 예배 안드리면 쉼이 될거 같아요?
사람은요,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보세요. 병들어요! 안그래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쳐서 운동에 복종할 때 살이 빠졌어요.
요즘은 다시 전쟁이 시작되고 있어요. 지금 한계 상황이에요.
사람은, 움직여야 건강한거에요.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강해진단 말이에요.
가만히 있는게 쉼이 아니라 그건 죽음이에요.
암에 걸려도 낫는 환자는 어떤 환자냐면, 약맞고 토하고, 움직이는 환자는 살지만,
병상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먹으면 죽어버리는거에요.
그걸 쉼이라고 생각하면 안되요. 그건 세상사람의 논리에요.
우리의 쉼은 그런게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주님 앞에 오는거에요.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거에요. 왜? 주님으로부터 오는거니까!
6일 동안의 일이 뭐냐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한 일이라면,
우리가 주님께서 주일날 일하지 말라는건 뭐냐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 가 아니라,
너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먹고사는게 너가 6일동안 노력한 그 땀의 노력으로 살아가는게 아니란 거에요 주님은요! 너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니까!
그걸 알고 누리고 분명히 하고 가야 너가 6일동아 세상과 싸워 이기고, 안식을 누리고 극복해 나가지, 여기서 주님 앞에 그걸 누리지 못하면 너는 망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이 어떤 개념이 있냐면, 그냥 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배에 동참해야 되고, 주님의 나라와 함께 하는, 다윗같은 갈망함과 적극적인게 있어야 여러분이 회복이 되는거고, 힘이 되는거고, 세상을 누릴 영적인 파워가 나오는거에요.
잘 보세요. 여러분, 상담할 때, 영적으로 힘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반이 주일날 신앙생활이 개판이에요.
아마 예배 생활도 개판일 것이고, 봉사도 개판일것이며, 다른 것도 다 개판이에요.
한국교회가 왜 힘을 잃은 줄 아세요? 주일만 예배드리는 떠돌이가 너무많아서 그래요!
주일날 에배드리는 것만해도 감사해요! 이것도 안하면 다음 주에 안나올라!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회복이 안되요.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병든거에요.
옛날에는 우리 어른들은 지금보다 성경적인 지식이 없어도,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섬기려고 하고, 애써서,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어요.
하나님앞에 다윗처럼 반응하셔야 되요. 나가야 되요.
그래야 온전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갈망함 속에서 은혜가 임하는거에요.
그냥 임한게 아니에요. 그 얘기를 하는거에요.
너희의 주인이 누구냐? 안식일을 통해서 알라는거에요. 완벽하다는거에요.
니 머리로 까불지 말라는거에요. 니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거에요.
와서 그걸 회복하라는거에요. 주권자가 누군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권한을 주면 왜 주는지, 뭘 만들기 위해 주는지, 이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주님을 붙잡고 나가면, 발견하게 될거라고 말하는거에요.
그래야 사람은 변하게 돼있어요.
하나님의 안식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쉼을 앉아서 받지 마세요
그렇게 은혜를 받는게 아니에요.
하나님 나는 지금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곤고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면, 나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갈망합니다. 주님앞에 나옵니다. 내가 은혜를 받던 못받던 내 감정과 기분에 따른게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셨고, 주님이 불렀고, 주님이 함께 하는 그 자리에, 나는 무조건 갈망하고 나갑니다. 주님으로 안식을 주시고, 주님이 회복시키시고, 주님이 나를 세워주세요. 이 갈망이 있는 자가 하나님께 쉼을 얻을 것이며,
이 쉼을 얻는 자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갈망하십시오.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한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그냥 끌려가는 신앙 갖지 않겠습니다. 젊은 날에 주님을 믿는데, 그냥 앉아서 게으르게 닮는 신앙 되지 않겠습니다. 나도 곤고할 때, 다윗처럼 주님을 갈망하고,
주님앞에 영적으로 육적으로 회복되길 원하며 주님을 붙잡고 주님 안에서 가는 은혜받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나의 갈망을 다윗처럼 회복시키시고 힘을 주시고 세상을 이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우리 가정과 모든 교회가 힘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맛보길 원한다고 기도하겠습니다.
